“기쁜 소식을 전하고”(이사야서 61:1)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61:1-4, 8-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4. 그들은 오래 전에 황폐해진 곳을 쌓으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곳도 세울 것이다. 황폐한 성읍들을 새로 세우며, 대대로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던 곳을 다시 세울 것이다.
8.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9.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지며, 그들의 자손이 만민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그들이 나 주의 복을 받은 자손임을 인정할 것이다."
10.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에 뿌려진 것을 움트게 하듯이, 주 하나님께서도 모든 나라 앞에서 의와 찬송을 샘솟듯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시편 126)
1.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2.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일을 하셨다."
3.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4.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데살로니가전서 5:16-24)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6-8, 19-28)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그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20.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21.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그들이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24.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쁜 소식’입니다.
구약,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시며”(이사야서 61:3)
시편,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시편 126:3)
서신서, “항상 기뻐하십시오”(데살로니가전서 5:16)
복음서,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요한복음 1:26)
오늘 요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입니다.(이사야서 61:1)
[구약과 시편본문 얼개 (이사야서 61:1-4, 8-11 / 시편 12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가오는 영광의 기쁜 소식’입니다.
1-2절은 매우 낯익은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신 나사렛 회당 말씀이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4:18-19)
구구절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3-4절 말씀도 기쁜 소식이고,
나머지 8-11절도 기쁜 소식이고,
오늘 구약본문은 온통 기쁜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이 기쁜 소식들의 알맹이는 회복(재건)이고(4, 10)
그분(“나”)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입니다.(1)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에 의해 완성됩니다.
이 말씀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의 고단한 나날 속에 주신 말씀입니다.
긴 세월 불안과 불안정 속에 살던 백성을 “나무”처럼 안정되게 하시겠다는 든든한 약속입니다.(3)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운, 하나님을 쏙 빼닮은 자녀로 거듭날 것이므로 “의의 나무”라 불립니다.(3)
“영원한 언약”으로 세워주시는 주님의 이 든든한 말씀들은 최고의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8)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여호와께서 포로를 돌리시도다’입니다.
과거 바빌론 포로를 귀환시키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회고하면서
그 급격한 은혜의 사건처럼
오늘날 여러 위기 상황에도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비는 노래입니다.
(“네겝의 시내들”(4)은 평소에는 바싹 말라 있다가 우기에 갑자기 물이 불어 세차게 흐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얼개 (데살로니가전서 5:16-24 / 요한복음 1:6-8, 19-28)]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마지막 권면과 인사말’입니다.
이 편지는, 주후 50년 경 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울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마지막 여러 권면 가운데 가장 먼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16)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완전히 거룩하게”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23)
“평화”의 기초는 화해요,
“거룩하게”된다는 것은 곧 주님과 친밀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경지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라면 반드시 영과 혼과 몸 두루,
완벽히 갖춰야 할 일입니다.(23)
본문은 그러기 위한 회개의 조건, 회개한 자의 요건을 두루 말합니다.(16-22)
이 모든 거룩한 길에 서야, 다시 오실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완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니(24)
우리는 항상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세례자 요한의 자기 증언’입니다.
권위 있는 말씀을 선포하는 요한에게 예루살렘 사람들이 집요하게 묻습니다.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는 그분이 바로 당신이냐고.
나는 그분이 아니고 그분의 길을 닦는 사람이라고 요한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자기를 낮추고 또 낮춤으로 그분을 드높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오실 그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다고 말합니다.(26)
이건 참으로 신비롭고 가슴 설레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정리]
오늘 구약의 알맹이는 회복의 기쁨입니다.
“의의 나무”라 불릴 만큼,(“정의의 느티나무 숲” 공동번역)
정의의 주님을 닮아가는 기쁨입니다.
서신서의 알맹이 역시 회복의 기쁨입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주실 만큼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가는 기쁨입니다.
복음서의 알맹이 역시 회복의 기쁨입니다.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외치신 예수님에 앞서서(마태 4:17)
세례자요한이 외친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입니다.(마태 3:2)
회개함으로 온전히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입니다.
성경말씀이 가르치시는 평화는 화해를 통한 평화입니다.(로마 5:10, 고후 5:18)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그 화해 말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회개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닮아가는,
그리하여 시나브로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이 평화 말입니다.(살전 5:23)
‘큰 평화의 성’ 예루살렘의 평화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최근 12월 6일,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 운운한 것입니다.
