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성령강림절 3주(성령강림후 2주, 2019년 6월 23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네 집으로 돌아가서(누가복음 8:39)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상 19:1-4(5-7)8-15a) 시내산(호렙산)의 엘리야 (로뎀나무에서 호렙산까지)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7.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9.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시편 42, 43) 하나님을 사모함, 환난을 당할 때의 기도

(42)

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3.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4.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 일들을 지금 내가 기억하고 내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6.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7.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큰 폭포 소리를 따라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파도의 물결은 모두가 한 덩이 되어 이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8.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까?"

10.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니, 그 조롱 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43)

1. 하나님, 나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비정한 무리를 고발하는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2. 나의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짓눌려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합니까?

3. 주님의 빛과 주님의 진리를 나에게 보내 주시어, 나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장막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4. 하나님, 그 때에, 나는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렵니다.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렵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내가 기뻐하면서, 수금가락에 맞추어 주님께 감사하렵니다.

5.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갈라디아서 3:23-29) ...종과 아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누가복음 8:26-39)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거라사 군대귀신을 몰아내시다)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36.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37.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시는데,

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 은혜로 회복되다입니다.

 

구약,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왕상 19:7)

시편,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시편 43:4)

서신서,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복음서,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 하여라”(누가 8:39)

 

오늘 요절은, “네 집으로 돌아가서입니다.(누가복음 8:3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상 19:1-4(5-7)8-15a, 시편 42, 43)]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호렙산의 엘리야입니다.

천하의 예언자 엘리야가 왜 죽기를 바라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요?

이세벨의 저주가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방금 이세벨이 섬기는 우상의 예언자들을 일망타진한 엘리야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보이는 행동은 극심한 우울증처럼 보입니다.

비록 하나님 편에 선 선한 승리였으나,

방금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엘리야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의 절망과 트라우마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떡과 물을 먹여 살리시고,

다시 일어서 갈 길을 가게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하십니다.

호렙산(시내산)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곳,

즉 하나님께서 당신을 처음 드러내신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세상과 담쌓은 우울증환자처럼 은둔하려는 엘리야를 거기로 부르신 것입니다.

 

모세가 40일 밤낮을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을 받았던

거기 그 산까지(34:28)

엘리야는 40일 밤낮을 걸어갑니다.(8)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11-12)

엘리야 내면의 크고 어지러운 고통을 드러내고,

10절과 14절 두 차례 엘리야의 대답이 똑같은 것 역시,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을 내면의 큰 상처 큰 원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단순합니다.

그 똑같은 넋두리 그 한탄을

그저 반복해서 묵묵히 다 들어주시는 것입니다!(9-10, 13-14)

그리고 다시 예언자의 길을 가게 하시고(15),

그 길에 동반자 엘리사까지 붙여주십니다.(19-21)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낯선 땅에서 하나님을 갈망함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구약본문의 엘리야의 모습과 짝을 이룹니다.

지금 시인이 겪고 있는 모욕(5), 공포와 혼돈은(7)

엘리야의 그것과 짝을 이룹니다.

 

사람들에게 박해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43:1-2) 역시

오늘 엘리야의 심정과 짝을 이루며

마침내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 이른 것처럼,

시인도 주님의 거룩한 산에 이르길 원합니다.(43:3)

 

이렇게 주님의 집으로 가는 길,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이

바로 낙심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내 참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43:4)

시인은 이것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힘차게 노래합니다.(42:5, 11, 43:5)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갈라디아서 3:23-29, 누가복음 8:26-39)]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약속과 율법입니다.

모세 이후 이어지던 율법의 임무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끝납니다.

 

이제 그 믿음으로 (세례 받고) 내 모든 육적인 옷을 벗고(28)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27)

하나님의 상속자(29), 하나님의 자녀로(26) 회복된 것입니다.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그 은혜로

우리 하나님과의 친교가 회복된 것입니다.

예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치유입니다.

