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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3주 (2016년 9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 4:11-12, 22-28)

11. 그 때가 오면, 이 백성과 예루살렘이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사막에서 불어온다! 나의 딸 나의 백성이 사는 곳으로 불어온다. 이 바람은 곡식을 키질하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고, 알곡을 가려내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다.

12. 그것보다 훨씬 더 거센 바람이 나 주의 명을 따라 불어 닥칠 것이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22.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

23. 땅을 바라보니, 온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하늘에도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4. 산들을 바라보니, 모든 산이 진동하고, 모든 언덕이 요동한다.

25.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모두 날아가고 없다.

26. 둘러보니, 옥토마다 황무지가 되고, 이 땅의 모든 성읍이 주님 앞에서, 주님의 진노 앞에서, 허물어졌다.

27.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28. 이 일 때문에 온 땅이 애곡하고, 하늘이 어두워질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마음을 바꾸지 않고, 취소하지 않겠다."

 

(시편 14)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6.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1:12-17)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누가복음 15:1-10)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9. 그래서 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할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한 사람입니다.

 

구약,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예레미야 4:25)

시편,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시편 14:3)

서신서,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디모데전서 1:16)

복음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누가복음 15:7,10)

 

오늘 요절은,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입니다. (누가복음 15: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 4:11-12, 22-28 / 시편 14)]

오늘 구약본문은 북방의 바벨론 군이 유대 땅을 황폐하게 할 모습을 예언자가 미리 내다보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키질 정도의 심판이 아닙니다.(11)

마치 노아의 홍수처럼 땅을 싹 쓸어버릴 것만 같은 무자비한 심판입니다.(23-26)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새들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판입니다.(23)

 

그런데 오늘 본문의 앞을 보면,(3:21-4:4)

하나님의 마음은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라시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 어리석음이 무자비한 심판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구약본문과 짝을 이루어 이런 어리석은 백성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4:22)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14:1)

 

그런데 오늘 시편본문은 구약본문처럼 땅을 싹 쓸어버리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의인을 편드시고(5) 가난한 자를 보호하십니다.(6)

구약본문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을만큼 심판하셨지만(4:25)

완전히 진멸하시지는 않았던 것입니다.(4:27)

 

사람 하나 없는 그 땅에 다시 백성을 되돌려 보내시는 것입니다.(14:7)

바른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고(1) 착한 일을 하는 사람 하나 없던 그 땅에,(3)

늦었지만 이제라도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하나 늘어날 것입니다.

의인 한 사람의 무게가 새삼 느껴집니다.(5:1)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아,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둘러보고 찾아보아라. 예루살렘의 모든 광장을 샅샅이 뒤져 보아라. 너희가 그 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5:1)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디모데전서 1:12-17 / 누가복음 15:1-10)]

오늘 서신서본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큰 죄인을 용서하시고, 심지어 사도로까지 세워주시는 이 큰 사랑!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구약의 백성들과는 차원이 다른 죄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배신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 배신자들보다도 더 극심한 죄,

예수제자들을 붙잡아가고 죽이기까지 하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이리 큰 것입니다.

 

이 죄인 한 사람의 회개와 구원, 이 은혜의 본보기 한 사람으로

얼마나 많은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의 길로 돌아섰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죄인 한 사람의 회개가 얼마나 기쁘고 귀한 일인가!

 

세상의 계산과 논리로는 잃은 양 한 마리 찾아나서는 것보다

남은 양 99마리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천국의 논리는 그렇지 않다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십니다.(7, 10)

 

빗나간 자식에게 더 기울어지는 어버이 마음입니다.

그 자식 때문에 더 눈물 흘리고 더 속이 상한 그 마음입니다.

제아무리 죄가 클지라도 주님 사랑보다 더 클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죄가 크면 클수록 더 마음을 크게 쏟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길 없는, 죄인을 향한 주님의 이 관심!

의인들에게 다 기울여도 모자랄 그 관심을

의인보다 99, 아니 1001000배 더 쏟으시는, 이 계산조차 할 수 없는 사랑,

측량 불가능한, 설명 불가능한 십자가 사랑입니다.

