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시편 29:2)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6:1-8) 하나님이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시편 29) 폭풍속 주님의 음성 [다윗의 시]
1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
2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물을 치신다.
4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5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6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
7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
8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
9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10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
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로마서 8:12-17) 성령은 생명을 주시다
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요한복음 3:1-17) 예수와 니고데모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1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 앞에 설 때’입니다.
구약,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이사야서 6:3)
시편, ‘하나같이, “영광”하고 외치는구나!’(시편 29:9)
서신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서 8:15)
복음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3:10)
오늘 요절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입니다.(시편 29: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6:1-8, 시편 29)]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다’입니다.
이사야는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 체험을 합니다.
지성소 언약궤 뚜껑 위가 아니라 공중에 들린 하나님의 보좌,
성전 가득한 그 옷자락, 스랍들의 엄청나게 큰 영광찬송,
그로 인한 진동과 성전 가득한 연기...
이런 강력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무엇보다도, 부정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을 고백했고(5)
스랍의 도움으로 정화되고, 이렇게 준비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덜덜 떨던 이사야는 곧바로 순종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크게 찬양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본문 앞에는 하나님을 모시는 하늘의 존재들이(1-2)
본문 뒤에는 성전의 회중들이(9)
소리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 합니다.
그런데 이 찬양소리보다 하나님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4-9)
하나님의 막강한 권능으로 온 땅이 진동하고
혼돈의 큰물이 정복됩니다.(3, 10)
그러나 그 백성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는
겁주는 두려운 목소리가 아닙니다.
복스럽고 사랑스러운 부모님 음성입니다.(11)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8:12-17, 요한복음 3:1-17)]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도 육에 속한 자, 육신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12)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14)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15)
이렇게 맺어진 거룩한 관계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사람,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재정립된 사람은
영에 속한 사람, 즉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17)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와 니고데모’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어렴풋이 하나님을 느끼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돌직구처럼 곧바로 하나님나라(3,5)를 언급하시며
진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십니다.
얼떨결에 예수님 말씀에 사로잡혀 끌려 들어가는 니고데모가 정신없어 보입니다.
하나님나라 열쇠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이치를 니고데모가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진리에 목마른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선물이신 인자(13)와 영생(15-16)을 드러내십니다.
진리의 민낯을 만난 니고데모는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차 진리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갔을 것입니다.(7:50-51, 19:39)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성령강림절 둘째 주일(성령강림 후 첫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이어서
성부성자성령 삼위하나님의 이름이 본문 곳곳에 자주 드러나십니다.
그럼에도 삼위하나님의 신비는 여전히 내 머리에 벅찹니다.
이런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오늘 이사야처럼 니고데모처럼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내 모든 경험과 상식, 굳건한 줄만 알았던 내 온 존재가 바닥부터 흔들릴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체험한 스랍들의 엄청난 노랫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오늘 시편의 하나님, 하나님의 그 목소리에!
백두산보다도 높은 시룐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시는(6) 그 목소리처럼
내 존재의 바닥을 뒤흔드는 오늘 하나님 말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귀를 울리고
내 마음에 진동하십니다.
지구온난화 기후이변과 팬데믹 시대의 지구촌 몸살,
신분상승의 사다리, 아니 모든 다리를 잃은 청년 절망 시대에,
꿈같은 도로시의 무지개다리보다 더 밝고 신비롭게
오늘 그 말씀은 삼위하나님 그 사랑의 신비, 그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낙심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평화의 복을 주시며(시29:11)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고(롬8:14-17)
하나님나라 열쇠(요3:5)까지 주십니다. 그렇게
외아들을 주심으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요3:16)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비에 머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치 합동작전 하시듯, 어리둥절한 우리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롬8:15) 우리 아빠 나라에 들게 하십니다.(요3:5)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스랍보다 더 우렁차게 그 영광을 드러낼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삼위하나님 그 이름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 이름 그 본질을 제대로 아는 길은 먼저
내 삶이 그 이름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그것들,
거룩하신 그 이름의(사6:3) 기운을 가리는 내 안의 모든 탐욕부터 덜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롬8:12)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고
그 말씀 그 부르심에 언제든 즉각 순종할 수 있을 것이며(사6:89)
그 사랑스럽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제대로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렁차게 그 이름 그 영광을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시29:2)
[나머지]
* 스랍
스랍은 천상의 존재로서 그 이름에는 불타오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스랍이 불타는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스랍은 민수기 21장의 불뱀, 그리고 놋뱀과도 같은 발음을 갖고 오늘 복음서본문인 요3:14절과 이어집니다.) 오늘 구약본문에서 스랍이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립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과 치부를 동시에 가리는 모습이요, 그리하여 오직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려는 모습입니다.
