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요한복음 14:10)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1:1-9)
1.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2.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8.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9.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시편 104:24-34, 35b)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35. (죄인들아, 이 땅에서 사라져라. 악인들아, 너희도 영원히 사라져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사도행전 2:1-21)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14:8-17(25-27))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창세기 11:9)
시편, “주님께서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30)
서신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행전 2:4)
복음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요한복음 14:12)
오늘 요절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입니다.(요한복음 14:1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11:1-9 / 시편 104:24-34, 35b)]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바벨탑’입니다.
인류가 신기술을 발휘하여(3) 하늘에 닿을 탑을 쌓으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 내려오셔서 탑과 도시를 관찰하십니다.(5)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봅니다.
①인류가 하늘에 닿을 만큼 아무리 높이 지어도 하나님께는 너무 낮고 미미할 뿐입니다.
②그럼에도 그게 도리어 인류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근심이 깊으십니다.
낮고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작고 낮은 약자들을 향하신 주님의 마음은 한결같으신 것입니다.
결국 말을 뒤섞으셔서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으실 때, 노동에 짓눌렸던 이들은 참 해방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고이고 뭉치고 커지면 생명은 빛을 잃습니다.
흐르고 흩어 나뉘어야 생명은 빛을 발합니다.
흘러야 생명입니다.
이것이 친히 피조세계에 내려오신 창조주의 마음이십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주님이 피조물을 돌보신다’입니다.
오늘 시편의 중심은 30절로 보입니다.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 이상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구약본문 창세기 11:7-9절 말씀과 짝을 이루면서 마치 지구를 리모델링하시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지구온난화 끝에 빙하기가 다시 오고, 그래서
공룡이 멸종하듯 노아시대처럼 인류의 99%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
창조질서 회복, 온 피조세계를 위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시편은 온 피조물을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회복하시는 새로운 창조!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십니다.(31)
친히 내려오셔서 피조세계를 돌보시는 주님!(32)
이에 대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바로 찬양뿐입니다.(33)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사도행전 2:1-21 / 요한복음 14:8-17(25-27))]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성령강림,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십니다.
바벨탑으로 인간이 제 이름을 날리려던 것과 반대로
주님께서 당신의 세상 임재를 알리십니다.
탑을 하늘높이 쌓아올리는 것과 반대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 할 불꽃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세찬 바람소리와 불꽃같은 혀의 모습으로 당신 임재를 드려내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하나님의 큰일들을”(11) 언어 기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아마도 120여명 제자들이 순식간에 설교자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설교는 없었다!)
루터 성경은 ‘방언으로 말하다’ 대신 ‘다른 언어로 설교하다’로 번역했습니다.(4)
베드로가 마무리 설교를 합니다.
요엘서를 근거로 이 언어 기적이(방언역사가) 하나님 심판 날의 시작임을 알립니다.
그러니 지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중요합니다.(21)
창조와 구원의 주, 그 이름 예수!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 성령,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예수님의 고별연설입니다.
빌립의 요구는 제자들 속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반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바로 앞에서 답을 주셨습니다.(6-7)
제자들은 듣고도 깨닫지 못하니 계속 불안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요한복음14:6-7)
예수라는 ‘길’을 통해 아버지께서 이미 여기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하시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10-11)
한걸음 더 나아가, 진리의 영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17)
우리도 그분의 일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서본문 역시 핵심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신다.
우리를 다시 짓는 창조와 구원, 창조질서 회복!
하나님의 이 큰일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행2:11, 요14:10,12)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성령강림절(1주)에 우리가 읽은 성서일과 본문들에는
주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그 일들은 우리 눈에 전혀 새로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실은 새로운 일이라기보다는 원래대로 회복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 창조질서를 회복하시는 일, 즉
하나님나라를 회복하시는 일!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빌립이 예수님께 매우 당돌한 요구를
아니 실은 매우 떨리는 청을 올립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청입니다.