러시아 스캔들에 몰린 처지에, 권력을 유지하려는 발버둥으로 보입니다.
IS가 가라앉고, 북한 공격 시나리오도 내려앉는 마당에
군수산업의 활로를 찾는 발버둥으로도 보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이 대림의 계절에
우리 모두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가는 기쁨을,
참 평화세상을 이뤄가는 기쁨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내 권력과 이익만 좇던 길을 돌이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내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 구석구석에 천국이 이뤄질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참 기쁨으로 전해야 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나머지]
* 낮추고 또 낮추는 세례자 요한
누가 1:17, 마태 11:14, 마태 17:10-13절에서는 천사도,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을 장차 올 엘리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누가 1:17)
너희가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면,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마태 11:14)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마태 17:10-13)
영락없이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춥니다. 그 겸손에서 뿜어 나오는 한줄기 강렬한 기운을 봅니다. 기쁨의 기운입니다.
** 큰 평화의 성 예루살렘의 평화를 더럽히는 트럼프와 샤론
지난 2017년 12월 6일,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러시아 스캔들에 몰린 트럼프입니다. 게다가 IS가 세력을 잃고, 북한 공격 시나리오도 가라앉게 됨에 따라 미국 군수산업의 활로를 이스라엘/팔레스틴 갈등으로 풀려는 속셈이 엿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성경적인 것처럼 보여도, 전혀 반성경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뜻있는 교회들이 반대하고, 교황청도 반대하고, 유럽정상회의도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을 반대하고 나섭니다. 자신의 권력욕심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은 누구라도 좋아할 리 없습니다. 간혹 성경말씀을 근거로 트럼프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 따른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래전) 지난 2000년 10월 1일, 세계평화를 꿈꾸는 큰 잔치,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이 거행되던 날, 참 역설적인 뉴스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무릎에서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열두 살 소년 모하메드의 가슴 저미는 모습이 전 세계 텔레비전에 방영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성전 예배에 다녀오던 모하메드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숨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야당 당수인 아리엘 샤론이 정치적인 나쁜 계산을 가지고 무장한 경찰들을 데리고 이슬람 성지를 방문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지와 겹치는 그곳을 방문한 그날은 2000년 9월 28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예배력으로 티슈리(7)월 1일 신년절, 즉 나팔절이었습니다. 과연 그는 무슨 나팔을 불려고 그곳을 찾았던 것일까요? 그건 온건 여당의 입지를 좁혀서 표를 얻으려는 계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참으로 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사람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조차 무차별 살육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과연 누가 하만이고, 누가 모르드개인 걸까? 2500년의 세월을 넘어 에스더서와 완전히 뒤바뀐, 거꾸로 가는 부림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중략) 아리엘 샤론이 나팔절에 심각한 갈등과 살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팔절 직후인 7월 10일이 속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속죄절은 7월 10일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 달 전인 6월부터 이미 속죄절 준비가 시작됩니다. 그 중에서도 7월 1일 나팔절은 속죄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특히 나팔절과 속죄절 사이에 들어있는 안식일은, ‘회개의 안식일’이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담아 지킵니다. 그만큼 속죄절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성전제사가 무너진 뒤로 지금까지, 속죄절 준비기간은 번제 대신 주로 회개와 용서, 금식과 선행(자선)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속죄절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팔절 이 중요한 날을 자기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한 샤론의 행동이란... 아버지의 무릎에 누워있는 열두 살 소년 모하메드의 주검 위로, 부모의 손잡고 성전에 다녀오는 열두 살 소년 예수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성실문화」 25호, 지침서-예배력 다시보기, 인용)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로마서 2:28-29)
[말씀동시] 낮아짐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초등부 6학년. 「성실문화」93호)
내가 낮아져야 할 때
내가 낮추어야 할 때
그때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낮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의 고민...
세례요한의 겸손한 마음.