**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때가 매우 상징적입니다. 웃시야가 어떤 왕이었습니까?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 자그마치 52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예언자 스가랴의 도움으로 다윗왕처럼 하나님을 섬겼기에, 그 나라가 매우 강성하고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무 교만해져서 마침내 자기 본분을 넘어서는 행동을 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분향하는 등, 제사장의 일까지 하는 바람에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고생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 즉 자기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버린 것입니다.(탐욕은 거룩한 일의 결과를 더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바로 이런 와중에, 즉 웃시야가 하나님 거룩한 성전에 함부로 나서다가 벌 받고 죽은 직후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성별되지 못한, 정화되지 못한 내가 이제 죽게 되었구나 하며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고백과 웃시야의 허물 사이에 일말의 연관이 느껴집니다.
*** 나는 어디를 정화해야 하나?
스랍이 이사야의 입에 제단의 시뻘겋게 단 숯을 대어 정화했듯이 오늘날 성령님께서 나를 정화시켜주십니다. 내 정욕과 탐욕, 몸의 나쁜 습관들을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을 수행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 제단의 뜨거운 숯으로 입을 지졌습니다. 입은 예언자의 상징입니다. 거룩한 말씀을 입으로 증거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도로서, 예언자로서, 어떤 일을 맡았습니까? 내가 교회에서 맡은 역할, 직분, 즉 내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위해 오늘 나는 지금 내 마음과 몸의 어떤 부분을 정화해야 합니까?
**** 산돌 손양원 목사님 (1902년 6월 3일 ∼ 1950년 9월 28일)
얼마 안 있으면 고 손양원 목사님의 생신입니다. 손양원 목사와 이태석 신부, 그리고 이태석 신부에게 영향을 준 데미안신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이들을 섬기다가, 모두 49세에 소천한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더럽다는 이들을 만져주다가 가장 깨끗하게 정화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기 그 더러운 환자들의 환부에 성령께서 계셨던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이, 이사야의 입술에 대었던 제단의 숯불이었던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연약한 환부의 피고름을 내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분인 내 입 내 혀로 닦아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환자들을 섬기면 섬길수록, 그 더러운 환부를 만지면 만질수록 더욱 깊이 성령충만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온몸을 주님의 제단 앞에 거룩한 산제사로 바칠 정도로 그렇게 정결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김종진 지음. 몽골선교사. 「성실문화」 107호)
독사가 이스라엘을 문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광야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나오는가보다
독사에 물린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이
하늘땅에 가득하다
청동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높이 들어라
눈을 들어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예수도 십자가에 높이 들리리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길 것이다
[말씀시조] 육신 따라 살지 않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7호)
육신 따라 살지 않고 성령 따라 사는 자는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다
하나님 아빠 아버지 나를 자녀 삼으사
[말씀서예] 로마서 8:16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7호)
[시편노래] 시편 29, 하나님을 모시는 자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 107호)
[본문] (시편 29)
[노랫말]
1. 하나님을 모시는 자 하늘 너머 저 하늘아, 거룩한 옷 차려입고 주님 앞에 엎드려라
천둥처럼 큰 소리로 하나님이 말씀하니, 주님께 어울리는 큰 영광 돌리거라
2. 주님의 목소리에 백향목 쩌개지고, 들송아지 날뛰듯이 시룐산이 요동치네
주님의 목소리에 가데스 진동하고, 우거진 숲 모든 짐승 이리 뛰고 저리 뛰네
3. 하나님을 따르는 자 온 땅위의 백성들아, 떨리는 손 높이 들고 주님 앞에 노래하라
큰물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 우리의 왕, 주님께서 베푸시는 큰 평화 누리거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한양대 교목실장이신 이천진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9 (하나님을 모시는 자)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2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7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 (진-동) 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다함께]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말씀동화] 왕방산 자유종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절집 종소리 들으며 단잠 자던 시절 이야기야.
오랜 옛날 하늘처럼 높으신 임금님이 나를 찾아오셨어.
그래서 내 이름을 왕방산(王訪山)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나를 찾은 임금님이 어디 한둘이었겠어.
그리하여 내 이름에는 이런저런 전설들이 담겼지.
