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시편 119:98)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서 31:27-34)
27.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28. 내가 전에 그들을 뽑아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재앙에 빠뜨리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우고 심으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29.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30.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포도를 먹는 그 사람의 이만 실 것이다.”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시편 119:97-104)
97. 내가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
98. 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 그 계명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내 원수들보다 더 지혜롭게 해주십니다.
99. 내가 주님의 증거를 늘 생각하므로, 내가 내 스승들보다도 더 지혜롭게 되었습니다.
100. 내가 주님의 법도를 따르므로, 노인들보다도 더 슬기로워졌습니다.
101.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나쁜 길에서 내 발길을 돌렸습니다.
102. 주님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나는 주님의 규례들에서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103.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104.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디모데후서 3:14-4:5)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4:1.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2.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누가복음 18:1-8)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거룩한 권리(꾸준한 말씀, 꾸준한 기도)’입니다.
구약,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예레 31:33)
시편, “내가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시편 119:97)
서신서,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딤후 4:2)
복음서,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누가 18:1)
오늘 요절은, “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입니다.(시편 119:9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서 31:27-34 / 시편 119:97-104)]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유다의 회복에 대한 약속, 새 언약’입니다.
본문은 ‘위로의 작은 책’이라 불리는 예레미야서 30-31장의 뒷부분으로서
하나님백성을 위한 새로운 시작의 약속 말씀입니다.
백성을 심판하실 때 그러하셨듯이, 회복시키실 때도 하나님은
빠뜨림 없이 주시하실 것입니다.(28)
하나님께 벌을 받아 포로 신세로 떨어질 만큼 하나님의 율법에 소홀했던 백성을 위해서
새 언약(신약)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그 때가 오면 성령님께서 이루실 것이요(33)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백성의 허물은 단번에 극복됩니다.(34)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말씀의 영광’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스승들보다, 노인들보다 더 지혜로워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손수 시인을 가르치시기 때문이요(102)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법(가르침)을 “온종일”(97), “언제나”(98), “늘”(99) 읽고 묵상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을 반추하니 그 맛이 꿀보다 더 달게 되고(103)
“나쁜 길”(101), “거짓된 길”(104)을 가지 않게 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디모데후서 3:14-4:5 / 누가복음 18:1-8)]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성경의 의의, 끝까지 충성함’입니다.
“진리”(14, 4), “성경”(15-17), “말씀”(2), “교훈”(3) 등을 반복하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14)
꾸준히 선포하라고 명합니다.(1-2)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시대임에도 그리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15)가 거기 있고
성도들을 유능하게 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17)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본문 직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 즉
인자의 날(17:22, 24, 30 등)에 관한 말씀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의 요지는, 절망의 시대가 깊어져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면
하나님백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꾸준한 기도가 “택하신 백성의 권리”(7)인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2주 전 겨자씨 비유는, 주님과 한 몸처럼 주님 뜻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오늘 강청(强請)과부의 비유는, 반복해서 기도하는 믿음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분위기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늘>입니다.
늘, 언제나, 반복해서 말씀을 되새김을
구약은,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렘31:33)
시편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시119:97)
서신서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딤후3:14)라고 새깁니다.
문득 발데제교회를 세운 발도, 그리고 위클리프와 그 후예들이 떠오릅니다.
반복해서 중얼중얼 말씀을 선포하던 사람들입니다.
화형을 무릅쓰고 제 나라 말로 말씀을 선포하던 사람들입니다.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를 그대로 선포하던 사람들입니다.(딤후4:4)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려 애쓴 제자들입니다.(딤후4:5)
이 거룩한 권리, “택하신 백성의 권리”(눅18:7)를 위하여
대를 이어 순교하며 반복해서 강행하던 그들을
오늘 세계교회는 기억하며 추모하며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국민가수 김정구를, 그의 대표곡 ‘두만강’을 모르는 세대가 등장하였듯이
얼마 있으면 국민엠씨 송해를 모르는 세대도 등장할 것입니다.
