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사도행전 9:15)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9:1-6 (7-20))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20.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시편 30)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
2.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요한계시록 5:11-14)
11. 나는 또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수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1-19)
1.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주님께서 나를 고쳐서 쓰시다’입니다.
사도행전,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사도행전 9:18)
시편, “주님께서 나를 고쳐주셨습니다”(시편 30:2)
서신서,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요한계시록 5:13)
복음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21:19)
오늘 요절은,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입니다.(사도행전 9:15)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9:1-6(7-20) / 시편 30)]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사울의 회개’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인 줄 착각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맹렬히 방해하던 사울이
또 한 차례 그 악행을 저지르러 가는 도중에
부활예수님을 환한 빛 가운데서 음성으로 만납니다.
눈이 멀게 된 사울이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 받고 다시 눈이 열려
세례 받고 180도 변화하여 예수제자, 부활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환한 빛을 보고 눈이 어두워진 것은
지금껏 진리를 잘못 보고 진리와 정반대 길을 걸었던 것에서 돌이키는 과정으로서,
성령의 도움으로 눈이 열려 비로소 진리를 제대로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박해하던 자가 오히려 진리를 위해 박해받는 자로 변화합니다.(16)
주님께서 깨진 그릇을 고쳐 쓰시는 과정이 매우 놀랍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감사기도’입니다.
죽을병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 시가 나중에
더럽혀졌던 성전을 다시 회복시킨(BC.165년) 것을 기념하는
수전절(성전봉헌절) 찬양시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게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고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성전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만큼 죽을병 걸린 몸을 고쳐서
다시 찬양하고 진리를 전할 수 있게(9) 하나님께서 고쳐 쓰시니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깨끗하게 고쳐진 하나님의 그릇은
마냥 기뻐(5,11) 찬양할 뿐입니다.(1,4,12))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5:11-14 / 요한복음 21:1-19)]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두루마리와 어린양’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계획이 담겨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어린양예수께서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건네받으십니다.
그러자 네 생물과 24장로가 새 노래를 부르고,(계5:9-10)
뒤이어 오늘 본문에서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어린양예수님을 찬양하고,
연이어서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의 이유가 담긴 서곡에 해당하는 첫 찬양은(9-10)
어린양예수께서 보혈로 우리를 사서(고치셔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땅을 다스리게 하심을 노래합니다.(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내 양떼를 먹이라’입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끝장에 이은 부록에 해당합니다.
(드라마 끝의 ‘에필로그’ 영상, 또는 영화 끝나고 잠깐 보여주는 ‘쿠키영상’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비중이 큰 주제가 담긴 본문입니다.)
계시록1:11절의 ‘7교회’처럼 교회 전체의 대표로 느껴지는 ‘7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처음 만나셨을 때가 떠오르는 상황에서(누가5:1-11)
오늘도 그날처럼 밤새 고기를 못 잡은 제자들이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이처럼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제 일을 완수하고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새벽성찬으로 초청하십니다.
먹이신 뒤 시몬에게 세 차례 사랑을 확인하시고, 또 파송하시는 장면은
13:37절과 38절을 연이어 기억나게 하여 자기 상처를 직면하게 하심으로
시몬을 고쳐서 쓰시려는 주님의 뜻이 느껴집니다.
부활예수님께서, 세상 일터에서 밤새 고생한 제자들을
부르시고, 먹이시고, 고치시고(치유하시고), 파송하시는(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장면은
고스란히 기독교예배의 뼈대가 됩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안 변한다, 그러니 연장처럼 고쳐 쓰려하지 말고 그냥 버려라.
둘째, 사람은 개성이 있다, 그러니 개성을 고치려하지 말고 그 개성에 맞게 써라.
보통은 첫째 의미로 이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주님께는 이 두 가지가 다 통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주님께서 쓰시려고 지은 주님의 도구, 주님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 그릇에 사랑을 담고 은혜를 담고 말씀을 담으십니다.
각 그릇의 개성에 따라 담으실 뿐 아니라
원하시면, 고쳐서도 담으십니다.
부활절 3주 성서일과 본문들은 내용들이 매우 강렬합니다.
시편의 찬양과 계시록의 찬양이 우렁차고
사도행전과 복음서의 주인공들의 심장이 강렬하게 뛰고 있습니다.
