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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마지막 주일-주님의산상변화주일(2025년 3월 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고린도후서 3:18)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34:29-35)

29. 모세가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모세 얼굴의 살결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으나,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자,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모두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모세가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거니,

32. 그 때에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하였다.

33. 모세는, 그들에게 하던 말을 다 마치자, 자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34. 그러나 모세는, 주님 앞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말할 때에는 수건을 벗고, 나올 때까지는 쓰지 않았다. 나와서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때에는,

35.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다시 자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시편 99)

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2.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3.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5. 우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의 발 등상 아래 엎드려 절하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6.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고린도후서 3:12-4:2)

3:12.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1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15.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4: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환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누가복음 9:28-36(37-43))

28.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34.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35.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36.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37. 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38. 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39.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42. 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하나님의 영광, 그 말씀 앞에서 우리는입니다.

 

구약,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출애굽기 34:29)

시편,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시편 99:7)

서신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고후 3:18)

복음서,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누가복음 9:29)

 

오늘 요절은,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입니다.(고후 3:1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출애굽기 34:29-35, 시편 99)]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본문은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그런 빛이 났다고 밝힙니다.(29)

 

그 뒤로 모세는 주님을 만나 말씀을 나눌 때,

즉 주님을 뵈올 때는 얼굴의 수건을 벗었습니다.(34)

이 사실을 오늘 서신서 기자 바울이 색다르게 응용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주님을 우리의 임금님으로 묘사한 시편들 중에서 유달리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여 후렴처럼 세 차례나 반복합니다.(3, 5, 9)

거룩하신 주님을 뵈올 때 우리가 할 일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말씀 경청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갑니다.

 

1절의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우리에게 내려오신 주님>, <말씀(언약궤)으로 우리와 만나시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6절의 세 인물, 모세, 아론, 사무엘은 제사장과 예언자를 대표하며

이들은 말씀을 보전하고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으로 임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만날 때, 우리는 제대로 용서받고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3:12-4:2, 누가복음 9:28-36(37-43))]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새 언약의 직분, 사도의 직분에 담긴 복음의 광채입니다.

바울은 오늘 구약본문을 인용하고(6) 재해석하면서(13) 진리를 드러내려 애씁니다.

바울은, 너울(수건)이란 하나님(영광, 진리, 말씀)을 가리는 것으로,

또는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으로 보고(13, 4:2) 응용합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날 때 그 너울이 벗겨짐으로,

말씀(구약)이 환히 깨쳐지고(14-16)

진리의 말씀을 떳떳하고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고(4:2)

우리가 주님과 같은 모습(주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의 변모, 귀신들린 소년 치유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과 뒤에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

제 십자가 결단을 촉구하는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위치한 오늘 본문의 핵심은,

<주님 만난 자 다운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구약본문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주님과 말씀 나누다 얼굴이 빛났듯이,

예수님께서 변화산 기도 중에 눈부시게 변모하십니다.(1)

이렇듯 기도는 하나님과의 강렬한 만남의 시간인데,

제자들은 조느라 늘 이 기회를 놓치기 일쑵니다.(32)

그 뒤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때도 그랬습니다.(14:37, 40)

 

그러고 보니, 구구절절 오늘 변화산의 모습은

주님의 마지막 모습과 직통하는 징검다리 같습니다.

겟세마네와 빈무덤, 그리고 승천하신 올리브 산으로(1:9-12) 이어집니다.

 

변화산 아래서 벌어진 귀신들린 소년 치유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제자들의 변화를 촉구하십니다.(41)

졸지 말고 주님과 강렬하게 만나는 기도에 힘써야(9:29, 17:21-난하 주)

쫄지 않는 능력의 주님처럼 변화하여

마침내 제 십자가의 길, 제자의 길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오늘은 주현절의 끝 주일인 주님의산상변화주일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순절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본문의 직전·직후의 말씀이 뜻깊습니다.