 

 

[정리]

오늘 구약과 시편, 그리고 서신서와 복음서는 한 사람이라는 끈으로 통합니다.

구약과 시편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는 땅, 의인 한 사람도 없는 땅,

즉 두렵고 슬픈 의미의 한 사람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는,

큰 죄인 큰 구원의 본보기 한 사람,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낙오자 한 사람,

즉 감사와 감격이 가득 담긴 한 사람입니다.

 

오늘 4본문 모두 관통하는 이 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주님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맛봅니다.

그리고 그 희로애락의 근원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지극한 관심, 사랑, 긍휼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특히 주님의 관심은 못난 자식, 빗나간 자식에게 더 기울어지십니다.

내 죄가 제 아무리 클지라도,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을 만큼 내 죄가 크면 클수록

우리 주님의 사랑은 점점 더, 그보다 더 깊어진다는 역설!

 

이 계산이 안 되는 주님의 사랑, 측량 불가능한 주님의 은혜를

무슨 논리로 설명하고 무슨 염치로 판단하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그냥 그분께로 돌아서는 일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얼굴을 마주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주님 얼굴 뵙는 일 뿐입니다.

 

 

[나머지]

* 어리석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

오늘 구약과 시편에 어리석은 사람이 등장합니다.(4:22, 14:1) 그런데 시편의 어리석은 자 바로 뒤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크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바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기준은 공부를 많이 하고 못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억력”, 말씀기억력이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머리로, 몸으로 기억하는 자를 가리켜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의 주인공 바울은 죄인의 우두머리로서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다가 지혜로운 자가 된 사람입니다. 말씀의 알맹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붙들고 악착같이 살아온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하나님 은혜로(딤전 1:14), 그분의 자비하심으로(딤전 1:13, 16)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면서 지혜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16) 오늘 복음서 본문은 그 유명한 잃은 양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말씀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들려주신 동기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투덜거리는 바리새, 율법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알맹이 역시, “죄인즉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만드시려 애쓰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물론 이 어리석은 자 안에는 세리들과 죄인들”(1) 뿐 아니라, 옛 바울 즉 사울 같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2)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말씀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셔도 땅의 일에 대해 무관심한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4:22)

 

그러고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란,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고(14:1), 지혜로운 사람이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14:2)

 

* 에너지와 시너지

독일어로 예배를 ‘Gottesdienst'라고 합니다. 이를 파자(破字)하여 영어로 번역하면, ’God's service and our service to God.(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봉사, 그리고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됩니다. 즉 예배란, 양방향의 섬김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시너지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우리 기독교에서 만든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 즉 성령께서 일하신다는 단어를 에네르기아(에너지)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의 이 에네르기아와 사람 쪽에서의 에네르기아가 합쳐질 때, 즉 이 두 에너지가 합쳐질 때 시너지가 된다는 뜻입니다. 시너지라는 단어를 만든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입니다. 클레멘트는 하나님 은혜와 인간 의지 이 두 가지 에너지의 작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협력작용" 신인협력’(synergy)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찾으시는 은혜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의지가 합하여질 때 시너지는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작고 작은 소자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지금 우는 자들 곁에 찾아가는 일입니다. 지금 굶는 자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가 나누고 섬기는 일입니다. 나누어줄 것이 없으면, 내 살이라도 떼어 먹이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시너지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입니까? 거기가 바로 진정한 예배자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들은 한 가지 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너지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의지! 구약말씀인 렘 4:22-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시편 14: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2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서신서 말씀 딤전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만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말씀인 눅 15장은 온통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것만 찾는, 큰 것에만 눈 팔리는 세상의 원리, 성공주의, 승리주의라는 세상원리와 정반대인 천국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원리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예배의 감격이 사라진 까닭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에네르기, 즉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여러분을 찾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저 작고 작은 곳으로 달려가신 주님을 찾아 달려가십시오. 지금 굶는 이들, 지금 아파 누워있는 이들, 지금 옥에 갇혀 있는 이들, 지금 우는 이들에게 달려가십시오. 가서 함께 울고, 여러분의 살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렇게 거기서 시너지를 회복하십시오. 이것이 신인협력, 고테스딘스트, 진정한 기독교의 예배입니다. 거기 예배의 감격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목사를 찾아가서 이같이 물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적습니다. 또 주가 함께 계신다는 마음이 흐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잃어버리면서 있습니다. 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하고... 목사는 창문을 열고 거기서 멀리 바라보이는 빈민굴과 그리로 통하는 좁고 험한 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면서 그리스도는 저- 곳에 지금 계십니다. 가십시오. 어서 저리로 가십시오. 가자마자 저가 방금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일을 도와 드리시오. 그렇게 하면 주는 친히 형제와 함께 계신 것을 알리다. 그 때는 벌써 주를 만났을 때입니다.” 하였다...(현대문법에 가깝게 고침) [박재봉, 예수42(19378월호), 2526]

