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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부활절 4주(2015년 4월 26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내게 부족함 없어라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5-12)

5. 이튿날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해서,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서 물었다. "그대들은 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였소?"

8. 그 때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9.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요한일서 3:16-24)

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

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한복음 10:11-18)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18.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알맹이는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한 10:11)

 

사도행전,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행전 4:10)

시편,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시편 23:1)

서신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요일 3:16)

복음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한 10:11)

 

오늘 요절은,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로 정합니다.(시편 23:1)

 

 

[사도행전과 시편 (사도행전 4:5-12 / 시편 23)]

오늘 사도행전본문, 예수 이름으로 장애인을 고친 일로 촉발된 논쟁사건입니다.

베드로의 논증 가운데,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인 사람을 해방시키시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

태어나면서부터 허물투성이인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고통스럽게 죽으신

선한목자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오늘 시편본문, 목자생활을 해 본 다윗이 주님을 목자로 비유한 노래입니다.

목숨 걸고, 아니 목숨 바쳐 나를 지키시고, 상 차려주시는 이런 목자가 계시니

내게 부족함 없고, 내게 두려움 없고, 내 잔이 넘치는 것입니다.

참 목자, 선한 목자를 만난 사람은 이렇게 부족함 없는 법입니다.(1)

 

 

[서신서와 복음서 (요한일서 3:16-24 / 요한복음 10:11-18)]

오늘 서신서본문은 좀 무겁습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한 목자이야기가 그냥 아름다운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삶 속 구체적인 생활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 선명하고 원색적입니다.

첫 구절부터 돌직구 같은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 3:16)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은 거대 담론으로 그쳤다면

아예 내 이야기가 아닌 예수님 이야기로만,

예수님을 아주 많이 닮은 성인(聖人)들 이야기로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당장 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바람에 더 고민스러운 것입니다.

거대한 사랑이 아니라, 믿는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사랑,

말 사랑이 아닌 행동 사랑 말입니다.(18)

 

궁핍한 형제자매가 보이면 얼른 내 돈을 바치는 사랑!

이게 왜 작지만 중요하냐하면,

이게 바로 내가 진리에서 났다는, 내가 선한 목자를 만났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도 무겁습니다.

역시 돌직구 같은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한 10:11)

 

이 말씀이 왜 무거우냐하면,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삯꾼의 존재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과연 선한목자 예수님의 양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14)

 

나는 과연 선한목자 예수님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정리]

만약 내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목자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면,

오늘 서신서본문의 저 돌직구 같은 말씀(요일 3:16)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트라이크!”

 

형제자매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는 일 말입니다.

궁핍한 형제자매를 위해 내 돈을 바치는 일 말입니다.

 

그렇게 내 돈 다 나눠주며 살면서도

내게 부족함 없음을, 내게 두려움 없음을, 내 잔이 넘침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 내게 부족함 없다는 건...

내게 부족함 없다는 건, 다른 말로, 내게 불필요한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참 목자, 선한목자 예수님을 만났다면

내가 가진 것들 가운데 예수님의 양으로서 참으로 불필요한 것, 예수님의 목자로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씻어내야 마땅하니까요.

자주자주 매일매일 만나면 시나브로 닮아가는 법이니까요!

 

** 태생 장애인을 고치면서 벌어진 논쟁구원의 길이 보이다!

오늘 사도행전본문과 복음서본문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태생 장애인을 고쳐주면서 촉발된 논쟁 중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나면서 다리 장애를 가진 걸인을 예수 이름으로 걷게 하면서,

복음서는 나면서 시각 장애를 가진 걸인을 예수님께서 보게 하시면서!(요한 9:110:21)

겁쟁이 베드로가 이토록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고 눈이 열려 이제야 선한목자 예수를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선한목자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가 용감하게 외칩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사도행전 4:12)

 

*** 구원잔치는 지금부터! (나 사는 모습이 바로 선한 목자를 만난 증거)

지금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에게 불필요한 것, 알고 보면 해로운 건데, 그게 없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 선한 목자를 만났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행복해야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예를 들자면, 궁핍한 형제자매를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내 돈을 나누어 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죽은 뒤에 천국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이미 구원잔치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구원잔치를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죽은 뒤에 영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영생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불신자들에게, 죽은 뒤에 오는 천국 삶이 있다는 가장 정확한 증거는, 지금 여러분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선한목자 예수님을 만나 그분 믿고 구원 받았다면,

당연히 여러분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그 천국 기쁨이 솟아나야 정상입니다.

