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32-35)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시편 133)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요한일서 1:1-2:2)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알맹이는 “사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배신의 기억으로 송구한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도행전,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4:32)
시편,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133:1)
서신서, “우리의 사귐은...”(요일 1:3)
복음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19)
오늘 요절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입니다.(요한 20:19, 21, 26)
[사도행전과 시편 (사도행전 4:32-35 / 시편 133)]
오늘 사도행전본문은, 부활 예수님을 만나고 보혜사 성령님을 만난 제자들,
그들이 중심이 된 처음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 이야기로 늘 가득합니다.
즉 예수님을 뵌 적 없는 신도들조차
사도들의 증언으로 늘 부활예수님을 만나 사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예수님과 사귀기 시작하면,
인간의 기본 욕구인 사리사욕, 막강한 우상인 돈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32)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를 통하여 진정 부활예수님을 만난다면,
처음교회 신도들처럼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아주 짧지만 아주 아주 강렬한 노래입니다.
이렇게 강렬한 사귐을,
절절한 평화를 노래하는 시편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북이스라엘의 헤르몬 산 이슬이 남유다의 시온산에 내립니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서로 종북이다 종남이다 삿대질하지 않고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1) 그곳에,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3)
그런데 “그 복은 곧 영생”입니다.(3)
[서신서와 복음서 (요한일서 1:1-2:2 / 요한복음 20:19-31)]
오늘 서신서본문은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이 반복해서 언급됩니다.(2)
이는 바로 예수님, 즉 죽음을 이기신 부활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예수님과 사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신 하나님과 사귀게 되고,
나도 빛 가운데 살면서, 어둠의 세력,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들이 가리키는 사귐의 원리요, 사귐의 정수(精髓)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제자들이 부활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주일 저녁, 문을 꽁꽁 닫아걸고 숨어있습니다.
유대사람들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십자가 트라우마입니다.
아마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문, 현관문뿐 아니라 마음 문까지도 꽁꽁 닫아걸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부활예수님이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스며드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평화인사를 세 번이나 반복하시며
저들의 꽁꽁 닫힌 마음속에까지 스며들어가신 겁니다.
오늘 평화(平和) 인사는 유달리 “용서”의 향기가 짙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22-23)
특히 배신의 기억, 그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제자들 자신부터
온전한 힐링의 평화인사였을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1년 전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 맹골 바닷물 속에
사랑하는 식구를 잃은 모든 가족들에게
부활예수님의 이 평화인사가 남김없이 스며드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정리]
처음교회 신도들처럼,
부활예수님을 만나면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황금송아지, 맘몬, 돈... 이 우상보다 예수님이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돈과 사귀던 삶이, 부활예수님과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하나님과 사귀게 되어 차차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매주일 예배에서 부활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예수님을 증언하는 성경말씀 받아먹고, 성찬말씀을 먹음으로써
주님과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되는, 사귐의 극치를 체험합니다.
이리 옹골지게 부활예수님과 사귀는 교회는
세상에 나가 그 사귐의 도(道)를 살 수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고 너를 용서하는, 성경의 도(道)를 살 수 있습니다.
내 피 같은 돈, 살 같은 돈을 내어 약한 이를 먹이는 성찬의 도(道)를 살 수 있습니다.
[나머지]
* 노아처럼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성경에 통달한 신학박사랑,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무학자지만 기도 열심히 하며 교회 봉사 잘하는 시골 교회 할머니 권사님
이 둘 중에 누가 더 신앙이 좋을까요?
정답은... 신학박사도 아니고, 권사님도 아닙니다.
정말 신앙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주님과 사귀는 사람)’입니다.
이게 성경의 답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세기 6:5-9)
여기서 눈여겨 볼 구절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암만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애쓰면 뭐합니까?
끼리끼리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먹고, 입에 쓴 말씀은 뱉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행한다는 말이 좀 모호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다”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 상식대로 하지 않고, 제 경험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 어리숙하고 고지식하리만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설계도 도면대로 고대로 ...
