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에베소서 5:17)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상 2:10-12, 3:3-14) 다윗이 죽다
10 다윗은 죽어서, 그의 조상과 함께 ‘다윗 성’에 안장되었다.
11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를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12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그 왕국을 아주 튼튼하게 세웠다.
(솔로몬이 지혜를 간구하다)
3:3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4 기브온에 제일 유명한 산당이 있었으므로, 왕은 늘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그 때까지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은, 천 마리가 넘을 것이다. 한 번은, 왕이 그리로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
5 그 날 밤에 기브온에서,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하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요 나의 아버지인 다윗이, 진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 큰 은혜로 그를 지켜 주셔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그 보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나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8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9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10 주님께서는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마음에 드셨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스스로를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 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12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13 나는 또한, 네가 달라고 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너에게 주겠다. 네 일생 동안, 왕 가운데서 너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14 그리고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네가 나의 길을 걸으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오래 살도록 해주겠다.”
(시편 111)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여라
1 할렐루야. 내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는구나.
3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
4 그 하신 기이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
5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먹거리를 주시고, 당신이 맺으신 언약은 영원토록 기억하신다.
6 당신의 백성에게 하신 일, 곧 뭇 민족의 유산을 그들에게 주신 일로 당신의 능력을 알리셨다.
7 손수 하신 일들은 진실하고 공의로우며, 주님이 지시하신 법은 모두 든든하며,
8 영원토록 흔들리는 일이 없으니,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9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두렵다.
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으니,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일이다.
(에베소서 5:15-20) 빛의 자녀의 생활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16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20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요한복음 6:51-58) ...예수는 생명의 빵이시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52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서로 논란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5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옳은 길, 생명의 길’입니다.
구약,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열왕기상 3:11)
시편, “손수하신 일들은 진실하고 공의로우며”(시편 111:7)
서신서,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에베소서 5:15)
복음서,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한복음 6:51)
오늘 요절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입니다.(에베소서 5:1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상 2:10-12, 3:3-14, 시편 111)]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이 죽다, 솔로몬이 지혜를 간구하다’입니다.
솔로몬은, 태어날 때부터 <주님의 사랑 받는 자>답게(삼하 12:24-25),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켰습니다.
멜기세덱에서(창14:18-20)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제사장 임금>의 중간 징검다리 다윗처럼(삼하6:17-18, 시110:4)
솔로몬은 하나님께 많은 번제를 드리고 꿈에 하나님을 뵙는데
이때 그는 하나님께 백성을 위한 지혜, 즉 재판에 필요한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태도를 좋게 보십니다.(10)
하나님 마음과 통한 것입니다.
즉,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라고, 이미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입니다.(11)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여라’입니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순으로 지은 (10절) 22행 노래입니다.
시인은 과거 출애굽과 가나안 생활 중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이 기억들은 유월절과 같은 명절에 반복해서 기억함으로써 현재화됩니다.(4)
특히 <진실과 정직>이 반복되는데(1, 7, 8),
이는 (솔로몬처럼) 주님을 경외할 때에 비로소 온전히 얻을 수 있을 지혜(10),
즉 의로운 인생의 기초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5:15-20, 요한복음 6:51-5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빛의 자녀의 생활’입니다.
악마가 극성을 부리는 종말의 때, 이 거짓투성이 시대에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15)
늘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17) 진실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불편하고 불리(不利)한 길일지라도,
그 길 끝에 생명이 있으니
우리는 그 길에서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2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는 생명의 빵이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생명의 빵(35)(살아있는 빵, 51)이라 하심은
그 목숨 우리에게 내어주실 십자가의 도를 전제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본문은 구구절절 살과 피의 생생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먹는다는 희랍어 표현들 하나하나가 특히 그러합니다.(‘phago’와 ‘trogo’ 비교)
이는 오늘 우리의 관념화되어가는 추상적 신앙을 경계하고 깨뜨립니다.
(가현설의 주장처럼) 십자가 수난이 관념일 뿐인 것이 아니듯이,
구원의 표시이며 수단인 성찬은
우리 신앙생활의 추상화를 막고 내 십자가의 길을 열어줍니다.