거라사 마을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는 인간관계도 다 벗고, 옷도 다 벗고, 무덤에서 삽니다.(27)

그는 사납고(마태 8:28), 그는 더럽고, 그는 강력합니다.(마가 5:2, 4)

군대라고 번역한 레기온(30) 로마군 6,000명 단위의 큰 군대라고 하니,

그가,,,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만나자마자, 예수님은 치유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29)

하나님의 큰 사랑, 큰 능력으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동네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보다 경제논리가 앞섰기 때문입니다.(33-34)

경제논리가, 사랑이 아니라 감동이 아니라 두려움을 준 것입니다.(37)

 

회복된 이는 예수님과 함께 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하게 하시는 뜻입니다.39)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온전히 회복시키시려는 따뜻한 사랑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가 코앞입니다.

6.25전쟁 때문에 지금도 한반도는 너도나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져 삽니다.

반민특위 실패와 제주 4.3, 여수순천, 그리고 각지의 보도연맹과 6.25까지,

전국에 분단의 희생, 그 상처 없는 가정이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보도연맹 학살 때 가까운 친족을 잃었습니다.)

 

분단의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고 오랩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앙망하는 교회들조차

분단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시작하면

귀하고 거룩한 형제자매조차 마귀로 보입니다.

 

한 집안 식구들끼리도 세대 간에 마음이 분단되어 삽니다.

한 교회 교우들끼리도 분단되어 삽니다.

한 나라 사람들까지도 분단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니

하물며 남과 북 두 땅을 잇는 길은 얼마나 멀겠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전쟁을 치른 뒤 엘리야의 고통을 보여주시고,

전쟁처럼 격렬하고 더러운 고통의 상징인

거라사 군대귀신 들린 자의 고통까지 보여주십니다.

 

엘리야의 넋두리를 반복해서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군대귀신 들린 자를 보자마자 소리 없이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능력!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이란 회복케 하시는 능력이요,

하나 되게 하시는 사랑입니다.(갈라 3:28)

 

지금 주님의 능력, 주님의 사랑으로

한반도 분단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반복하고 있는 이 땅 각양각색의 넋두리를 한탄을 호소를

반복해서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힘찬 사랑의 처방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나머지]

*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오늘 본문들은, 주님의 은혜로, 엘리야가 회복되는 과정과(구약)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이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복음서) 그리고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시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모습과(시편)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 열리는 믿음의 세계를 보여줍니다.(서신서) 모두모두 주님을 만나 회복되고 새로워집니다. 엘리야는 주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으나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꼴을 당하다가 극적으로 다시 회복합니다. 첫사랑 나의 주님을 잃고 근근도생(僅僅圖生)하는 지금 우리에게 오늘 엘리야가 희망을 줍니다. 계속 승승장구하지 않고 크게 꺾어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이라 더 큰 감동과 희망을 줍니다. 거라사 사건은 또 다른 교훈을 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군대귀신은 무엇일까요? 그 군대귀신에게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저 벌거숭이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그가 그리스도를 옷 입도록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마귀권세가 제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 주님의 권능에 비할 바 못됩니다. 주님의 권능은 사랑에서 나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 한 영혼을 위해 내 목숨까지 버리신 그 사랑 말입니다. 사랑이 권능입니다. 사랑의 힘이 약해진 우리 교회는 오직 성령을 받아야 그 권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힘이 세져야, 땅 끝까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을 만난 그 사람, 주님으로 옷을 갈아입은 거라사 광인에게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집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넘쳐야 이웃 사랑의 길, 증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불길이 타오를 때 나를 향한 하늘사랑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끊임없이 배가되는 사랑의 권능을 마귀권세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시편 42:5,11, 43:5)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주여! 제가 지금 성령을 기다립니다!

 

** 엘리야와 귀신들린 거라사 사람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은 군대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약의 이세벨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거라사 그 사람처럼 광야에서 노숙하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엘리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은 딱 하나님 부재(不在)’ 상황, 그 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엘리야의 오늘 모습도 느껴지나 봅니다.

