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이사야서 35:4)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2.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3. 너희는 맥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4.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5.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6.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8.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1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시편 146:5-10)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5:7-10)
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마태복음 11:2-11)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약자들의 희망, 주님 오신다’입니다.
구약, “그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이사야서 35:5)
시편,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시편 146:8)
서신서,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야고보서 5:8)
복음서, “눈먼 사람이 보고” (마태복음 11:5)
오늘 요절은,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입니다. (이사야서 35: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35:1-10 / 시편 146:5-10)]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장래의 구원’입니다.
<1 이사야서>의 마무리 부분 35장 전체인 오늘 본문은,
마치 <2 이사야서>의 주제를 압축하여 미리 보여주는 듯
환상적인 귀향의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마지막 10절에 본국귀환이라는 주제가 선명히 담겨 있으며
1-9절은 내내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노정에서
약한 자, 약한 땅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신비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눈먼 사람 눈 열리는 주님의 날이 가까우니 땅도 또한 눈 열리듯 회복됩니다.
이 기쁜 회복의 근원에는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며(4)
이 사실을 먼저 깨친 주의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이 소식을 알려
희망을 주고 격려해야 합니다.(4)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심’입니다.
약자들을 각별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하나 찬양한 이 노래는(7-9)
그분이 몸을 입고 우리에게 와서 선포하신 첫 말씀이요(눅4:17-19)
종신토록 가르치고 온몸으로 행하신 그 거룩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약자들을 향한 주님의 이 사랑은
율법과 예언서 곳곳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그의 자녀인 우리가 고스란히 닮고 따라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출22:21-22, 신10:17-19, 사1:17, 58:6-7)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야고보서 5:7-10 / 마태복음 11:2-11)]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인내하라는 권고’입니다.
(바로 앞, 주의 재림으로 인한 부자들의 혼비백산과 완전히 대비되면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교회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큰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데,
이는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교회, 진실과 진리를 위해 고난 받는 교회를
단번에 회복시켜주실 사랑의 힘이시며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그분을 기다려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신지를 확인하려 합니다.
지난주 본문 마태복음3:11-12절에서 드러나듯이,
요한이 고대하는 메시아는 준엄하신 심판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심판자이시기 전에 먼저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랑을 세상이 맛보게 하실 분이며(마태5-10장)
이 사실은 이미 예언자 이사야가 예고하였습니다.
(사26:19, 29:18-19, 35:5-6, 42:7, 61:1)
예수님은 이렇게 요한의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알리신 뒤
무리에게 말라기3:1절을 인용하여 요한의 면모를 알려주십니다.(10)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일은, 진실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처럼 옥에 갇히고(2)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무거운 일입니다.
7절 이하의 예수님 말씀에는
그러한 세례요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가득합니다.
[정리]
대림절 셋째 고개를 넘으며 부르는 노래들(본문말씀)마다
눈먼 사람이 다시 보게 되는 신비로운 사건이 세 본문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눈먼 사람은 본문마다 무수히 등장하는 약자들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또한
눈먼 사람은 평생 거짓말에 속아 살아온 사람의 상징입니다.
탐욕에 눈먼 사람들이
그 탐욕을 부추기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심지어 악마의 거짓말 이간질로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마침내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강자에게 붙들려 포로생활을 하던 백성이
누구보다 사랑의 힘이 센 하나님의 팔, 사랑의 손에 붙들려 귀환합니다.
우리를 지으실 뿐 아니라, 끝까지 돌보시는(시146:6) 사랑의 주님 손에 이끌려!
본문마다 반복해서 나오는 저 많은 눈먼 사람!
이사야 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저 많은 눈먼 사람!
온통 영적으로 눈먼 이 시대에 우리 교회의 눈, 나의 눈은 어떻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이 오시니 꿈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햇빛 달빛 별빛조차 하나 없는 깜깜한 세상에
초 한 자루 또 한 자루 불을 밝히니
악마의 100년 거짓말에 속아 이간질 당해온 우리 눈이 환하게 열립니다.
남과 북의 민초들 눈이 열리고
탐욕과 공포, 거짓말과 이간질로 세운 모래성들이 허물어집니다.