어둠의 세력, 거짓말 세력이 점점 득세하는 이 마지막 때에
진실의 빛 찬란한 빛의 자녀로 치열하게 살아갈
내 십자가의 길을 환히 열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공동주제인 ‘옳은 길, 생명의 길’을
한 글자로 ‘빛’이라 요약해봅니다.
오늘이 광복절(光復節)이어서인지
<빛의 자녀의 생활>이라는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이 눈에 환합니다.(엡5:8)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무엇이 옳은지”(11)
<진실>을 아는 지혜입니다.
오늘 시편은 반복해서 <진실>을 노래합니다.(7,8)
오늘 서신서의 <악한 때>란(16) 거짓이 판치는 시대요,
어리석은 자(17), 술 취한 자는(18) 거짓에 휘둘리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빛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의 길, 진실의 길을 가야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강조하며 선물하시는 진실은
진실의 시작과 끝,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의 성찬입니다.
옛 뱀 악마의 거짓말로 시작한 죽음의 사슬을 끊고
다시 참 생명을 살 수 있는 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 생생한 기운이 담긴 성찬!
그래서 가장 진실한 밥상이요 진실해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성찬입니다.
성찬의 도(道)는 이것입니다.
주님의 몸을 먹음으로 주님의 몸 교회가 되고, 나가서 주님의 몸으로 살기!
주님의 몸으로 산다는 것은
친구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을 사랑, 진실, 공평과 정의를 사는 것입니다.
76회 광복절을 맞이하며 진정한 광복(光復)은 남북평화통일임을 되새기면서
평화통일의 길에 저 무수한 걸림돌, 거짓의 힘, 어둠의 세력들을 직시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빛으로 오신 주님처럼 살 때입니다.
성찬의 도를 따를 때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요6:57, 새번역)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6:57, 공동번역)
주님의 힘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그것은 바로 빛이요 생명이요,
그리고 참 지혜인 <진실의 힘>입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며 묻어두고 사는 내가 또다시 부끄러워지는 광복절입니다.
사리사욕을 위한 친일과 동족상잔의 저 <아벨의 피>는
결코 묻어둘 수 없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창4:10)
부끄럽고 또 고마운 광복절(光復節)을 맞으며
오늘 한국교회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살고 있는지(엡5:17)
과연 제대로 “빛의 자녀”로 살고 있는지(엡5:8)
진실의 거울에 비춰봅니다.
[나머지]
*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엡5:8)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마5:14)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1:12-13)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벧전2:9)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롬13:12)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살전5:5)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12:36)
** 오늘 예수님의 표현이 점점 강렬해 지신 까닭은?
지난 7월 마지막 주일 오병이어 사건 때부터 4주째 이어지는 예수님의 <빵의 노래> 분위기가 오늘부터 갑자기 바뀐다. 고소한 빵 냄새 나는 파티셰에서 갑자기 피비린내 진동하는 푸줏간 칼잡이로 변신하신 것만 같다. 왜일까? 지지난 주 ‘만나’를 들먹이는 유대인들에게, 먹고도 죽은 만나와는 다른 ‘생명의 빵(bread of life)’이 바로 당신이심을 드러내시고, 이어서 지난 주 본문에서는 ‘살아있는 빵’(living bread)이라고 표현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이셨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 그 ‘살아있는 빵’이 바로 ‘당신의 살’이라고 하셨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요6:51, 이 구절은 지난주 끝구절임에도 중복해서 오늘 첫 구절이 된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그 수위를 더 높이신 것이다. ‘살과 피’라고 표현하시며(53), 먹는다는 표현도 앞에서는 일반적으로 먹는다는 뜻을 가진 희랍어 ‘phago’라는 단어를 쓰시다가(51,53) 갑자기 오늘 본문에서는 ‘trogo’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연거푸 쓰신다.(54,56) 이것은 ‘잘근 잘근 씹어 먹는다’, 혹은 동물처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왜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이 점점 강렬해지시는 것일까? 문득 예수님의 ‘trogo’와 거리가 먼 오늘 우리의 성찬문화가 당황스러운 한편 새로운 길 더 생생한 성찬의 길이 궁금해진다.