 

*** 엘리야의 가족사진

갈멜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덩어리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아주 조용하고 따사롭게 나타나십니다. 천사를 두 차례나 보내시어 엘리야를 다독이고 먹이십니다. ‘모유수유하듯이, 마치 유모를 보내어 수유(授乳)하는 엄마 같은 느낌입니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7)는 말씀조차 매우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허물어진 하나님 그림이 엘리야의 내면에서 점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자리를 떨고 일어난 엘리야가 한참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 어느 동굴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엘리야는 한바탕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한 때 잘 나가다가 세상이 나를 배신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노라는 아무개 노숙인의 신세타령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을 완전 새롭고도 생생한 그림으로 완성시키시려는 듯 행동하십니다. 이 행동에서 창세 15:7-21에서, 설익었던 아브람에게 당신을 (당신의 뜻을) 점점 더 자세히 보여주시던 하나님의 그 낯설고도 세심하신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무튼 지금 하나님은 엘리야 내면에 하나님 그림을 조금씩 조금씩 완성해가십니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느꼈던 태풍 같고 지진 같고 불 같은 모습을 넘어서, 하나님은 매우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아까 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중요한 뜻이 담긴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 때 한줌도 안 되는 세상 권력 따위가 두려워 벌벌 떨며 생명을, 사명을 포기하려 했던, 그 초라한 실패자를 각성시키시는 과정입니다. 너 자신을 바로 알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생명, 네 사명의 소중함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걸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다양한 모습을, 새로운 모습을 엘리야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또 이런 느낌이 듭니다. 엘리야가 아까 한 말을 반복하는 것을 유심히 느껴봅시다. 마치 녹음기처럼 반복합니다. 속으로 수없이 많이 반복 연습한 것만 같습니다. 그걸 하나님 앞에서 두 번이나 쏟아내고 난 엘리야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좀 어설픈 상상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느껴집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가 무섭고 부끄러워서 꽁꽁 감추어두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또 쏟아내고 다 쏟아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주시는 하나님! 분명한 것은, 이리저리 엉망으로 헝클어졌던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이 이제 거의 완성에 가깝게 생생해졌음입니다. 그걸 엘리야 자신의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더 정확하게는 엘리야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 다정한 가족사진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엘리야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새로운 명을 내리십니다.

(예전 글을 다듬고 보충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고마워 돼지들아 (서무석 지음, 성실문화99)

거라사 돼지들아 너무 미안해

불쌍한 돼지들아 너무 미안해

구제역 돼지들이 죽을 때처럼

돼지야 돼지들아 너무 미안해

 

군대귀신 들린 나를 살리기 위해

군대귀신 대신 들린 불쌍한 돼지

그래도 돼지들아 너무 고마워

너희들 희생으로 내가 살았어

 

너희들 희생으로 살아났으니

한평생 돼지고기 안 먹을거야

너희가 살지 못한 깨끗한 세상

온세상 쓸고 닦고 청소할거야

 

 

 

 

[말씀시조] 로뎀나무 엘리야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9)

로뎀나무 엘리야가 호렙산에 다다르니

엘리야의 넋두리를 주님께서 들으시네

엘리야 나의 종이여 이제 내가 말한다

 

 

 

 

[말씀서예] 열왕기상 19:13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9)

 

 

 

 

 

[말씀노래] 거라사 지방에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99)

[본문] (누가복음 8:26-39)

[노랫말]

1) 거라사 지방에 무덤에서 사는 사람 / 너의 이름 무엇이냐 내 이름은 군대입니다

2) 주님께서 명하시네 돼지 떼에 들어가라 / 돼지 떼는 비탈길로 호수에 뛰어 들었네

3) 거라사 마을사람 두려움에 사로잡혀 / 주님께 요청했네 우리를 떠나 주세요

후렴) 귀신들아 떠나가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귀신들아 떠나가라 죽음 향해 질주케 하는

 

[해설]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이야기다. 본문의 내용을 세 개의 절에 나누어 담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죽음을 향해 치닫는 귀신의 본성을 후렴구로 하여 곡을 붙였다.

 

[악보] 거라사 지방에 (주원남 지음, 2016.3.20.)