 

 

 

 

[말씀동시] 죄인회개 (장연우 지음. 시냇물교회 초등부 2학년. 성실문화88)

아름다운 죄인 회개

하나님과 사자들 기뻐하네.

멋있는 죄인 회개

사람들도 기뻐하네

기쁨의 죄인 회개

모두 모두 기뻐하네

 

 

 

 

[말씀시조] 잃은 양 한 마리를 (이정훈 지음.성실문화88)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고 또 찾았노라

잃은 은전 한 닢도 샅샅이 찾았노라

한 죄인 회개할 때에 온 하늘이 춤추니

 

 

 

 

[말씀한시] 헌 우산을 놓고 내린 것도 두고두고 생각나는데 (오세종 지음.성실문화88)

朽破雨傘失電鐵(후파우산실전철) 낡은 우산을 전철에서 놓고 내리면

可惜焦急慢慢想(가석초급만만상) 한 동안 아쉬워서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離籬羔羊陰谷尋(이리고양음곡심) 우리 떠난 어린 양을 음침한 골짜기서 찾아서

負肩歸家設宴迎(부견귀가설연영) 어깨에 메고 돌아왔으니 온 동네에 큰 잔치로다

 

 

 

 

[말씀서예] 시편 14:6 (오세주 작품 지음.성실문화88)

 

 

 

 

 

[말씀노래]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성실문화88)

[본문] (누가 15:1-10)

[노랫말] 하늘이 덩실 덩실

1.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좋아서 / 예수님의 음성이 너무좋아서

   세리들 죄인들이 몰려듭니다 / 온세상 죄인들이 몰려옵니다

2. 예수님의 인기가 너무 샘나서(샘이나) / 바리새인 율법학자 투덜댑니다

   죄인들을 영접하면 아니됩니다 / 죄인이랑 밥먹으면 큰일납니다

3. 잃은양 한 마리를 찾는거란다 / 잃어버린 은전을 찾는거란다

   회개하는 한죄인이 너무좋아서 / 하늘이 덩실덩실 춤을추노라

 

[해설]

본문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신 종로교회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하늘이 덩실 덩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 ( 지음.성실문화88)

(천자문 독송 가락, 즉 전래 자장가 가락으로)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

   지각이 있-하나님-- 찾는 자--, 있는가 보-려 하신---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듯이 내 백-성을-,

   (내 백성을--) -으면서-, 여호와-- 부르지 아니하--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계획---) 부끄럽게 ---,

   오-직 여호와 (여호와)--, -피난처-- 되시-도다-

 

[다함께]

7. 이스라--구원---, --에서 나오기--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의 백성을, 포로된- --돌이키-- 때에,

   야곱--- 즐거워----, 이스라---- 기뻐하리로---,

   (야곱--- 즐거워하-, 이스라엘이- -기뻐하--)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왕국절 3, 2016911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예레미야서 4:11-12,22-28, 시편 14, 디모데전서 1:12-17, 누가복음 15:1-10

 

 

 

 

 

 

 

 

 

 

 

 

 

 

 

 

 

 

 

 

 

 

 

 

 

 

 

 

 

 

 

 

 

 

 

 

 

 

 

 

 

 

 

 

 

 

 

 

 

 

 

 

 

 

 

 

 

 

 

 

