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주시는 분”(시편 118:14)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 31:1-6)
1. "나 주의 말이다. 때가 오면,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 나 주가 말한다.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자기의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에,
3.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우겠으니, 네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너는 다시 너의 소구를 들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나오게 될 것이다.
5. 내가 너로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원을 만들 수 있게 하겠다. 포도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따 먹게 하겠다.
6. 에브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어서 시온으로 올라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하고 외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시편 118:1-2, 14-24)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이스라엘아,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여라.
14.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15. 의인의 장막에서 환호하는 소리, 승리의 함성이 들린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6.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18.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사도행전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37.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0:1-18)
1.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4.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5. 그런데 그는 몸을 굽혀서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도 그를 뒤따라 왔다. 그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삼베가 놓여 있었고,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그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8. 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10.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11.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18.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부활절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구원의 춤, 부활의 춤’입니다.
구약,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우겠으니 ...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나오게 될 것이다”(예레미야서 31:4)
시편,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시편 118:16)
서신서,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사도행전 10:39-40)
복음서,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요한복음 20:17)
오늘 요절은,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주시는 분이시다”입니다.(시편 118:1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 31:1-6 / 시편 118:1-2, 14-24)]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흩어진 자들의 귀향’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12지파의 미래 구원약속 말씀들을 묶은 <위로의 작은 책>(30-31장)의 일부분입니다.
실제로 북왕국 포로들은 귀환하지 못하고 남왕국 유다사람들이 이 약속의 상속자가 되었으나,
더 먼 미래에 12지파의 이름이 요한계시록에도 반복해서 나올 만큼,
예언자가 대언하는 이스라엘 구원약속은 하나님 약속의 큰 줄기입니다.
이 구원약속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니
본문은 시종일관 구구절절 하나님의 든든한 음성과 따듯한 손길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춤출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덩실덩실 기쁘게 회복될 것이며(4)
수도 사마리아의 산업이 회복될 것입니다.(5) 그러나
성전은 오직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다는 사실을 온 이스라엘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6)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본문은 회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번갈아 주고받으며 부른 노래로 보입니다.
14절은 <구원받은 자들의 감사 찬송>인 승전가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출15:2, 또는 사12:2)
이어지는 15-16절도 승전가의 연속입니다.(출15:6)
하나님 구원의 손, 그 힘찬 오른손을 맛본 백성은
그간의 부끄러운 죄와 고통스런 형벌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은혜 하나님의 구원을 내다보며 노래할 수 있게 됩니다.(17-18)
22-23절의 버린돌∼머릿돌 역사는
장차 하나님 구원의 가장 극적인 역사이신
부활예수님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구절이 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사도행전 10:34-43 / 요한복음 20:1-18)]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다’입니다.
고넬료의 신비로운 체험 보고를 들은 베드로의 구원관이 확장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35) 누구라도
공정(公正)하신 하나님께서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35)
그리고 이 깨달음을 이방인 고넬료네 사람들과 공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으키신
가슴 뛰는 그 사랑, <구원행진>을!(36-43)
이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시요(36) <사랑의 능력>이신(38) 예수,
만유의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39-40)
<하나님 사랑의 구원행진>의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부활하시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입니다.
다른 복음서들의 병행구절을 보면 부활의 아침에 처음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여러 여자들인데,
오늘본문은 그 가운데서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초점을 두고
부활예수님께서 제자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진술합니다.(cf; 마28:9-10)
마리아가 전하는 빈 무덤 소식을 듣고 두 제자가 달려와 확인하고 돌아간 뒤에도,
마리아는 울면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천사들도 만나고 급기야 부활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음성을 듣고도(15) 못 알아봤던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실 때에야 예수님을 알아보고 “라부니!”하고 외칩니다.(16)
그런데 예수님은 (마28:9절과 달리) 마리아가 예수님 당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막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부활>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인 성부하나님께 올라가는 일이 남았기 때문이고,
이는 성부·성자·성령·우리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17)
이는 또한 요한복음14:1-3절 약속의 성취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3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비록 부활예수님의 몸은 만지지 못했어도,
이전과는 다른 참으로 신비로운 새 생명, 새 관계가 시작되는 이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명을 받아 제자들에게 달려가 전달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몸과 마음, 온 심령이 얼마나 빛났을지요, 예수님처럼!
