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가족사진 찍기
[성서일과 4본문]
(왕상 19:1-15)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7.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9.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시편 42, 43)
(42편) 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3.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4.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 일들을 지금 내가 기억하고 내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6.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7.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큰 폭포 소리를 따라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파도의 물결은 모두가 한 덩이 되어 이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8.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까?"
10.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니, 그 조롱 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43편) 1. 하나님, 나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비정한 무리를 고발하는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2. 나의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짓눌려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합니까?
3. 주님의 빛과 주님의 진리를 나에게 보내 주시어, 나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장막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4. 하나님, 그 때에, 나는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렵니다.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렵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내가 기뻐하면서, 수금가락에 맞추어 주님께 감사하렵니다.
5.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갈라 3:23-29)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누가 8:26-39)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 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36.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37.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시는데,
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오늘 4본문을 이어주는 공통주제는, ‘하나님 새로 알아가기’라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새롭고 생생하게 재정립하기입니다.
[구약]
엘리야가, 갈멜산의 영웅에서 갑자기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엎어져있는 패잔병의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집 떠나, 가족 떠나 풍찬노숙(風餐露宿), 딱 그 모습입니다.
아무런 예언자로서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절망의 상징 엘리야!
무엇 때문인가?
이세벨이 두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알맹이는 바로 이겁니다. 왜 이세벨이 갑자기 두려워졌는가?
그건 바로 하나님 신앙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헛갈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헛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하나님이랄까요? 아무튼 지금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무슨 조울증환자도 아니고, 갈멜산에서 보여줬던 하나님 신앙, 하나님만 의지하던 그 믿음의 흔적이 전혀 안보입니다.
마치 엘리야의 내면에 완성되었던 ‘직소퍼즐’ 하나님 그림이, 한바탕 흔들리는 바람에 상당히 허물어진 꼴입니다.
이런 엘리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갈멜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덩어리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아주 조용하고 따사롭게 나타나십니다.
천사를 두 차례나 보내시어 엘리야를 다독이시고 먹이십니다.
‘모유수유’하듯이, 마치 유모를 보내어 수유(授乳)하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7)는 말씀조차 매우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허물어진 하나님 그림이 엘리야의 내면에서 점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드디어 자리를 떨고 일어난 엘리야가 한참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 어느 동굴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엘리야는 한바탕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한 때 잘 나가다가 세상이 나를 배신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노라는 아무개 노숙인의 신세타령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을 완전 새롭고도 생생한 그림으로 완성시키시려는 듯 행동하십니다.
이 행동은, 형식적으로는, 창세 15:7-21에서, 설익었던 아브람에게 당신을 (당신의 뜻을) 점점 더 자세히 보여주시던 하나님의 그 낯설고도 세심하신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이 행동을 통하여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은 점점 더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느꼈던 태풍 같고 지진 같고 불 같은 모습을 넘어서, 하나님은 매우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아까 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중요한 뜻이 담긴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 때 세상 권력 따위가 두려워 벌벌 떨며 생명을, 사명을 포기하려 했던, 그 초라한 실패자를 각성시키시는 과정입니다.
너 자신을 바로 알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생명, 네 사명의 소중함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걸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다양한 모습을, 새로운 모습을 엘리야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또 이런 느낌이 듭니다.
엘리야가 아까 한 말을 반복하는 것을 유심히 느껴봅시다.
마치 녹음기처럼 반복합니다. 속으로 수없이 많이 반복 연습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걸 하나님 앞에서 두 번이나 쏟아내고 난 엘리야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좀 어설픈 심리학적인 상상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느껴집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가 무섭고 부끄러워서 꽁꽁 감추어두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또 쏟아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주시는 하나님!
분명한 것은, 이리저리 엉망으로 헝클어졌던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이 이제 거의 완성에 가깝게 생생해졌음입니다.
그걸 엘리야 자신의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야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 다정한 가족사진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엘리야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새로운 명을 내리십니다.
[시편]
오늘 시편은 딱 ‘엘리야의 노래’ 같습니다.
사람들이, 원수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고 빈정거립니다.(42:3, 10)
시인은 노래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42:9),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43:2)
이 시편의 백미는 세 차례 반복하는 후렴구입니다.(42:5, 11, 43:5)
“…하나님을 기다려라!…”
[서신서]
오늘 서신서의 알맹이는 “하나님의 자녀들”(26),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29)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린 그런 위대한 그림을, ‘거룩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
거라사 광인은 군대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약의 이세벨이 길길이 뛰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거라사 광인처럼 광야에서 노숙하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엘리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라사 광인의 모습은 딱 ‘하나님 부재(不在)’ 상황, 그 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더 많이 느껴집니다.