가로열쇠

여호와께서 구해주신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낱말인 여호수아(예수아)의 헬라 말 이름이다. 인류의 구세주시며, 거룩한 아드님이신 하나님, 곧 성자(聖子)하나님의 이름이시다.(디모데전서, 누가복음)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흔히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 (시편)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하나님, 임금, 주인, 기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부를 때, 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쓰던 호칭.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며, 특히 개역성경의 여호와를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람어로 마레’, 헬라어로 퀴리오스를 이렇게 번역한다.(예레미야, 시편, 디모데전서)

 

세로열쇠

다윗 왕국의 수도이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전(B.C.) 4,0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름 뜻은 평화의 성읍인데, 예나 지금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과 폭력이 가득한 도시다.(예레미야)

사도 바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이며 후계자로서,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기독교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으로 추측되지만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긴 목회자다. 바울과 함께 여러 서신서의 공동발신인이기도 하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선교로 세워진 데살로니가, 고린도, 빌립보 교회 등을 방문하도록 이 동역자 ○○○를 자주 파송했다.(디모데전서)

은화의 그리스식 단위인데 예수님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다. 참고로 같은 값의 로마식 단위는 데나리온이다.(누가복음)

구별된 자라는 뜻을 가진 유대교 종파 이름. 마카베오 전쟁(주전 160여년 경부터 시작) 이후부터 강한 종파로 대두되기 시작해서 주후 70년 경 예루살렘이 망한 뒤 가장 강력한 종파가 되었다. 율법, 십일조, 정결예법 등에 철저했다. 처음에는 평신도 운동이었으나 차차 서기관(율법학자)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었다.(누가복음)

그것이 이루어질지어다!’, ‘그러하도다’, ‘진실로’ ‘확실히라는 뜻의 히브리어.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디모데전서)

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 보다 하날님,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는 성경은 하느님으로 뜻을 모았다. ○○○에는 하늘의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고도 본다.(시편, 디모데전서, 누가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똘똘한 양 솔이가 길을 잃었어요!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산에서 길을 잃고 엉엉 울던 시절 이야기예요.

 

어느 마을에 똘똘하게 생긴 양이 살았는데 이름은 솔이었어요.

솔이는 100마리나 되는 양떼 중 한 마리였죠.

솔이는 늘 스스로를 무리 중에서 최고으뜸, 상위 1% 양이라 생각했어요.

 

키도 제일 크다고 생각했고, 머리도 으뜸이라고 생각했죠.

그뿐 아니었어요.

솔이는 무리 중에서 자기가 가장 훌륭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가장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양이 배워야 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배웠다고 으스댔죠.

 

그런데 솔이에게는 숨겨진 단점이 하나 있었죠,

그건 바로 눈이 지독하게 나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솔이는 맛있는 꼴을 먹여주시는 목자 얼굴도 볼 수 없었죠.

그래도 솔이는 언제나 잘 보이는 척하며, 다 아는 척하며 살았습니다.

 

 

그날도 솔이는 친구들과 함께 목자에게 이끌려 푸른 초장으로 나갔습니다.

이어서 쉴만한 물가에서 물도 실컷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가만히 냄새를 맡아보니 그건 아주 고약한 냄새였습니다.

 

눈이 나쁜 솔이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구야? 누가 몸도 씻지 않은 거야? 안 씻은 지 일 년도 넘겠다!”

 

그러자 친구들이 말합니다.

 

피부병 걸린 애들이 몇 명 있어서 그래. 피부병이 심해서 샤워도 못한데.”

 

깜짝 놀란 솔이가 말합니다.

 

아니 그런 더러운 병에 걸린 녀석들을 무리에 두면 어떡해? 피부병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걸 몰라? 피부병은 우리 양의 가장 큰 수치야. 우리 목자님 말씀 듣지 않고 평소에 잘 씻지도 않고, 나쁜 거 먹고 그래서 병에 걸린 거야. 그건 천벌이라고 천벌! 저런 병자, 저런 죄인은 지금 당장 쫓아내야해!”

 

그런데 친구들을 쫓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쫓아낸 뒤에 다시 슬그머니 무리로 돌아오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솔이에게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이러면 어떨까? 멀찍이 떨어진 산속에 가시나무 울타리 감옥을 만들어 거기 가두어 두면 되겠어! 역시 난 천재야, 천재!”

