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한일서 4:18)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8:26-40)
26.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27. 빌립은 일어나서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였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29.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마차에 바짝 다가서거라.”
30.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37. (없음)
38.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시편 22:25-31)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요한일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부활열매’입니다.
사도행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사도행전 8:38)
시편,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시편 22:30)
서신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한일서 4:11)
복음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요한복음 15:8)
오늘 요절은,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입니다.(요한일서 4:18)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8:26-40, 시편 22:25-31)]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다’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에 이어 예루살렘교회가 큰 박해를 받아 흩어진 이들 가운데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이 있었습니다.(행6:5) 빌립은 사마리아를 거쳐(8:4-13)
천사의 인도에 따라 남쪽 광야 길로 향하다가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따라,
오직 여왕들만 다스리던 ‘누비아’의 내시는
유대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고자이었음에도(신23:1)
그리스도 공동체의 첫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집니다.(36-37)
이는 말씀과(32-33, 사53:7-8) 성령의 감동에 따른
큰 기쁨의 부활열매입니다.(35, 39c)
그러고 보니 그는 유난히 말씀에 갈급한 이방인이었습니다.(28, 31, 34)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고난과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과 탄식 탄원(1-21)을 넘어 구원과 감사로 이어지는
유일한 시편인 22편의 뒷부분 ‘감사 시’입니다.
죽음의 곤경에서 살아난 시인의 감사 찬양은
회중(25), 가난한 사람들(26), 땅 끝에 사는 사람들(27), 땅 속에서 잠자는 자(29),
그리고 자손과(30) 그 자손들에게까지(30-31) 이어달리는 듯합니다.
가장 가까운 자녀들에게조차 부모의 부활신앙이 이어지기 어려운 오늘날
특히 30-31절이 감동적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일서 4:7-21, 요한복음 15:1-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입니다.
지난 주(3:16-24)에 이어서, 오늘 본문은
“사랑”을 29번이나 반복하며,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이심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외아들을 주신 사실을 통해서 이를 확신합니다.(9-10)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길,
즉 하나님 사랑을 제대로 깨치고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7, 11-12)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완성이요,
여기서 죽음의 공포를 이길 완전한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은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감상적일 뿐이니
우리는 계속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입니다.
구약의 전통에 비추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시80:7-13, 사5:1-7, 렘2:21, 겔15)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고 재차 강조하심으로(1, 5)
이스라엘의 존재목적과 사명(하나님 영광)이 당신 안에서 실현 될 것을 보이십니다.(8b)
오늘 예수님께서 “열매”(x7)와 “머물다”(x8)를 여러 번 반복하신 까닭은
주님의 부활열매인 예수제자들이 차차 온전한 열매(열매 많이 맺는 가지가) 되려면(5b, 8a)
오직 예수님 말씀 안에 철저히 뿌리내려야 함을(7) 강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지난주 본문에서 우리는
<안다는 것은 하나 되는 것, 그만큼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복음 10:14)
참 목자와 양의 관계인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알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요일3:21, 시23:4)
그리고 오늘 본문은, 지난주 본문에 이어(요일3:23c)
<서로 사랑하라>고 반복하십니다.(7, 11-12)
그럴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 이것이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 완전한 사랑이니까요.(요일 4:12, 17-18)
형제자매 우리 모두가 부활열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 부활열매로 무르익어야 우리 안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참 부활열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열매 맺는 가지가 되려면
우리는 온전히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요한 15:4)
그렇게 열매는 무르익어가는 것입니다.(5, 7)
이제 중요한 것은,
과연 지금 내가 주님 안에 머물고 있는지, 그래서 장차 내 안에 열매가 있을지 입니다.
이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오늘 요한일서 4:20-21절과 시편 22:30-31절일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과(요한15:3) 성령으로(요일4:13),
이미 우리에게 그 길이 열렸습니다.