갑자기 스승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시고(13:33)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신다는 어려운 말씀을 하시고(14:2)
그곳이 어디인지 그 길을 우리가 이미 안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고(4)
그래서 도마가 그 길을 여쭈니, 당신이 길이라고(6), 심지어 우리가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7)
그래서 참다 참다 빌립이 나선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말씀 그만하시고 그냥 쉽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빌립의 갈증, 우리 모두의 타는 목마름 같은 혼돈과 두려움을 느끼신 예수님께서
길고도 힘찬 대답을 해주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렇게 주신 오늘 예수님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자기의 일”(10), 그리고
“내가 하는 그 일들”(11), 그리고 우리가 하는 “그보다 더 큰 일”(12)
그리고 그 중간에 “내 계명”(15) 등은 모두 하나님 창조질서 회복, 즉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친히 예수님께서 내려오셨고, 성령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둡고 어지럽고 무질서한 우리에게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환골탈태 이상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과 일시적인 혼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견뎌내야 할 생명회복의 과정입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를 시작으로 6개월에 걸친 혼란에 이어
마침내 대통령선거를 치렀습니다.
이 지극한 혼돈 가운데 한국교회는 무엇을 봅니까?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알리는 지구의 변화, 피부로 느끼는 변화 가운데서조차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나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편안과 편리만 추구하며 무한 소비의 길을 내달리는 지금
이제라도 가던 길 멈추고 창조질서회복의 길로, 하나님나라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그날 빌립보다 더 혼란스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여쭙고 또 여쭐 때입니다.
에파타!(마가7:34) 내 귀를 덮고 내 입을 막았던 악마의 거짓말을 찢어버리고
미망에서 깨어나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입을 씻고
역사를, 현실을, 진실을 다시 읽고, 말씀을 다시 읽을 때입니다.
그래서 내 온 육체의 낡은 기운들, 상식인줄 알았던 몰상식의 힘을 다 빼내버리고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나를 맡겨
그분께서 내 안에서 신바람 나게 이루어가시는 당신의 일
성령님께서 이루어가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고 기록할 때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요한복음14:10)
[나머지]
* 바벨탑과 빌립 사이에서
구약 본문의 바벨탑은 마천루(摩天樓; 고층건물)를 연상케 합니다. 마천루의 마(摩)는 어루만진다는 뜻입니다.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은 다락집(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늘이 어루만지는 산’이라는 뜻의 천마산(天摩山)과 반대입니다. 그래서 마천루라는 이름이 은근히 불경스럽던 차에, 바벨탑에서는 아주 노골적인 불경(不敬)이 느껴집니다.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호기심 내지는 강한 과시욕이 느껴져서 더 그렇습니다. 경외심이 없었던 까닭은 바벨의 사람들이 하늘의 뜻에 무지했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빌립이 예수님께 매우 당돌한 요구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문득 바벨탑의 불경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빌립의 요구는 바벨탑의 불경과는 달리 순수한 갈망이었습니다. 바로 앞(6-7절) 예수님 말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그럼에도 빌립의 요구 안에 바벨탑과 닮은 게 하나 있다면, 하늘 뜻(주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요한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 바벨탑과 현대기술 사이에서
세상의 과학기술이 한없이 발전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발전하는 모습에서 오늘 우리는 다시 바벨탑을 느낍니다. 그렇게 발전한 세상, 스마트 기술의 극대화로 세상 언어의 장벽이 다 허물어질 세상은 또 다시 바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예감은 기우일까요? 바벨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토목기술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달, 그것으로는 결코 ‘흩어져야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최대의 랜드마크였던 바벨탑사건에서, 우리는 소통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하늘 뜻에 어두워져갈 수밖에 없는 이 반비례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더욱 겸허하게 하늘의 뜻을 살피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 환골탈태(換骨奪胎)
오늘 본문들 안에는 궁금증이 가득합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탑 쌓는 일을 하나님이 궁금해 하시고 (또는 하늘이 궁금하여 사람들이 탑을 쌓고) 사도행전은 듣도 보도 못한 언어기적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말씀을(7) 들은 빌립이 하나님아버지를 궁금해 합니다.(8) 오늘 시편은 이 모든 궁금증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 104:30-31) 세상에 탐욕이 차오르고 창조질서가 흐려질수록 창조주 하나님 기억이 희미해지고 생명의 기운이 희미해집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고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이 말이 어찌 감히 주님의 재창조 과정을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가던 길 멈추고 방향을 바꾸는 회개의 길조차 버거운 이 세대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어둡고 어지럽고 무질서한 우리에게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환골탈태 이상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과 일시적인 혼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혼돈은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생명의 과정이니 무늬만 제자라도 우리는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요14:17) 상상도 못한 <창조와 구원의 일>(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을 하십니다.(12) 바로 이 작고 작은 우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일은 그분이 하시니, 우리가 할 일은 이것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시104:33)