어느새 예수님을, ‘말씀’을 제대로 모르는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딤후4:3)
그러면 그럴수록, 저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던 발도와 위클리프처럼,
스마트시대임에도 아예 말씀을 통째로 외워 암송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기를 추구하며
오늘도 낙심하지 말고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기도할 때입니다.(눅18:1)
“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시편 119:98)
[나머지]
* 사랑이 답입니다
오늘 구약과 신약의 시대상황은 불의와 불법이 망나니 춤을 추던 시절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하나님 말씀에 몰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길을 보여줍니다. 예언자는 새 말씀이 백성의 가슴 속에, 마음 판에 새겨질 것이라 하고,(33) 시인은 하나님께서 손수 말씀을 가르치신다고 노래합니다.(102) 사도는 진리 안에, 말씀 안에 살면서(14), 끝까지 말씀을 선포하라고 가르칩니다.(4:2, 5)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나라와 정의를 위해 굳센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들을 반복해서 묵상하는 동안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구절은 시편 119:97절의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를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103) 매우 감각적이고 감동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 답입니다. 불의와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 사랑을 맛본 사람이라면, 끝까지 진리 안에 거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불의와 불법, 탐욕과 증오, 거짓말이 춤추는 것은 거짓말쟁이 악마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언론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안의 쓰러진 정의의 기둥을 바로 세워가면서, “내가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시 119:97) 진리 안에, 말씀 안에 침잠완색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유홍준 선생이 쓴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문장의 뿌리는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입니다.(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의 글) 사랑하는 게 먼저냐 아는 게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것이겠죠. 사랑하면 알게 되고... 하나님, 하나님 말씀과 우리 관계가 그럴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보고, 우리가 늘 말씀 읽고 늘 기도하는 까닭을 봅니다. 언젠가 어른들께 들은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니, “너는 아직 말씀을 모르지만, 말씀은 너를 아신다.” 그리고 이런 대단한 동화 같은 위로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네가 성경을 열 때마다 성경말씀이 너를 보시고 너를 환히 아시고, 너를 사랑하시느니라”
*** 말씀을 제대로 모시는 삶 (딤후 4:3)
성경말씀 가운데 복(福)이 나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러나 화(禍)로 보이는 가난과 고난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마음의 귀를 닫습니다. 그건 바로 내 안에 주님을, 말씀을 모시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겉으로는 그분을 내 안에 모신 것 같지만, 사실 내 왕국의 문지기나 기껏해야 수호신(守護神) 정도로 초청한 겁니다. 그분을 왕으로 모실 때 비로소 ‘내 왕국’이 변하여 천국(天國)이 됩니다. 내 안에 ‘내 말’이 아니라 ‘그 말씀’으로 가득 찰 때 ‘내 왕국’이 무너지고 천국이 세워집니다.
**** 제대로 기도하기
무조건 반복해서 떼쓰듯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시는 게 아닙니다. 탐욕과 쾌락을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데다가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2-3) 마음 판에 말씀이 새겨져 있는 주님의 참 자녀의 기도, 말씀 충만한 가운데 나오는 기도에 꼭 응답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이제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백성의 권리, 주님 자녀의 권리를 되찾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나를 비우고 내 안에 말씀을 채울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위배되는 세상, 그 말씀의 소리를 가로막는 못난 세상, 거짓 세상을 개혁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 창조질서보전을 해치는, 돈과 권력, 거짓말의 노예 세상을 개혁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할 수 있는 그런 정권과 기업과 언론을 세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반복 또 반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기도해야 합니다.
***** 되살아나는 말씀 이야기 (발도의 후예들, 위클리프의 후예들, 그리고 영화 ‘일라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앙연회는 만나교회에서 열린 지난 4월 20일 목요일 연회에서 종교개혁 관련 특강을 오전 오후 두 차례 열었다. 오전 특강의 주인공 피터 발도는(12세기 리용에서 출생) 청빈과 모국어 번역 성경으로 설교하는 일에 몰두한 종교개혁가다. 이때 설교는 주로 모국어 성경을 음송하는 것이었다. 발도를 따르는 자들이 모인 발데제 교회는 성서 전체를 암기하여 구두로 암송하며 설교하였다. 발데제 교회는 평신도설교와 여자들의 설교를 허락했으며, 평신도가 모국어로 번역한 성경을 소유할 것을 강조했다. 물론 모국어 성경을 갖는 것을 허락할리 없는 로마교회에 의해 이들은 수많은 순교의 피를 뿌릴 수밖에 없었다.(로마연합교회 담임 홍기석 목사 특강 일부 요약)
오후에는 옆자리에 있던 전일교회 소속인 강종수 목사님으로부터 뮤지컬 ‘더 북’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었다. 14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위클리프를 따르는 ‘롤라드(Lollard)’ 이야기였다. ‘...종교기득권자들에 의해 경멸의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 ‘롤라드’라는 호칭은 ‘독버섯’이라는 뜻과, ‘중얼거리는 자들’이라는 두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66권 성경을 한권씩 통째로 외워 전하였다. 물론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성경 66권의 이름을 취한 뒤 그 성경을 모조리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 그들은 성경을 외웠고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적어 퍼뜨렸다... 성경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경이 된 사람들!...’(인터넷에서 인용)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으로 시작한 종교개혁보다 훨씬 더 일찍이 발도와 위클리프의 모국어 성경번역 역사가 있었고, 그 후예들은 순교의 공포 속에서도 모국어 성경을 통째로 외우려 애썼다. 모국어 성경을 지키기 위해 고문당하고 화형당하고 땅에 묻혀버렸던 발도와 위클리프의 후예들처럼, 찢기고 태워지고 묻혀버렸던 모국어 성경책들이, 저들의 암송으로 되살아난 것이었다. 동화 같은 표현이지만, 육신이 되신 그 말씀(요한 1:14) 예수님께서 무덤에 갇히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성경말씀이 태워지고 찢기고 묻혔다가 부활한 것이다. 저들의 암송으로!
