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실문화 유튜브를 처음 시작한 뒤, 시편송서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서 참고가 될만한 글을 올립니다.)
2022 신정절(왕국절∙창조절) 예배력에 따른 예배교육 지침서
이정훈 (연구위원)
1. 예배 단상
【 예배수첩 – 시편, 시편가, 시편송서 】
“가뜩이나 작은 교횐데 오는 손님까지 다 막아버리네. 시편송서가!”
지난 여러 해 동안 ‘시편송서(詩篇誦書)’가 제 고향인 성실교회에서조차 시시때때로 눈총을 받아온 까닭은, 어쩌다 주일예배를 찾아 처음 성실교회 예배당에 올라온 손님들이 점심 권유도 마다하고 부리나케 떠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시편송서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시편송서 특유의 가락 때문에 가뜩이나 낯선 예배가 더 낯설고 심지어 교회의 정통성마저 의심받는다는 조금은 타당한 혐의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보아도 그게 어찌 시편송서 때문 만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애꿎은 시편송서만 탓하다니! 한창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은총의 나이에 눈총만 받으며 자란 천덕꾸러기 시편송서가 어느덧 만 열두 살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성대하게 성인식 잔칫상이라도 차려주고 싶으나, 여기 육아일기 두어 장만 남긴다.
시편송서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여러 서당의 학생들과 방방골골 선비들의 입을 통해서 오랜 세월 동안 꽃피고 열매 맺은 ‘송서문화’에서 빌린 것이다. 송서(誦書)란, 글을 외우기 위해서 가락 위에 얹어 읊조리는 공부 방식을 말하는데, 그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지금까지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송서예능보유자’들을 통해 전수되어 오고 있을 정도다.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송서 가운데서도 첫걸음에 해당하는 천자문 독송 가락인데, 성실문화원(성실예배교육문화원)이 세운 <성실서당>에서 강주이신 무불달 오세종 목사님께 배웠다. 서당 지킴이 노릇하며 매년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10년을 반복해서 읊조리다보니, 천자문 독송가락이 시나브로 내 몸에 스몄다.
천자문 독송가락이 알고 보니 우리나라 현존 노래가운데 가장 오랜 노래일 ‘자장가’ 가락이고 그 장단이 우리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굿거리장단이라는 것을 깨달아갈 무렵 나는 「성실문화」에 시편송서를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12년 전인 2010년 「성실문화」 63호의 ‘예배마당’(102-103쪽)에 시편송서를 ‘시편가’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했다. 그렇다. 시편송서는 시편가(詩篇歌) 여러 형식 가운데 하나인데 아직 ‘시편’과 ‘송서’라는 이름을 결합시키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서 같은 해 2010년 대림·성탄·주현절「성실문화」65호부터 ‘시편송서’라는 이름을 처음 지어 부르기 시작했으니, 성서일과에 따른 ‘시편송서’ 연재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돌아보면 나에게 시편송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주님과 나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오작교다. 내가 언제부터 시편에 물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단편들이 있다. 1994년 말에 시작한 성실문화 일꾼들 정기모임 찬양시간에 서종원 전도사(목사. 감신대 교수)가 낯선 찬송가 한곡을 골라주었다. 통일찬송가 437장 ‘주 나의 목자 되시니’였다. 참으로 놀라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편가라니! 그것도 그토록 오래 내 찬송가집 안에 꽁꽁 숨어있었다니! 과문(寡聞)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나는 감탄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다. 알고 보니 그런 놀라움을 느끼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얼마 뒤 내가 속했던 두레연구원 정기모임 찬양시간에 나는 이 찬송을 추천했다. 노래를 부르고서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감탄하였다. 이리 아름다운 시편가를 이토록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도나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 귀한 보물을 찾아준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 뒤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시편가를 추천했고 그때마다 대부분 낯설어하면서 동시에 감탄하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러운 일은 2006년에 「새찬송가」를 펴내면서 벌어졌다. 새 찬송가에 이 귀한 시편가 ‘주 나의 목자 되시니’를 누락시킨 것이다. 너무나 놀랍고 의아해서 찬송가공회 책임자들에게 물어보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 노래가 한국교회의 애창곡은커녕 아예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가뜩이나 시편가가 부족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이상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같은 해 2006년 6월에 우리 도서출판 성실문화에서 귀한 책 한권을 펴냈다. 석진우 선생이 지은 「시편노우트」다. 석진우 선생님은 1930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시편을 연구하며 가르쳐온 분이고, 찬송가 작사가 석진영 선생님의 아우시다. 상·하권 두툼한 두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읽고 또 읽으며 하나하나 원고를 매만지면서, 시편을 사랑하는 노인의 열정에 감탄하였고, 나 또한 더불어서 시편의 바다에 침잠완색(沈潛玩索)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보다 한 10년 전쯤 1990년대 중반 경에 나는 외종조부이신 박재훈 목사님께 벼르고 벼르던 청을 드렸다. 다름 아닌 ‘시편가’ 짓기였다. 