그 때, 비로소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영생, 여러분의 천국 시민권, 여러분이 과연 선한 목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삯꾼 목자가 아닌 목사를 찾다가...

무능한 목사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연극인 김현진의 페이스북에서)

저의 아버지는 부산서지방 부일교회의 김무송 목사님이며 오늘 대구제일교회에서 은퇴찬하예배가 있습니다.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대신합니다. 아버지의 목회자 은퇴를 찬하하며...

 

나는 아버지, 어머니란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만 3형제 이렇게 다섯 식구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가난하셨던 분이다.

옛날 부산의 최고 명문이었던 경남 중학교에 합격하시고도 가난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진학할 수 없으셨다.

 

결혼 후에도 가난은 계속되었다. 온 가족이 누우면 몸부림도 칠 수 없는 단칸방에서 살아야했다.

거의 40년 가까이 된 얘기지만 생활비 만원 남짓한 돈으로 온 가족이 살아야 했다.

2개짜리 전세로 옮겨서는 무슨 용기이신지 조카 한명까지 거두어 돌보셨다.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그 사촌형은 미국으로 이민갔지만...

 

그런 와중에 둘째 아들인 나는 돌이 되기 몇 달 전부터 원인 불명의 설사병으로 3개월 이상 고생하다가,

탈수 및 영양실조로 죽음 직전에 이르고 부모님은 온갖 병원으로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마지막이란 맘으로 결혼 예물까지 전 재산 모두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셨다.

그 눈물 때문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부산서지방의 어느 교회에서 25세에 집사, 30세에 권사, 35세에 장로가 되신 후 성직자의 길을 조금 늦게 시작하셨다.

부교역자 생활을 하시던 중 1983년에 부산동지방의 어느 교회를 개척하시고,

1996년에 서지방으로 옮기셔서 목회하셨다.

단독 목회는 2개 교회에서 27년간 하시고 이번에 1년 앞당겨 자원 은퇴를 하신다.

 

내가 철없던 시절 아버지를 통하여 느낀 목회자의 모습은 가난, 희생, 봉사 뿐 이라고 느꼈었다.

유창한 설교를 통하여 부흥시키는 목사님이 되길 바란 적도 있었고,

재미난 설교로 청중을 모으는 능력을 지닌 목사님이 되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평범한 설교를 하는 조그만 교회의 목사님으로 27년을 지나셨다.

 

우리가 어린 시절 김치보다 고구마 줄기 반찬을 많이 먹이셔야 했었고,

때로는 간장을 아들에게 반찬으로 주셔야 했었고,

어떤 날은 눈물 젖은 눈으로 쌀이 떨어졌다고 하셨고,

주스가 먹고 싶은 아들에게 주스에 물과 설탕을 타서 희석시켜 주셨던 아버지다.

 

떠먹는 요구르트가 나온 지 3-4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우리에게 사 주시고

온 가족이 맛이 상한것 (신맛) 같다고 가게에 항의하러 갔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던 우리 가족,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가족끼리 삼겹살 외식도 못 시켜준 가장이 나의 아버지다.

 

형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에게 학급 지원금 5만원을 못 내셔서 키 작은 우리 형을 제일 뒷자리에 앉히신 아버지,

둘째인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심한 급성 간염으로 입원시키라는 의사 말에도 3개월간 집에서 휴양시키셨던 아버지,

동생은 영양이 부족하여 소아 결핵이 걸려 투병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바로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아버지는 27년간 새벽예배까지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홀로 인도하셨고(연회 등의 공식적 출타는 제외),

한 번도 휴가가 없었던 무능한 목사님이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못하는 설교 준비는 뒤로하고 27년간 교회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하신 설교 전문 목회자가 아닌 미화 전문 목회자였던 나의 아버지, 장단 맞춘다고 27년간 교회의 부엌일을 하셨던 어머니 그분들이 이제는 자랑스럽다.

 

2009년 만장일치로 부산서지방 감리사로 추대되시고도 감리사직을 사양하신 목사님이 우리 아버지다.