“악인의 길”은 그렇게 망하지만(시편146:9)
“거룩한 길”은 점점 꽃피고 기쁨이 넘칩니다.(이사35:8-10)
꿈같은 소리지만,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덜덜 떠는 사람들을 격려하라고 하십니다.(이사35:4)
그 말씀으로 주님께 희망을 걸게 하십니다.(시편146:5)
그 말씀으로 그날까지 참고 견디게 하십니다.(야고5:7-10)
[나머지]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1)
오늘 본문들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희망’입니다. 꽉 막힌 인생길, 불통 투성이 암흑 세상을 환하게 열어주십니다. 눈먼 사람의 눈을 열어 주시는 말씀이 유달리 반복됩니다.(사35:5, 시146:8, 마11:5) 패망을 앞둔 암담한 유다백성에게 예언자 이사야가 희망의 말씀을 전하며, “거룩한 길”(8)을 왜 그토록 일찍, 그리 환상적으로 묘사했나 했더니, 그 말씀 안에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의 우주적 구원 청사진까지 담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선포하는 예언자,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예언자에게 물리적 시간은 숫자에 불과한 법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둠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밥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통째로 먹지 못하고,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려는 지독한 편식 때문에 나날이 말라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부에 취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이유는, 다시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천국의 소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천국이 오고 계시는데 그게 안 보인다면, 그건 참 낭패입니다. 이사야도 야고보도 보았던 그 날, 바로 코앞에 닥친 그 날을 보는 눈이 활짝 열릴 때(마 11:5) 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희망을 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구약본문과 서신서 본문 시대의 독자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모진 고통의 시절을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오직 다시 오실 주님, 이제 곧 다시 오실 그분만이 희망인 것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2)
오늘 서신서 본문에 묘한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9)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앞부분 7절과 8절에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라며 계속 기다리라고 하다가 갑자기, 이미 문 앞에 서 계시다니 말입니다. 무언가 교회 안에 상당히 긴박하고 중대한 변화의 요청이 느껴집니다. 요점은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겁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원망은 왜 생길까요?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온 지체의 실수나 범죄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공동체 안에서 원망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기대 때문에 생기는 실망과 원망입니다. 기대(期待)는 기대게(의지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내가 기대하는 것 외의 상대방이 가진 장점, 진면목은 못 보게 만듭니다. 내가 바라는 것만 보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리는 이치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실문화」 77호 <복음서 묵상(주원남 목사)>에 나온 ‘기대의 감옥’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 신앙공동체는 철두철미하게 주님께 기대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교회가 어려울수록, 교인 수가 줄고, 예산이 말라갈수록, 교인들 하나하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서로에게 기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그게 원망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한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다른 데가 아니라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목숨은 걸지 못해도, 제자(弟子)라면, 아니 적어도 교인(敎人)이라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좀 더 먹고 그 말씀 의지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님께 희망을 거는 길입니다.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3)
예수님은 마침내 약속하신대로, 요한의 기대대로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 재림 예수의 소식은 지금 고난당하고 있는 약자들에게 매우 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모두 주님을 기다리는 약자들입니다. (서신서 역시 본문 앞 4절을 보면 그러합니다.) “눈먼 사람”으로 대표되는 여러 약자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이사 35:5, 시편 146:8, 마태 11:5) 강포한 자들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들이 느껴집니다. 돈(대기업)과 정보(언론), 공권력(정권)들이 약자들 편에 서지 않고 저희끼리 잘 먹고 잘 살려고 약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시편 146:5)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에 비해 훨씬 더 가까워졌음에도, 주님의 날, 심판의 때를 느끼지 못합니다. 역사를 보는 눈, 말씀을 읽는 눈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소리를 들을 귀, 말씀을 외치는 예언자의 소리를 들을 귀가 닫힌 것입니다. 눈을 열고 귀 열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내가 가진 힘을 나누고 덜어 더 약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을 열고 지금 내게 오신 주님을 제대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그분께로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3호)
너희는 무얼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우리의 마음도 아닌
예언자를 찾아 길을 걷고 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찾아 헤매느냐
화려한 왕궁 사람들도, 유혹도 아닌
우리를 이끌어줄 그 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로 가기 위한 길을 찾고 있습니다
[시편시조] 천지만물 지으시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3호)
천지만물 지으시고 영원히 돌보시며
약자들 도우시고 악인의 길 부수는 분
주님께 희망을 걸자 할렐루야 주님께
[시편노래] 시편 146,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 삼는 사람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3호)
[본문] (시편 146:5-10)
[노랫말]
1.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 삼는 사람, 복스럽다 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하늘 땅 바다 속의 모든 것을 지으신 분, 주님은 진실하네 영원히 신실하네
2. 억눌린 사람위해 공의로 재판하며, 굶주린 자 먹이시고 갇힌 죄수 풀어주네
눈먼 사람 눈을 열고 낮은 사람 세워주며, 의인을 사랑하네 주님이 사랑하네
3. 나그네를 지켜주고 고아과부 도우시나, 악인들 악한 길은 멸망으로 이끄시네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린다, 할렐루야 내 하나님 대대로 다스리신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6,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 삼는 사람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46:5-1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3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 (멸-망-)으로 이끄-신다-∼
(다함께)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송이네 골목길이 꽃길이 되는 날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산국(山菊) 무더기 앞에서 기념사진 찍던 시절 이야기예요.