(2016성실문화87호 노래마당에 실은 것을 다시 싣는다)

 

 

 

 

 

[시편 송서(誦書)] 시편 42, 4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9)

(후렴구 42:5,11, 43:5새야새야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

너는 하나님-== 소망을- -==, 그가 나--== 도우시--==,

그로 말미암-== 내가 여--==, 내 하나--== 찬송하리로-==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

너는 하나님-== 소망을- -==, 그가 나--== 도우시--==,

그로 말미암-== 내가 여--==, 내 하나--== 찬송하리로-==

 

43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

너는 하나님-== 소망을- -==, 그가 나--== 도우시--==,

그로 말미암-== 내가 여--==, 내 하나--== 찬송하리로-==

 

(42:5, 11절과 43:5절은, 하반부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하다고 판단하여 운율에 맞추어 문장을 조금 다듬어서 통일시켰다.)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9)

성령강림절 3(성령강림후 2, ‘6.25를 앞둔 주일’) 2019623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열왕기상 19:1-4(5-7)8-15a, 시편 42, 43, 갈라디아서 3:23-29, 누가복음 8:26-39

 

 

 

 

 

 

 

 

 

 

 

 

 

 

 

 

 

 

 

 

 

 

 

 

 

 

 

 

 

 

 

 

 

 

 

 

 

 

 

 

 

 

 

 

 

 

 

 

 

 

 

 

 

 

 

 

 

 

 

 

 

 

 

 

 

 

 

 

 

 

 

 

 

 

 

 

 

 

 

 

 

 

 

 

 

 

 

 

 

 

 

 

 

 

 

 

 

 

 

 

 

가로열쇠

노아의 12대 손이요 데라의 아들이며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갈대아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으로서, 바벨론이 수도였는데, 뒤에 바벨론 제국으로 컸다. 우르는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 강변 도시로서, 예전 수메르의 도시국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그의 형제는 나홀과 하란이며, 그의 조카는 롯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름 뜻은 열국의 아버지이다.(갈라디아서)

이스라엘 남서쪽 네게브 사막 중심에 있는 큰 도시. 예루살렘 남쪽 85지점에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았던 곳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 우물 때문에 싸우지 말자며 새끼암양 7마리를 주고 언약을 맺은 곳이다. 그래서 그 이름의 뜻이, ‘일곱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다.(열왕기상)

예수님께서 군대귀신을 쫓아내신 곳인 오늘날 쿠르시(게르게사)라는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 이름이다. 쿠르시는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 호숫가에 있는 고장이다.(누가복음)

야훼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 뜻을 가진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로서 아합왕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던 때에 참된 예배를 회복시켰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었다.(9:4) 말라기 4:5절에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다시 보내실 것이라 하셨으며, 마태복음 11:14절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바로 그 사람 ○○○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열왕기상)

모세가 이집트 왕자생활을 하다가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생활을 할 때, 이 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들리는 하나님 음성을 처음 만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라 불릴 때 이 이름이 쓰인다. 흔히 시내산과 같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50일째 되는 날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 돌판을 받은 산이다. 이스라엘 아래 시나이반도 남쪽 끝부분 홍해 가까이에 있다.(열왕기상)

 

세로열쇠

원래 큰 군인이었다가 나라가 어지러운 중에 군사를 일으켜 왕이 된 오므리의 아들로서, 이방 공주를 왕비로 삼고 이방 신들을 들여와 이스라엘을 많이 어지럽힌 악명 높은 왕이다. 특히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죄 없는 백성 나봇을 죽인 일로 두고두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악인이다.(열왕기상)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서, 이스라엘 왕 아합의 왕비가 될 때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과 그 예언자들을 이스라엘에 잔뜩 들여와 이스라엘을 크게 어지럽혔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야와 여러 번 다투었다. 특히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 아무 죄 없는 나봇을 무자비하게 죽임으로써 하나님께 큰 벌을 받고 죽는다.(열왕기상)

히브리어로 보냄 받은 자’, ‘심부름꾼’, ‘사자를 의미하는 말을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을 가리킨다. 때때로 이 심부름꾼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열왕기상)

이스라엘 땅 북부지역으로서, 북쪽은 산지가 많고 남쪽은 기름지고 경치 좋은 평지가 많다. 예수님께서 생애 대부분을 여기서 사셨고 제자들 대부분을 여기서 부르셨다. 이 지역 이름이 붙은 큰 호수도 있다. 남북 길이가 20가 넘는 바다처럼 큰 호수인데, 심장 모양으로 약간 둥글게 생겼다. 예수님 당시 이 호수에는 15개가 넘는 항구가 있었다.(누가복음)

작다는 뜻을 가진 작은 산. 헤르몬 산맥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서 헤르몬 산과 요단강 사이에 있다.(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할머니의 기도공책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9)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꾀꼬리랑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온 산에 꾀꼬리 소리가 한창입니다.