*** 성찬의 도(道), 침잠완색(沈潛玩索)하듯이
예전 선비들의 공부 방법 가운데 침잠완색(沈潛玩索)이라는 말이 있다. 뜻을 잘 몰라도 푹 잠겨 놀 듯이 길을 찾는 일이다. 얼른 이해가 안가도 계속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문리(文理)가 나고, 급기야 활연관통(豁然貫通)하듯 경전의 뜻이 환하게 통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의 원리, 성찬의 원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비록 이해가 가지 않아도 감동이 없어도, 주님의 몸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먹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한 뼘이나 자라있고 내 영이 주님의 영과 직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억지로 먹기 싫은 밥과 콩, 김치를 먹던 아이가 그 밥 덕분에 부쩍 자라고, 자라면서 식욕도 왕성해져서 시키지 않아도 밥을 찾아 먹게 되고, 돌도 씹어 먹을 지경까지 자라게 되듯이! 많은 제자들이 어렵다고 포기하고 떠났지만, 남은 자들은 마침내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의 살을 먹었다. 그것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도 지금 성찬을 먹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 주님의 살을 먹다보면, 어느 순간 내의 영이 주님의 영과 직통하여, 예수님처럼, 내 몸을 남을 위해 기꺼이 먹인 이태석 신부나 손양원목사와 같은 신앙의 경지에까지 자라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 걱정할 것 없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하실 것이니까. 그분의 일이니까. 나는 도구일 뿐이니까. 도구가 무슨 걱정을 다 하나.
**** 꿈을 비는 마음
오늘 구약본문은 솔로몬의 꿈 이야기다. 꿈에서 하나님 만나 신비로운 대화를 한다. 네 소원을 말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솔로몬은 참 꿈같은 청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 지혜로운 청이었다. 요새 웬만한 대통령이나 법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지혜! “듣는 마음”(왕상 3:9)을 구하고 얻게 된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은 또 어떤가? 참으로 꿈[夢]같은 말씀 아닌가? 적어도 그 말씀 듣고 있던 무리들에게는 아마 개꿈처럼 비쳤을 것이다. 그저 저들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라고 할까? 저들에게 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예전에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늘 이런 말을 했다. <학생 때는 내 안에 묻어둔 모든 것을 파헤쳐 의심해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조차 의심해라. 모든 익숙한 교회전통과 예배순서조차 의심해라. 상상력 없이는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온 마음을 다해 성경을 읽으며 지금 여기서 천국을 꿈꾸어라!>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밀정이 이런 식의 말을 한다. “해방이 안 올 줄 알았지! 해방이 올 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 친일파로 꼽히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도 시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무슨 소설가가 저렇게 상상력이 없을까? 무슨 시인이 저렇게 꿈이 없을까?’ 정말 광복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걸까? 무엇이 저들의 꿈을 말려버린 걸까?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과연 저들과 달리 상상력이 있을까? 세상이 뒤바뀌어 광복이 되리라는, 진정한 광복, 평화통일이 되리라는 꿈이, 확신이 한 조각이라도 있을까? 구약학자이며 목사요 통일일꾼이었던 문익환 목사님의 시 ‘꿈을 비는 마음’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전율했다. 문익환 목사님은 ‘꿈을 비는 마음’에서 참 어처구니없는 꿈같은 소리를 한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나라 법조인들에게 양심과 진실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참 어처구니없는 꿈이다. 광복 76주년을 맞으면서 이 개꿈 같은 시를 다시 읊어본다.