그런데 아이들은 이렇게 비빔밥처럼 맛있는 전설에는 통 관심이 없네.
그저 왕방산 하면 딱 왕방울이 떠오른다나 뭐라나.
어허! 아무리 그래도, 어디 방울로 되겠어.
제아무리 왕방울이어도 방울소리로는 어림없지.
적어도 큼지막한 종소리 정도는 되어야 왕방산답지.
내 품에 지은 절집 종소리처럼
왕왕 우람한 소리라야 멀리 있는 사람들 귀에도 들리고
세상 사람들 마음 속 깊숙이까지 울릴 수 있을 거야.
오래 전 어느 날 내 옷자락 끝에서 맑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단다.
그렇게 왕방산의 산자락에서 태어난 이해조(李海朝)라는 아기가
무럭무럭 어른이 되어서 「자유종」이라는 소설을 썼을 때
나는 그만 신바람에 못 이겨 덩 더쿵 춤을 추었지.
「자유종」은 이름 그대로 자유를 노래하는 소설이야.
어느 아줌마 생일날 여러 아줌마들이 모여서
여자들의 권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찾기 위해
오순도순 생각을 주고받으며 궁리하는 모습을 그린 멋진 책 「자유종」!
이해조가 연동교회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
5년의 세월동안 먹고 또 먹은 예수님 말씀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분 예수님 말씀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마침내 자유종을 울린 게 아니냐고 세상은 온통 떠들썩했지.
아무튼 포천 왕방산 자락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름다운 자유종을 울렸다고
나라가 일제에 먹혔음에도 기죽지 않고 자유종을 울렸다고
온 나라에 칭송소리 자자하니
내가 얼마나 신이 났겠어, 덩 더쿵!
자유종이 처음 울린 지 13년이 되던 해 여름 어느 날
또 한 번 맑디맑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단다.
「자유종」의 작가 이해조의 손녀이기 때문일까?
그 아기 울음소리는 마치 자유종의 종소리처럼 내 가슴을 울렸어.
그 아기 이름은 이우정(李愚貞), 어리석을 우, 곧을 정,
어리석을 만큼 정직하고 진실하여라!
아기는 이름대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시시때때로 진실의 소리, 자유종을 울렸단다.
교회학교에서 신학교에서 그리고 힘없는 어린 여공들의 억울한 마음 마음에
자유종을 울렸단다.
1976년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목요기도회에서,
자유종을 울리고 또 울렸단다.
왕방산을 떠나 서울로 평양으로 해외로 언제나
어디서나 거침없이 크게 울리는 아름다운 자유종 이우정!
제아무리 먼 곳에서 노래해도
이우정의 종소리는 포천 왕방산 내 마음까지 웅웅 울렸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우정의 자유종 소리가 왜 그리 맑고 크고 거침없는지를,
이우정의 자유종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 그리 내 몸이 꿈틀거렸는지를,
그 까닭을 화들짝 깨달았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야서 6:3)
그날 이우정의 자유종 소리는 성경말씀이었지.
천사들이 온 세상 왕이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듣는 순간
내 몸이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언자 이사야의 외침.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이사야서 6:8)
아! 왕방산 자유종 이우정이 예언자였구나, 하나님의 예언자였구나!
어리석을 만큼 진실한 사람 이우정(李愚貞) 그 이름 그대로
이우정은 온 누리 참 자유를 노래한 예언자였구나!
그 뒤로 이우정의 자유종 소리가 웅웅 왕왕 울릴 때마다
나는 꿈틀꿈틀 덩 더쿵 큰 춤을 추었어.
하나님말씀이 담긴 그 예언자의 목소리에 어찌 춤을 안 추겠어.
어느 장단인들 춤을 안 추겠어.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레바논 산맥이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시편 29:5-6)
내가 누구야. 임금님이 찾아오신 왕방산이잖아.
온 세상 왕들의 왕이신 하나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알아듣는 나 왕방산이잖아.
그러니 저 노래를 듣고 어찌 춤추지 않겠어,
덩 더쿵!
왕방산 자유종 이우정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나는 오늘도 마음을 모으고 귀를 기울인단다.
이해조의 자유종을 이은 이우정의 자유종을 이어줄
아무개의 자유종, 바로 네가 부를 ‘모두를 위한 자유!’
그 아름다운 자유의 노래를 기다린단다.
[이정훈 지음. 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아침]
(2021년 5월 30일, 고 이우정 선생님 19주기를 기억하며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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