“산난초 고와서 꺾어들고 왔더니, 들고 오는 사이에 시들어졌네∼
꺾지 않고 두었다면 오래오래 살 것을, 시들어버리려니 후회만 나네∼”
[동요 ‘산난초’. 이태선 작사, 박재훈 작곡]
가뜩이나 기운 없는 아이가 부르니
‘산난초’ 가락이 더 구슬퍼지네.
그렁그렁 송아지 같은 눈망울엔 금세 맑은 물이 고였어요.
송이가 꺾어온 산국(山菊)이랑 감국(甘菊) 그 환한 노란빛깔이
어느새 흙빛으로 시들고
송이 마음도 송이 얼굴도 빛을 잃고 어두워갑니다.
늘 배고파도 별처럼 빛나던 송이의 눈망울이
꽃처럼 고운 우리 송이 얼굴이
오늘은 하염없이 여위어보입니다.
쪽방촌 작은 방에서 할머니와 둘이 사는 송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칙칙한 골목길을 밝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가을 먼 산에 올라 산국이랑 귀한 감국까지 꺾어다가
금간 고추장 단지에 담아 두었죠.
해만 나면 골목길에 내다놓기를 부지런히 애썼는데
종종 물도 주고 요리조리 어루만지며 손길도 주었는데
너무 추웠나? 자그마한 국화 꽃다발이 다 시들어버렸습니다.
“송이야, 괜찮아. 그만하면 오래 갔다.”
송이덕분에 한동안 국화 향내를 즐기시던 할머니는
애써 아쉬운 마음 감추고 송이 마음을 다독여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펼쳐 밝은 노래 한가락 불러주십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이사야서35:1-2)
할머니의 노래가 송이의 눈망울을 다시 빛나게 합니다.
송이네 작은 골목길에도
언젠가 소리 높여 나팔꽃이 피어날 것만 같은,
무성한 꽃동네가 되는 꿈같은 노래, 참 신나는 노래입니다.
단짝 친구 영희네 아파트 화단에 핀 예쁜 꽃들이랑 어깨를 겨루려면
무슨무슨 꽃들이 피면 좋을지
벌써부터 송이의 마음 밭이 꼬물꼬물 간지럽습니다.
“할머니 노래는 성경말씀에 있는 말씀노래니까, 정말로 우리 골목에도 꽃이 많이 피는 거 맞지?”
빙그레 웃으시며 할머니가 또 노래 부르십니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이사야서35:6-7)
아련한 눈빛으로 할머니 노래를 듣고 있는 송이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아무렴. 우리 하나님은 약한 사람만큼이나 약한 땅도 아끼셔서 씩씩하게 회복시키는 분이거든.”
성탄절을 앞두고 매일매일 예수님 생각하는 송이 마음이 점점 따듯해집니다.
예수님 오시면 송이네 골목길도 씩씩하고 아름다워질 테니
송이 짝꿍 영희도 매일매일 놀러올 것입니다.
송이가 다시 옛날 동요 ‘산난초’가락을 흥얼거리자
할머니가 새 노래를 가르쳐주십니다.
역시 할머니가 옛날에 부르시던 옛날 동요입니다.
“하얀 꽃 마음은 하얀 마음, 빨간 꽃 마음은 빨간 마음,
저마다 마음은 다르지만, 서로가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얀 꽃 동네는 하얀 바람, 빨간 꽃 동네는 빨간 바람,
바람은 갈리어 꽃 시샘해도, 해님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동요 ‘하얀 꽃 빨간 꽃’. 박송 작사, 박재훈 작곡]
(* 악보는 대한기독교서회에서 2008년에 펴낸 「박재훈 작곡 어린이 노래집」에 있습니다.)
한없이 아름다운 할머니의 노래보따리엔 또 무슨 노래가 담겼을까?
샛별처럼 빛나는 송이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골목엔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나.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송이가 있잖아.”
어느새 둥실 떠오른 보름달 속에 옥토끼 한 마리가
송이네 골목을 바라보며 향내를 맡고 있습니다.
[이정훈 지음. 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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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1주(2022년 11월 2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2.11.25 |
신정절 13주(왕국절 13주, 창조절 12주-왕이신 그리스도의 날, 2022년 11월 2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1) | 2022.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