훌륭한 분들은 감독님, 감독 회장님도 하시는데 훌륭한 나의 아버지는 감리사도 못하시고 은퇴하신다.

은퇴하시면서도 교회에서 빈손으로 나오시며 헌금 더하지 못해 죄스러워하시는 가난 전문 우리 아버지.

퇴직적립금도 중간에 정산하셔서 전액 헌금하신 우리 아버지.

 

결혼 후 이제까지 40년간 추수감사헌금은 무조건 한 달 수입 전액을 바치셨던 무모한 우리 아버지.

30년 전 운전면허 따시고 좋아하셨는데 결국 티코도 한 번 운전 못해보신 우리 아버지.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이웃을 도우시고, 가족을 위해 항상 기도하시고,

매일매일 전교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교인이 많지 않아서 가능함^^)하시고,

희생하시던 우리 아버지가 이제는 감히 자랑스럽다.

 

아들 한명은 목회하기를 내심 바라셨지만 아버지의 가시밭길 같은 목회를 보면서

우리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기로 의기투합했던 우리 3형제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어린 시절 철없이 하나님께 <30, 60, 100배 열매주신다고 하셨으니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보다 30,60,100배 돈 벌게 해 주세요> 라고 어이없는 기도를 한 나에게 그

기도를 넘치게 이루어 주신 하나님은 아마도 나의 기도가 아닌 아버지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 같다.

 

지금 형은 세계1위라고 하는 S전자 책임연구원이 되었고,

나는 전문의가 되어 개원하였고, 동생은 한의사가 되었다.

 

세 명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닌 것이 없다.

 

아마 이제껏 가난하게 사신 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축복하시면 또 다 바치고 가난하게 지내실 것 같으셔서 아들들에게 맡기시는 하나님의 쎈스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기도와 희생의 결실이라는 것에 우리 3형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 지나고 보니 매주일 하셨던 아버지의 설교는 항상 평범했지만,

아버지의 70년 인생 자체가 가장 길고도 위대한 설교였다.

그것을 마흔이 되어서야 이제 깨달았다.

깨닫고 보니 아버지가 은퇴하신다.

 

돌이켜보면 인간적으로 가족의 추억은 가난과 어려움 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와 축복뿐인 세월이었다.

우리 가족 5명은 가족인 동시에 하나님이란 빛 하나만을 바라고 가난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같이 수많은 은혜와 축복의 단비를 경험한 신앙의 동지였다.

아버지의 은퇴는 진심으로 찬하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말씀 동시] 텔레파시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1. 성실문화82)

선한 목자와 양

서로 아는 사이라선지

텔레파시가 통하네

 

그렇지만 사람들과 예수님은

텔레파시가 잘 통할까?

 

 

 

[말씀 시조] 나는 선한 목자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2)

나는 선한목자다 양들 위해 목숨 준다

내 양들 나를 알고 나도 내양 바로 안다

한없는 아버지사랑 목숨조차 아끼리

 

 

 

 

[말씀 한시] 관서(關西)의 고당(古堂) 선생님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2)

破國指導者 (파국지도자) 나라 깨진 시대에 민족의 지도자

關西古堂門 (평양고당문) 관서(關西)의 조만식 선생님은

對敵謀議殺 (대적모의살) 대적들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事前豫知聞 (사전예지문) 사전에 알았다

同志請南出 (동지청남출) 동지들이 남()으로 가시기를 청했으나

留壤非命盡 (유양비명진) 그곳에 남았다가 비명에 가셨다

僞善棄羊逃 (위선기양도) 거짓 선지자는 양을 버리고 도망질하지만

善牧爲羊獻 (선목위양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몸을 바친다.

