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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2주(2023년 1월 15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고린도전서 1:9)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49:1-7)

1.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4.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 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올바로 심판하여 주셨으며, 내 하나님께서 나를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

5.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7. 이스라엘의 속량자, 거룩하신 주님께서, 남들에게 멸시를 받는 사람,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왕들이 너를 보고 일어나서 예를 갖출 것이며, 대신들이 또한 부복할 것이니, 이는 너를 택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신실한 나 주 하나님 때문이다."

 

(시편 40:1-11)

1. 내가 간절히 주님을 기다렸더니, 주님께서 나를 굽어보시고, 나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네.

2. 주님께서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 주셨네. 내가 반석을 딛고 서게 해주시고 내 걸음을 안전하게 해주셨네.

3. 주님께서 나의 입에 새 노래를,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담아 주셨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네.

4. 주님을 신뢰하여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복되어라.

5. ,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널리 알리고 전파하려 해도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6. 주님께서는 내 두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사나 예물도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번제나 속죄제도 원하지 않습니다.

7. 그 때에 나는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에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8.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9. 나는 많은 회중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아시듯이, 내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10.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의를 나의 가슴 속에 묻어 두지 않았고, 주님의 성실하심과 구원을 말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그 미쁘심을 많은 회중 앞에서 감추지 않을 것입니다.

11.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니, 주님의 긍휼하심을 나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과 미쁘심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십시오.

 

(고린도전서 1:1-9)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9.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29-42)

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33.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게 하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34.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35. 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38.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랍비''선생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 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41.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메시아''그리스도'라는 말이다.

42.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게바''베드로' '바위'라는 말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친교하시다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이사야서 49:1)

시편,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에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시편 40:7)

서신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고린도전서 1:2)

복음서, ‘“와서 보아라그들이 따라가서... 그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요한복음 1:39)

 

오늘 요절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입니다.(고린도전서 1: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49:1-7, 시편 40:1-11)]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의 구원, 이방의 빛입니다.

지난 주 본문 주님의 종의 노래에 이어서 주님의 종의 음성이 우렁찬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종2이사야서에 42:1-4, 49:1-6, 50:4-11, 52:13-53:12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나(예언자)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택하신 목적은 날카롭고 급속한 말씀(2), 구원의 말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말씀을 전하시려는 것입니다.(3)

이 귀한 일을 맡기실 귀한 종인 나에게 주님은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십니다.(5)

 

그런데 6절의 뭇 민족의 빛즉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주는 임무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주현절(主顯節) 2주에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1절의 섬들은 지중해 해안의 여러 나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고,

4절 전반부의 탄식은 예언자 엘리야와 예레미야의 탄식을 떠올립니다.

(열왕기상 19:10, 예레미야서 20:7-8)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시인은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서 회복된 큰 기쁨의 찬양을

회중 앞에서 노래합니다.(1,3,9,10)

 

그렇게 주님께 간구하고 응답받으며 점점 주님과 친밀해진 시인은

주님 말씀 경청할 귀가 활짝 열려(6)

주님께서 진짜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주님 뜻을 행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 뜻에 순종하고 주님의 구원소식 전하기를 춤추듯이 기뻐 행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1-9, 요한복음 1:29-42)]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인사와 감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첫머리부터, 바울과 고린도교회가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고 성도라는 사실을 밝힙니다.(1-2)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친교입니다.(9)

 

우리가 예수님과 친교한다는 말의 바탕에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2)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평화를 받고(3),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7)

그렇게 점점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세워져간다는 사실이(8) 기초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라, 첫 번 제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또 하나의 목적인, 세례자요한의 <증언> 과정을 보여줍니다.

 

세례자요한은 자신이 거행한 예수님 세례예식 과정에 나타난

성령의 내려오심과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29,36), 하나님의 아들”(34)이심을 깨닫습니다.

