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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사순절 6주(수난주일, 2023년 4월 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주십시오(시편 31:16)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50:4-9a)

4.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5.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그들이 모두 옷처럼 해어지고, 좀에게 먹힐 것이다.

 

(시편 31:9-16 )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빌립보서 2:5-11)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11-54)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총독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하고 말씀하셨다.

12.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 때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14. 예수께서 한 마디도, 단 한 가지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15. 명절 때마다 총독이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그런데 그 때에 [예수] 바라바라-고 하는 소문난 죄수가 있었다.

17. 무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

18.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세요.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

20.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구슬려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물었다.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그들이 말하였다. "바라바요."

22. 그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3. 빌라도가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사람들이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4.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26.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27.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를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가서, 온 부대를 다 그의 앞에 불러모았다.

28. 그리고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걸침 옷을 걸치게 한 다음에,

29.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의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말하면서 그를 희롱하였다.

30. 또 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서, 머리를 쳤다.

31. 이렇게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주홍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그를 끌고 나갔다.

32.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서,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33. 그들은 골고다 곧 '해골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34.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예수께 드려서 마시게 하였으나, 그는 그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서, 그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6.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37.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 이렇게 쓴 죄패를 붙였다.

38. 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렸다.

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여

40.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라지.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다."

44.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욕하였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보자"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51. 그런데 보아라,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53.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지금 저에게는 주님뿐이오니입니다.

 

구약,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이사야서 50:8)

시편,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시편 31:15)

서신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빌립보서 2:9)

복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27:46)

 

오늘 요절은,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주십시오입니다.(시편 31:1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50:4-9a, 시편 31:9-16)]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주님의 종의 순종입니다.

바빌론 포로 신세가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2이사야서 오늘 본문은,

고통 중인 <>를 통하여

환란 중에도 나를 알아주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든든하심을 보여줍니다.

 

<>는 고통 중에 있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려고 바빌론의 멸망을 선포하다가

바빌론 사람들(또한 자기 백성 일부)에게 박해받은 <예언자>로 보이는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여기 5-6절에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암시가 들어있다고 봅니다.(26:67, 27:30)

 

고난 중의 예언자가 아무 변명 없이 고난을 감수함을(6)

마치 자기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언자는 단호하게 그게 아니라고, 지금 하나님은 내편이시라고 단호하게 밝힙니다.

8-9절은 바울이 롬8:31-34절에서 인용합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안전한 주의 손 안에서입니다.

곤경 중에 더욱 주님을 신뢰하며 매달려 간구하고

마침내 감사로 이어지는 노래의 전체 243등분 중 가운데 토막에 해당하는 본문은,

재차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큰 죄인이라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겨서 사람들이 피할지라도(11),

그래서 하도 울어서 시력을 잃고(9), 근육과 뼈가 녹고(10), 깨진 그릇처럼 버려져도(12)

시인은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께 매달려 간구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확신으로!(15-16)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빌립보서 2:5-11, 마태복음 27:11-54)]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로마 식민지 가운데 중요한 도시로서

다양한 지역과 종교 배경을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빌립보에 있는 교회,

바울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 세운 빌립보교회를 위해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

그 중 오늘 본문은 잘 알려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 천상의 영광을 버리고 스스로 낮추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추고 또 낮추신 순종,

그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즉 하나님이 그를 천지간 모든 것 위로 지극히 높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노래는 예수님의 마음”(5)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그 마음을 본받아서 나를 낮추어서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4)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빌라도 앞에 서시다, 유죄선고와 조롱,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드러내는 증거가 반복되는 가운데서도(4,18,19) 빌라도는 유죄판결을 내리고(26)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과 모욕을 당하십니다.(29,30,39,41,43,44)

 

4복음서 병행본문들 가운데서 유난히 십자가에서 침묵하신 예수님의 유일한 말씀인 46절은

예수님이 평소 애송하시던 시편 가운데 22:1절이며

이 시편의 내용이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데(특히 18)

특기할 것은, 이 시편의 하반부인 21절 이하는 승리와 감사의 노래로서

주님의 부활승리를 예감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특히 29)

 

기나긴 오늘 본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 가운데 나온 악마의 유혹과 똑같은 문장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40,43 4:3,6)이 그것인데

예수님은 이에 잠시 침묵하시다가 시221(즉 시22편 전체)로 대답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참조)

 

 

[정리]

사순절 마지막 주일인 수난주일 본문들은

지금 나에게는 오직 주님밖에 없는 상황을 점점 선명하게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것이 어찌 사순절 끝 수난주간뿐이겠습니까.

지금 펼쳐지는 한국 상황, 세계정세, 불투명한 경제전망, 앞이 캄캄한 기후재앙...