그것이 최고의 사람
[말씀시조] 주님 기름부으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3호)
주님 기름부으사 주님의 영 임하시니
주께서 날 보내사 복음을 전하시네
약한 자 슬픈 자에게 공평하신 주사랑
[말씀한시]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93호)
餒者來而飯之(뇌자래이반지) 굶주린 자가 와서 음식을 먹고,
寒者來而衣之(한자래이의지) 추워서 떠는 자가 오면 옷을 입히고,
病者療而起之(병자료이기지) 병든 자는 와서 고침 받고 일어나며,
死者葬而安之(사자장이안지) 죽은 자는 장사를 치러 안장하였으니,
淸節達娑(청절달사) 청절한 달사로서
未聞斯美(미문사미) 이렇게 아름다운 일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오세종 역주, 「경교비문 역해」, 삼필문화사, 2015, 135쪽에서)
[말씀서예] 이사야 61:1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93호)
[말씀노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93호)
[본문] (요한복음 1:6-8, 19-28)
[노랫말]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1.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시기로 약속한 그분입니까
아니오 아니오 나는 아니오, 그리스도 엘리야 나는 아니요
2.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3. 너희는 주의 길을 곧게 하여라, 너희는 주의 길을 곧게 하여라.
참빛을 증언하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광야의 소리요
[해설]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었고, 성실문화원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이정훈 시, 박승원 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2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3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찬양대]
후렴) 1. 여호 와께 서-, 시온 의포 로를, 돌려 보- 내실, 때- -- 에-,
우- -리 는-, 꿈- 꾸는 것-, 같- -았 도-, 다- -- --∼
[여성 독창]
2. 그- 때- 에-, 우리 입에 는-, 웃- 음이 가득, 하- -- 고-,
우리 혀에 는-, 찬- 양- 이-, 찼- -었 도-, 다- -- --∼
[찬양대]
후렴) 그- -때 에-, 뭇- -나 라-, 가- 운- 데서, 말- -하 기를,
여호 와께 서-, 그들 을위 하여, 큰일 을행 하셨, 다- -- --∼ (하였도다)
[남성 중창]
3. 여호 와께 서-, 우- 리- 를-, (우- 리를) 위하, 여- -- --,
큰- -일 을-, 행하 셨으 니-, 우리 는기 쁘도, 다- -- --∼
[회중과 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여성 중창]
4. 여호 와- 여-, (여호 와- 여-), 우리 의- 포로, 를- -- --,
남- -- 방-, 시내 들- 같이, 돌려 보내 소-, 서- -- --∼
[찬양대]
후렴) 5. 눈- -물 을-, 흘- -리 며-, 씨를 뿌- 리는, 자- -- 는-,
(기- -- 쁨-), 기쁨 으- 로-, 거두 리- 로-, 다- -- --∼
[혼성 이중창]
6. 울- -- 며-, 씨를 뿌리 러-, 나가 는- 자는, 반- -드 시-,
기- -쁨 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 고돌 아오, 리- -- --∼ (로다)
[회중과 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후렴, 즉 뒷소리는 세마치로, 앞소리는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후렴)’ 부분의 가락은 전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가락으로 부른다.
‘후렴)’ 부분이 ‘시편’ 노랫말이면 찬양대 합창으로, ‘아리랑’ 노랫말이면 모두 합창으로 부른다.
앞소리는 가능하면, 여성독창, 남성중창, 여성중창, 혼성 이중창 등으로 변화를 준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대림절 3주, 2017년 12월 17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이사야서 61:1-4, 8-11, 시편 126, 데살로니가전서 5:16-24, 요한복음 1:6-8,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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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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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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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창 29:34). 이름 뜻은 ‘친함’, ‘연합된 자’이다.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하던 레아가 이 아들로 남편과 친해지기를(연합되기를) 원하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세겜 인근에서 여동생 디나가 하몰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자, ○○는 형 시므온과 함께 세겜 부족을 몰살시켰다. 이 일로 그 ○○자손은 가나안 온 땅에 흩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창 34:25-31) 게르손, 고핫(그핫), 므라리를 낳았다. 이들 세 아들을 통해 형성된 자손들은 훗날 출애굽 후 광야 생활 도중 금송아지 사건 때 유일하게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출 32:26-29) 요단 동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며 음행할 때 ○○지파의 비느하스가 우상 숭배자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렸다(민 25:11-33). 그 결과 비록 세겜 사건으로 인하여 그 자손들이 뿔뿔이 흩어질지언정 흩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복을 받게 되었다. ○○는 아버지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137세로 죽었다(창 46:8-11; 출 6:16). 동명이인으로, 알패오의 아들이 있다(마가 2:14, 가버나움 출신 세리 마태와 동일인물로 추측한다. 눅 5:27-29). (요한복음)