문득 7년 전 2010년에 본 영화 ‘일라이(Eli)’가 떠오른다. 때는 2043년, 폐허가 된 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성경책을 지키려는 자 일라이(덴젤 워싱턴), 그리고 그에게서 성경을 빼앗으려는 자 카네기(게리 올드만)의 이야기다. 일라이는 성경을 전해야 할 곳을 향해 여행 중이었고, 그러다가 카네기가 다스리는 마을에 잠깐 머물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카네기는 일라이에게서 성경책을 빼앗고, 부상당한 일라이는 계속 가던 길을 간다. 간신히 성경을 손에 넣은 카네기가 성경책을 열어보니 아뿔싸! 맹인용 점자성경이 아닌가? 유일한 성경책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카네기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목적지에 다다른 일라이는 카네기 부하들과 싸우다 입은 부상으로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성경을 암송하여 모두 받아 적게 한다. 활자로 인쇄된 성경책이 하나도 없던 세상은, 일라이에 의해 다시 성경을 갖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원 제목은 ‘The Book of Eli’였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말씀을 외우려고 실천하는 사람
(상략) 사경회는 이같이 성경을 외우는 사람들 이야기로 흥미진진했다. 아무리 목사라 해도 웬만큼 성경을 알지 않고는 ‘성경을 외우는 이런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기가 어려웠다. 선교사들도 종종 이처럼 성경을 외우는 토착 교인들로부터 자극과 도전을 받았다. 1907년 부흥운동 당시 인천에서 활동하였던 존스(G.H. Jones) 선교사가 미국 교인들에게 한국교회를 소개하면서 쓴 글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어느 날 교인 한 명이 선교사를 찾아와 ‘저는 성경 중 한 부분을 외웠는데 당신 앞에서 외워 보이고 싶습니다.’하였다. 선교사는 그가 산상 설교 전체를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외우는 것을 들었다. 선교사는 뭔가 실천적인 면에서 교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긴 내용을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외운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단지 외우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하고 하였다. 그러자 토착 교인은 웃으며 ‘제가 바로 그런 식으로 성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였다. 선교사가 약간 놀란 낯으로 그 말의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저는 아둔한 농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외우려 애를 써도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쓰게 된 것입니다. 한 절을 외운 후 그 말씀대로 나가서 이웃에게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외워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절을 외운 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참으로 복된 말씀인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전체를 그런 식으로 배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말씀을 실천하였다.”
‘실천하면서 외우기’(memorizing with practicing) - 이것이 시골 농부가 고안해낸 독특한 성경 공부 방법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성경 공부 방법이 있을까? 농부는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혼자서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천하여 말씀이 주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 성경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이덕주. 「이야기한국감리교회사」중에서)
[말씀동시] 잊지 않기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2호)
‘잠시만요’ 라면서 미루던 말씀 묵상
‘잠시만요’ 라면서 미루던 기도
나의 눈을 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나의 입을 닫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붙잡혀 살기 원합니다
이제 끊임없이 기도하며, 기도로 열리며 살기 원합니다
[말씀시조] 일찍부터 배운 성경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2호)
일찍부터 배운 성경 진리 안에 머무르라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 말씀 선포하라
성경은 온갖 선한 일 할 수 있게 하나니
[시편노래] 시편 119, 주님의 법 사랑하여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2호)
[본문] (시편 119:97-104)
[노랫말]
주님의 법 사랑하여 나 온종일 읊조리고, 주님 계명 동행하니 원수보다 지혜롭네
주님 증거 되새기니 스승보다 지혜롭고, 주님 법도 따름으로 노인보다 슬기롭네
주님 말씀 지키려고 나쁜 길 가지 않고, 주님 친히 가르치시니 주님 규례 따르오리
주님 법도로 슬기로워 거짓된 길 미워하고, 다디 단 주님 말씀 꿀보다 더 달콤하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19 (주님의 법 사랑하여 나 온종일 읊조리고)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19:97-10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2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꿀보다 꿀보다 더 다니이다-)∼
[다함께]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말씀동화] 예수님의 레시피를 찾는 정 집사님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앞치마 두르고 다람쥐가족에게 도토리묵 쑤어주던 시절 이야기예요.