꿈을 비는 마음 (문익환)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 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 그렇지, 거기는 박달나무가 있어야지 - /그 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자리 /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한 문형순 서장 (왕상 3:11)
코로나19보다 훨씬 심각한 광풍이었던 제주 4.3. 전염병보다 무서운 빨갱이타령으로 수만 명의 양민이 학살당했다. 친일파를 비롯한 기독교의 대표적인 반공집단이었던 서북청년단들에 의해서, 무능하고 불의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아이와 노인들까지 학살당했다. 1947년 광복 직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사건이 도화선이 되어서 이듬해 1948년 4월 3일 일어난 봉기로 학살을 당하기 시작하여, 1950년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며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보이는 주민들을 집단학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뭍에서 들이닥친 군대가, 좌익사상 때문에 산으로 숨어든 사람들의 남은 가족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살이 두려워 그냥 산으로 도망친 사람들의 가족들까지 닥치는 대로 좌익으로 몰아 학살했던 것이다. 어린 아기들까지! 그런 짐승 같은 살해를 하면서 남은 동네 사람들에게 강제로 구경시키고 박수를 치게 하였다. 이런 짐승 같은 일은 일제 강점기에도 못 보던 일이다.
그렇게 억울하게 힘없는 제주도민 수만 명이 죽어갈 때, 그 억울한 죽음을 단호하게 막았던 의인이 있었다. 그가 바로 문형순이다. 당시 50대 장년이었던 성산포 경찰서장 문형순은, 해병대 간부가 명령한 주민 체포, 체포된 300명 가까운 사람들을 전원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던 것이다. 문형순은 해병대 장교의 그 명령서에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 일곱 글자를 써서 돌려보낸다. 그리고 부하 경찰관들에게 주민들을 수사할 때 절대 때리거나 거칠게 대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붙들려왔던 이들 대부분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은 물론이다. 그 당시 증언에 따르면 그 어떤 제주 경찰관들도 군인의 명령에 불복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형순 서장은 일찍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독립운동가로서, 광복군에서 활약한 이력이 말해주듯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웠던 광복군으로서, 아무 죄 없는 양민을 해친다는 것, 내 피 같은 동포를 해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4.3의 원한은 60년이 넘도록 제주 사람들을 갈라지게 만들었다. 4.3 유족회와 제주 경찰관 출신들 모임인 경우회가 그 오랜 원한을 딛고 넘어 화해와 상생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문형순 같은 의로운 경찰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제주도 사람들은 아이들이 4.3에 대해 질문조차 못하게 하였다. 어느 집이건 거의 희생자가 한 사람 이상 있었던 제주도 사람들에게 “4.3”은 견딜 수 없는 트라우마였고, “4.3”이라는 단어는 독재정권에서 또 어떤 피해를 당할지 모를 지뢰와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누구도 4.3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너도나도 쉬쉬하였다. 희생자들의 인권회복은커녕 그 기억조차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제주에서 해마다 이맘때면 4.3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노래하던 이들이 바로 제주 무당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마치 역사노래를 부르듯이 4.3 이야기 노래를 부를 때 마을 사람들은 오열하며 그렇게 상처를 달랬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남은 유족들(좌익과 우익의 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저들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묻힌 역사 잊힌 역사를 바로 세우도록, 4.3 광풍의 주역이었던 교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광복(光復)의 첫걸음이다.