선교 100년이 지나도록 시편가집을 갖지 못한 한국교회의 부끄러움과 사명감으로 시작한 꿈이었으며, 평소 그 최적임자라고 생각하던 두 분, 목회자이며 음악가이신 박재훈 목사님과 문성모 목사님 두 분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도록 다리를 놓아드린 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캐나다와 한국이지만, 뜻이 통하면 끝내 이룰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시편가집이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귀국하신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시편을 가사로 다듬을 시인을 찾지 못하겠다는 말씀이셨다. 문득 히브리어에 능통한 구약학자면서 시인이신 분, 우리가락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신 문익환 목사님이 떠올랐다. 허나 그 어른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지 오래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가지를 뻗기 시작한 성실문화원은, 2002년부터 급속도로 여러 공부모임을 만들어나갔다. 성실서당을 비롯해서 십여 개 연구소를 만들어서 그 활동상황들을 「성실문화」32호부터 책 뒷부분에 한동안 실어 소개하였다. 그 연구소들 가운데 하나가 ‘한국예배음악연구소’(소장 이천진목사)였다. 한국예배음악연구소는 성실문화원에 속한 또 다른 연구모임인 ‘국악선교단 여디디야’(단장 이방실 선생)와 협력할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한 모임인데, 가장 처음 시작한 일이 바로 시편가 짓기였다. 그때 내가 시편 104편을 편사하여 한국예배음악연구소 일꾼들에게 드리자 바로 다음번 모임 때 멋진 시편가들을 지어 와서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합창하였다. 그 때 이천진목사, 김영준목사, 윤혜림 선생 등 세분이 곡을 지은 시편가 ‘온 생명의 노래’의 악보 세 개가 「성실문화」103호 ‘시편노래’에 실려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교회를 위한 시편가집 만들기를 꿈꾸며 큰 걸음을 내디뎠으나, 안타깝게도 더 전진할 수 없었다. 소장인 이천진 목사님이 학원선교(교목) 일을 그만두고 담임목회를 시작하게 되고, 나 또한 양평성실교회 건축이라는 큰 일이 겹치면서 미루기를 반복하다가 한동안 묻어두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편가 짓기가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단 나 혼자라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시편가 짓기를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시편송서 짓기였던 것이다. 시편송서는 내가 꿈꾸던 시편가의 바탕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원래 히브리인들의 시편가가 그러했듯이, 단순한 노동요 몇 가락에 번갈아 여러 시편 가사를 얹어 부르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반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가락을 찾았고, 가장 오랜 노래인 자장가가락(천자문 독송가락), 아리랑가락, 그리고 새야새야 가락을 골랐다. 그리고 최근 「성실문화」111호에 처음으로 ‘홀로아리랑’가락(한돌 지음)을 시도하였다. 홀로아리랑이 우리 한반도와 해외동포들의 애창곡이라고 보았으며, 그래서 이 노래의 원래 노랫말과 뜻이 통하는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예배 및 6.25를 비롯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 관련 예배의 시편송서 가락으로 취하기로 한 것이다.
시편송서는 처음엔 다들 어렵게 느끼나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익혀보면 금세 참 쉽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시편송서는, 가락은 이미 익숙하므로 장단(長短)만 신경 쓰면 되니,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나 쉽게 악보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여기저기 몇 차례 시편송서 인도 경험을 통해서 확인했다. 내가 「성실문화」와 성실교회 주일예배 외에 처음으로 시편송서를 공개한 곳은 성실서당의 어느 출판기념회 예배였다. 역시 천자문을 뗀 성실서당 동인들답게 모두가 시편송서를 금세 쉽게 불렀다. 두 번째로 시편송서를 공개한 곳은 감리교 정회원연수교육 때였다. 두어 차례 예배학 강사로 불려간 일영 연수원에서 나는 여러 정회원 목사님들께 한국교회 예배문화를 강의하던 중간에 시편송서를 소개했다. 한차례 가르쳐드리고 나서 함께 부르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강의 마친 뒤에 어느 목사님이 다가와서 자신의 일터를 소개한 뒤에 감리회 본부 홈페이지에 올리게 악보와 음원들 달라고 청하셨다. 내심 기뻤으나 사양하였다. 한 10년 정도 반복하며 다듬은 뒤에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시편송서 음원을 성실문화 블로그(티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평소 내가 존경하는 선배이신 지성수목사님께서 당신이 만들어 이끄시는 아둘람공동체 예배를 소개하면서 그 온라인 예배 때 시편송서를 사용하고 싶으니 음원을 달라고 하셨다. 평소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늘 격려해주시던 선배께서 시편송서의 진가를 알아주셔서 기뻤다. 지 목사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시편송서라는 시편가의 탄생을 놀라워하며 칭찬해주신다. 내색은 안 했으나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한국교회를 위한 ‘시편가’를 지으려는 여러 차례 산통 끝에 마침내 「성실문화」에서 태어난 ‘시편송서’는 이번 「성실문화」112호로 딱 만 열두 살이 되었다. 그동안 개역개정 번역 성경의 시편원문을 그대로 살리려 애쓰면서, 3년 주기 성서일과 본문을 4차례 반복하면서 조금씩 다듬어왔다. 앞으로 더 다듬어갈 것이며, 또한 새번역, 공동번역 등 다른 번역으로도 시편송서를 시도할 예정이다. 부디 시편송서의 모태인 「성실문화」의 여러 동인들께서 애정을 갖고 시편송서 짓기와 부르기에 동참해주시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3년 전부터 시편송서와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시편노래(시편가) 짓기와 부르기에도 동참해주시기를 바란다. 성실문화를 통하여 다양한 시편가를 꽃피우게 하시고, 열두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린다.
[「성실문화」 112호 (2022년 8월) 지침서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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