[정리]
부활절 성서일과 본문들에서 춤의 기운을 느낍니다.
구원의 춤, 부활의 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마침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구원계획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춤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은, 하나님 구원의 서막을 보여주는 출애굽과정에서 벌어진 백성의 춤사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춤 잔치를 회상합니다.(렘31:4, 출15:20)
시편본문에는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주님이 나의 능력, 나의 노래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오른손을 높이 드시는 모습이 딱 춤사위 같습니다.(시118:16)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사도행전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전하는
저 가슴 뛰는 예수님의 구원행진 구구절절이 숨 가쁜 구원의 춤으로 느껴집니다.(행10:36-43)
그중에서도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시고(행10:40)
복음서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은 또 어떻습니까?
그리고 주님 만나 말씀 받은 막달라 마리아가 이 기쁜 부활소식 그 말씀 전하려고
제자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딱 춤추는 사람 같았을 것입니다.(요20:18, 렘31:4)
문득 청년시절 학교와 교회에서 신바람 나게 부르던 노래, <춤의 왕>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그 구원과정 일거수일투족을 춤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가락도 신나지만 노랫말 하나하나 주님의 사랑, 주님의 생명력이 한없이 솟아납니다.
“1.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후렴;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2. 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 (후렴)
3.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후렴)
4. 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해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 속에 깊이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 (후렴)
5. 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리라∼ (후렴)”
[‘춤의 왕’ 외국노래]
[나머지]
* ‘춤추는 십자가’(노래 ‘춤의 왕’ 단상) (「성실문화」 10호 38쪽, 노래마당에서 발췌)
지난해 11월말 나는 ‘한국전통문화와 우리가락찬송’ 강의초청으로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 2박3일 동안 다녀왔다. 처음 찾은 예수원은 특이한 모양의 십자가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보기도, 그리고 수도원 특유의 침묵시간, 모두 함께하는 노동하는 분위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하산할 때 예수원 가족들이 내게 주는 선물이 몇 가지 있었다. 그 가운데 예수원이 자랑하는 십자가 목걸이가 참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십자가를 벽에 걸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니 십자가 아랫동이 살짝 휜 것이 눈에 걸렸다. 가족들은 혹시 불량품이 아니냐고 웃었으나, 나는 왠지 그 불량품(?)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는 동안 가끔씩 눈에 들어오던 그 십자가가 어느 날부턴가 마치 춤추는 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오상(五傷)을 상징하는 다섯 동그라미를 품은 채 춤을 추는 십자가! 그래서 그 뒤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저것이 바로 그 유명한 ‘춤추는 십자가’라고 알려주며 나는 마냥 즐거워한다. 고난의 상징 십자가가 춤 신명으로 꿈틀대는 신앙의 경지! 나는 언제 그런 신앙의 신비를 제대로 느끼고, 깨닫고, 살아낼 수 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이 노래 ‘춤의 왕’은 바로 그러한 신앙의 경지를 시적으로 표현한 멋지고 신나는 노래다. 아직 이 노래를 모르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꼭 배워 부르길 권하고 싶다. 노래를 배우고 나서 노랫말 한절 한절의 느낌을 다함께 나누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 개인적으로 이 노래엔 여러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행복한 기억은, 지난 1984년 가을 동대문지방 동성교회(당시 김덕순 목사 담임) 문학의 밤인 ‘동녘의 별과 함께’ 때의 기억이다. 그때 나는 대예배실에서 당시 신학생이던 이용호 목사의 장구반주에 맞추어서 춤췄다. 하얀 바지저고리차림에 탈을 뒤집어쓰고 덩실덩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춤을 추었다. 예수님의 일생을 춤사위로 묘사한 작품이었다. 그 작품 ‘춤의 왕 예수’ 말미에 이 노래 ‘춤의 왕’을 관객들과 합창한 것이다.