[말씀동시] 만나 같은 예수님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07호)
하늘에서 내려와
금방 사라지지만
집어먹은 사람의
피와 살이 되어서
굶주렸던 사람들
죽음에서 구하네
[말씀시조] 지혜로운 사람답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7호)
지혜로운 사람답게 세월을 아끼시라
술 취한 자 돌이켜서 성령 충만 받으시라
시편과 온갖 찬미로 하나님을 노래해
[말씀서예] 에베소서 5:1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7호)
[시편노래] 시편 111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여라(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07호)
[본문] (시편 111)
[노랫말]
1.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온 맘 다해 주님께 감사드려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 위대하시니, 명심하고 명심하며 기뻐하여라
2. 장엄하고 정의롭고 영광스런 일, 그 기적을 우리 맘에 새겨주셨다
경외하는 자들에게 밥을 주시고, 그 언약을 주님 맘에 새겨두셨다
3. 진실하고 공의롭고 든든하신 일, 당신의 백성에게 땅을 주신 일
뭇 민족의 유산을 거두어들여, 정의로운 법에 따라 나눠주셨다
4. 언약대로 백성을 구원하신 분, 거룩하신 그 이름을 경외하여라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 영원토록 주 하나님 찬양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11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여라)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1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7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회중]
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뒷소리)[찬양대]
3. 그- -- 의-, 행하 시는 일이, 존귀 하- 고-, 엄- -위 하며,
그- -의 의가, 영- 원- 히-, 서- -있 도-, 다- -- --∼
(앞소리)[독창]
4. 그의 기적 을-, 사- 람- 이-, 기억 하- 게-, 하- -셨 으니,
여- -호 와는, 은혜 로우 시고, 자비 로우 시도, 다- -- --∼
[회중]
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6.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뒷소리)[찬양대]
7. 그- -의 손이, 하- -는 일은, 진- 실- 과-, 정- -의 이며,
그- -- 의-, 법- 도는 다-, 확- -실 하-, 니- -- --∼
(앞소리)[독창]
8. 영- -- 원-, 무궁 토- 록-, 정- 하- 신-, 바- -- 요-,
진- -실 과-, 정- 의- 로-, 행- 하신 바로, 다-- -- --∼
[회중]
9.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앞소리)[독창, 또는 찬양대]
다- -- --, 훌- 륭- 한-, 지각 을- 가진, 자- -이 니-,
여- -호 와를, 찬- 양- 함이, 영원 히계 속되, 리((로다))- -- --∼
(뒷소리)[다함께]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위의 두 줄은 세마치로, 아래 두 줄은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 동화] 제페토 할아버지의 시편가와 피노키오의 기도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벌에 코를 쏘이는 바람에 마스크가 불룩해지던 시절 이야기예요.
피노키오는 오늘도 코가 길어져서 집에 돌아왔어요.
장난꾸러기 피노키오가 오늘도 어디선가 거짓말을 한 증거죠.
사람이 되었는데도 저러니, 거짓말 중독이 참 무섭네요.
피노키오의 그치지 않는 거짓말에 제페토 할아버지 속은 또 어떨까요?
“저 끊임없는 거짓말을 어찌 끊을꼬?”
피노키오도 코가 길어질수록 너무너무 불편해요.
세수하기도 힘들고 콧구멍이 멀어지는 바람에 코를 풀기도 힘들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마스크하기가 참 어렵거든요.
그럼에도 거짓말버릇은 고치기가 더 더 어려워요.
피노키오가 울상이 되자 제페토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피노키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가 기도합니다.
제페토 할아버지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울립니다.
“내가 낳았건 안 낳았건 거짓말쟁이 자식 때문에 괴로운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나도 많이 아파봐서 잘 안다!”
순간 제페토 할아버지의 눈에서 진주처럼 영롱한 빛이 났어요.
하나님이 마음속에 노래를 부어주셨는데
그 노래가 제페토 할아버지의 마음에 신비한 힘을 줍니다.
“손수 하신 일들은 진실하고 공의로우며, 주님이 지시하신 법은 모두 든든하며, 영원토록 흔들리는 일이 없으니,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시편 111:7-10절 부분)
할아버지의 시편노래를 들으니까 피노키오의 눈에서 눈물이 나네.
눈물이 나니까 콧물도 나요.
콧물바람에 재채기를 한바탕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피노키오의 코가 점점 줄어 원래 모습을 되찾았어요.
피노키오도 할아버지를 따라 시편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차차 피노키오의 거짓말이 줄어들고
시편노래를 부를수록 피노키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게 되었죠.
제페토 할아버지의 시편노래 소문이 천리만리 퍼져나가니
많은 사람들이 제페토 할아버지를 찾아왔어요.
그때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그 시편노래를 아름답게 부릅니다.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의 눈이 진주처럼 빛나고 밝은 힘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페토 할아버지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김복동 할머니와 채의진 할아버지입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일본 수상 아베의 거짓말 때문에 내 마음의 상처가 도무지 아물지 않아 계속 피가 흘러요.”
열다섯 소녀시절 일본군에게 끌려간 상처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아픈 상처입니다.
그런 나쁜 짓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 일본정부의 거짓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더럽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김복동 할머니 이야기를 듣던 제페토 할아버지가
눈물을 닦고 시편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할머니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힘이 납니다.
