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요한1서 4:7)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8:26-40)
26.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27. 빌립은 일어나서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였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29.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마차에 바짝 다가서거라."
30.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37. (없음)
38.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시편 22:25-31)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요한1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친밀한 사귐, 친교(親交)’입니다.
사도행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사도 8:38)
시편,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시편 22:27)
서신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요일 4:13)
복음서,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요한 15:5)
오늘 요절은,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입니다.(요한1서 4:7)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8:26-40, 시편 22:25-31)]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에티오피아 내시’입니다.
이름 모를 에티오피아 내시는 초대교회 첫 이방선교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교회의 계획이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하고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친교)의 범위는 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빌립이 들려준 예수 이야기는 내시에게 참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그 말씀 받은 뒤 내시는 예수와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첫 번째 일,
즉 세례를 받고 싶은 감동이 일어 빌립에게 세례를 청하고 받습니다.
이방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의인의 수난과 영광’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에는 하나님과 친교하는 여러 회중의 모습이 가득합니다.(25)
참 깊고 깊은 탄식과 탄원에 이어지는 감사와 감동의 노래가 오늘 시편 22편 본문입니다.
지옥 같은 우리 인생이 어느 순간 천국 삶으로 바뀌는 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십자가의 피눈물이 부활의 기쁨으로 결실하듯,
오늘 시편 기자는 고난 중 서원한 것을 지키려고 구원의 기쁨으로 감사 제사를 드립니다.
이때 가난한 자들(25-26), 그리고 이방 내시처럼 먼 곳 사람들(27),
심지어 죽은 자(29), 미래세대들까지(30-31) 이 친교에 함께합니다.
(※ 29절은 히브리어 원문의 훼손이 심하여 정확한 뜻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번역을 따른 공동번역을 참고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1서 4:7-21, 요한복음 15:1-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친교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고(7, 10, 19)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선물입니다.(13)
거짓교사들의 영지(靈智)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하나님의 그 사랑!(10)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아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8)
그런데 그 사랑을 아는 길은, 하나님 사랑 받은 사람답게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7, 8, 12, 21)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참 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참 포도나무고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십니다.(1)
왜 그냥 ‘포도나무’라고 하지 않고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을까요?
아주 좋은 포도나무라는 뜻이 아닐까요? 농부가 참 아끼고 사랑하는 포도나무!
농부와 그 포도나무의 관계가 눈에 선합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했는데,
농부와 포도나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친교의 밀도가 상당합니다.
문제는 참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한 몸입니다.
무어라 말로 다할 수 없이 친밀한 한 몸입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 말씀입니다.(2)
포도나무와 가지의 친교는 열매로 압니다.(5)
그 친교는 말씀으로 이루는 친교이며(7)
그 친교의 또 하나의 증거, 즉 내가 예수제자라는 증거는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34-35)
(※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부분 참조)
[정리]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우울하고 무뚝뚝한 표정뿐이셔서, 날 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날 미워하시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늙으신 내 아버지는 날 사랑하고 계셨다. 심지어 날 자랑스러워하고 계셨다.
이렇게 사랑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겉으로, 말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사랑만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겉사랑’은 ‘말로만 사랑’일 때가 많습니다.
참사랑은 늙으신 내 아버지의 ‘속사랑’ 같은 건지도 모릅니다.
사람관계는 늘 좋게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부부간, 부모자식 간에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습니까?
그래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교가 있다는 말입니다.
친교야 말로 부모자식 간에 가장 중요한 알맹이라는 뜻입니다.
그 친교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알고,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경지요,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경지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말로만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돈과 정성을 다 기울여 사랑하는 ‘서로사랑’일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북측 정상이 처음으로 걸어서 남측으로 넘어왔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일입니다.