지금 우리가 살 길은 챗GPT도 아니고, 내 인맥도, 내 지갑도, 내 주먹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왜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친절하게 번역까지 했을까요?(46)

히브리어를 모르는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그 내용(예수님의 고통을, 아니면 시22편의 결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예수님이 광야 40일 금식으로 가장 낮은 상태셨을 때 마각을 드러내며 유혹했던 악마가

그보다 더 낮은 상태, 상상초월 낮은 상태인 십자가 상태가 되셨을 때

결정적 한방, <최후의 유혹>을 한 것처럼 보이는, 그때 유혹자 역할을 한 인물들은(40)

그저 지나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39)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알고도 고소하고 판결했던, 권력욕에 눈먼 탐욕스런 사람들뿐 아니라

그저 내 당장의 바램과 일상이 눈을 가려, 사건의 내막, 진실에 무관심한 행인들조차

빌라도 뺨치는 이런 치욕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입니다.

 

그나저나 왜 마태복음 기자는

누가복음과(23:39-43) 달리 두 강도 모두 예수님을 욕했다고 했을까요?

읽는 내내 무슨 배신감 때문에 허무하고 또 허무합니다.

 

그만큼 그때 거기 십자가의 예수님은 아프고 외롭고 절박하셨으며,

지금 기나긴 터널과 같은 코로나의 꼬리 부분을 통과하면서

다큐영화나는 신이다를 통해 도매금으로 욕먹는

주님의 몸 교회는, 상처가 아물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리고 다음 고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대제사장과 빌라도, 그리고 그저 지나가던 사람들의 만행과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르거나 스치듯 지나쳤던 언행을 살피면서,

이제라도 내 안의 욕심 하나하나 비울 때입니다.(2:7) 그래서

지금 나에게는 오직 주님뿐이라는 사실을 깨치고 이렇게 간구할 때입니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시편 31:16)

 

 

 

[나머지]

* 한국교회의 길

코로나19 시대에 맞이하는 주님의 수난주일입니다. 호산나의 대상이셨던 구원의 주께서 순식간에 혐오와 모욕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밀집예배를 강행하는 일부 교회들 때문에 졸지에 모든 교회가 혐오의 대명사가 되었었죠. 예수그리스도의 도()와 정반대의 길인 이기심 때문일까요? 오랜 시간 예배를 공부해왔음에도 저에게는, 이럴 때 성찬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명답이 없습니다. 은혜의 떡과 잔조차 바이러스 공포에 먹혀버리는 이 상상초월의 지경에서 말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마태복음 4:3,6, 27:40,43) 악마의 이 조롱과 유혹이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과 백부장의 고백으로(50, 54) 산산조각 났다면 지금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소리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온 세상이 저 백부장처럼, 한국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고백하고도 남을, 그것은 무슨 외침일까요? 코로나19로 세상은 점점 <약함>에 대해 눈이 열리고 있습니다. 강한 줄 알았던 것이 얼마나 약한 것들이었는지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그리고 지금 정말 약하디 약한 작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그 가장 약한 상태에서 이루어내시는 예수님의 구원역사까지! 지금 교회는 십자가에 달릴 때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며 거기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를 비우고(빌립 2:7) 낮추어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8) 그러할 때 지금 한국교회가 당하는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라 주님의 몸다운 교회로 무르익을 거름이 되고 지금 흘리는 나의 눈물은 이슬과 단비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이사야서 50:7)

 

** 빌라도의 재판 / 민청학련 재판

내일 4월 3일, 제주4.3과 다음주일인 49일은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아주 치욕스럽고 슬픈 골고다의 날입니다. 48년 전, 197549일 새벽, 8명의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이름으로 사형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빌라도의 재판과 닮은꼴입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을 온갖 거짓말로 죄인 만들어서 재판정에 세우고, 재판 끝나자마자 바로 사형을 집행해버린 것이 닮았습니다.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지 18시간 만에 그냥 사형을 집행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유신체제 반대세력들에게 겁주기 위한 대표적인 조작사건이었습니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이 끔찍한 사건은 세월이 흘러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2002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하였고,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도 200512월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가혹행위와 인민혁명당구성 및 가입 등에 대한 조작 사실을 인정하였다. 마침내 2007123일 서울 중앙지법은 도예종 등 인혁당재건위사건희생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는 저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랜 세월, 오히려 역적의 피붙이, 빨갱이의 새끼라는 낙인으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저들의 눈과, 저들의 뼈가 어떠했겠습니까?(31:9-10) 예수님처럼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합니다. 부디 이 고난주간 복음서본문이 그 유족들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실 수 있기를 빕니다.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사형집행에 대한 평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사형이 집행된 19754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1995425MBC가 사법제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판사 315명이 <인혁당 사건 재판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함으로 이 사건이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법조인들도 인정했습니다. (위키백과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晩時自覺(만시자각)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버림받으신 예수님

 

이상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힘없이 잡히고 매 맞고

조롱받고도 말이 없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정말 버림받은 것일까?