[말씀거울 - 역사이야기]
* 4월 11일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일)
오늘 구약본문과 시편본문을 읽으며, 일제강점기 1919년에 임시정부를 세운 역사를 기억한다. 그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다시 새기며 구약과 시편본문을 읽으면, 감동과 말씀기억력이 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 오랫동안 4월 13일로 기억하던 이 날을,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꾸었다.
* 4월 14일 (1885년, 최초 국립병원 광혜원∼제중원 개원)
한국의 첫 의료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 알렌박사(Dr, Horace Newton Allen, 安連)이다. 알렌박사는 1884년 9월20일에 미국공사 푸트(Foote)의 주선으로 미국공사관의 공의(公醫) 신분으로 상해(上海)에서 입국하였다. 알렌박사는 1884년 12월4일 갑신정변 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부상당한 민영익(閔泳翊)을 치료함으로써 국왕과 정부고관들에게 신임을 얻고, 서양의술의 효과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알렌박사는 미국공사관 대리공사인 폴크(George C. Foulk, 福久)를 통해 서양식 근대병원 설립계획서를 조정에 제출하여 승인받아 <조선정부병원>(朝鮮政府病院)인 광혜원(廣惠院, Extend Grace House)이 1885년 4월14일에 개원하였다. 민영익 치료로 알렌의 위상은 높아졌으나 병원설립에 반대가 많았다. 그래서 알렌은 슬기롭게 진행하였다. 한국 최초 서양식 병원을 세울 때 혼자 이름으로 하지 않고 고종 임금의 신임을 받고 있던 미국 대리공사 포크와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병원 이름을 기독교나 미국 선교사의 병원이 아니고 ‘한국정부의 병원’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알렌의 슬기로운 일 처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병원설립의 복병이었던 야심찬 세력가 뫼렌돌프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존대가 넘친 편지를 썼다. 이 병원 설립이 결국 뫼렌돌프가 오래 품어온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알렌이 1885년 1월27일 민영익을 통해 조정에 제출한 병원 설치 건의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우선 민영익 치료 이후 밀려드는 불쌍한 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다 돌보기는 현재 머무는 작은 집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알렌 자신은 한국인의 건강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겠다는 다짐이 포함돼 있었다. 또한 한국 청년들에게 탁월한 서양 의료기술을 가르쳐 주고, 병원 운영을 할 때 책임자인 알렌 자신은 나라의 봉록을 받지 않으며, 다만 병원의 운영비나 약재는 나라가 예산을 지급하고, 조정은 공기가 잘 통하고 깨끗한 커다란 집 한 채를 장만해 주고, 그러면 미국에서 곧 유능한 의사들을 더 초청하겠다는 것 등의 내용이었다. 미국과 기독교가 대세가 되는 병원건립을 반대한 것은 독일공사관 부르터였다. 병원이 선교기관이 될 수 있으니 조정이 종교에 관계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구실이었다. (실제로 병원 설립을 진행하던 1885년 봄에는 미국에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선교사 여럿이 입국해 그 세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또한 한국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는 여러 나라 특히 일본이나 중국, 독일, 러시아 등이 있음에도 세력 균형이 미국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전통적인 의료기관 혜민서나 활인서의 관리들이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서양식 병원 설립의 반대 이유였다. 그 때 고종이 먼저 알렌에게 서양식 병원 설립을 권유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권세가인 민영익의 후원은 끝이 없었다. 마침내 조정은 1885년 2월 29일자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현 외교부)을 통해 병원 설립을 허가한다. 신청한 지 한 달 만의 일이다. 조정은 병원 건물로 재동에 위치한 홍영식의 옛 고대광실 집을 마련해 주었다, 홍영식은 우정국의 총판으로 개화파의 거두인데 갑신정변 때 거리에서 백성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집은 온 집구석이 핏자국으로 흥건했다. 그렇게 흉가로 남아 있던 집을 조정이 몰수했다가 거기에 알렌이 병원을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흉가가 기독교 덕분에 희망과 사랑의 집으로 바뀐다. 고종 실록에 보면 그 병원의 설립일자는 1885년 4월 14일이고, 그때 조정은 병원의 이름을 지어주기를, 넓게 혜택을 준다는 뜻으로 ‘광혜원’이라 했다. 우리는 4월 14일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 한국에 기독교 기관이 조정과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세워진 날이기 때문이다.