“1.반짝반짝 별 비치는 그 어느 적막한 날 밤에, 귀여이 귀여이 들리는 저 어린 아기 울음소리, 이세상의 모든 죄 짐을 그 등에다 홀로 지실, 오 만민의 메시아이시니 그 아기 이름 예수시라∼
[‘거룩한 아기예수’ 1절. 구두회 작사, 박재훈 작곡]
오늘도 정 집사님이 목소리 높여 찬양 연습을 합니다.
정 집사님은 교회학교 선생님이세요.
정 집사님은 천하장사 근육대장이지만
교회학교 어린이들을 위해서 매일 곱디 고운 어린이찬송을 찾고 또 찾습니다.
“하나님, 제가 아름다운 어린이찬송가를 찾아 부를 수 있게 해주세요. 저에게 좀 더 아름답게 찬양할 수 있는 은사를 주세요. 제가 어린이찬송을 부를 때마다 제 마음이 점점 아름다워지게 해주세요.”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찬양과 아름다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정 집사님은 언제나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마음을 배우려 애쓰는
참 아름답고 귀한 선생님이세요.
“일용이 너는 왜 맨날 기초랑 차상이랑만 노냐? 남자는 힘이야. 나처럼 큰물에서 놀아야지.”
말썽꾸러기 철수가 또 교회학교 아이들 이름을 바꿔 부르며 놀려댑니다.
친구 이름이 일용이가 아닌데 일용이라고 부르는 건
아빠가 일용직 노동자라고 놀리는 것이고
친구들 이름이 기초도 차상도 아닌데,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이라고 놀리는 거예요.
기초, 아니 영희는 철수의 무례한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노래 부릅니다.
방금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새 노래 ‘거룩한 아기예수’ 가락입니다.
진구랑 태준이가 도끼눈을 뜨고 철수를 노려보면서 영희에게 말합니다.
“영희 너는 저 녀석이 우리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는데 분하지도 않아?”
대답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영희가 노래합니다.
말썽꾸러기 철수는 이름을 바꿔 부르는데,
영희는 아까 콧노래로 흥얼거리던 ‘거룩한 아기예수’ 가락에 가사를 바꿔 부르네?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시편 119:103-104]
정 집사님이 물끄러미 아이들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영희의 가사 바꿔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하트눈이 되었어요.
그리고 얼른 아이들을 불러 모아 또 다른 찬송을 부릅니다.
“1.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3.예수 세상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
[‘나의 사랑하는 책’ 1,3절. M.B.Williams작사, C.D.Tillman작곡. 새찬송가 199, 통일찬송가 234]
그리고 정 집사님은 아름다운 어린이찬송가 가락에 성경말씀을 얹어 부르는
영희의 슬기로움에 감탄하고 감격하며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오늘도 저에게 새 힘을 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우리 영희와 진구, 태준이, 그리고 우리 철수까지 모두모두 하나님말씀의 맛을 점점 알아가게 해주세요. 그럴 수 있도록 저에게 예수님의 레시피를 주세요. 하나님말씀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셨던, 엄마 손맛 같은 예수님의 손맛을 저에게 주세요.”
어느새 방금 부른 ‘나의 사랑하는 책’ 가락을 흥얼거리는
영희의 두 눈이 샛별처럼 빛나고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성경말씀을 붙여 부르려는 걸까?
영희가 흥얼거리는 가락을 들으며 정 집사님이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저에게 예수님의 레시피를 가르쳐주셔요. 그래서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 모두가 점점 더 말씀의 맛, 찬양의 맛을 알아가게 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돈 없고 가난해도 남부럽지 않은 말씀부자 찬양부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점점 기도부자가 되어가는 정 집사님의 눈에 맑은 물이 고입니다.
어느덧 영희를 따라 교회학교 아이들이 너도나도
방금 부른 찬송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다시 기도합니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주님!(누가복음18:1) 예수님 말씀 의지하여 또 기도합니다. 저에게 예수님의 레시피를 가르쳐주셔요. 그래서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 모두가 점점 더 말씀의 맛, 찬양의 맛을 알아가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정훈 지음. 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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