십자가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예언자들과 함께 나누신 말씀의 내용 또한(31)

십자가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십자가의 길

이 길 위에서 공평과 정의, 하나님의 능력이 꽃피고 열매 맺을 것이니

우리는 그 길을 가며 주님 닮아가야 마땅한 주의 제자들입니다.(고후3:18)

 

코로나 전후로 한국 개신교의 교세가 급히 하강곡선을 그리던 차에

최근 몇 해 동안 그 각도가 걷잡을 수 없이 급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젊은 가정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 이면에는 언제부턴가 연기처럼 스며든 <혐오>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내내 사회적 약자들의 편을 들던 교회가

언제부턴가 약자들을 혐오하고 편 가르고

심지어 악마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 해석에 따라 성소수자나 외국인노동자 무슬림을 혐오하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중국을 혐오합니다.

이러다가 시류에 편승하여,

노동력도 없이 세금만 축내고 늘어만 간다며, 노인까지 혐오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혐오는 악마가 뿌려놓은 가라지 같습니다.(마태13:39)

그 끝은 지옥의 불구덩이입니다.(마태13:40-42)

 

교회는 성경말씀대로 혐오가 아니라 환대를 지향해야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한답시고

섣불리 정죄하고 혐오하고 내쫓는 일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마태13:28-30)

 

그것은 마치 내 안의 쓴 뿌리같은(12:15) “너울

오늘 서신서본문의 사도바울이 반복해서 가리킨

진리의 빛을 가리는 너울일 뿐입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확신을 갖고 우리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 말씀처럼 공평의 기초를 놓으신 주님을 따라

온갖 혐오를 벗어버리고 오직 정의를 사랑하고 공의와 정의를 실천함으로써(99:4)

주님을 닮으려 애쓸 때입니다.(고후3: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린도후서3:18)

 

 

 

[나머지]

*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주님 말씀 앞에 서면 나의 너울이 하나하나 벗겨집니다. 옛사람, 옛 습관, 알량한 기득권, 부끄러운 성공주의와 맘몬의 찌꺼기들... 그 온갖 미망의 너울이 벗겨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능력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99:4) 주님 앞에 서서 말씀 나눌 때 너울이 벗겨지고 우리는 주님의 영광, 공평과 정의로 빛납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고후3:18) 주현절 마지막 주일, 오늘 본문이 가리키는 주님과 같은 모습은 무엇입니까? 주님 얼굴에서 빛이 나고 그 옷조차 빛나게 한, 그 앞뒤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빛나는 영광 속에서 예언자들과 함께 나누신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바로 십자가 죽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환하게 변합니다.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말입니다. 이 길 위에서 공평과 정의, 하나님의 능력이 꽃피고 열매 맺을 것입니다. 어느덧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따르는 사순절 첫 번째 고개가 코앞입니다. ! 잊지 말 것은,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먼저 주님께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그 때 너울은 벗겨진다고 하셨습니다.(고후 3:16) 늘 그렇듯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법입니다.

 