 

 

 

 

[말씀 서예] 시편 23:5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2)

 

 

 

 

   

 

[말씀 노래] 나는 선한 목자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82)

[본문] (요한복음 10:11-18)

[노랫말]

1. 나는 선한 목자 양들 위해 목숨을 주네, 나는 선한 목자 바깥 양들도 이끌어오네

나는 선한 목자 나는 내 양들을 아네, 나는 선한 목자 내 양들도 나를 아네

2. 나는 착한 아들 내 목숨 아버지께 맡기네, 나는 착한 아들 아버지 날 사랑하시네

나는 착한 아들 나는 내 아버지를 아네, 나는 착한 아들 내 아버지도 나를 아시네

 

[해설]

요한복음 10:11-18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었고, 찬양사역자 이석훈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나는 선한 목자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5. 1)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2)

(* 전래 자장가-천자문 독송 풍으로)

 

1. --------, ---- 목자-시니-,

    내---- 부족-함이-, -으리------

 

2. ---- ----, -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 물 가---, -(-)하시는도다-

 

3. 내 영--- (내 영혼)--, -생시키-----,

    자-기 이름을 위하---, -의 길-인도하시는-도다-

 

4. -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골짜기)-- 다닐지라도-,

    해-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함께 하--이라-

 

    주-지팡이-- 막대-기가-, -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 -수의 목전-에서-, -게 상-차려 주----

    기름을 - -리에 부으셨----, 내 잔이 (내 잔이) 넘치나

 

[다함께]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하심---,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

 

 

 

  

[말씀 동화] 깍두기의 노래

 

1. 거뭇거뭇 숲속에 퍼런 못자리 물속에, 도랑물 옆 긴 둑 따라 포플러 신작로 따라

2. 학교에 낼돈 걱정하다 늦게 왔다고 꾸중 듣고, 저녁 굶고 엎드려 잠든 내 동생 꿈속에서

3. 바라보는 밤하늘 별 눈물에 어려 빛나고, 돈벌러간 아버지 소식이 궁금해

4. 읍내 장에 나물 팔고 돌아오는 어머니, 빈 광주리 가득히 네 노래 담고 오신다

5. 외딴집 빨간불빛 풀잎 숨쉬는 들판에서, 도랑물옆 긴 둑 따라 포플러 신작로 따라

후렴 : 울어라 개구리야

[‘개구리 소리이오덕 작사, 김영동 작곡]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개구리 소리.

우리 형제가 한창 팔팔할 때 부르던 노래란다.

내가 좋아하는 이오덕 선생님이 지으신 노래지.

이오덕 선생님은 띠동갑 후배 권정생 선생님을 참 좋아하셨다지?

 

나도 권정생 선생님 참 좋아해.

왜냐면, ‘강아지 똥이라는 아주아주 재미있는 동화를 지으신 분이거든.

내가 왜 강아지 똥을 좋아하는 줄 아니?

내 이름이 바로바로 개똥이야. 박계동!

 

난 어릴 때부터 내 이름 때문에 놀림 많이 받았어.

내 동생 이름보다 더 부끄러운 이름이잖아.

내 동생 이름은 병삼이.

요새 말로, ()도 아니고 을()도 아닌 병()에다가

넘버 원도 아니고, 넘버 투도 아니고 넘버 쓰리, ()!

병삼이, 박병삼(朴丙三)!

 

우리 형제는 나이 오십 살이 다 되었는데 총각이란다.

부모님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되어 단 둘이 사는 농촌 총각이지.

내 동생 병삼이는, 비록 남의 땅이지만, 소처럼 농사를 짓는 농부고.

나는 농사가 지겨워서 일찌감치 여기 저기 다니며 품을 파는 노동자야.

 

베트남 며느리 착해요!’

이런 현수막이 우리 마을 입구에 붙은 지 십년도 훨씬 더 됐지만,

우린 꿈도 못 꾸는 가난한 농촌총각이란다.

 

우리 병삼이는 어려서부터 좀 모자랐어.

나도 좀 모자라긴 했지만 병삼이보단 좀 나아서 고등학교도 졸업했지.

동네 친구들이 놀려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병삼이는 행복했단다.

왜냐고? 친구들 사이에서 병삼이는 깍두기였거든.

 

깍두기가 뭐냐고?

우리가 자랄 땐 좀 모자란 친구가 있으면 놀 때 깍두기라며 끼워 주고 함께 놀았거든.

승리의 기쁨은 함께 나눠도 패배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이게 깍두기야. 참 좋지?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아이들을 왕따라 부르며 따돌린다지?(김제동 어록 중에서)

 

그나저나 오늘 개구리 소리 대단하네?

지난주부터 겨우내 묵은 논을 갈아엎고 물을 대기 시작하니까

산에 있던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논으로 내려와 합창을 시작하는 거야.