하나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세기 6:14-16)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22)
지극히 고지식한 노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 도마처럼
그런데 도마는 노아와 달랐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내 계산보다 늘 크시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하며 살았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도마는,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방주 설계도에 무조건 순종했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완성된 방주가 아직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방주 건축에 매진했던 노아와 한참 달랐습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내 짧은 머리로 계산합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이성과 상식에 충실합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한 20:29)
부디 성경말씀 읽을 때마다 하늘계획 환히 보고 활연관통 깨달아,
성찬말씀 먹을 때마다 주님 마음 고스란히 깨달아
도마처럼 철저히 따지다가도, 노아처럼 마침내 송두리째 순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경으로 성찬으로 부활예수님을 옹골지게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말씀 동시] 무제 (시냇물교회 교인 지음, 「성실문화」 82호)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주님의 모습을 꿈에 볼 수 없어서
난, 슬프네
주님을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라고 위로하시고,
내 속에 성령을 보내사 성경을 깨닫게 하시니
난, 기쁘네.
[말씀 시조] 부활예수 평화인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2호)
부활예수 평화인사 제자들은 어리둥절
나 너희 보내노라 성령을 받아라
도마야 의심 떨치고 참 믿음을 갖기를
[말씀 한시] 부활 (오세승 지음, 「성실문화」 82호)
塚中屍髑忽然移(총중시촉홀연이) 무덤 속의 시신이 홀연히 없어져서
弟子數人唐慌哀(제자수인당황애) 따르던 제자들은 당황해서 슬퍼했다
洞窟埋身巨巖塞(동굴매장거암새) 동굴 속에 매장하고 큰 바위로 막았는데
上耶下耶何處疑(상야하야하처의) 솟았는지 꺼졌는지 사라진 곳 알 길 없다
豫言耶穌死後起(예언야소사후기) 예수님이 말씀하길 “나 죽은 후 다시 산다”
果是三日復活奇(과시삼일부활기) 그 예언 그대로 사흘 후에 부활하셔
驚愕虛墓未明裏(경악허묘미명리) 새벽 미명 어두울 때 빈 무덤에 경악할 때
出現一語平安禧(출현일언평안희) 출현하셔 첫 말씀 “평안할 지어다”
[오정(梧亭) 오세승 목사 작 (목회자 한시집 『첫 한시를 짓는 마음』(도서출판 성실문화)에서)]
[말씀 서예] 시편 133: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2호)
[말씀 노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이정훈 작사, 최지혜 작곡, 「성실문화」 82호)
[본문] (요한복음 20:19-31)
[노랫말]
1. 유대인 무서워서 문을 닫았네, 제자들 꽁꽁숨어 꽁꽁잠갔네
홀연히 나타나신 부활예수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2. 어리버리 제자들 떨리는 마음, 꽁꽁닫힌 마음문 두드리시네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받아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3. 예수님 못만난 쌍둥이 도마, 그 상처 만져봐야 나는 믿으리
잠긴문 잠긴마음 스며든 주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해설]
요한복음 20:19-31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었고, 국악작곡가 최지혜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이정훈 작사, 최지혜 작곡. 2015. 1)
[시편 송서(誦書)] 시편 13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82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1. 보- -- 라-, 형- -제 가-, 연합 하- 여-, 동- -거 함이,
어찌 그- 리-, 선- 하- 고-, 아- -름 다운, 고- -- --,
2. 머- 리- 에-, 있- -- 는-, 보배 로- 운-, 기- -름 이-,
수- -- 염-, 곧- 아- 론의, 수- 염에 흘러, 서- -- --∼
그- -- 의-, 옷- -깃 까지, 내- 림- 같-, 고- -- --,
3. 헐몬 의이 슬이, 시온 의산 들에, 내- -림 같도, 다- -- --,
거- 기- 서-, 여호 와께 서-, 복을 명령 하셨, 나- -- 니-,
곧- -- --, 영- 생이 로다, (영- -생 이로,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위의 두 줄은 세마치로, 아래 두 줄은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 동화] 조각배를 타고 오신 힙합 선장님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서쪽하늘 에서도, 동쪽하늘 에서도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지난 주 부활절 새벽, 온 세상이 쿨쿨 꿈나라에 갔을 때
진도 팽목항 맹골수로, 그 맹렬한 해류가 갑자기 잠잠해졌어요.
그 순간 맹골수로 흙탕물은 거짓말처럼 맑아졌죠.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요.
아무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꿈에도 모르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맹렬한 바닷바람도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그 깊은 바다 속을 들여다봅니다.
둥근달님도 은은한 얼굴로 바라보니 바닷물이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295개나 되는 작은 별들이 반짝반짝 동시에 빛을 뿜으니
맹골수로 저 깊은 바다 속까지 환하게 비치네요?
