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사도행전 4:33)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32-35)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시편 133)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요한일서 1:1-2:2)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부활신앙이 차오르면’입니다.
구약,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사도 4:32)
시편,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편 133:1)
서신서,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요일 1:7)
복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한복음 20:28)
오늘 요절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입니다.(사도행전 4:33)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4:32-35, 시편 133)]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재산공유 공동체’입니다.
사도들로부터 예수부활 증언을 들으면서 신도들 안에 부활신앙이 차오릅니다.
그러자 삶이 변하여 무소유 삶, 물질을 나누는 평화(平和)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무소유 삶으로 변화한 평화공동체 - <교회>의 예수부활증언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33)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형제화합의 복’입니다.
한 핏줄 형제자매라도 한 공간에서 지내다보면 긴장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히려 어울리고 함께 사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복스럽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린다는 표현은(3)
나라의 북방 끝에서부터 온 나라의 피붙이들이
성전이 있는 시온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다투던 북측과 남측이 생명을 나누기 시작하는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일서 1:1-2:2, 요한복음 20:19-3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기독자들 친교의 기초, 빛 속에 사는 삶,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영지주의적 적대자들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과 참된 사귐의 첫 단추는
먼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 나의 죄를 환히 발견하고 자백함으로 시작합니다.(9)
이 과정에서 화목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2:2)
생명의 말씀이시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1:1-2)
관념과 추상을 뛰어넘어 생생하신 그 생명을,
그 영원한 생명, 부활예수님을 만나 사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도마의 불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 이어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21)
파송하시는 과정은, 먼저 평화의 인사를 하시고,(19, 21)
성령을 전달하십니다.(22)
그리고 죄용서 권리, 즉 세례권(洗禮權)을 주십니다.(23)
이어지는 도마 이야기로 우리는 큰 힘을 얻습니다.
도마의 고백 덕분에 부활예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되고,
기적도, 표적도 없이 오직 말씀에 근거한 믿음,
부활증언에 의한 믿음만으로 충분히 복스러울 수 있습니다.(29)
(※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부활예수님께서 오늘 찾아가신 사람들은
스승을 배신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이 평화인사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달리 평화인사 하신 기록이 많습니다.(요 20:19, 21, 26)
아마 대문도, 현관문도, 마음 문까지도 꽁꽁 닫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 안에 시냇물처럼, 봄기운처럼 스미신 것입니다.
블루투스 같은 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생생하게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 인사로 저들 상처를 품으시고 녹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달리 용서의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마치 너희의 모든 죄 다 용서했다는 증표처럼,
“누구의 죄든지” 다 용서할 수 있는 권리조차 주신 것입니다.(23)
그리고 마치 형광등처럼 늘 센스가 무딘 우리 도마!
역사적인 현장을, 기회를 놓쳐버린 루저 같은 도마까지 챙기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고백을 받으십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28)
감당치 못할 용서를 받은 제자들, 감당치 못할 부활의 신비를 체험한 제자들이
상상도 못할 부활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행 4:33) 상상을 초월할 일이 벌어집니다.
유사 이래 가장 막강한 우상인 돈의 손아귀로부터,
신도들이 돈 욕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합니다.(32)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의 증언, 예수님 부활 증언의 큰 능력은 점점 더 큰 빛을 발합니다.(33)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매주일 예배 말씀 안에서 진정 부활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진정 부활예수님을 만난 증거는,
처음교회 신도들처럼,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빛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온갖 거짓말, 그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회개하는
빛이신 하나님 안에 사는 진실하고 신실한 삶,(요일 1:5-7)
죽음권세의 손아귀, 돈 욕심, 저 끈질긴 소유욕에서 해방된 삶!
거기 부활의 기쁨,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거기 참 평화가 있습니다.
[나머지]
* 노아처럼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성경에 통달한 신학박사랑,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무학자지만 기도 열심히 하며 교회 봉사 잘하는 시골 교회 할머니 권사님, 이 둘 중에 누가 더 신앙이 좋을까? 정답은... 신학박사도 아니고, 권사님도 아닙니다. 정말 신앙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주님과 사귀는 사람)’입니다. 이게 성경의 답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세기 6:5-9)
여기서 눈여겨 볼 구절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암만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애쓰면 뭐합니까? 끼리끼리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먹고, 입에 쓴 말씀은 뱉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행한다는 말이 좀 모호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는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걸 어떻게 알지?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다”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 상식대로 하지 않고, 제 경험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정말 어리숙하고 고지식하리만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설계도 도면대로 고대로... 하나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22)
지극히 고지식한 노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 도마처럼
그런데 도마는 노아와 달랐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내 계산보다 늘 크시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하며 살았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도마는,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방주 설계도에 무조건 순종했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완성된 방주가 아직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일생을 방주 건축에 매진했던 노아와 한참 달랐습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내 짧은 머리로 계산합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이성과 상식에 충실합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 20:29)
부디 성경말씀 읽을 때마다 하늘계획 환히 보고 활연관통 깨달아, 성찬말씀 먹을 때마다 주님 마음 고스란히 깨달아서 도마처럼 철저히 따지다가도, 노아처럼 마침내 송두리째 순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경으로 성찬으로 부활예수님을 옹골지게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말씀동시] 여전히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3학년. 「성실문화」94호)
예수님은 의심하는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예수님은 진리라고...