②‘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데살로니가전서, 요한복음)
④3명의 대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름 뜻이 ‘야훼께서 구원을 베푸셨다’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으며, 왕족이나 귀족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록한 예언서는 모두 66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1-39장을 그가 지었고, 40-55장과 56-66장은 각각 다른 이들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사야서, 요한복음)
⑤에게 해 북서쪽 터마 만(Themaic Gulf) 끝에 위치한 마게도냐의 주요 무역항이며 미항(美港)이다. 발칸 반도를 횡단하는 로마의 주요 간선 도로였던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다. B.C. 315년경 마게도냐의 왕 카산드로스(Casandros, B.C. 316-297년경)가 터마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26개의 마을 주민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뒤 아내이자 필립 왕의 딸이며,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인 테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로 부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여 전도했고 다수의 결신자를 얻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곳을 떠나야 했다(행 17:1-10). 이후 고린도에서 이 지역 교회로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후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향하는 길에 다시 방문했으며, 이곳의 신실한 두 성도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예루살렘까지 바울을 수행하기도 했다(행 20:4; 27:2). 바울 당시에는 대략 12만 명이 살았고, 다수의 유대인, 회당 등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13년 이래 다시 그리스 영토가 되어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불리며 수도 아덴 다음가는 인구 200만의 그리스 제2의 도시다.(데살로니가전서)
⑥다윗이 점령한 여부스족 요새의 본 이름인데, 그 뒤로 다윗성이라 불리다가, 차차 온 예루살렘과 그 주민의 칭호가 되었다.(이사야서, 시편)
세로열쇠
①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하게 하셨다.”(이사야서)
②‘구별된 자’라는 뜻을 가진 유대교 종파 이름. 마카베오 전쟁(주전 160여년 경부터 시작) 이후부터 강한 종파로 대두되기 시작해서 주후 70년 경 예루살렘이 망한 뒤 가장 강력한 종파가 되었다. 율법, 십일조, 정결예법 등에 철저했다. 처음에는 평신도 운동이었으나 차차 서기관(율법학자)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었다.(요한복음)
③남부 유다의 초원(*스텝) 지역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름. 이 지역 시내는 평소에는 바싹 말라 있다가 우기(*雨期)만 되면 갑자기 물이 가득 차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텝(steppe); 러시아와 아시아의 중위도에 위치한 온대 초원 지대. 건조한 계절에는 불모지, 우기(雨期)에는 푸른 들로 변한다. *우기(雨期); 일 년 중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 장마철] (시편)
④‘야훼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 뜻을 가진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로서 아합왕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던 때에 참된 예배를 회복시켰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었다.(막 9:4) 말라기 4:5절에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다시 보내실 것이라 하셨으며, 마태복음 11:14절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바로 그 사람 ○○○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복음)
⑤‘슬픔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로서, 예루살렘 2∼3㎞ 정도 아래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마을 근처에서 승천하셨다.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 건너편 ○○○에서 일어난 일이다.”(요한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세례자 요한은 무말랭이를 먹어봤을까?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무말랭이 만들던 시절 이야기예요.
어느 날 밤 아기별 하나가 꼬박꼬박 졸다가 잠이 깼어요.
오줌이 마려워 일어난 거죠.
깜빡깜빡 졸면서 오줌을 누는데, 어라?
오줌 한 방울이 지구별로 떨어지네?
눈도 우박도 아닌 단비처럼 떨어진 아기별 오줌방울은
어느 마을 무 밭에 떨어졌어요.
아기별 오줌방울을 맞은 무는 번쩍 잠이 깼겠죠?
오줌방울 스며든 무가 밤새 쑥쑥 자라납니다.
이튿날 무밭에 나온 밭주인이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무를 본거예요.
온 식구 다 모여서 무를 뽑습니다.
100㎏도 넘는 무 허리에 굵디굵은 새끼줄을 묶어서 온 가족이 줄다리기를 합니다.
난생 처음 보는 대왕 무를 집에 가져온 주인은 골똘히 생각했어요.
‘땅에 묻어두고 겨우내 동치미를 해먹을까?’
그리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저렇게 큰 무를 묻을 구덩이를 무슨 수로 판담?’
주인은 다시 대왕 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합니다.