“예수를 만났다.”(27)
이 대목의 느낌이 강렬합니다.
뒤이어지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임자 만난 겁니다.
귀신들이 벌벌 떱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거라사 불쌍한 인생을 만나시자마자 대자대비(大慈大悲), 그 ‘큰 사랑과 큰 슬픔’이 발동하신 것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모습에서 이스라엘의 비극을 느끼셨을까?
로마 군대, 헤롯 군대, 유대 종교지도자들,,, 이 삼중고에 시달리는 저 헐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느끼신 걸까?
그리고 마침내 거라사 광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십니다.
끝까지 예수를 따르고 싶다고 애원하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의 분명한 증거, 생생한 증인이 되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나머지]
구약 본문, 왕상 19:1절에 엘리야의 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평소 내가 존경하는 남명 조식 선생님의 ‘칼’, 그리고 수운 최제우의 ‘용천검(龍泉劍)’입니다.
남명 선생의 칼은 상징성이 강합니다.
선비로서 늘 작은 칼을 차고 다닌 뜻은, 내 안에 무시로 솟아오르는 사심과 탐심을 베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운 선생의 용천검은 하늘과 통하고 하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으로서의 검입니다.
수운의 검은 목검(木劒)으로서 용담검무(劍舞)로 유명합니다.
수운의 검무, 즉 칼춤은 무예를 수련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더 깊이 이런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성경에서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즉, “좌우에 날선 검”(히브 4:12, 계 1:16, 2:12), “성령의 검”(에베 6:17)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인 나를 흐트러뜨리는 탐욕심,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온갖 우상들을 단호히 베어버리는 검입니다.
김재임 (OMSC, 'Joy in the Lord'; the collage Art of Jae-Im Kim, Vol. 1)
작가 김재임 선생님(겨자씨 교회) 동의를 얻어 여기 싣습니다.
그림을 원하는 분은 소속과 사용처를 밝히시면 첨부파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suhmoo@hanmail.net) 이정훈
[말씀동화] 칼춤 추는 길리야
길리야는 동학군(東學軍)의 접주(接主)입니다.
접주가 무어냐 하면, 한 고을의 동학 교인들을 대표하는 대장 같은 거죠.
그리고 동학군은 무어냐 하면, 춘향전에 나오는 변사또처럼 썩어빠진 탐관오리 사또들을 다 몰아내고, 조선을 삼키려고 들어온 일본군도 다 몰아내려고 힘차게 일어난 새로운 종교인 동학의 교인들이 만든 군대입니다.
길리야는 바로 그 동학군의 전라도 지역 제일 아래 고을의 접주였어요.
길리야는 특히 검무(劍舞)에 뛰어난 검선(劍仙)으로 유명했답니다.
검선은 칼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검무는 칼을 휘두르며 추는 춤이죠.
훤칠한 키의 길리야가, 송충이처럼 꿈틀거리는 짙은 눈썹 휘날리며 용천검(龍泉劍)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날아가던 새들도 공중에 멈추어 서고, 떨어지던 낙엽도 대롱대롱 멈출 정도로 온 세상이 숨을 죽였죠.
어느 달 밝은 밤이었어요.
길리야는 평소에 벼르고 벼르던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달빛에 취한 듯, 용천검 우아한 검무를 추던 길리야는 전설의 ‘달빛 가르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바로 그 순간, 길리야의 검은 어느새 부패한 고을 수령 안합(安欱) 사또의 정원 꽃나무들 사이에서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빛과 함께 갈라진 정원의 꽃나무들이 너울너울 춤추며 땅에 떨어졌습니다.
안합은 고을의 가난한 백성 나봄 아저씨가 가진 하나뿐인 과수원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정원으로 만들었었죠.
그 정원에다가 비싼 돈을 들여서 화려한 외국산 꽃나무들을 심었던 거고요.
그 많은 돈 역시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고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동학 접주 길리야는 용천검을 빼어들고 안합 사또가 애지중지하던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거였어요.
길리야의 용천검은 나무로 만든 칼이지만, 못된 무리, 못된 재산들은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명검이었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안합 사또의 부인 이새별이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한 거예요.