내가 예수님께 돌아오길 원한다고...
성경을 통해
설교말씀을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의 순간을 통해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말씀시조] 능력의 사도들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4호)
능력의 사도들이 예수부활 증언하고
온교회 신도들이 한마음 한 뜻 되네
전 재산 서로 나누니 가난한 자 없더라
[말씀서예] 사도행전 4:32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4호)
[말씀노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4호)
[본문] (요한복음 20:19-31)
[노랫말]
1. 유대인 무서워 문을 닫았네, 제자들 꽁꽁 숨어 꽁꽁 잠갔네
홀연히 나타나신 부활예수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2. 두근두근 제자들 떨리는 마음, 꽁꽁 닫힌 마음 문 두드리시네
너희를 보내리라 성령받아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3. 예수님 못 만난 쌍둥이 도마, 그 상처 만져봐야 나는 믿으리
잠긴 문 잠긴 마음 스며든 주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해설]
요한복음 20:19-31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3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4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1. 보- -- 라-, 형- -제 가-, 연합 하- 여-, 동- -거 함이,
어찌 그- 리-, 선- 하- 고-, 아- -름 다운, 고- -- --,
2. 머- 리- 에-, 있- -- 는-, 보배 로- 운-, 기- -름 이-,
수- -- 염-, 곧- 아- 론의, 수- 염에 흘러, 서- -- --∼
그- -- 의-, 옷- -깃 까지, 내- 림- 같-, 고- -- --,
3. 헐몬 의이 슬이, 시온 의산 들에, 내- -림 같도, 다- -- --,
거- 기- 서-, 여호 와께 서-, 복을 명령 하셨, 나- -- 니-,
곧- -- --, 영- 생이 로다, (영- -생 이로,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위의 두 줄은 세마치로, 아래 두 줄은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2주, 2018년 4월 8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도행전 4:32-35, 시편 133, 요한일서 1:1-2:2, 요한복음 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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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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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②‘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그를 보낸 사람으로부터 임무수행을 위한 모든 권리를 받는다. 성경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가 예수님의 12제자에게 쓰였고 바울서신에서는 바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였다.(사도행전)
③히브리 낱말 ‘샬롬’을 우리식으로 번역한 말. 무사, 안전, 온전, 건강, 번영, 성공, 안팎의 안녕 및 질서, 한마디로 포괄적인 구원이 ‘샬롬’이다. 샬롬 즉, 사람 사이의 ○○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사귐에 달려 있다. 신약성경에서 ○○는 무엇보다도 죄 때문에 깨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또 거기서 비롯되는 포괄적인 구원을 뜻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신 것은(에베 2;14, 미가 5:5) 하나님과 사람의 깨뜨려진 관계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요한복음)
④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이라는 뜻.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을 좇는 모든 성도(행 6:1, 7; 9:19)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해야 하고(요 8:31), 또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요 13:35). 그리고 ○○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라 강조하셨다(눅 14:26-27).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교회 당시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 A.D. 35-107년경)는 ‘○○’라는 말과 ‘순교자’를 동의어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의 도’란 생명을 내어 놓는 일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요한복음)
⑤우리와 맺으신 언약(言約)에 지극히 성실하신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실재를 드러내는 말로서, 예수님께서 평생의 삶과 가르침으로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셨다. 즉 예수님께서 이 ○○를 우리에게 전해주셨고, 성령님께서 ○○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완전히 풀이해 주신다. 그래서 성령님을 가리켜 “○○의 영”이라고 부른다.(요한일서)
⑦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은 ‘쌍둥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디두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가 의심 많은 제자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인도에서 순교하였다.(요한복음)
세로열쇠
①모세의 형으로서 출애굽 때 모세를 도왔다. 아우인 모세는 예언자, 형은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 레위 족속 중에서도 이 사람의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장직을 맡았다.(시편)
②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살려 주(主)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마음으로 받고, 회개하며 세례받은 무리들을 가리킨다.(행 2:41, 4:32). (사도행전)
③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을 가져오기 위한 ○○○의 제물. ○○○란 히브리어로 ‘쉘렘’인데 ‘온전하다’, ‘끝내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쟁을 종식하고 화평과 친교와 연합이 이뤄졌음을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다(출 20:24; 레 3:1-17). 신약성경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로 묘사하고 있다(롬 3:25; 요일 2:2; 4:10). 참고로, ‘○○○○’은 헬라어로 ‘힐라스테리온’인데, ‘달래다’는 뜻의 ‘힐라스코마이’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하게 하는 희생제물이란 의미를 갖는다.(요한일서)
⑤‘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요한일서, 요한복음)
⑥지명은 ‘거룩한 산’이라는 뜻으로서, 안티 레바논 산맥의 남쪽 산이다. 다메섹에서 남서쪽으로 48㎞ 지점에 있으며 팔레스타인 북방 경계를 이루고 있다. 팔레스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해발 2,769m의 이 산은 만년설(萬年雪)로 뒤덮여 있으며, 여기서 녹아내린 물은 갈릴리와 요단강의 근원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예벨 엘 세이크’(Jebelel-Sheikh), 곧 ‘백발산’(白髮山)으로 불린다.) 이 산의 면적은 남북이 30km로 중앙부에 3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북봉과 남봉은 가장 높고 서봉은 약 30미터 가량 낮다. 동편은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하부는 완경사로 다메섹 평원에 연하였고 서편은 완경사로 자우란의 고원이 전개 되었으며, 산령의 저온이 대기 중의 수분을 급격히 냉각하므로 야간에는 비와같이 충분한 이슬이 내린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라고 노래하였다.(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백두산 이슬이 한라산에 내리던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유학 가던 시절 이야기예요.