 

이로써 세례자요한의 이어지는 사명은

예수님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이고,

어린양이시라는 사실, 즉 세상 죄의 제거를 위해

그것을 다 짊어지실 분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 증언에 따라 요한의 제자들 중 두 명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이어서 시몬까지 예수님을 만나서 새 이름을 받을 만큼 가까워집니다.(42)

요한복음의 예수님 첫 음성인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는 말씀이

매우 상징적이고 강렬합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참조)

 

 

[정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주님으로 세상에 드러나시고

그렇게 드러나신 예수님을 우리가 발견하고 따르는 주현절 둘째 주일에

우리가 받은 성서일과 본문말씀은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귀한 종으로(49:5) 부르시고, 제자로 부르시고(1:38-39)

성도(고전1:2), 친구로 부르십니다.(15:14, 12:4)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복됩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는 귀가 아니라,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시편40:6)

그 사랑의 음성 남김없이 들으려고 세 개의 귀를 손으로 모으는

<당길 섭()>이라는 글자를 봅니다.

재방(손 수 )변에 귀 이()가 세 개!

 

그런데 그리 정성스레 귀를 모으는 것은 주님이 먼저이십니다.(40:1)

주님께서 나를 성도로 부르셔서 친밀한 친구 되게 하시려고

내 신음소리, 내 작은 하소연까지 귀 기울이시는 주님의

그 사랑의 길, 친교의 섭리(攝理)!

 

내 작은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신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복음(福音)에 내가 귀 기울입니다.

허물투성이 나를 부르시는 주님께 주저주저 한걸음 다가가니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1:38)

 

허물투성이였던 내가 나를 부르시는 주님 말씀 듣고 한걸음 다가가니,

한걸음 두 걸음 점점 흠 없는 사람이 되어갑니다.(고전1:8)

미쁘신 주님(40:10-11), 신실하신 주님께서(49:7, 고전1:9)

나를 점점 주님 닮아가게 하시는 중이십니다.

 

 

 

[나머지]

* “새 노래

새 노래에 대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며 찬양하는 노래라고 풀이한 주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새 노래란, 나를 꽁꽁 묶어둔 악한 사슬을 끊어버리고 다시 주님께 달려가 친교하게 되었을 때 부르는 노래일 것입니다그 때 그 노래는, 늘 부르던 찬송가여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 출렁이는 노래일 것입니다.

 

** 새 이름, 새 노래로1

오늘 시편의 시인은 새 노래를 가리켜 주님께서 나의 입에 담아주신 찬송이라고 고백합니다.(3) 이것은 나의 상상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래일 것입니다. 이 시인이 부럽습니다. 나도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시몬에게 새 이름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만나자마자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 ‘바울이 그렇듯이 새 이름에는 주님의 뜻이 담깁니다. 오늘 본문들에는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주님의 여러 종(제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구원) 노래가 흐르고 그들을 향하신 가슴 뛰는 계획이, 나를 향하신 주님의 꿈이 펼쳐집니다. 시인은 새 노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시몬은 게바라는 새 이름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새 노래를 왜 주셨고, 새 이름을 왜 지어주신 걸까요? ,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시편 40:5)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까닭,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계획이 때론 모호하고 두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이 결국 나와 친교하시기 위한 사랑의 계획이요(고전 1:9), 마침내 우리를 위한 계획이라는 사실을(시편 40:5) 오늘 시인은 신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 새 이름, 새 노래로2

지난주일 복음서본문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부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를 잘 아신다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셨는데, 오늘 복음서본문은 예수께서 우리를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두말하면 잔소립니다. 다른 본문들 역시 주님께서 이미 나를 환히 알고 계심이 핵심입니다.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이사야서 49:1)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시편 40:7)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요한복음 1:42)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고전 1:9)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친하게 여겨 오신 하나님! 오늘 본문들을 꿰고 있는 <친교>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이 있으며, 그 친교의 목적은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시는 일입니다.(고전 1:8) 교회가 튼튼해질수록 하나님과의 친교, 교회 안팎의 친교는 더 무르익고 향기로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34)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42) 시몬을 알아보신 뒤 곧바로 게바라는 이름으로 부르시겠다고 했는데, 나를 불러주실 새 이름은 무얼까, 그게 궁금합니다. 이 궁금증을 풀 길은,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정면으로 만나는 길 뿐이겠죠? 그럼 주님께서 불러주실 나의 새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내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일까요? 아무튼 꿈에라도 우리 예수님 만나면 바싹 다가가 나의 새 이름 듣고, 새 이름으로 새 노래 한바탕 부르렵니다.