**** 진리가 우리 안에서 환하게 되살아나
오늘 4본문은 무언가 목구멍까지 꽉 찬 마지막 때에 주님(영)이 내려오시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이 내리시면 세상은 역전됩니다. 한 언어로 하나로 뭉치던 세력이 흩어지고(창세기) 각 언어로 흩어진 사람들이 한 언어로 통합니다.(사도행전) 죽었던 피조물이 다시 창조되어 땅이 새로워지고(시편) 웅크린 제자들이 능력의 종이 되며(사도행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던 제자들이 진리로 환해집니다.(요한복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시커먼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꽉 찼습니다. 공평과 정의는 간 곳 없고, 각계각층이 부정부패하고 불의합니다. 생명보다 돈, 민주보다 권력이 먼저인 정권과 기업의 오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문제는 이런 정권을 표로 심판하고 이런 기업을 불매로 심판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세상 껍데기들이 불타버리고 그 민낯이 다 드러났어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고집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징조를 흘려버리고, 이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리는 우리들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경험이 다르고 정보가 달라서 좋아하는 정당이 갈릴 수는 있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정당과 내가 좋아하는 정권의 상한 민낯이 드러났을 때는 상한 곳을 가리지 말고 드러내어 치료해야 합니다. (중략) 마지막 때가 차오를수록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손수 갈아엎으시고 그래서 생명의 질서를 잡으시고,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지으시고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지금 성령의 계절에 우리의 참스승께서 목숨 바쳐 가르쳐주신 진리가 우리 안에 환하게 되살아나길 빕니다. 부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몸 교회가 건강하게 다시 서서 씩씩하게 걸음마 배우던 초심을 회복하길 빕니다.
*****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다시 창조될 그날!
성령강림절기 첫 주일 성서일과 말씀들 안에서 바람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바람이 느껴집니다. 4본문 구석구석, 시편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숨결과 손길이 닿은 창조세계를 선한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 탐욕의 끝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짓는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그때 말의 소통을 막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사도행전본문에서는 말을 통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벨탑 사람들만큼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오셔서 일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요14:10) 더구나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 안에서 당신의 그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사실을!(요14:12)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104:31)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두려움의 뿌리인 탐욕을 꺾고 주님의 평화를 세우려 하십니다.(요14:27) 주님께서 기뻐하실 그 일을 아무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교회 안팎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올 것 같지 않은 그날, 그러나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다시 창조될 그날은 꼭 오고야 맙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시편104:30)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김은주 지음. 「성실문화」 123호)
근심은 지난 일을
염려는 다가올 일을
걱정하는 것이니
여기에 영원의 처소가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영원의 자리
근심하면서 기도하지 말라
염려함으로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시편시조] 시편 104,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3호)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어찌 이리 많은지요
주님의 영 불어 넣어 새로 나게 하십니다
나는야 숨 쉬는 내내 노래하리 주님을
[시편노래] 시편 104, 할렐루야 주 찬양 (이정훈 편사, 최창남 작곡. 「성실문화」 123호)
[본문] (시편 104:24-34, 35b)
[노랫말]
1.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어찌 이리 많습니까, 지혜로운 주의 솜씨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님이 지으신 것 온 땅에 가득하고, 물고기와 리워야단 온 바다를 노닙니다
2. 주님 손만 바라보는 온 세상 모든 생명, 주님 손의 먹을거리 만족스레 먹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온 생명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모릅니다
3. 호흡을 거두시면 흙으로 돌아가고, 주님의 숨 불어넣어 온 땅이 새로나니
새로워진 땅의 모습 주님께서 기뻐하고, 빛나는 주의 영광 영원무궁 찬란하리
4. 주님 눈길 닿으시면 온 땅이 진동하고, 손길만 스치셔도 온 산이 타오르네
내 숨이 다하도록 주님을 노래하리, 할렐루야 내 노래가 주님을 기뻐하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화가이자 동화작가이신 작곡가 최창남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04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어찌 이리 많습니까) (이정훈 편사, 최창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04:24-34, 35b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3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다함께]
35b.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말씀동화] 패랭이꽃 요양원의 신바람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패랭이꽃 귀에 꽂고 으쓱으쓱 어깨춤 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도 패랭이꽃 요양원 앞마당에 따듯한 햇볕이 쏟아집니다.