이제 물이 꽉 차면 흙을 곱고 판판하게 갈아주는 써레질을 하겠지.

써레질 마치고 나면 모심는 모내기도 시작할거고.

우리 농부 병삼이, 한창 신바람나는 계절이구나.

 

 

그러고 보니까 내 주변엔 온통 모자란 거 투성이네?

하나라도 꽉 찬 게 없어?

나도 병삼이도 덜된 녀석, 모자란 녀석,

내 집도, 아내도, 자식도 없는 모자란 가정,

직업도 변변치 않으니 주머니도 모자라고

돈이 없으니 밥상 차림도 늘 모자라고...

 

어라? 그러고 보니까 우리 교회도 모자라네?

우리 교횐 아주 자그마한 시골교회거든.

우리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교회 작다고 너무 주눅 들지 말래.

요샌 시골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덜된 교회, 모자란 교회, 우리 같은 미자립교회가 절반도 훨씬 넘는데요.

 

그나저나 우리 교횐 좀 이상해.

목사님이 찬송가도 가르쳐주시지만, 오래 된 노래들도 막 가르쳐주셔.

지난주엔 도움소라는 옛 민요를 배웠단다.

너희도 한번 불러볼래?

내가 앞소리 할테니까, 너흰 뒷소리 해봐.

뒷소리는 참 쉬워, 한번만 따라해 봐도 금세 돼.

 

(뒷소리) 도움소도움소에루화도움소

1. 도움소 소리가 나거들랑 에화 에루화 도움소

2. 먼데 사람 듣기 좋게 에화 에루화도움소

3. 곁에 사람 듣기 좋게 에화 에루화도움소

4. 덜된 사람도 듣기 좋게 에화 에루화도움소

[‘도움소경북 예천 민요, ‘도움소는 서로 돕자는 뜻]

 

우리 목사님이 이제부터 논농사 시작한다고 가르쳐주신 거야.

이 노래는 내 농부 동생 병삼이도 좋아하지만, 나 같은 노동자들,

세상 모든 일꾼들에게 두루두루 어울리는 노래야.

며칠 있으면 노동절인데, 그 때도 신나게 불러야겠다.

 

나는 정규직도 못되는 비정규직, 비록 비정규직도 못되는 날품팔이 신세지만

남보다 못한 모자란 인생이지만

그래도 난 내 일이 좋아.

꽉 찬 것보다 모자란 거, 덜된 게 난 더 좋아.

 

꽃도 활짝 핀 것보다 덜 핀 게 난 더 좋아.

달도 꽉 찬 것보다 모자란 게 더 좋아.

어젯밤 달 봤니? 반달이잖아.

맨날 꽉 찬 보름달만 있다면 반달이란 노래가 어떻게 나왔겠니?

그래, 난 모자란 달이 더 좋아. 보름달 보다 모자란 반달이 더 좋아.

 

1.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2.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반달윤극영 지음]

 

 

얘들아, 끝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불러볼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시편 23편이야

이 시는 모자란 사람들의 노래란다.

 

남들보다 모자라서 어디도 낄 수 없지만,

어디든 낄 수 있는 깍두기의 노래란다.

 

돈 많은 부모님도 없고, 번듯한 집도 없고,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인생...

번듯한 직장도, 번지르르한 인물도, 아무런 재주도 없지만,

그래서 늘 모자라고 늘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세상이 나를 따돌리지만, 늘 나를 깍두기 삼아주시는 주님!

늘 나를 놀이판의 주인공 삼아주시는 선한 목자 우리 주님!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시편 23)

 

이 노래는 구구절절이 내게 힘을 주지만, 특히 첫 절이 나는 좋아.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늘 모자라고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내게 부족함 없어라!

그래서 난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있단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억울하고, 가장 슬픈 사람들.

지금도 굶고 있는 북녘 어린이들,

내가 살던 땅, 내 바다까지 힘없어 다 빼앗기는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오늘도 훌쩍훌쩍 울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나는 이렇게 아무 힘없는 사람들 편들어 줄 수 있단다.

세월이 흘러도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줄 수 있단다.

 

그리고 그분들 모자란 마음, 뻥 뚫린 가슴속에

이 노래, 깍두기의 노래를 담아줄 수 있단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이정훈 지음. 2015426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