얼핏, <예수님 뒤끝 작렬!>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주님 앞에서 사울과 시몬의 가슴이 마구 쿵쾅거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9:5) 하실 때 사울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차례 반복하실 때 시몬은 얼마나 송구했을까요?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왜 지금은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복음 13:37-38)
지난 주 복음서본문에서, 문이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음을 주시고 생명을 주신 주님께서
이번 주는 그릇을 가리지 않고 고쳐서 쓰십니다.
사울도 시몬도 모두 주님께서 택하신 주님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행9:15)
그 길이 비록 험난할지라도(행9:16, 요21:19)
사울과 시몬이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간 것처럼,
예수님께서 택하신 또 하나의 그릇인 우리 또한
지금 비뚤어진 눈 고쳐지고 주님과 함께 험난한 길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 오늘 본문 가운데 짝을 이루는 구절들
먼저 ‘부르심’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행전 9:4)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7) 이어서 ‘급식(給食)’입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행전 9:19)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내 양떼를 먹여라”(요한 21:15-17) 그리고 ‘고난함께’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행전 9:16)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요한 21:19)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급식’의 길, ‘고난 함께’입니다. 그 길 가라고, 부활예수님께서 오늘도 제 길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 오늘 시 30편은 수전절 찬양시
주전 165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지고 파괴된 성전을 정결하게 재건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광명절, 성전봉헌절)입니다. 오늘 시 30편은 이 수전절에 부르는 시편찬양입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수전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수전절은 성경전서 중에 요한복음 10장에 딱 한 번 나오는 절기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로마군에게, 유대인들에게 모욕당하시고, 그렇게 온몸이 허물어지고 다시 부활하신,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수전절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바로 이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 성전 솔로몬 행각을 거니신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그 때 무슨 묵상을 하셨을지 묵상합니다. (마침 다음 주일-부활절 4주 본문이네요!)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서의 부활 예수님과 베드로의 새벽 대화에 나오는 “사랑”의 희랍어 단어가 아가페와 필리아로 구분되는 것에 대해, 구별된 의미로 보는 입장과, 차이 없이 썼던 당시 문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묵상에서는,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시는 대목과, “내 양떼를 먹여라”고 하시는 말씀,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아가페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가페는 당신의 몸을 먹이로 주신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양떼를 먹이라는 말씀이 아니실까 생각하며 묵상했습니다.
**** 큰 고기 153마리를 잡게 하신 것은
오늘 사도행전과 복음서본문의 공통점은 회복인데, ‘부활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회복, 사울과 시몬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그 회복의 길은 시원하게 달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고난의 길입니다. 부활예수를 만난 사람은 인생길이 회복됩니다. 물질중심의 세상길에서 돌이켜 진리의 길, 십자가의 길로 회복됩니다. 죽음권세 깨뜨리신 부활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활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을 따라 부활의 증인이 되어갑니다. 오늘 베드로는 부활예수님을 만나 큰 고기 153마리를 잡으면서 나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던 기억을 회복합니다.(누가 5:1-11)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내 밥, 내 권력, 내 명예를 채우는 군침 도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 몸을 먹여야 할 책임을 지는 참으로 무거운 길입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15-17) “나를 따르라!”(19) 당신의 몸을 아낌없이 바치신 십자가의 길 말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 권세 무너뜨리신 부활의 길 말입니다.
***** 기억에 대하여
①새벽 바다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와 진행과정은 딱 누가복음 5장을 연상시킵니다. 밤새 허탕만 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던,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잔뜩 잡았던, 이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마지막 만난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잔뜩 잡으면서 예수님과의 그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②예수님과 처음 만난 그 날 “나를 따라오너라...”(막 1:17) 그 음성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마지막 만난 오늘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요 21:19) 그런데 나를 따르라시는 말씀의 느낌, 그 무게는 그때와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③12절에,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생전 주님과 마지막 나누었던, 며칠 전 그 밥상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내 양을 먹여라” 하시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께서 스스로 몸을 쪼개 주셨듯이 베드로는 양떼를 먹이기 위해, 주님의 몸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던져야 하는 목자의 심정을 실천하게 됩니다. 19절 말씀들이, 특히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④17절에서 베드로는, 새벽바닷가에서 3번 연거푸 질문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몹시 불안합니다. 그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3연속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어쩌면 그 새벽, 첫 닭 울음과 함께 울었던 그 통곡이 기억났을지도 모릅니다.