초여름 햇볕은 너도나도 싫어하지만
앞마당 화단 가득 패랭이꽃들은 이런 해바라기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요양원 보배동이 누렁 강아지 몽이는 더운 줄도 모르고 깡충거리고
오늘도 화단이랑 마당 구석구석을 다니며
찍찍 오줌세례를 줍니다.
어느덧 하얀 조팝나무 꽃이랑 이팝나무 꽃 다 떨어지고
아카시 꽃까지 다 떨어졌지만
아직도 씩씩하게 요양원 울타리를 빛내고 있는 것은
새빨간 덩굴장미들입니다.
낮고 작은 패랭이꽃들이 이구동성으로 재잘거립니다.
“덩굴장미 너네는 정말 부지런해. 그렇게 키가 큰데도
꿈틀꿈틀 울타리 꼭대기까지 계속 올라가네”
으쓱으쓱 덩굴장미들이 대답합니다.
“어디 언니들만 할까. 패랭이꽃 언니들만큼 팽팽한 꽃잎은 세상에 또 없지.
피부 관리를 얼마나 부지런히 했으면 그렇겠수?”
까르르 까르르 패랭이꽃들이 웃음보를 터뜨리며 대답합니다.
“피부 관리를 어디 우리가 하니. 매일매일 해님이 발라주시는 햇빛크림 덕분이지”
패랭이꽃과 덩굴장미들의 한바탕 수다에 강아지 몽이가
멍멍 끼어듭니다.
“어디 매일 해님이 부어주시는 햇빛크림뿐이겠어?
매일 내가 부어주는 오줌거름도 있잖아!”
몽이의 너스레에 패랭이꽃도 덩굴장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구동성으로 투덜거립니다.
“몽이 너는 물 좀 더 많이 마셔라. 어린 애 오줌이 지린내가 너무 심해!”
패랭이꽃과 덩굴장미의 불평을 듣는 둥 마는 둥
깡충깡충 몽이는 오늘도 요양원에서 가장 씩씩하고 명랑합니다.
이윽고 요양원 현관문이 열리며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하나 둘 해바라기를 하러 나오십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나와 잠깐 동안 건강 해바라기를 하는 이 시간은
패랭이꽃 요양원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무 말도 없이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는 할머니는
치매가 깊으신 몽롱 할머니십니다.
머릿속 지우개가 어릴 때 기억은 물론 모든 단어들까지 지워버려서
이제 몽롱 할머니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못하십니다.
얼마 전까지는 앵무새처럼 메아리처럼
요양보호사 선생님 말을 아기처럼 따라 하기만 하시더니
언제부턴가 그마저 잦아들었습니다.
치매 때문에 점점 아기가 되어가다가 이젠 아예 태아처럼 조용해진 몽롱 할머니 뒤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얼른 훔치고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30)
바로 그때 누렁 강아지 몽이 코가 벌름벌름, 눈은 보름달처럼 커지고
패랭이꽃과 덩굴장미들의 꽃잎들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세상에 없을 신비로운 향기가
노래를 따라 불어온 하늘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입니다.
그 순간 파르르 떨던 덩굴장미 빨간 꽃잎 하나가 하늘바람결에
하늘하늘 춤을 추며 떨어져 몽롱 할머니 머리위에 내려앉고
몽롱하던 할머니의 눈에서 순간 은하수가 쏟아지더니
할머니의 귀가 번쩍 열려 패랭이꽃과 덩굴장미, 그리고 몽이의 이야기까지 들리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104:31)
몽롱 할머니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세상에서 가장 작은 노랫소리를
가장 먼저 몽이가 듣고 이어서 패랭이꽃과 덩굴장미가 듣더니
몽이는 몽롱 할머니 앞에서 깡충깡충 춤을 추고
요양원 모든 꽃봉오리들이 활짝 피어올라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난생처음 하늘 향기에 취한 요양원 식구들의 귀에, 과연
몽롱 할머니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몽롱 할머니와 눈 맞추며 깡충거리는 몽이의 춤바람에 신바람이 더해만 갑니다.
[이정훈 지음. 2025년 6월 7일 토요일 아침]
[사도행전 2:1-21절의 성령강림과 방언사건을 기억하며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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