그 순간 엎어진 뱃속에서 아홉 개 진주알이 빛을 뿜습니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빛입니다.
진주조개, 아니 진주배에서 나온 아홉 개 보석, 진주알들입니다.
반짝반짝 동무들의 별빛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작은 별’ 노랫가락에 맞추어 진주알들이 반짝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했어요.
맹골수로가 순식간에 변한 것도,
295개나 되는 작은 별들이 맹렬히 빛을 뿜은 것도,
진주 아홉 개가 한순간 반짝인 것도
세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로부터 한주가 지나자 둥근달은 반달이 되었습니다.
둥근달이 그냥 자연스레 절반으로 줄어들었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반달 안에 누군가 앉아 있네요.
반달 같은 모자챙을 살짝 올려 쓴
힙합 스타일 열아홉 살 청춘!
열아홉 청춘이 반달 조각배 선장입니다.
열아홉 선장님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내려옵니다.
1.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2.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반달’ 윤극영 지음]
은하수를 건너온 반달 조각배는 서쪽나라로 가다말고 우리나라로 내려옵니다.
“배가 기우뚱 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재미있으라고 너스레떠는 선장님 이야기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분위기가 썰렁해질까 걱정입니다.
다행히 아무도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세월호 1주기 4월 16일을 앞두고,
295명의 사망자 가족들과,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의 귀에는
선장님 이야기가 하나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머쓱해진 선장님이 조심조심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엄마 한 사람이 힐끗 바라보더니 금세 휙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선장님이 다시 인사합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그러자 한 사람 두 사람 고개를 돌려 힙합 선장님을 바라봅니다.
“왜 그러세요? 왜 그런 모양으로 오셨어요? 왜 배를 타고 오셨냐고요?”
선장님은 기관총처럼 연발하는 질문에 잠깐 눈을 감았다 뜹니다.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고 싶어요. 오늘이 벌써 부활절 둘째주일입니다...”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합니다.
“평화요? 부활이요? 그게 도대체 뭐죠?... 어느 집 개 이름인가요?”
그러자 아빠들이 말합니다.
“여보, 흥분을 좀 가라앉힙시다. 개 이름이라니...”
시무룩해진 선장님께 아빠들이 다시 말합니다.
“선장님 너무 기죽지 마세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저희는 원래 모두 선장님 좋아해요. 그러나 저희는 배가 싫어요. 세월호 때문인지 저희는 배가 무서워요. 무슨 구원의 방주라는 교회도 싫고요. 그래도 선장님은 좋아해요. 아시죠?”
선장님이 이제야 분위기 파악이 되시나 봐요.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네요.
마음을 추스린 엄마들이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선장님, 다음에 오실 때는 배타고 오지 마세요. 그리고 그 힙합모자 쓰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 생각나서 마음이 힘들어요. 그리고 그냥 산타클로스 같은 다른 심부름꾼 보내세요. 직접 오진 마시고요.”
“맞아요.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과 해결이 전혀 없었어요. 책임자도 없고요. 이런 마당에 어떻게 저희 귀에 평화나 부활이 들어오겠어요. 도대체 평화가 뭐죠? 부활은 뭐죠?”
선장님이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엄마아빠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단순히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게 부활인 줄 알았는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이 예수님 자신이라니?
예수님이 바로 부활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니, 그건 또 뭐지?
엄마아빠들 중엔 그리스도인들이 여럿입니다.
전도사님도 있고 목사님도 있습니다.
“선장님, 부디 도마와 같은 저희를 용서하세요, 보고도 믿지 못하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힙합 선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반달 조각배에 오른 선장님이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저 아래 무수한 십자가들을 바라봅니다.
아직 죽지 않아 부활이 멀고도 먼 교회들을 바라봅니다.
팽목항 맹골수로를 지날 때 아홉 개 진주가 둥실 떠오릅니다.
영롱한 진주들이 반달 조각배에 올라 하늘로 오릅니다.
295개 별들이 아홉 진주를 맞이하며 반짝반짝 환호합니다.
땅을 향해 별들이 반짝반짝 소근거립니다.
"엄마아빠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벗들아 너무 슬퍼하지 마! 대한민국 여러분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저희는 이미 다 용서했어요!"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서쪽하늘 에서도, 동쪽하늘 에서도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엄마아빠 가슴에, 우리모두 맘속에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이정훈 지음. 2015년 4월 12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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