** 주현절 마지막 주일과 삼일절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기도 중 주님의 변모>(9:29)를 통하여, 그리고 사도바울의 강력한 증거를 통하여(고후3:18) 주현절의 결론은, 주현(主顯)! 우리에게 주님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그 주님을 만나, 주님 닮아가는 우리의 변화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너울이라고, 모세가 얼굴을 가렸던 너울이라고 오늘 바울은 묘사합니다. 우리 일생에 여러 너울이 있겠으나, 오늘 바울이 가리키는 너울은 주로 교회의 구태한 묵은 전통이요, 나아가 내 안의 묵은 누룩”(고전5:7)이고, “쓴 뿌리”(12:15)입니다. 이 너울을 벗어야 우리는 제대로 말씀을 깨칠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게 아니라, 정말 주님께서 지금 내게 원하시는 말씀을 통째로 보고 듣고 깨침으로 마침내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바로 앞뒤에 놓인 예수님의 말씀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의 길, 그 말씀, 하나님의 그 뜻의 정점에 변화산 사건이 놓여 있습니다. 모세가 주님을 만나 말씀 나눌 때 너울을 벗었던 것처럼(34:34) 우리도 예배하며 기도하고 말씀들을 때 내 너울을 벗어야 합니다. 내가 벗어야 할 너울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예배 안에서 그렇게 의례적으로 반복해서 벗어야 할 너울이 있고, 또 아무리 해도 벗겨지지 않는 내 일상의 너울, 일생의 너울이 있습니다. 그 너울은 어떻게 벗을 수 있습니까? 사람이 주님께 돌아선다는 것은 완전한 회개를 뜻합니다. 그때 비로소 나도 모르게 나를 덮고 있던 온갖 너울이 다 벗겨지는 겁니다.(고후 3:16) 그때 비로소 아무리 읽어도 보이지 않던 주님 뜻이 보이고, 아무리 읽어도 변하지 않던 내가 변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산상변화주일이면서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주현절의 끝과 사순절 시작의 사이에서, 3월을 시작하며 100여 년 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삼일만세운동이 내내 울려 퍼지던 그 3월을 기억하면서, 사순절 내 십자가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의 길, 한반도의 참 광복(光復), 우리 모두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길을 다시 회복해야 할 지금,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이 거대한 너울이 어서 벗겨지기를, 어서 우리 한국교회가 주님께로 돌아서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빕니다.

 

***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후3:17)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으로 드러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원하는 절기입니다. 여기서 기원한다는 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아는 만큼 닮아갈 것을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은 주님 만나 대화하며 시나브로 닮아가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구약)모세의 얼굴빛이 그러하였고(29) (시편)백성이 말씀 순종하는 모습이 그러합니다.(7) (서신서)모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너울을 벗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점점 주님을 닮아가고(18) (복음서)기도하시던 예수님 얼굴모습이 그러하고(29), 장차 제자들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35,41) 오늘 본문말씀들을 묵상하는 동안 눈에 들어온 단어 하나는 자유입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후3:17)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구절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입니다.(9:43) 그러고 보니 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바로 <자유롭게 하심>으로 보입니다. 악마의 권세에 억눌려 살던 아이를 자유롭게 하신 것 말입니다. 악한 영이 제아무리 힘이 센 척해도,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보게 해주고 길흉화복을 점치게 해주어서 제아무리 내가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명예와 권력을 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건 나를 부자유하게 할 뿐입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후3:17) 주님의 영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선거 때마다 6.25의 상처를 건드리며 이간질하는 악한 영의 정체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올무에 걸려 있는 내 가족을 자유롭게 해주실 주님의 영을 빌 때입니다. 주님의 영께서 한국교회의 눈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빌 때입니다. 주님의 영께서 우리가 읽는 말씀을 비춰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진리를 환히 깨달아 예수님 그분처럼 우리 모두 진짜 자유로워지기를 빕니다.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변화산의 예수 (이인성 지음. 성실문화121)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산에 올라가신 예수

기도 중에 얼굴에서도 옷에서도 광채가 나신 예수

 

모세 엘리야와 다정하게 대화하시는 예수

구름이 춤추며 커다랗게 노래하는 소리

 

이는 나의 아들, 내가 택한 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시편시조] 시편 99, 떨어라 뭇 백성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21)

떨어라 뭇 백성아 온 땅아 흔들려라

정의를 사랑하사 공평의 터 다지신 분

주님은 거룩하시다 그 이름을 찬양해

 

 

 

 

[시편노래] 시편 99, 주님은 거룩하시다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21)

[본문] (시편 99)

[노랫말]

1.주님께서 다스리니 떨어라 뭇 백성아,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시온에 계시는 분 주님은 위대하다, 만백성 너희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만 백성아 찬양하라 그 이름을 찬양하라, 두렵고 크신 이름 주님은 거룩하시다

2.정의를 사랑하는 우리의 주 하나님, 주님의 능력은 정의사랑에 있나이다

공평의 기초를 주님께서 놓으시고, 공의와 정의를 야곱에게 행하셨나이다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 발아래 엎드려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3.제사장 모세 아론 사무엘이 부를 때에, 부르짖음 들으시는 주님께서 응답하신다