 

**** 새 이름, 새 노래로3

한 주간 말씀묵상 중에 유난히 나의 마음에 맴도는 이름 게바”! 시몬의 새 이름, 주님께서 친히 불러주신 그 이름, 시몬의 귓가에 내내 맴돌았을 그 새 이름이 느껴집니다. 그의 귀에 담긴 새 이름을 묵상하다가, 문득 오늘 시편의 새 노래가 내 입에 담깁니다. 주님께서 나의 입에 담아주신 새 노래!(40:3) 게바라는 새 이름은 교회를 세우는 이름이었습니다. 허물어진 교회를 다시 세우려고, 쓰러진 등대를 세워 기름을 채우려고 애써온 시간들이 문득 겨울바람처럼 스칩니다. 돌아보니 찢어진 깃발처럼 하릴없이 펄럭이는 교회개혁의 쉰 목소리, 그 가느다란 소리가 겨우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교회를 떠나고 있는 사람들이(49:5-6)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 탐욕의 시스템을 향하여 다시 눈을 부릅뜨다가도, 그 해묵은 좌파목사 소리에 오랜 상처가 다시 아립니다. 아직도 어리고 여린 이런 나와 벗들에게 오늘 말씀의 느낌이 구구절절 남다릅니다. “주님을 신뢰하여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복되어라!”(40:4) 문득 지난 정초에 서울 사시는 송 아무개 권사님으로부터 카톡으로 받은 새해 덕담이 귀에 쟁쟁합니다. “주님의 팔복 많이 받으세요!”(5:3-12) 그 길이 고통스러운 길인 걸 알지만, 거기 주님의 팔복이 있음을 더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새해 덕담에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만드시고 날카로운 화살로만드셨던 주님께서(49:2) 오늘 새 노래를 내 입에 담아주십니다.(40:3)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라고 위로하시고, 당장 무너져버릴 것 같으나 그게 아니라고,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이라고(고린도전서1:8) 그렇게 새 힘 주시고(49:4) 마침내 새 노래를 담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골방에 스스로 갇혀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벗들, 그리운 동지들에게 이 새 노래를 불러주렵니다.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주시는 주님, 든든한 너럭바위 게바 같은 반석을 딛고다시 서게 하시는(40:2) 나의 하나님의 그 한결같은 사랑과 그 미쁘심을!(40:10-11)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40:8)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고린도전서 1:9)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세례자 요한이 두 번씩 반복하는 중요한 말들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촉구하는 장면이 두 차례 반복됩니다.(29, 36) 어린양은, 하나님과 빗나간 백성들 사이의 친교를 위한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촉구하던 요한 자신이 보았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이 내리시는 성령님입니다. 이 역시 두 차례 반복됩니다.(32, 34) 물론 이 장면은 지난주일 주제인 삼위하나님의 연대, 그 강렬한 친교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역시 두 차례 반복됩니다.(31, 33) 깊은 친교로 들어가기 직전 단계의 모습입니다. 마침내 그분을 알게 됩니다. 안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주님과의 친교는, ‘증언이라는 형식으로 열매 맺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 나오는 주님과의 친교는, 세례자 요한의 친교를(증언을) 이어 첫 제자들과 예수님의 친교로 넘어갑니다. 예수님과의 친교를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모와 재산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제자 안드레와 동료는(아마도 요한), 첫 스승인 세례자 요한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습니다.(37)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오셨고, 마침내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우리와의 친교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단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오늘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그 숙식하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함께 먹고 마시며 친교를 나눕니다.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기 위한 동지들의 첫 친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 친교의 대미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장면입니다. 이름을 알고,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친교의 기본입니다.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당길 섭()이라는 글꼴

지난 수요일 미술전시회에 갔습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25번지에 있는 <갤러리 제이콥1212>에서 성실문화 연구위원 이웅배 교수가 개인전을 해서 간 것입니다. ‘이야기-신비롭고 투명한이라는 주제였고, 기대한대로 성경말씀에서 퐁퐁 샘솟은 작가의 상상력이 참 달고 따듯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저의 눈을 끈 작품은 기뻐서 미친 듯 춤추기(2)’였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춤추는 사람의 모양이 매우 절실하고 웬일인지 그 춤사위가 부러웠습니다. 이어서 작가가 추천해준 그림을 보았습니다. 귀 세 개를 손으로 모은 모양인데, 이것이 바로 섭()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한 그림이라는 작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귀가 솔깃하다 못해 온 마음 온 몸이 솔깃해졌습니다.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 “주님께서는 내 두 귀를 열어주셨습니다”(시편40:6) 이 구절을 며칠 묵상하던 중이었거든요. 내가 주님 뜻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이어서 섭리하시는 분인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귀 기울이시는 모습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먼저라는, 하나님이 귀 기울이시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섭리;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 (다음사전)> 작가의 상상력 덕분에, 내가 의식하기도 전부터 이미 하나님과 내가 친밀해지기 시작했다는 참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귀를 기울이다-섭리(攝理), 545×788x5mm, Digitally printed on toughented low-iron glass, 2022]