 

....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

십자가가 저주받음이었음을

세상 위해 받는 심판이었음을

하늘의 버림받은 자리였음을

 

이상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시편시조] 시편 31, 뼈마저 녹아지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4)

뼈마저 녹아지고 시력조차 잃어버린

버려진 깨진 그릇 내 슬픔을 돌보소서

주님만 의지하오니 나를 구원 하소서

 

 

 

 

[시편노래] 시편 31, 이 고통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정훈 편사, 김광수 작곡-엄마야누나야가락. 성실문화114)

[본문] (시편 31:9-16)

[노랫말]

1. 이 고통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었나이다,

몸도 맘도 활력을 잃었나이다, 슬픔으로 온 힘이 빠졌나이다,

온 몸이 말라가고 뼈마저 녹아, 내 일생이 탄식 속에 흘러가오니,

주님의 환한 얼굴 날 비추소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날 구하소서

2. 대적들이 한결같이 비난합니다, 이웃들도 친구들도 혐오합니다,

끔찍한 흉물처럼 날 피합니다, 모든 사람 날 피하고 무시합니다,

깨진 그릇 내버리듯 버려지오니, 마치 내가 죽은 듯이 잊혀지오니,

주님의 환한 얼굴 날 비추소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날 구하소서

3. 떼를 지어 비난하고 협박합니다, 대적들이 날 죽이려 모여듭니다,

저 원수 저 손에서 날 건지소서, 나의 생명 주님 손에 달렸나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내 주 하나님, 나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오니,

주님의 환한 얼굴 날 비추소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날 구하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엄마야 누나야’(김광수 작곡) 가락에 얹었다.

 

[악보] 시편 31, 이 고통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정훈 편사, 엄마야 누나야 가락)

 

20230402 시편노래 31 이 고통을 긍휼히 여겨주소서.m4a
7.05MB

 

 

 

 

 

[시편송서(誦書)] 시편 31:9-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4)

(새야새야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

= 몸과== =음도==, =력을== 잃고 말았습니==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 사람들의== ==== =에서==,

(기억 속--==) 잊혀졌--==, 깨진 그릇과 같== 되었습--==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 뭐라고- -==, 나는 주님== (주님)만 의지하==,

=님이== 나의 하--==, (하나님)이라-== 말할 것입니-==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다함께]

16. =님의== 환한 얼--==, 주님의- -== 비추어 주십시==,

=님의== 한결같은 사랑으==, 나를 구원하-== 주십시오==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부르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하거나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굵은 글자를 회중이 송서로 부르고, 나머지를 찬양대 독창자가 자유로운 가락으로 읊조릴 수도 있다.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마지막 절은 다함께 송서로 부른다.

 

20230402 시편송서 31;9-16.m4a
6.38MB

 

 

 

 

 

[말씀동화] 깨진 그릇도 되살아나는 할머니의 화판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화전놀이 하려고 진달래꽃 따던 시절 이야기예요.

 

모도가 봄이다. ()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空氣(공기)까지도 봄 空氣(공기)이다

그 부들업고(부드럽고) 다사한 봄바람에 섯기어(섞이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방정환 시, <개벽 창간호>에 실린 소설 유범(流帆)]

어디서 배우셨지?

봄나물 다듬으며 부르는 엄마의 봄노래가 흥얼흥얼 구성집니다.

엄마는 노래를 참 좋아해요.

아마 우리 동네에서 가장 노래를 사랑하는 아줌마일거예요, 엄마는.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샛노란 꽃 생강나무꽃이

산수유꽃이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는 사이로

어깨동무하고 싶어 달랑달랑 골든벨을 울리며 개나리가 피어납니다.

 

노란 꽃잔치 사이사이에 발그레한 참꽃 진달래꽃이 한창인 봄날

아빠는 오늘도 이산저산 다니면서 홑잎 나물을 따오셨어요.

화살나무 새순이라고도 부르는 홑잎 나물을 한바구니 따와서

얼른 데쳐서 밥상에 올립니다.

 

홑잎 나물 맛을 아는 작은오빠가 냉큼 달려들어 초장에 듬뿍 찍어먹습니다.

 

할머니 먼저 드셔야지!”

 

내가 도끼눈을 뜨며 나무라자

오빠는 늘 그러듯이 방글방글 눈웃음치며 눙칩니다.