‘숭덩숭덩 썰어서 소고기 무국을 끓여먹을까?’
그리곤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 많은 무국을 어디다 보관하고 어느 천 년에 그걸 다 먹나!’
다시 곰곰이 생각하던 주인은 무릎을 탁 치더니 벌떡 일어섭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제일 큰 칼을 가져다가 대왕 무를 싹둑싹둑 자릅니다.
엄지발가락보다 굵고 장지(長指)손가락보다 길게 자릅니다.
광에서 멍석이란 멍석은 다 꺼내어 마당가득 펼치더니 잘라진 무를 널어놓습니다.
아하! 무말랭이를 만들려나 봐요.
새하얀 무 조각이 함박눈처럼 쌓였습니다.
마당에도 평상에도 장독 위에도 지붕 위에도 온 마당에 가득합니다.
한겨울 눈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더니
그 굵고 큼지막한 무 조각들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네요?
엄지발가락보다 굵던 무 조각이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집니다.
벽돌처럼 반듯반듯한 무 조각이 꼬물꼬물 작은 애벌레처럼 꼬부라집니다.
무말랭이를 처음 본 아이가 종알거립니다.
“아빠, 무가 점점 작아져요.”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무말랭이는 점점 작고 볼품없어져도, 점점 더 맛있고, 영양가도 많아진단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빠를 바라봅니다.
“그게 다 해님 때문이란다. 우리 눈엔 안 보이지만, 해님이 무에게 아주 많은 선물을 주는 거야. 무가 햇빛을 받으면 모양은 점점 작고 볼품없어지지만, 매운맛이 점점 달콤해지고, 수많은 영양소가 열두 배나 많아진단다.”
아이의 눈이 두 배나 커집니다.
“아빠, 전도사님께 배운 세례요한이 무말랭이랑 비슷해요. 원래 대왕 무처럼 귀한 제사장 집 자식이었는데요, 광야에서 살면서 허름한 옷 입고, 허름한 음식만 먹고 점점 쪼그라들었는데, 그런데 속으로는 점점 더 귀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왔데요. 세리도 오고, 군인들도 오고, 바리새파 사람, 사두개파 사람들도 많이 몰려왔데요.(마태복음 3:7) 말씀 듣고 세례 받으려고요.”
아빠 눈도 두 배나 커집니다.
“우리 꾸러기가 어느새 세례요한 박사가 다 되었네?”
신바람 난 아이가 더 씩씩하게 종알댑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요 자기를 자꾸자꾸 더 낮추었어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리스도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하고, 엘리야냐고 그 예언자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했어요.(요한복음 1:20-21) 가브리엘 천사도,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셨는데, 세례요한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자꾸만 자기를 낮추었어요. 무말랭이가 햇볕에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세례자요한은 자기를 낮추고 낮추었어요. 그래서 더 달고 영양가 많아진 무말랭이처럼 신비롭고 힘센 예언자가 되었나 봐요.” (다시 올 엘리야 ; 말라기 4:5 / 세례요한을 엘리야로 묘사 ; 누가복음 1:17, 마태복음 11:14, 17:10-13)
아빠 입이 남대문처럼 딱 벌어지네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말합니다.
“정말 세례요한이 무말랭이랑 닮았는걸? 모양은 점점 쪼그라들어도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무말랭이! 무말랭이가 햇볕을 한껏 받으면서 말라간 것처럼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하나님만 바라고 기도하고, 무말랭이가 눈보라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 것처럼 세례요한도 좋은 옷 벗어버리고 거친 옷만 입고 거칠고 초라한 음식만 먹었지.
아이가 아빠께 질문합니다.
“그런데 아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세례요한은 왜 자꾸 자기를 낮춘 걸까요?”
아빠가 대답합니다.
“그건... 예수님을 점점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점점 낮아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예수님은 높아지시고!”
아이는 마당에 널린 무말랭이를 바라봅니다.
우렁찬 대왕 무가 저리 작은 무말랭이로 꼬물꼬물 말라갑니다.
두고두고 맛있는 무말랭이를 먹을 때마다
세례요한이 떠오를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무말랭이를 닮았습니다.
그나저나 세례요한은 무말랭이를 먹어봤을까요?
이스라엘에도 무말랭이가 있었을까요?
[이정훈 지음. 2017년 12월 17일 주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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