 

[기뻐서 미친 듯 춤추기 (2), 545×788x5mm, Digitally printed on toughented low-iron glass, 2022]

 

* <이야기-신비롭고 투명한 (Narrative Mystified Transparency)> 작가의 말
투명성은 사람의 생각이나 능력 밖에 있는 신비를 설명하기에 용이하다. 이론과 상식 너머에서 쉼 없이 일어나는 묘한 진실은 언어나 문자로 다 표현될 수 없어서, 예술가는 이미지를 만든다. 나는 그려놓은 이야기의 이미지를 유리 위에 더해서 그 속에 감추어진 것들을 투명하게 비춰내고 싶다. 폭포가 떨어진 용소의 깊은 물웅덩이처럼 유리의 환히 비치는 너머로 그 신비가 흔들리며 비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웅배 개인전>
갤러리 제이콥1212 
2022.12.27~2023.1.19
오프닝12.27(pm16)
(종로구 북촌로25 북촌해물 B1)
화~일요일14:00~19:00(월쉼)
02-3675-1002 

 

 

 

 

[말씀동시] 하나님의 어린양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3)

죄 많은 세상 불쌍히 여기시어

약속하신 대로 직접 찾아오셨네

인간의 몸으로 우리 곁에 계시지만

모든 죄 끌어안을 사랑으로 가득하시네

넘치는 사랑에 끌려 모여든 이들

랍비 뵈러 가서 메시아 뵙고 나와

물렁했던 마음가짐 바위처럼 든든해지네

 

 

 

 

[시편시조] 간절히 기다리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3)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 나를 굽어보고

내 입에 새 노래를 새 찬송을 담으시네

주의 뜻 즐겨 행하는 저를 지켜 주소서

 

 

 

 

[시편노래] 시편 40, 주님을 기다리고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13)

[본문] (시편 40:1-11)

[노랫말]

1. 주님을 기다리고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 나를 굽어보사 나의 통곡 들으시네

멸망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 주신 주님, 반석 위에 세우시고 나의 길을 지키시네

2. 새 노래 새 찬송을 내 입에 담으시니, 나를 보는 사람들이 주님을 의지하네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만 의지하니, 우상들 멀어지고 주님의 복 가까워라

3. 놀라우신 주님 역사 우리 위한 주의 계획, 헤아릴 수 없사오며 열거할 수 없습니다

예물도 제사상도 원하지 않으시니, 열어주신 나의 귀로 그 사랑을 듣습니다.

4. 주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신 계획 따라, 두루마리 기록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제 마음 속 주님의 법 순종하고 순종하여, 구원의 주 기쁜 소식 쉬지 않고 전하오리

5. 나의 주 내 하나님 나를 구원 하셨으니, 한결같은 주의 사랑 온 누리에 알리리라

미쁘시고 성실하신 주의 사랑 믿사오니, 대자대비 주님 긍휼 거두지 마옵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40:1-11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20230115_시편가 40 주님을 기다리고.m4a
3.11MB

 

 

 

 

 

[시편송서(誦書)] 시편 40:1-1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3)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가 간절히 주님---, (주님---) 기다렸더니-,

--께서 -를 굽어보시고-,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네-

 

2. 주님께서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 주셨네. 내가 반석을 딛고 서게 해주시고 내 걸음을 안전하게 해주셨네.

3. 주님께서 나의 입에 새 노래를,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담아 주셨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네.

 

4. 주님--- 신뢰-하여-, 우상들과-- 거짓- 신들-,

(---- 신들-)--, 섬기지 않는- 사람은 복되-어라-

 

5. ,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널리 알리고 전파하려 해도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6. 주님께서는 내 두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사나 예물도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번제나 속죄제도 원하지 않습니다.