****** ‘모도가 봄이다’
서울에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모도가 봄이다’라는 행사를 2019년 5월 5일 주일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때 먼 거리를 달려 그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왜냐하면 ‘모도가 봄이다’는 방정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방정환이 1920년, 22세 나이에 「개벽」 창간호에 실은 소설 ‘유범(流帆)’에 나오는 시가 바로 ‘모도가 봄이다’입니다. <모도가 봄이다. 山(산)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空氣(공기)까지도 봄 空氣(공기)이다 그 부들업고 다사한 봄바람에 섯기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그런데 일제는 개벽 가운데 이 소설, 이 소설 가운데서 이 시 ‘모도가 봄이다’를 콕 짚어 까만 먹물로 지워버렸습니다. 그 부드러운 노래가 그만큼 강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빛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덮는다고 덮어집니까?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은! 드디어 삼일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드러난 이 빛나는 ‘모도가 봄이다’에 누가 곡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들은 그 노래가 하도 좋아서 그 행사 전시장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것입니다. 그 현장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어른들의 저 어두운 온갖 탐욕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빛나고 맛있는 노래를 먹여주고 싶습니다. 이 노래를 지어준 방정환과 그림(the林)연주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냅니다.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는(요한 21:15) 예수님 명을 따라야 할 교회의 일을, 바로 이 분들이 하셨습니다.(이 노래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작은 물결’ 방정환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니 베드로가 변하고 사울도 변합니다. 베드로의 변화과정이 눈물 겹고, 사울의 변화과정이 가슴 벅찹니다. 큰 고기떼를 잡은 뒤에(6) 베드로는 예수님 첫 만남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누가 5:10)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로 물으시고 바로 명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15) 우리는 베드로가 뒤에 이런 제자로 변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그런 바울로 변화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그 어린양떼로서 말씀을 받아먹으며 어린양 예수님의 몸, 교회로 자라난 우리가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어린양 가신 길을 따르고 있는지...(요 21:19) 며칠 뒤면 어린이 날입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는 예수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소파(小波) 방정환은 천도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서른 셋 짧은 나이를 살면서도 누구 못지않게 마음껏 어린이를 사랑하였고 식민지 시대 굶주린 어린이들을 먹이기 위해 수많은 글을 짓고 책을 만든 사람입니다.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잔잔히 퍼지고 있는 잔물결 소파(小波)의 정신과 작품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명을 기억하여,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 땅의 어린양떼 같은 어린이들을 먹이는 일에 방정환처럼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디베랴 일기 (서무석 지음. 「성실문화」 110호)
디베랴 바다로 여럿이 함께 고기 잡으러 갔는데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동틀 무렵 바닷가에 서 있던 어떤 사람이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란다
왼쪽에서 안 잡힌 고기가 오른쪽 편에서 잡힌다고?
바로 그때 불쑥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게네사렛 물가에서도 딱 이랬지
물고기를 밤새 못 잡은 그날 깊은 데로 가서 그물 던지라던 분
딱 그때처럼 그물은 꽉 차고
그때처럼 우린 허둥지둥 그분을 따라갔다
디베랴 물가에서 새벽밥 지어 먹여주시고
물으셨다
“날 사랑하느냐”
게네사렛 물가에서는 사람을 낚을 것이라고 하신 분이
오늘은 양떼를 먹이라신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말씀시조] 수천수만 천사들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0호)
수천수만 천사들이 큰소리로 외치누나
죽임당한 어린양께 모든 것 바치누나
만물도 외치는구나 어린양께 찬양을
[시편노래] 시편 30, 수렁에서 날 건지신 나의 하나님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0호)
[본문] (시편 30)
[노랫말]
1. 수렁에서 날 건지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 우러러 찬양합니다
내 원수가 날 비웃지 못하게 하신, 내 주님을 우러러 찬양합니다
2. 스올에서 날 건지신 나의 하나님, 무덤에서 일으키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소리높여 울부짖을 때, 주님께서 고쳐주심 찬양합니다
3. 주를 믿는 성도들아 찬양하여라, 거룩하신 주의 이름 찬양하여라
주의 은총 영원하고 진노는 짧아, 밤새 울다 새벽이면 기쁨이 솟네
4. 태산처럼 든든하게 날 지키시던, 주님께서 외면하니 두렵습니다
죽은 몸이 어찌 주를 찬양하리까, 오 주여 자비를 베푸옵소서
5. 나의 통곡 나의 상복 벗기신 주님, 기쁨의 춤 날개옷을 입히신 주님
내 영혼이 잠잠하랴 주 찬양하리, 영원토록 나 주님께 감사드리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30 (수렁에서 날 건지신 나의 하나님)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3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다함께]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말씀동화] 쪼개진 맷돌과 금간 항아리를 어루만지는 봄바람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따사한 봄기운에 취해 아지랑이랑 춤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시골 예배당 뒤꼍에서 누군가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쪼개진 맷돌 아래짝이 노래하나 봐요.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시편 30:2-3)
맞은편에 서 있는 금간 항아리가 중얼거렸어요.