외제, 특히 일본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친일파 이새별은 자기가 애지중지 기르던 일제 꽃나무들을 길리야가 몽땅 망가뜨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당장 내 꽃나무들을 부러뜨린 길리야 그 놈을 잡아들여라. 내가 그 놈 손모가지를 댕강 부러뜨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어요.
천하의 검선 길리야가 갑자기 멘붕이 되어버린 거예요.
제아무리 표독스런 이새별이라 해도, 아무리 입에 거품을 문 미친개가 덤벼든다 해도, 그것 때문에 벌벌 떨 길리야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길리야는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동네를 등지고 떠나고 만 겁니다.
그 바람에 길리야를 따르던 동학교인들은 이새별이 보낸 포졸들에게 두드려 맞고 옥사에 갇히게 되고, 동학교당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죠.
길리야는 넋 나간 사람처럼 정처 없이 도망갔어요.
전라도 저 남쪽 끝에서부터 저 북쪽 끝 함경도 두만강까지 도망갔어요.
길리야는 두만강 가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님께 기도했어요.
“아! 상제님, 천주님, 한울님, 제가 하늘님만 믿고 씩씩하게 용천검을 휘둘렀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힘이 빠져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대장님들도 다 붙잡혀 죽고 이제 남은 게 저뿐입니다. 저 흘러가는 두만강 물처럼 이젠 제 생명도 저 세상으로 흘러가겠습니다.”
아하! 이제 알겠네요, 길리야가 왜 저렇게 멘붕이 되어버렸는지를!
그건, 의지할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길리야가 하늘님처럼 의지하던 분, 바로 동학을 처음 일으킨 수운 최제우 선생님과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님도 관군에게 붙잡혀 차례로 사형을 당하시고, 얼마 전엔 동학의 두 번째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님마저 사형을 당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길리야의 마음속에 있었어요.
태산처럼 의지하던 마음 속 하늘님의 그림, 내 마음 속에 그토록 선명하고 뚜렷했던 하늘님의 얼굴모양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거죠.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선명하고 정교하던 하늘님 얼굴이, 피카소의 그림처럼 애매모호하고 삐뚤빼뚤해진 거예요.
그 바람에 그토록 늠름하던 길리야의 용천검이, 이새별의 개거품 앞에서 미꾸라지처럼 흐물흐물해지고, 씩씩하게 휘날리던 송충이 눈썹이 마치 말복날 강아지 꼬랑지처럼 축 늘어져버린 거죠.
그렇게 두만강까지 도망 와서 쓰러져 있던 길리야에게 하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어요.
빨래 나왔던 동네 아줌마가 쓰러진 길리야를 발견하고는 얼른 물을 먹이고 도시락 싸온 개떡을 먹여준 거예요.
그리고 길리야는 다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어요.
그래도 아까보다는 배가 든든해서 그런지 악몽은 꾸지 않았어요.
하늘님께서 두 번째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연세 많은 두만강 뱃사공이 강변에 엎어져있는 길리야를 발견하고 노를 저어 와서 길리야를 깨워 물을 먹이고 물고기를 구워 먹였죠.
“보아하니 범상치 않은 분 같은데, 어쩌다가 이런 곳에 쓰러져 있나요?”
“네 어르신, 귀한 음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전라도 땅끝 마을 어느 고을 동학의 접주입니다. 어찌어찌하다가 관군에게 쫓겨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네요.”
길리야는 두만강 뱃사공과 마음을 열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지러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함경도의 뱃사공이나 전라도의 동학군이나 똑같았기 때문이죠.
나라가 어지러운 판국에 마음 속 하늘님까지 어지러워진 길리야의 아픔을 알게 된 뱃사공 할아버지는 길리야에게 매우 귀한 소식 하나를 들려주었어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아래 조양강에 가면 하늘님과 아주 가까운 절세(絶世) 고수(高手)가 살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 고수는 가리왕산을 중심으로 조양강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사는데, 무예가 뛰어날 뿐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적인 의사 화타와 편작보다도 열두 배나 뛰어난 의술을 가진 분이라는 거였어요.
길리야는 그 소식에 귀가 번쩍 띄었겠죠?
얼른 뱃사공 할아버지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났어요.
몇 날 며칠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강원도 정선 심심산골에 있는 조양강가에 다다랐습니다.
길리야는 잠시 숨을 돌리려고 강가에 앉았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산이 쪼개질 듯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어요.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바위가 날라 갈 지경이었어요.
뒤를 돌아보니 산기슭 공동묘지에 무언가 인기척이 있네요?