오월오일 어린이날만 되면 우리 마을로 돌아오는 우리 단짝 꾀꼬리는

온산에 푸르름이 짙어갈수록 노랫소리도 드높아 가고,

앞산 뒷산에서 주고받는 꾀꼬리의 하모니가 무르익어갑니다.

 

꾀꼬리는 온몸이 샛노란 빛깔이라 여름이 무르익을수록 찾기 어렵다죠?

눈에 불을 켜고 우리 마을 노래대장 꾀꼬리를 찾으려 애쓰는 한우리에게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우리야, 꾀꼬리 정말 찾기 어렵지? 오죽하면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말이 다 있겠니?”

 

그때 아빠가 거드십니다.

 

노래도 있잖아? 조용필 노래!”

 

아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청껏 노래 부릅니다.

 

못 찾겠다 꾀꼴 꾀꼴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아유 아빠, 그러니까 꾀꼬리가 다 도망가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러도 올까 말깐데!”

 

아빠는 들은 척 만 척 능청스럽게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십니다.

건넌방에서 기도공책 쓰시던 할머니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번지고,

모처럼 평화롭고 나른한 우리네 여름저녁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한우리네 할아버지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학도병으로 전쟁의 무서움을 직접 겪으신 할아버지는

평생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셨습니다.

겉으로는 큰 부상 없었지만

마음의 병, 마음 상처가 너무나 크셨던 것입니다.

 

우리네 할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스트리트 파이터로 변신하셨다죠?

술을 많이 드신 날엔 프로레슬러처럼 옷을 다 벗고 길거리 싸움꾼이 되십니다.

한창 취기가 오르면 뭐가 그렇게 노여우신지 아무나 붙잡고 싸움을 걸고,

술기운이 조금씩 내려가면 또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오돌오돌 온몸을 떠십니다.

 

오돌오돌 떨면서 평소엔 잘 가지도 않는 예배당에 가서 엉엉 우십니다.

그리고 잠자던 목사님이 깨어 일어나 가만히 다가오시면

목사님 붙들고 어서 죽고 싶다고 신세타령을 합니다.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고, 밤새 반복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못하지. , 그렇고말고!”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을 우리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넋두리가 아무리 길어도,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무리 반복해도,

우리 목사님은 듣고 또 듣고, 끝까지 경청하셨답니다.

게다가 허기진 할아버지를 위해서 맛있는 식혜까지 대접하셨답니다.

 

그 덕분에 할아버지는 술 취해서 싸움질하고 나면 꼭 예배당을 찾으셨고,

그 덕분에 할아버지의 전쟁 상처는 하루하루 아물어갔으며,

마침내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또 다른 상처를 품고 사셨습니다.

70년 동안이나 품고 사신 할머니의 상처는 바로 북에 두고 온 어린 동생입니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이신 우리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홀로되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린 여동생을 남겨두고 홀로 피난 내려오신 겁니다.

 

편찮으신 아버지 간병하느라 고향에 남기로 결심하신 어머니의 단호한 명령으로

동네어른들 따라 그렇게 집 떠나던 날,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 그렁이며 언니만 바라보던 동생!

 

낯선 고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며 밤이고 낮이고 일하면서도

하루도 잊지 못했던 어린 여동생이,

할머니에게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으며,

할아버지가 그렇게 온 동네 시끄러운 난리를 벌이셔도

할머니는 끝까지 참아주셨나 봅니다.

또 고마우신 목사님을 찾아가 늘 그 고마운 마음을 전하시고...