7. 그 때에 나는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에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8. 나의 하나님- -가 주님-의 뜻-, (주님의- -) --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9. 나는 많은 회중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아시듯이, 내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10.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의를 나의 가슴 속에 묻어 두지 않았고, 주님의 성실하심과 구원을 말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그 미쁘심을 많은 회중 앞에서 감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함께)

11. 하나님-- -의 주님이시니-, 주님--- 긍휼하심을-,

(긍휼하심-) 나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한결-같은-, 사랑--- 미쁘심으로-,

언제--- ----, (언제나 나-) 지켜 주십∼∥

 

20230115_시편송서 40;1-11.m4a
2.83MB

 

 

 

 

 

[말씀동화] 낮에 나온 반달이 빙그레 웃던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우는 아이 엄마의 곶감타령을 듣던 시절 이야기예요.

 

어느 마을에 팔이 하나 뿐인 아이가 살았어.

마을사람들은 그 아이를 외팔이라고 불렀단다.

아이는 외팔이라는 별명이 싫었지만

부모형제도 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신세라 그저 참고 살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 마을에 귀가 하나뿐인 아줌마도 살았어.

태어날 때부터 귀가 하나뿐이었던 아줌마는

마을에서 가장 성실한 농부였고

귀가 하나뿐이어도 마을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었지.

 

그 아줌마가 마을에서 존경받는 까닭은

성실한 농부일 뿐 아니라 늘 남의 말을 경청하고

약한 사람들의 서러운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었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아줌마가 외팔이네 집에 찾아왔어.

 

순이야, 잘 지냈어? 요새 통 보이지 않아서 와봤다.”

 

외팔이, 아니 순이는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아줌마를

올려다보며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거렸지.

자기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았거든.

 

사실 아줌마는 벌써부터 순이가 늘 마음이 쓰였단다.

아줌마처럼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사니 말이야.

그래서 아줌마의 귀는 늘 쫑긋쫑긋 순이네 집을 향했었지.

 

아줌마가 순이를 위해 만들어온 떡볶이를 내놓자

순이는 얼른 눈물을 씻고 게눈감춘 듯 먹어치웠단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하는 생각에

아줌마 두 눈에 이슬이 맺혔지.

 

 

금세 초롱초롱해진 아줌마는 얼른 땅바닥에 글씨 하나를 써주셨어.

난생처음 보는 그림 같은 글자를

순이는 가만히 들여다보았지.

 

이건 당길 섭이라는 한자야.”

 

아줌마는 순이에게 섭()이라는 글자의 글꼴을 하나하나 풀어주셨어.

왼쪽에 있는 것은 손()을 뜻하고

오른쪽에 세 개나 있는 것은 귀()를 뜻한다는!

 

그런데 이 글자가 들어간 섭리(攝理)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을 가리킨다는 사실까지!

(다음 한국어사전)

그러고 나서 아줌마는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어.

 

하나님께서는 아무 힘없는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들어주신단다.”(시편40:1)

 

 

아무 힘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뿐이니까,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며 우는 그 소리를

하나님은 귀를 쫑긋 세우시고 경청한다는!

 

그런데 얼마나 귀를 쫑긋 세우시는지 귀가 세 개나 되네?”

 

눈이 휘둥그레진 순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면서

아줌마는 땅바닥에 쓴 섭()을 다시 가리켰어.

귀 세 개로도 모자라 손까지 갖다 대고 공들여 듣는 모양을!

 

아줌마는 순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찬찬히 이야기했어.

하나님은 귀가 많으셔서 순이의 마음속까지 다 들으신다고

그런데 하나님의 귀에 들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을 들을 귀를 열어주신다고!(시편40:6)

 

그런데 아줌마 얼굴이 갑자기 개구쟁이가 되네?

아줌마는 얼른 순이의 귀에다 하나뿐인 자기 귀를 갖다 대었어.

그러고 나서 순이의 손을 귀에 갖다 대라고 했지.

손 하나에 귀 세 개!

 

아줌마랑 순이의 웃음보가 한꺼번에 까르르 까르르 터지고

환하게 빛나는 달덩이 같은 순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낮에 나온 반달도 빙그레 웃고 있었단다.

 

[이정훈 지음. 2023114일 토요일 아침]

(이웅배 교수님 개인전에서 본 그림, <귀를 기울이다-섭리(攝理)>에 감동하여 지었습니다.)

(오늘까지 만 10년 동안 말씀동화를 짓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