길리야는 바로 그 전설의 고수가 나타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가만 보니 그건 고수가 아니라 괴수였어요.
벌거벗은 골룸처럼 생긴 괴물이었는데, 머리카락은 별로 없고 얼굴 모양은 앞니가 툭 튀어나오고 눈알이 새빨간 쥐처럼 생겼어요.
“하늘님 저를 지켜주소서!”
길리야는 온 정신을 용천검 칼 끝에 모았어요.
그 때 왕쥐가 소리쳤어요.
“너는 입으로는 하늘님을 부르지만, 하늘님을 모른다는 걸 나는 안다. 나처럼 네 속에도 하늘님이 없다는 걸 나는 다 안다.”
하늘님 생각이 희미해진 길리야는 더 이상 왕쥐의 상대가 못되었습니다.
순간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골룸 왕쥐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어요.
길리야는 용천검으로 불기운을 막았으나 역부족이었죠.
결국 용천검은 허무하게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쓰러진 길리야를 향하여 골룸 왕쥐가 커다란 앞니를 날카롭게 치켜세우고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왔어요.
그놈의 빨간 눈이 번쩍 빛나는 찰라,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고요한 노랫가락이 들려왔어요.
“조양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모시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그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길리야에게 일격을 가하려던 골룸 왕쥐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순식간에 강변으로 달려가 납작 엎드리는 거였어요.
어느새 도착한 나룻배에서 그분이 내린 겁니다.
바로 그 전설의 고수였어요.
고수의 수제자인 처녀 뱃사공 배두나와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내렸습니다.
제자들은 역시 고수의 제자들답게 눈빛이 형형하고 비록 허름하지만 옷매무새가 단정했어요.
골룸 왕쥐가 고수와 몇 마디 나누는 듯 하더니 갑자기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네요?
고수가 품속에서 버들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하는 순간, 아뿔싸! 엄청나게 토악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골룸 왕쥐는 자기 몸뚱어리보다도 훨씬 많은 오물을 토해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오물들이 꾸물꾸물 천 마리의 쥐떼로 변하는가 싶더니 냅다 조양강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거였어요.
길리야가 입을 딱 벌리고, 그 많은 쥐떼가 강물에 첨벙첨벙 다이빙하는 걸 보는 사이에, 제자들은 골룸에게 옷을 입혀주었어요.
길리야가 다가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그는 이제 더 이상 골룸 왕쥐가 아니었어요.
눈빛도 더 이상 핏빛이 아니었죠.
그는 흥부처럼 맑은 눈을 가진 청년이었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이 청년은 원래 아우와 둘이 행복하게 사는 강원도 정선의 심마니였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우가 백년 묵은 산삼을 캐는 걸 보고 갑자기 놀부마음이 들고 말았어요.
질투심과 욕심에 눈이 멀어 착한 아우를 때리고 산삼을 빼앗아버린 거였어요.
산삼 때문에 순식간에 놀부로 변한 청년은 점점 더 욕심꾸러기가 되어가더니 어느 순간,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목이 타들어가는 천년악귀가 들어와 살게 된 것이었어요.
목숨을 건진 길리야와 청년은 은혜를 갚고 싶어서 고수를 따라가려고 했어요.
그러나 고수는 길리야와 청년에게 따뜻하게 타일렀어요.
“하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각자 하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세요. 젊은이는 탐욕스런 천년악귀가 빠져나갔으니 이제부터 잃어버린 하늘님 마음을 가득 채우도록 하세요. 그래서 아우와 더불어 작은 것도 이웃과 나누면서 흥부처럼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길리야씨는 새 검을 하나 드릴 테니 늘 지니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매일매일 힘차게 검무를 추기 바랍니다. 그리고 검에 새겨진 검의 노래를 늘 부르며 그 노래처럼 사세요. 그러다보면 잃어버린 하늘님 얼굴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새겨지고 어느새 길리야씨 얼굴에도 하늘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나실 겁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늘님과 한 몸 한 가족입니다.”
고수로부터 받은 검은 용천검처럼 목검(木劒)이었어요.
그 검에는 깨알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어요.
그 글은 하늘님의 지극하신 땅 사랑, 벗을 위해 목숨조차 내 주는 끝없는 사랑에 대한 글이었어요.
이제부터 길리야는 가는 곳마다 신나게 검무를 추겠죠?
길리야의 검무와 검의 노래는 도탄에 빠진 조선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어요!
(이정훈 지음,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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