머리가 새하얀 백두산(白頭山)에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얀 머리가 더 하얘지겠네?
백두산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박수치며 만세를 부릅니다.
백두산 천지(天池)를 바라보며 누군가 목소리 높여 시를 읊조립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편 133)
중국을 통해 백두산관광을 하고 있는 한국관광객들입니다.
시를 읊조린 아줌마가 함께 온 친구들에게 설명합니다.
“지금 노래한 시편 133편의 헤르몬산은 여기 우리가 서있는 백두산 꼭대기만큼 높은 산이야. 해발 2,769m인 헤르몬산은 늘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지. 그 눈이 녹은 물이 흘러흘러 갈릴리 호수랑 요단강물이 된단다. 헤르몬산 이슬이 시온산에 내린다는 건, 딱 우리 백두산 이슬이 제주 한라산에 내린다는 뜻 같아. 참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노래지? 헤르몬산이 이스라엘 땅 가장 북쪽 끝에 있으니까, 이스라엘과 유다가 북과 남으로 분단되었던 시절 이 노래 시편 133편은 정말 <백두에서 한라까지>같은 감동이 있었을 거야! 그치?”
북측 예술단이 남측에 와서 공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측 공연단이 북측에 가서 공연했습니다.
백두산 이슬이 한라산 백록담에 가득 차오르더니, 이번엔
한라산 한라봉이 백두산 천지를 온통 오렌지주스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아줌마 친구들 가운데 제주도 친구 한 사람이 조용히 입을 엽니다.
“지금 우리 고향에선 70년 전 4.3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여념이 없단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제주도 사람들 수만 명이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 죽었습니다.
마치 미친 헤롯에게 죽어간 베들레헴 갓난아기들처럼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아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동네마다 4.3 희생자 한 사람도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지난 70년 동안 우리 고향에선 아무도 4.3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단다. 해마다 4월 3일이면 더 굳게 입을 다물었어. 학교 역사 선생님들도 입을 다물었고, 4.3 토벌대들 가운데 이북출신 기독교인이 그렇게 많았다는데도, 교회에서 아무런 회개도 화해도 하지 않았어. 오직 심방들만, 제주 무당 심방들만 노랫가락에 얹어 4.3의 한을 달래주었단다. 해마다!”
제주 언니의 촉촉한 눈매를 바라보며
교회 언니가 슬며시 다가가 손을 잡아줍니다.
“미안해! 그런 고통이, 제주에 그런 비극이 있는 줄 몰랐어.”
제주 언니 눈물이 교회 언니 눈동자에 내립니다.
제주 언니 눈물이 함께 온 모든 언니들 눈망울에 내립니다.
한라산 눈물이 지리산에, 태백산에, 설악산에 내립니다.
묘향산, 금강산, 백두산에도 내립니다.
남산, 삼각산, 북악산에 한라산 피눈물이 한없이 내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구멍 난 손바닥을 바라보다
도마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피눈물이 흐릅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핏물과 눈물이 도마의 눈망울에 내리신 겁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한복음 20:28)
떨리는 음성으로 고백하면서 도마는 계속 흐느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조용히 다가가 가만히 안아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쏙 빼닮은 교회들이 움직입니다.
마음 문 꽁꽁 닫힌 사람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들 마음속으로 블루투스 음악처럼 스며듭니다.
3월 26일 천안함 유가족들,
4월 3일 제주 4.3 유가족들, 그리고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을 연이어 찾아갑니다.
가만히 가서 곁을 지키며 가끔씩 함께 울어줍니다.
부활의 기쁨,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을 맛본 교회들입니다.
그런 교회들만이 거짓의 어두움을 찢고 진실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만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마침내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4:33)
주 예수의 부활 증언은 소리 없이 내리는 헤르몬의 이슬과 같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피눈물이 온 교회의 마른 심장에 내리고
부활 예수님의 빛나는 생명력이
온 땅 약한 자들의 구멍 뚫린 가슴가슴을 소리 없이 채워줍니다.
[이정훈 지음. 2018년 4월 7일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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