원수 되었던 혈육이 어깨동무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보이는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일 4:20)
이것은 지금 삼천리금수강산 온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머지]
* 에티오피아 내시
에티오피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누비아를 지칭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누비아는 이집트 아래 수단의 북쪽 지역으로서, 대대로 여왕들이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 여왕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간다게입니다. 내시는 아마도 환관이었을 텐데, 그가 이사야서를 묵상하는 것을 보니 이사야 56:3-5절이 떠오릅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 참조)
4..."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5.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이사야 56:4-5)
그런데 신명기에 따르면 환관은 유대인으로 개종할 수 없습니다.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신명기 23:1)
그럼에도 이사야서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이사야 56장의 배경인 바벨론 포로기에 왕궁에서 근무하던 유대인들이 거의 환관이었을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튼 빌립을 만난 에티오피아(누비아) 내시의 감격이 느껴집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결격사유 없이(36) 주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감동입니다. 그야말로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고(행 8:35) 빌립은 사라졌으나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갑니다.(행 8:39)
** 영지주의를 경계하며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이 쓰인 시대 상황을 돌아봅니다. 그 당시 교회 안팎을 통틀어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가현화였습니다. 하나님 말씀, 즉 예수님 사랑을 생생하게 닮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사랑’을,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말만 무성한 교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이 되어가는 교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지주의가 문제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매우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매우 비밀스러운 것으로 독점하려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로 이러한 잘못된 영지주의적 분위기를 망치로 깨부수는 듯한 선포를 한 것입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만천하에 하나님의 정체를 까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참 통쾌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 “완전한 사랑”(요일 4:18)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려 29회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알맹이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7, 11, 12) 그런데 이 알맹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오늘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의 중요한 공통분모입니다. 즉,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라는 관계가 서신서와 복음서에 각각 3차례씩, 6차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 4:13, 15, 16 / 요한 15:4, 5, 7) 이 관계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가리켜 오늘 서신서본문은 “사랑”으로,(“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8) 오늘 복음서본문은, “농부”로 묘사합니다.(“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사랑을 심어 사랑농사 짓는 분이십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그 열매 풍성히 맺으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7) 이건 바로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경지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개역개정)
그분의 뜻, 오직 사랑으로 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랑열매 가득해집니다. 거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 없는 법입니다.(요일 4:18)
(※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나는 참 포도나무, 내 아버지는 농부 (황미정 지음. 성실교회 교우. 「성실문화」94호)
가지마다 열매 풍성하기를
좋은 볕에 잎사귀 크게 펼쳐 놓고
양분 실은 물줄기 힘껏 빨아오려
가지마다 열매 풍성하기를
생명기운 가득하기를
정성 다해 가꾸시는 농부는 내 아버지
내게 생명 주시는 분
가지마다 열매 풍성하기를
처진 가지 올려달고
열매 없이 웃자라 생명기운 뺏을세라
잘라내어 던지시는 내 아버지 농부는
내게 생명 주시는 분
추수 때에 알알이 굵은 열매
아버지 함박웃음 볼 수 있기를
[말씀시조] 성령충만 빌립집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4호)
성령충만 빌립집사 이방사람 전도하네
부활예수 증거하니 영의 눈이 열리누나
예수님 기쁜소식에 신비로운 세례를
[말씀서예] 사도행전 8:3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4호)
[말씀노래] 나는 참 포도나무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4호)
[본문] (요한복음 15:1-8)
[노랫말]
1. 나는 참 포도나무 아버지는 농부, 나는 참 포도나무 아버지는 농부
열매없는 가지는 잘라버리네, 열매맺는 가지는 손질하시네
2. 나는 참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나는 참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너 내 안에 머물면 열매를 맺네, 나 네 안에 머물면 열매를 맺네
3.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구하는 것 모두 이루리, 열매 맺는 제자로 영광돌리리
[해설]
요한복음 15:1-8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나는 참 포도나무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5)
[시편 송서(誦書)] 시편 22:25-3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4호)
(※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주-를) 전-할 것이-며--∼
[다함께]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5주, 2018년 4월 29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도행전 8:26-40, 시편 22:25-31, 요한일서 4:7-21, 요한복음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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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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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
가로열쇠
①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있는 나라로, 1935년 이탈리아가 침공하였으나 1944년 영-○○○○○ 협정으로 완전 해방된 나라다. 1987년 9월 12일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수립하였고, 1995년 총선을 통해 ○○○○○연방민주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그런데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는 옛 헬라어 번역본에서 히브리어로 ‘구스’를 ○○○○○로 옮긴 것인데, 이는 오늘의 북부 수단(누비아)에 해당한다.(사도행전)