 

의기양양해진 솔이가 친구들에게 큰소리를 칩니다.

 

얘들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가 지금 당장 가서, 저 죄 많은 양들을 가시나무 울타리로 가두어둘만한 장소를 찾아보고 올게.”

 

솔이는 목자께 허락도 받지 않고 쌩하고 달려갑니다.

산 넘고 물 건너 길을 갑니다.

그러다 해가 꼴딱 넘어가버립니다.

아뿔싸! 시력 나쁜 우리 솔이, 이제 어쩌면 좋죠?

 

 

순식간에 밤이 되었네요?

산속은 들판보다 밤이 더 빨리 찾아오거든요!

우리 똘똘이 솔이, 무리 중에서 키도 제일 크고 아는 것도 많은 솔이가

안절부절 조마조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산속의 밤은 왜 이렇게 춥다죠?

무리들과 함께였다면 체온을 나누며 견딜 만 했을 테지만

혼자가 된 솔이는 춥고 배고프고 목도 마릅니다.

무엇보다 깜깜한 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밤이 무섭기만 합니다.

 

여기저기 가시나무에 찔리고, 어이쿠! 무릎도 까지고

솔이는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몸서리를 치며 바들바들 떱니다.

 

아까 낮에만 해도 그렇게 의기양양하고 거침없던 솔이 입에서

두려워 쩔쩔매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메헤헤, 메에에...”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어디선가 눈부신 불빛이 솔이 얼굴을 환하게 비춥니다.

 

솔이야 솔이야, 너 솔이 맞느냐?”

 

이 깊은 밤, 깊은 산속에 도대체 이건 누구 목소릴까요?

깜짝 놀란 솔이가 소리를 지릅니다.

 

저 솔이 맞아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도대체 누구시죠?”

 

누구긴 이 녀석아, 네 주인이지! 주인 목소리도 몰라?”

 

어느새 다가왔는지, 솔이를 부둥켜안고 볼을 부비는 이 사람은 목자님이 분명합니다.

목자님은 솔이를 얼싸안고 무등을 태웁니다.

무등을 태우고 캄캄한 산을 내려갑니다.

산 아래 내려가보니 아흔 아홉 동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 하나 찾으려고 친구들 다 버려두고 밤새 산속을 뒤지신 건가?”

 

솔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늘 으뜸이라 으스대던 똘똘이 솔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뿐 아닙니다.

무슨 생각인지 우리 목자님이 솔이를 이번 달 반장으로 삼으신 겁니다.

 

다음날 날이 밝으니 세상이 딴 세상처럼 환해졌습니다.

밤새 눈물을 흘린 솔이 눈이 환해진 것입니다.

그동안 솔이 눈을 덮고 있던 비늘 같은 미망이 깨끗이 벗겨진 겁니다.

 

솔이는 이름을 돌이라고 바꿉니다.

이젠 결코 으뜸이 아니고 아는 것도 많지 않고 머리도 돌맹이라고 돌입니다.

솔이는 돌이가 되어 친구들 속에서 겸손한 반장이 됩니다.

결코 으스대지 않고 자기를 낮추니 피부병 걸린 친구들의 고통이 눈에 보입니다.

 

돌이는 이제 피부병 전염되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병자 친구들에게 맛있는 꼴도 전해주고, 시원한 물도 먹여줍니다.

그리고 따뜻한 눈물로 피부병도 닦아줍니다.

 

언제나 자기주장을 앞세우던 솔이가

이젠 늘 목자님 음성을 경청하고 나서 자기 생각을 조절하는 돌이가 되니

오늘도 목자님의 에너지와 돌이의 에너지가 하이파이브 하면서

매일매일 시너지(synergy)가 솟아납니다.

 

언제부턴가 돌이네 양 무리에선 향내가 납니다.

다른 무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향기입니다.

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비로운 향기입니다.

그 뒤로 마을에선 돌이네를 가리켜 하늘목장이라고 부릅니다.

 

[이정훈 지음. 2016911일 주일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