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의 입국이 같은 해 4월 5일이었으니 그해 4월은 한국 기독교에 참으로 역사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홍영식의 집은 비록 흉가가 되었어도 고관대작의 집이었기에 규모가 방대했다. 병원으로 개조해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병원은 외래진료실 환자실 수술실 약국조제실 일반병실 외과병실 여자병실 특등실을 갖추었다. 병상 수는 430상이었다. 광혜원의 첫 공식 영어 명칭은 ‘로열 하스피털(Royal Hospital)’ 곧 왕립병원이었다. 고종 임금은 광혜원 개원 후 12일이 지난 4월 26일 광혜원을 ‘제중원(濟衆院)’이라 개칭했다. 여러 민중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제중원에서 첫해에 치료한 환자는 외과수술 환자 150명, 외래 치료 394명 등 총 1만460명이다. 알렌 혼자서 다 한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국민일보)의 글을 다듬어 요약함)
* 4월 15일 (1919년, 수원 제암리교회 참사)
1919년 경기 화성 제암리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주민 학살사건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일제는 그해 3·1운동 여파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경계했으나 독립을 향한 열망은 서울을 넘어 수원, 화성 등 각지로 넘실거렸다. 그해 3월 25일 제암리 마을 뒷산에서 주민들이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외친 데 이어 같은 달 31일 발안 장터에서는 1천 명이 태극기를 앞세워 만세를 외쳤다. 4월 5일에도 발안장에 모인 교회 청년들과 주민들이 거리에서 만세를 부르려 했으나 일제의 무차별 진압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제는 연이은 만세운동에 급기야 군을 동원했고, 제암리 학살사건은 이런 과정에서 벌어졌다. 일본군은 같은 달 15일 제암교회에 15세 이상 마을 남성을 교회당에 모이도록 했다. 군은 예배가 없는 날 주민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기 위해 모종의 사과를 한다는 핑계를 댔다고 한다. 일본군은 교회당에 사람이 모이자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서 내부로 총을 난사했다. 이후 시신은 교회 밖으로 꺼내 짚과 함께 태웠다. 당시 학살로 희생된 주민은 총 23명. 이제 막 신앙에 다가선 개신교인들이었다. 일본군은 이웃 마을 고주리에서도 6명을 살해했다. 이들은 개신교인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천도교인들이었다. 103년이 지난 제암리 학살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었다. 1905년 살림집에서 시작했으나 학살사건 속에 사라졌던 제암교회는 신축과 증·개축을 반복하며 기념비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제암리 학살은 사건 이후 현장을 찾은 선교사와 외교관, 외신 기자들에 의해 서울과 나라 밖으로 알려졌으나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돼 모셔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1980년 대 일이다. 1980년 제암교회에 부임한 강신범(81) 목사는 당시 학살로 남편을 잃은 전동례 할머니를 통해 어렴풋했던 학살의 진상을 또렷하게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 5일 제암교회에서 만난 강 목사는 “전동례 할머니 말씀이 사건 당시 희생자들의 유해가 마치 한 덩어리처럼 뭉쳐있어서 시신 하나하나를 분리하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했다”고 전했다. “어떻게 이렇게 잔학한 짓을 할 수 있는지 할머니가 울먹이시더라고요. 하지만 제암리 사건을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았죠.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 목사는 서울로 올라와 유해 발굴에 도움을 받고자 백방으로 뛰었고, 정부 지원으로 1982년 9월 희생자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수습된 유해들은 합동 장례를 치르고, 교회 옆 언덕에 함께 안치했다. 강 목사는 일본에 초청돼 제암리 사건 진실을 알리는 강연을 하곤 했는데, 자신이 전하는 이야기에 크게 놀라거나 곤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떠올렸다. “일본에서 강연하는데 제암리 학살사건을 들어보지도 배우지도 못한 일이라며 놀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교회 한두 곳에서 불러 강연을 하다 나중에는 학교에서도 초청했어요.”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일이 지속하면서 일본 개신교계에서는 2019년 제암리를 찾아 가해자를 대신해 사과하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일이 있었다. 제암교회 예배당에서 일본 목회자 10여 명이 단체로 엎드려 절을 하며 “일본인들을 용서해달라”며 절규했던 일은 한국과 일본인 모두에게 격한 감정을 불러왔다.