③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감람나무 및 무화과나무와 함께 매우 중요한 식물이다. 성경에서 이 나무가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9:20절로서,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이 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는 비유적으로 번영과 평화(왕상4:25; 미4:4; 슥3:10)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시80:8-13)을 상징했다.(요한복음)
④팔레스타인의 해안 도시로 갈멜산에서 남쪽으로 약 37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부장 고넬료와 집사 빌립의 거주지였다.(행 10:1, 21:8) 헤롯대왕(주전 37- 주전4)은 이곳에 인공적인 항구도시를 건설하고 로마황제를 위하여 '○○○○(Caesarea)'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약 12년간의 공사 끝에 주전 13년경에 완성되었다. ○○○○는 규모 면에서 아주 큰 항구도시이다. 이 항구도시를 짓기 전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항구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북쪽 레바논에서 금과 백향목을 수입하던 항구 욥바가 있었다.(욥바는 ‘아름답다’는 뜻으로, 예루살렘 서북쪽 약 55km지점 지중해 안에 있는 항구 도시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항구다.(욘1:3)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지자 욥바는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사도행전)
⑥히브리어로 ‘보냄 받은 자’, ‘심부름꾼’, ‘사자’를 의미하는 말을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을 가리킨다. 때때로 이 심부름꾼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도행전)
⑦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이들의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사도행전)
세로열쇠
①구약시대에는 아스돗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곳으로서, 이는 ‘견고한 곳’, ‘요새’, ‘성채’란 뜻이다. 아스글론 북쪽 약 16㎞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대표적 다섯 성읍 가운데 한 곳이었다.(수 13:3; 암 3:9) 이곳은 원래 거인족인 아낙 자손의 성읍이었으나 블레셋이 점령했고(수 11:22), 가나안 정복 전쟁 후 유다 지파의 영토가 된다(수 15:46-47). 사무엘 때에 이곳은 블레셋의 땅으로 ‘다곤’(물고기 우상) 예배의 중심지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아 이곳에 있는 다곤의 신당에 두었다가 재앙을 경험하고는 곧 돌려보냈다(삼상 5:1-8).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 때에 이곳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 했다(느 4:7-9). 신약 시대에 이곳을 ○○○라고 불렀다(행 8:40).(사도행전)
②이름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이다. 성경에는 동명이인이 몇 있는데, 그 중 중요 인물로는 사도 ○○과 집사 ○○이다. ‘사도 ○○’은 갈릴리 근처 벳새다 출신으로서 나다나엘을 주님께 인도했다. 원래 안드레와 함께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추정한다.(요 1:44)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인 듯 하다.(요 6:5) 말년에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일하다가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집사 ○○’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헬라파 과부들을 돕고 봉사와 구제를 위해 선발된 최초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사람으로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였고(이는 동북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사도행전)
④‘강하다’는 뜻. 블레셋의 대표적 다섯 성읍 가운데 애굽과 가장 가까우며, 예루살렘 남서쪽 80㎞ 지점 지중해 해안에 위치해 있다. 사막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애굽과 수리아를 잇는 여행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여호수아가 정복하여 유다 지파에게 분배했었지만(수 15:47; 삿 1:18), 사사 시대 때에는 블레셋에게 빼앗겨 다곤 신전이 세워지기도 했으며(삿 13:1) 남유다 왕 히스기야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다(왕하 18:8). 삼손과 들릴라 사건의 무대이기도 하다(삿 16:1-30). 예언자 아모스는 ○○의 멸망을 예언했는데(암 1:6), 애굽과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성취되었다(슥 9:5). 신약성경에서는 집사 빌립이 이곳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행 8:26)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데, 이스라엘에 의해 가자(Gaza)지구로 봉쇄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갇혀 사는 분노와 슬픔, 위기의 지역이 되었다.(사도행전)
⑤3명의 대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름 뜻이 ‘야훼께서 구원을 베푸셨다’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으며, 왕족이나 귀족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록한 예언서는 모두 66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1-39장을 그가 지었고, 40-55장과 56-66장은 각각 다른 이들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도행전)
⑦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이라는 뜻.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을 좇는 모든 성도(행 6:1, 7; 9:19)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해야 하고(요 8:31), 또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요 13:35). 그리고 ○○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라 강조하셨다(눅 14:26-27).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교회 당시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 A.D. 35-107년경)는 ‘○○’라는 말과 ‘순교자’를 동의어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의 도’란 생명을 내어 놓는 일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요한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장산곶매와 독도 거북이가 판문점까지 날아간 까닭은?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비무장지대에서 지뢰제거 봉사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호랑이랑 토끼가 서로서로 자기처럼 생긴 지도라고 다투는 땅 한반도에
봄이 왔어요.
사시사철 냉랭한 겨울분위기를 깨고 남에도 북에도 봄이 왔어요.
북쪽에서 뚱뚱이 아저씨가 내려오고
남쪽에서 홀쭉이 할아버지가 올라오다가
남과 북의 중간 판문점이라는 마을에서 딱 만난 거예요.
손도잡고 얼싸안고 어깨동무가 되네요?
남에도 북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봄눈 녹듯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힘차게 박수치고 활짝 웃어주네요!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떠들썩한 판문점 마을 위를
솔개 한 마리가 빙빙 돌며 구경하다가 얼른 대장한테 날아가 이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비무장지대 대장 장산곶매가 한바탕 날아옵니다.
매의 눈으로 판문점 잔치를 살펴본 대장이 판문점 사방팔방 비무장지대에 소식을 전합니다.
비무장지대는 무지무지 넓습니다.
아래위로 4㎞에 좌우로 250㎞나 되니,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0배나 됩니다.