“맷돌 주제에 스올이라니? 무덤은 또 뭐고? 맷돌한테 무덤이 어딨어?”
맷돌이 퉁명스레 대답합니다.
“예배당 지킴이의 ‘들은풍월’을 뭘로 보고! 언니는 시편노래 처음 들어요?”
5월의 첫날 쪼개진 맷돌과 금간 항아리가 주고받는 소리를
얼마 전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들이 내려다봅니다.
어느새 온산이 녹두빛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맷돌 아래짝이 쪼개진 건 처음 본다며
내다버리라는 엄마말씀에
바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갈라진 맷돌을 수레에 싣고 끙끙거리며 예배당 뒤꼍으로 나른 겁니다.
언젠가 비오는 날 물웅덩이가 생기는 바람에
바우 양말이 온통 젖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맷돌은 안성맞춤 디딤돌이 되었고요.
시어머니 때부터 물려 쓰던 된장항아리가 처음 금이 갔을 때
엄마가 얼른 된장을 비우고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에
금간 자리에 피마자 씨앗을 문대어 다시 썼는데
어느덧 금이 더 커지는 바람에 얼른 예배당으로 가져온 것도 바우입니다.
바우는 전도사님이랑 힘을 합하여
금간 항아리에게 철사로 단단히 허리띠를 매주었습니다.
그리고 항아리는 깨끗이 목욕한 뒤에
배고픈 이들을 위한 사랑의 쌀 항아리로 변신한 거고요.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사도행전9:15)
바우가 쪼개진 맷돌과 금간 항아리를 예배당으로 가져온 것은
바로 이 말씀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전도사님은 바우에게 바울이 눈 어두워졌던 이야기,
망가진 눈을 고치셔서 큰 그릇으로 쓰신 예수님이야기를 들려주셨죠.
두 눈이 멀었다가 눈을 뜬 바울, 사울이라 불리던 바울은
영의 눈까지 열려 부활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이라는!(사도행전9장)
쪼개진 맷돌도, 금간 항아리도 고쳐 쓰게 하신 것처럼
바우도 바울처럼 주님의 소중한 그릇이라는 전도사님 말씀에
바우의 얼굴이 철쭉처럼 발그레해지고
바우의 마음에 봄기운이 무르익습니다.
“벌써 5월이네. 5월엔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느냐?”
바우가 늠름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5월엔 역시 어린이날이죠. 그리고 어린이날 만드신 방정환 선생님도!”
전도사님 눈빛이 샛별처럼 반짝이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삼일만세운동의 주역이신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였고
어린 시절부터 소년모임, 청년모임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 방정환 선생님!
진정한 광복, 인류의 참 광복(光復)을 위한 숨은 진주와 같은 어린이를 발견하고서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고, 동화를 짓고, 번안하고, 연극도 만들고,
마침내 어린이날을 만드신 방정환 선생님!
“일제강점기 때문에 이리저리 금가고 쪼개진 우리나라도,
저 맷돌처럼, 항아리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주님께서 고쳐주실 거야.
고쳐서 귀하게 써주실 거야.”
말씀을 마친 전도사님의 눈이 다시 샛별처럼 반짝이더니
스마트폰 유튜브에서 참 좋은 노래 하나를 들려주십니다.
바로 방정환 선생님이 지은 시에
박우진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모도가(모두가) 봄이다. 山(산)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空氣(공기)까지도 봄 空氣(공기)이다 그 부들업고(부드럽고) 다사한(따사한) 봄바람에 섯기어(섞이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방정환 지음. ‘모도가 봄이다’.「개벽」 창간호에 실은 소설 ‘유범(流帆)’에 나오는 시]
가장 부드럽고 평화로운 봄노래를 따라 따사한 바람이
5월의 첫 바람이 붑니다.
쪼개진 맷돌도 금간 항아리도 달콤한 봄바람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며칠 뒤 어린이날이면, 어린이의 벗 꾀꼬리도 날아와 노래할 겁니다.
[이정훈 지음.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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