제암리 학살이 벌어진 지 꼭 100년 만의 일이었다...(2022.10.7. 화성 연합뉴스 양정우 기자의 글을 요약함)
[말씀동시] 변태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4호)
징그럽다 보기 싫다 소리 지르니
애벌레는 말없이 고치가 되네
달이 세 번 지고 찾아가 보니
빈고치 덩그러니 자리 지키네
울지 말아라 어린아이야
고운 날개 펄럭이며 찾아갈 테니
[시편시조] 시편 118, 주님은 나의 노래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4호)
주님은 나의 능력 날 살리신 나의 노래
사람들 버린 돌이 머릿돌 되었어라
주님이 구별하신 날 기뻐하자 이 날을
[시편노래] 시편 118, 주님께 감사하라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4호)
[본문] (시편 118:1-2, 14-24)
[노랫말]
1. 주님께 감사하라 인자하고 선하신 주, 외쳐라 이스라엘 주의 인자 영원하다,
주님은 나의 능력 주님은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시는 분 주님께 감사하라
2. 주님께 감사하라 그의 손 힘차시다, 그 오른손 높이 들 때 의인들이 승리한다,
나 끝까지 살아남아 주의 역사 선포하리, 그 은혜 크신 역사 주님께 감사하라
3. 주님께 감사하라 나의 생명 건지신 주, 엄한 벌 내리셔도 내 생명 지키신다,
열어라 구원의 문 의인들 들어간다, 주님의 문 사랑의 문 주님께 감사하라
4. 주님께 감사하라 내 가까이 계시는 분, 버린돌을 머릿돌로 귀하게 세우신다,
귀하고 기이한 일 주님께서 일하시니, 이 날을 기뻐하자 주님께 감사하자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18, 주님께 감사하라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18:1-2, 14-2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4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이스라엘아,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여라.
(뒷소리) [찬양대]
14. 주- -님 은-, 나- -의 능력, 나- 의- 노-, 래- -- --,
나- -- 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 -이 시-, 다- -- --∼
(앞소리) [독창]
15. 의- 인- 의-, 장막 에- 서-, 환호 하- 는-, 소- -- 리-,
승- -리 의-, 함- 성- 이-, 들- -- 린-, 다- -- --∼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6.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18.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뒷소리) [찬양대]
19. 구원 의문 들을, 열- -어 라-, 내가 그문 들로, 들- -어 가서,
주- -님 께-, 감- 사- 를-, 드- -리 겠-, 다- -- --∼
(앞소리) [독창]
20. 이- 것- 이-, 주- 님- 의-, 문- -- 이-, 다- -- --,
의- -인 들이, 그- 리- 로-, 들어 갈것 이-, 다- -- --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앞소리) [독창 또는 찬양대]
24. 이- 날- 은-, 주- 님- 이-, 구별 해- 주신, 날- -- --,
우리 모두 이날((에)), 기뻐 하- 고-, 즐- -거 워하, 자- -- --∼
(뒷소리) [다함께]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말씀동화] 보라의 어깨춤에 길고양이 사뿐거리고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어미 잃은 길고양이 새끼에게 젖 먹이던 시절 이야기예요.