새 힘을 얻고 신바람이 난 할머니가 답가로 신나는 아리랑을 불렀어요.
“(뒷소리)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보세∼ 1.삼천리금수강산 무궁화나라, 꽃처럼 아름답고 무궁한 나라, 꽃다운 이팔청춘 우리 누이들, 정신대 광풍 속에 외로이 우네∼ (뒷소리) 2.총칼에 군화발에 꺾이지 않고, 울던 소녀 눈물 닦고 어른이 되네, 꽃다운 할머니들 일어나시니, 비로소 이 땅에 광복이 오네∼ (뒷소리) 3.친일이 부끄러워 숨던 사람이, 느닷없이 떳떳하다 활개를치네, 거울이 깨끗해야 부끄러움 알지, 역사가 바로서야 광복이 되지∼ (뒷소리) 4.역사를 바로세우는 교사와 기자, 역사를 바로새기는 문화예술인, 저들이 이 시대의 광복군이라, 어둔 세상 불을 켜는 광복군이라∼ (뒷소리)”
[‘신광복군아리랑’(이정훈 지음, 중중모리장단)]
함께 울던 채의진 할아버지도 눈물을 닦고 아리랑을 부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고향노래 문경새재아리랑을 부르는 줄 알았는데
노랫말을 바꾼 문경석달동아리랑이었어요.
삼손처럼 긴 머리 긴 수염을 떨며 채의진 할아버지가 노래합니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1.문경새재를 넘어갈제,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나네∼(후렴)
2,문경석달동 성탄절 전날, 아기예수 기다리며 눈물이나네∼(후렴)
3.헤롯왕이 빼앗아간 여든여섯 목숨, 우리아기 피눈물을 닦아주소∼(후렴)
4.석달동 빨간 베레모 채의진 선생, 칼 한 자루 움켜쥐고 눈물을 닦네∼(후렴)
[‘문경석달동아리랑’ 이정훈 개사, 문경새재아리랑 가락]
(※채의진 할아버지는 유명한 서각인입니다. ‘문경석달동아리랑’ 4절의 칼은 조각칼입니다.)
삼손처럼 긴 머리로 부른, 삼손의 죽음보다 더 슬픈 노래를 들으며
제페토 할아버지와 김복동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이윽고 채의진 할아버지가 이 노래의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6.25 전쟁 일어나기 얼마 전 성탄절 전날, 평화로운 우리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죄 없는 여든 여섯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어요. 자기나라 양민들을, 심지어 돌쟁이 어린 아기들까지 죽인 사람들이 자기 죄를 덮으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채의진 할아버지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며
제페토 할아버지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어요.
김복동 할머니의 입이 해물탕 큰 조개처럼 딱 벌어졌어요.
곁에서 듣고 있던 어린이 피노키오가 얼른 코를 움켜쥐고 바들바들 떱니다.
“헤롯왕처럼 못된 자들의 저 더러운 거짓말을 밝혀내려고 저는 오랫동안 조각칼을 벼리며 나무에 진실과 정의를 새겼답니다. 어떻게 하면 저 거짓말쟁이들조차 이 신비한 시편노래 듣고 진실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제페토 할아버지가 채의진 할아버지의 손을 마주잡으며 눈물을 글썽였어요.
평생 망치와 조각칼을 다루던 두 할아버지 손의 굳은살이
서로를 어루만지며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두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마주잡은 손 위에
가만히 손을 포개며 눈물을 글썽였어요.
제 코를 감쌌던 손을 풀고 피노키오가
가만히 제페토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내려다보시던 하나님께서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의 기도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십니다.
신비한 시편노래로 거짓말 병이 다 나은 피노키오의 기도에
하나님 마음이 뭉클합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7호에서 퍼옴]
[※ 김복동 할머니 이야기와 ‘신광복군아리랑’ 악보는 「성실문화」 107호 둥글레음악회이야기에 있고,
채의진 할아버지 이야기와 ‘문경석달동아리랑’ 악보는 「성실문화」 106호 둥글레음악회이야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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