구름 기둥 속에서 주님께서 말씀하니, 그들은 그 계명을 그 율례를 다 지켰다

그들에게 응답하고 용서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경배하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작곡가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99 (주님은 거룩하시다)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20250302 시편노래 99 주님은 거룩하시다.m4a
6.38MB

 

 

 

 

 

[시편송서(誦書)] 시편 9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21)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2.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3. --------,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 거룩하시다-

 

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5. 우리--- 주 하나님을-, ----하여---,

그분의 발 등상 아래- 엎드려 절하라, 주님--- 거룩하시다-

 

6.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함께)

9. -- -리 하나-님을-, ---- -양하여라,

-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 거룩하-∼∥

 

20250302 시편송서 99.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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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백운대(白雲臺)를 오르다 잠깐 잠든 사이에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개구리와 함께 삼각산 세 봉우리를 폴짝폴짝 건너뛰던 시절 이야기예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

 

철수는 오늘도 삼각산에 오르다 잠깐 다리를 쉬며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시집을 엽니다.

 

삼각산 오를 때마다 서점에서 작은 시집 한권을 삽니다.

그리고 등산이 목적인지 시를 쓰는 게 목적인지

중간중간 자주자주 조용한 자리에 앉아서 철수는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윤동주는 왜 예수님의 팔복 가운데 두 번째 복을 이렇게 반복했지?”

 

오늘 철수가 고른 시집은 시인 윤동주의 눈물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건 윤동주의 미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철수는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저 아래 병원 같은 서울이 보이고

종합병원,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병원 같은 서울

이내 다시 윤동주의 팔복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서

여백에 답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철수는 삼각산에 갈 때마다 작은 시집을 한권 삽니다.

산을 오르며 중간중간 자주자주 조용한 자리를 찾아 거기서 시를 읽고

그 시를 쓴 시인과 대화하듯 여백에 답시(答詩)를 씁니다.

그러고 나서 산을 내려와 그 시집을 가까운 아무개들에게 선물하곤 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마태복음5:4, 새번역)

 

문득 철수는 윤동주가 예수님과 대화하듯 이 시를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내가 시인과 대화하려 답시를 쓰다 보니 절로 그런 확신이 듭니다.

그러니 동주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라는 그 마음을 이미 안 거고.

 

그 말씀 그 약속이 든든했죠? 그래서 못을 박듯 여덟 번이나 반복하신 거죠?”

 

슬픈 나라, 슬픈 세상에 사는 슬픈 내가 받을 위로가

동주 형은 참 든든하고 행복했을 거라고

철수는 확신합니다.

 

나도 이제 나보다 더 슬픈 사람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철수는 동주 형이 친하고 정다워집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진 것만 같습니다.

 

 

갑자기 몰려온 흰 구름이 온 산을 뒤덮더니

문득 하늘에서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웅웅 신비하게 울리는 동굴소리처럼

흰 구름 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슬픔을 나눌 사람이 여기 또 하나 있구나.”

 

봄눈 녹듯 흰 구름은 솜사탕처럼 녹아버리고

둘러보니 저기 동주 형이 서 있습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다 문득

아뿔싸! ‘예수님이시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철수는 잠을 깹니다.

솜사탕을 먹은 듯 달콤한 하품이 절로 납니다.

삼각산 구석구석에서 시를 읽고 답시를 쓰다가 잠이 들다니.

이런 단잠은 처음입니다.

 

고마워요 동주 형!”

 

철수는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글자를 차곡차곡 담아서

윤동주의 팔복에 답시를 써내려갑니다

백운대에 닿기도 전에 솜사탕처럼 다디단 흰 구름을 꿈꾸었으니

오늘은 백운대까지 오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정훈 지음. 202531일 토요일, 삼일절 아침]

(지난주일 '윤동주 80주기 추모음악회-25진달래음악회'를 준비한 마음을 담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