한바탕 봄비가 그치자마자 아이들이 놀이터로 모여들고
교회언니 보라가 오른손 높이 들며 이렇게 외쳤어요.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시편118:15-16)
그러자 동환이랑 은선이가 콩자반처럼 동그란 눈으로 말했어요.
“우와! 잔 다르크다!”
“아니아니, 유관순 언니야 언니는!”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길고양이 가족도
보라만 나타나면 사뿐사뿐 곁을 맴돌며 사운댑니다.
하트 눈으로 길고양이를 바라보던 보라가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주님은 아름다운 춤꾼이셔!”
더 동그래진 콩자반들이 보라를 바라보며 갸웃거리자
보라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팔 하나만 올라가도 춤이다 우리 춤은! 할머니가 늘 그러셨지.”
보라네 할머니를 뵌 적 없어도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어느새 보라의 왼손이 다소곳이 올라갑니다.
드디어 보라의 두 어깨가 으쓱으쓱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벙글벙글 방글방글 아이들은 박수치고
박수장단에 점점 더 도드라지는 보라의 어깨춤은
아이들의 알록달록 시름도, 길고양이 새끼의 허기도 사분사분 닦아줍니다.
“오오! 보라는 비티에스야!”
“아니아니 블랙핑크, 블랙핑크라니까 언니는!”
아이들 옥신각신 하는 소리는 아랑곳없이
길고양이 새끼는 깡충깡충 맞춤을 추고
잠시도 어깨춤을 멈추지 않으며 보라가 말합니다.
“난 비티에스도 아니고 블랙핑크도 아니고, 바울 아저씨라네!”
예수님 사랑에 푹 빠진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 보라는
‘바울’을 한자로 쓴 거레요.
예수님 사랑에 푹 빠진 바울이랑, 그 못지않은 사랑꾼 요한이
그래서 보라는 오랜 친구처럼 정답습니다.
“너는 참말 예쁘다 새끼 다람쥐, 오물오물 밤까먹는 새끼 다람쥐
너는 참말 귀엽다 내 어린 강아지, 졸졸졸졸 따라오는 귀연 강아지∼”
[동요 ‘내 귀여운 것들’ 박재훈 작사 작곡]
드디어 보라가 애창곡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따라 부르는 아이들 박수장단에 보라의 어깨춤은 점점 더 으쓱거리고
깡충깡충 새끼 길고양이의 맞춤도 신바람이 납니다.
그때 동환이가 문득 길고양이 새끼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네.
“얘는 새끼 다람쥐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닌데?”
기다릴 겨를도 없이 은선이가 핀잔을 줍니다, 빛의 속도로!
“오빤 눈치도 운치도 없어, 하나님이 길고양이는 미워하신데?”
머쓱해진 동환이를 바라보는 보라의 눈매가 곱습니다.
은선이도 따라서 방실방실 환하게 웃고
이내 단단한 눈빛으로 보라는 또 하나의 애창곡
하나님의 사랑가를 읊조립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우겠으니, 네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너는 다시 너의 소구를 들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나오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서31:4)
하나님의 사랑가 따라 부르며
아이들 눈빛은 반짝반짝 춤을 추고
어느새 둥실 떠오른 일곱 빛깔 무지개 너머로
너울너울 하나님 사랑이 보라와 함께 어깨춤을 춥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4호 예배마당]
(*힘없는 동물들과 세상의 모든 약자들을 사랑하려 애쓰다 귀천하신 고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며)
[* 이 악보는 <박재훈 작곡 어린이 노래집> (대한기독교서회 2008) 71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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