 

할아버지가 육이오 전쟁의 상처로 힘들어하실 때마다,

할머니는 목사님께 받은 첫 말씀을 기억하며 읊조리곤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시편 42: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시편 42:5,11, 43:5)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싸움질과 넋두리가 딱 시편의 그 사슴을 닮았다고 하셨고,

온 가족이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자고,

이 노래 부르며 하나님을 끝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도 할머니는 늘 이 시편 노래를 품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못 누리신 평화로운 삶을 마저 다 살아내시려는 듯

새벽마다 예배당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기도공책에 시편기도를 쓰고,

고향집에 두고 온 동생을 위한 축복기도를 쓰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눈이 대왕 콩자반처럼 둥그레지셨다죠?

또 하나의 노래를 발견하신 겁니다.

노래 제목이 이게 꿈이냐 생시냐’!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노래를 발견하던 순간 우리 아빠는 이렇게 외치셨다죠?

 

유레카!”

 

심봤다!”

 

흥분한 아빠는 인터넷 바다를 뒤지고 또 뒤져서

이 노래를 지은 김의철 선생님이란 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김의철 선생님이 이 노래를 짓게 된 사연도 찾아내어서

하나하나 낱낱이 할머니께 들려드렸습니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김의철 아저씨 어머니의 편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의철 아저씨의 어머니는 북에 두고 온 여동생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50년 만에 듣고

너무너무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셨고, 이를 바탕으로 이 노래가 탄생한 것인데,

김의철 아저씨의 어머니 사연이랑 우리 할머니 사연이 너무너무 닮아서 감동이 두 배였던 겁니다.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영롱한 진주 같은 이 노래 덕분에

우리 할머니의 기쁨과 설렘은 말로 다 못합니다.

스마트폰이 닳도록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으십니다.

이젠 할머니 혼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흥얼흥얼 읊조리실 정도입니다.

 

“1.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희들 어디 있냐, 어언 반백년 오랜 세월을 생사를 몰라 헤맸네, 한과 눈물이 가로놓여진 민족의 그 아픔이, 이렇듯 쓰라린 이 내 가슴을 에어 갈 줄이야

2.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희들 보고픈 맘, 어서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해후의 정을 나누자, 그동안 얼마나 고생들 많았겠느냐, 이 기쁨 돌아가신 부모형제께 전해주려마

3.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희들 생각나니, 송도원 솔밭길 그 해당화 눈앞에 어른이누나, 우리형제 손잡고 노래 부르던 명사십리 그 길에, 오늘도 파도소리 들려오겠지 물새도 울고 있겠지오늘도 파도소리 들려오겠지 물새도 울고 있겠지” (김의철 지음,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할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시며 종종 눈물을 훔치십니다.

우리 할머니의 동생 소식은 여태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산가족 찾기 때마다 신청을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도

도무지 동생의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던 할머니가, 그렇게 한동안 풀죽어 지내시던 우리 할머니가

꾀꼴꾀꼴 꾀꼴라리꾀꼬리 노랫소리 들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금조금 얼굴이 편안해지기 시작하셨어요.

 

우리야, 우리 한우리! 할머니가 우리 한우리 위해서 매일 기도하니까 학교생활도 점점 더 재미있어 지고, 동무들이랑 더 사이좋게 지내렴!”

 

늘 고향에 두고 온 여동생을 위한 기도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우리를 위한 기도문도 쓰시나 봅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몰래 훔쳐본 할머니의 기도공책에는

온통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로운 통일을 위한 기도로 가득했습니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남과 북의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두근두근 할머니 기도공책을 훔쳐보던 한우리의 눈이 빛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못 누리신 평화롭게 하나 된 나라를 위해,

할머니의 평생소원 북녘 고향집에 맘껏 달려갈 수 있는 날을 위해,

두근두근 가슴 뛰는 그런 기도공책을 우리도 쓰려고 다짐한 것입니다.

 

문득 앞산과 뒷산에서 메기고 받으며 꾀꼬리가 노래합니다.

저 꾀꼬리 두 마리가 할머니랑 할아버지였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랑 할머니 동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랑 우리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우리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입니다.

 

(김의철 선생님께 들은 이게 꿈이냐 생시냐의 사연을 바탕으로 지었다. 이 노래는 가수 양희은과 윤선애가 부른 두 종류를 각각 인터넷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의철 선생님은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며, ‘군중의 함성’, ‘이 땅의 축복을 위하여’, ‘상주아리랑등을 지은 작곡가요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