 

초장 맛으로 먹으면 재미없지. 봄나물은 그냥 먹는 게 더 맛있어.”

 

음식의 원래 맛을 추구하는 자연주의자 언니가 끼어듭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찔레순도 꺾어 먹고 고소한 뽕잎나물도 먹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산도들도 노래도 밥상도 세상은 온통 봄입니다.

모도가 봄이다∼♬

 

 

점심밥 먹자마자 큰오빠는 냉큼 컴퓨터 앞으로 달려갑니다.

요새 오빠가 한창 개발 중인 <어마어마 프로젝트> 때문이에요.

언젠가 교회학교에서 배운 요한계시록 말씀에 꽂히더니

그 안에 어마어마한 세계가 들어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우리 오빠는 지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관 게임을 개발 중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작은오빠가 큰오빠 방을 기웃거리며 한마디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세계관이 너무 커서 힘들 것 같은데?”

 

GPT 도움 받으면 가능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그리는 일로 골치 아팠는데

그걸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해결한다는 건가 봐요.

 

그러지 말고, 요한계시록 게임은 뒤에 하고, 좀 더 작은 걸로 몸 푸는 게 낫지 않을까?”

 

 

어제 가정예배 때 읽은 성경말씀이 작은오빠의 상상력을 자극했나 봐요.

지금 작은오빠 머릿속엔 지난주 복음서말씀과 이번주 복음서말씀이

어깨동무도 하고 강강술래도 하면서 신나게 어울리고 있을 겁니다.

 

지난주 예수님이 큰소리로 외치신 거 기억나? ‘나사로야 나오너라’!(11:43) 그런데 이번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시기 직전에 또 큰소리로 외치시잖아.(27:50) 그러자마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성도들이 막 살아나잖아(52), 나사로처럼!”

 

과연 우리 작은오빠 상상력의 끝은 어딜까요?

좀비물에 푹 빠진 작은오빠의 눈이 휘둥그레졌었죠.

지난주와 이번주 성경말씀 읽으면서요.

그래서 큰오빠를 꼬드겨 좀비물을 뛰어넘는 성경의 부활게임을 만들자는 거고요.

 

지난주 나사로랑 이번주 죽은 성도들이 되살아나는 거랑, 그리고 또 하나, 지난주 구약본문 에스겔 37장에 나온 마른 뼈다귀들이 되살아나는 장면도 그렇고, 성경 그 장면들은 좀비가 아니야. 몸도 마음도 되살아난 부활이지. 물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과는 달리 다시 죽을 몸들이지만!”

 

아빠가 정리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우리 삼남매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부창부수(夫唱婦隨) 우리 엄마는 또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십니다.

 

깨진 그릇 내버리듯 버려지오니, 마치 내가 죽은 듯이 잊혀지오니,

주님의 환한 얼굴 나를 비추소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날 구하소서

[시편노래 31 ‘이 고통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4, 엄마야누나야 가락으로]

 

 

엄마의 노랫가락에 따라 내 눈이 반짝거린 것은

샛별처럼 빛나는 할머니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죠.

밥 먹자마자 큰오빠가 후다닥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 사이에

늘 그러듯이 할머니는 조용조용 작업실로 들어가셨죠.

 

오빠들처럼 어마어마 휘황찬란한 세계관은 아니어도

할머니의 화판에는 알록달록 수를 놓듯

말씀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할머니의 화판은

유화도 수채화도 아닌 바로

깨진 그릇조각들로 가득합니다.

 

언젠가 시편 31:12절의 깨진 그릇이 할머니의 마음에 들어왔고

세월 따라 시나브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갈수록

할머니는 눈에 띄는 대로 깨진 그릇 조각을 모으셨죠.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을 가진 크고 작은 깨진 그릇 조각들로

모자이크 만들듯 파타일 공법으로 그림을 만드는 거예요.

물론 종이가 아니라 얇은 나무판에 깨진 그릇 조각들을 붙여서!

 

늘 북에 두고 온 고향의 뒷동산을 그리워하는 우리 할머니 작품에는

깨진 그릇처럼 갈라진 나라도, 갈라진 마음들도 하나가 되고

돌무덤 같은 깜깜세상도 밝디 밝은 생명의 빛 가득합니다.

 

오늘도 할머니의 화판에는 알록달록 말씀그림이 피어나고

오빠의 컴퓨터에서 휘황찬란 말씀게임이 만들어집니다.

모도가 봄이다

!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순이 나고 꽃이 피는 봄입니다.

 

[이정훈 지음. 202341일 토요일 아침]

(독립운동가 방정환 선생님의 시 모도가 봄이다노래는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