60년 동안이나 사람이 없는 비인간지대요, 자연이 주인인 참자연지대가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장산곶매와 솔개들이 드넓은 비무장지대 온 동물들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평화의 잔치 소식에 비무장지대 동물들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네?
다람쥐도 떨고 고라니도 떨고, 노루도 떨고 곰돌이도 떱니다.
“얼마 전 남과 북 평화올림픽 한다면서 평창 망가뜨리고 정선 가리왕산도 홀딱 망가뜨리더니, 이제 우리 비무장지대 차례라니까?”
그때 반달곰이 한걸음 썩 나서며 말합니다.
“그래도 이제 완전 비무장지대로 만든다잖아? 그러면 지뢰도 다 없애줄 테니 우리 환경이 더 좋아지는 거 아닐까?”
“곰돌아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그나마 지뢰 덕분에 군인들도 우리 마을을 함부로 싸돌아다니지 못한 거 몰라?”
쏘아붙이는 여우의 한마디에
반달곰이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납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먼 하늘에서 기럭기럭 기러기 떼가 날아옵니다.
커다란 그물에 웬 큼지막한 너럭바위를 담아 옵니다.
어라? 바위가 아니라 거북이잖아?
저 멀리 독도에서 판문점 잔치 소식을 듣고 거북이가 찾아온 겁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모두들 공손히 배꼽인사를 하고,
거북이가 느릿느릿 자리를 잡으며 대답합니다.
“잘들 있었느냐? 거북할아비가 와서 거북하지는 않고?”
할아비개그에 비무장지대 동물들은 한꺼번에 무장해제가 되고,
얼어붙은 표정들이 조금씩 풀어집니다.
거북할아버지는 독도와 비무장지대 해변을 오가며 오랜 세월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수많은 전쟁의 비극을 지켜봤습니다.
창칼이 쨍그랑쨍그랑 싸우고 총과 대포가 피융퓽 뻥뻥 싸우는 걸 다 본 겁니다.
“내가 120년을 사는 동안 6.25전쟁만큼 무서운 전쟁은 없었단다. 창과 칼, 화살이 아니라 총과 대포를 쏘아대는 전쟁이었지. 그런데 6.25전쟁 5년 전에 바다건너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그 폭탄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핵폭탄이 지금 우리 땅을 위협하고 있단다. 그건 무장지대건 비무장지대건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쓸어버릴 무서운 재앙이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 판문점 평화 잔치는, 그 무서운 전쟁을 막으려고 애쓰는 매우 귀하고 귀한 잔치란다.”
비무장지대 동물들이 거북할아버지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던 산토끼가 질문합니다.
“그럼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거북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대답합니다.
“하늘님께서 남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욕심을 덜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맞아요. 비무장지대를 진짜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우리 동식물들을 보존하여 잘 살게 하는 것이, 남북이 더 멋진 나라가 되는 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어요.”
솔개의 힘찬 목소리에 너도나도 고개를 크게 끄덕입니다.
“비무장지대에는 5,333종이나 되는 동식물이 살고 있단다. 한반도의 멸종위기 야생동물만도 94종이나 살고 있는 아주 대단한 보물창고가 바로 우리 비무장지대지!”
비무장지대 대장 장산곶매의 묵직한 한마디에
온 동물들은 어깨가 으쓱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때 누군가 절절한 목소리로 시를 읊조립니다.
온 마을 동물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문익환 지음. ‘꿈을 비는 마음’ 중에서]
시를 읊는 소쩍새의 목소리가 점점 애절해지면서
온 마을 동물들의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바로 이때 뱀 한 마리가 미끄러지는 목소리로 제안합니다.
“우린 화약 냄새를 워낙 좋아해서, 비무장지대 지뢰란 지뢰는 어디어디 묻혀 있는지 죄다 알고 있어요. 우리랑 멧돼지들이 힘을 합하면 며칠 안에 지뢰를 다 캐낼 수 있죠.”
멧돼지도 썩 나서며 거듭니다.
“서로 뿔 달린 도깨비라고 손가락질 하던 남과 북의 사람들도 이제 어깨동무가 되어가니, 우리랑 어깨동무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요? 그런 날을 앞당기려면 우리가 먼저 한반도 사람들에게 그런 평화를 선물하는 게 어떨까요?”
부엉이 아줌마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 그렁그렁하며 성경구절을 낭독합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한1서 4:20)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이사야 11:6-9)
비무장지대 동물들의 마음이 다시 평화로워집니다.
판문점의 밤은 깊어가고,
삼천리금수강산에 옹달샘 같은 봄기운이 퐁퐁 솟아납니다.
비무장지대가 에덴동산 꿈으로 온통 벅차오르고 있습니다.
[이정훈 지음. 2018년 4월 28일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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