[나머지]
* 에티오피아 내시
에티오피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누비아를 지칭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누비아는 이집트 아래 수단의 북쪽 지역으로서, 대대로 여왕들이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 여왕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간다게입니다. 내시는 아마도 환관이었을 텐데, 그가 이사야서를 묵상하는 것을 보니 이사야 56:3-5절이 떠오릅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 참조)
4..."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5.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이사야 56:4-5)
그런데 신명기에 따르면 환관은 유대인으로 개종할 수 없습니다.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신명기 23:1)
그럼에도 이사야서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이사야 56장의 배경인 바벨론 포로기에 왕궁에서 근무하던 유대인들이 거의 환관이었을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튼 빌립을 만난 에티오피아(누비아) 내시의 감격이 느껴집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결격사유 없이(36) 주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감동입니다. 그야말로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고(행 8:35), 빌립은 사라졌으나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갑니다.(행 8:39)
** 영지주의를 경계하며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이 쓰인 시대 상황을 돌아봅니다. 그 당시 교회 안팎을 통틀어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가현화였습니다. 하나님 말씀, 즉 예수님 사랑을 생생하게 닮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사랑’을,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말만 무성한 교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이 되어가는 교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지주의가 문제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매우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매우 비밀스러운 것으로 독점하려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로 이러한 잘못된 영지주의적 분위기를 망치로 깨부수는 듯 선포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만천하에 하나님의 정체를 까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참 통쾌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 “완전한 사랑”(요일 4:18)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려 29회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알맹이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7, 11, 12) 그런데 이 알맹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오늘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의 중요한 공통분모입니다. 즉,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라는 관계가 서신서와 복음서에 각각 3차례씩, 6차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 4:13, 15, 16 / 요한 15:4, 5, 7) 이 관계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가리켜 오늘 서신서본문은 “사랑”으로,(“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8) 오늘 복음서본문은, “농부”로 묘사합니다.(“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사랑을 심어 사랑농사 짓는 분이십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그 열매 풍성히 맺으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7) 이건 바로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경지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개역개정)
그분의 뜻, 오직 사랑으로 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랑열매 가득해집니다. 거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 없는 법입니다.(요일 4:18)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머물기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6호)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열매 맺는 가지되지
예수님을 떠나가면
버림받는 가지되지
오직 예수님 안에서
오직 예수님께 붙어
그곳이 내 머물 자리
[말씀시조] 하나님을 아는 사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6호)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자매 사랑하리
그 사랑 완성될 때에 두려움은 없나니
[말씀서예] 요한일서 4:1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6호)
[시편노래] 시편 22, 은혜로운 주의 역사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 106호)
[본문] (시편 22:25-31)
[노랫말]
1. 은혜로운 주의 역사 소리 높여 찬양하리, 서원한 희생제물 성도들과 봉헌하리
가난한 사람들도 배부르고 너그러워, 주님을 찾는 사람 모두모두 찬양하리
2. 땅 끝 백성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오고, 이 세상 모든 민족 주님을 경배하리
온 누리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라, 만국을 다스리는 주님만 바라보라
3. 땅속에서 잠자는 자 어찌 주를 경배하리, 주님 주신 생명으로 내가 주를 경배하리
내 자손 후세 자손 대대손손 주 섬기고, 그 백성 구원하신 우리 주님 찬송하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2 (은혜로운 주의 역사)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 연습 부족으로 음원을 못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대신 전에 사용한 비슷한 본문 시편가 악보와 음원을 올립니다.)
[시편송서(誦書)] 시편 22:25-3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6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주-를) 전-할 것이-며--∼
[다함께]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말씀그림] 사도행전 8:26-40 (코스모 카피탄육 그림)
(* 문득 기억이 나서, 우리 블로그에 오래 전에 올라 있는 코스모 카피탄육 할아버지의 말씀그림을 올립니다.)
[ 「코스모 할아버지의 성경그림 이야기, 창조와 구원」 147쪽 (2011. 도서출판 성실문화) ]
[말씀동화] 영희의 사랑가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아기 길냥이 입에 조심조심 씹은 고기 넣어주던 시절 이야기예요.
“멍멍, 멍멍, 멍멍멍!”
오늘도 쿠키가 정신없이 짖어댑니다.
아니나 다를까 밥 때가 되었는지
까망 고양이 야옹이가 어슬렁거리며 등장합니다.
야옹이는 한번 쓰윽 쿠키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쿠키는 유기견입니다.
어린 시절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유기견.
그래서일까? 쿠키는 꾀죄죄한 자기를 길에서 발견하고 거둬준 영희 언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과 물을 먹여주는 영희의 마음에 들려고 늘 애씁니다.
그런데 영희 언니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쿠키의 자리를
저놈의 야옹이가 야금야금 빼앗는 것 같은 거죠.
길냥이 주제에!
‘도대체 영희 언니는 왜 길냥이에게 밥을 주나? 의리도 없는 저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쿠키의 멍멍 소리를 들은 영희가 현관문을 열고 나옵니다.
영희의 손에는 쿠키와 야옹이의 밥그릇이 들려 있네요.
“조금 기다려 야옹아. 쿠키 밥 먼저 주고 올게.”
이럴 때마다 쿠키는 몹시 뿌듯합니다.
‘그렇지! 역시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지!’
영희가 쿠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밥을 줍니다.
쿠키는 영희를 올려다보며 힘차게 꼬리를 흔듭니다.
오늘따라 밥맛이 되게 좋은걸?
매일 불러주는 영희 언니의 사랑노래도 오늘따라 더 달콤합니다.
이어서 영희가 야옹이에게 가서 밥을 줍니다.
입으로는 부지런히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은 온통 야옹이에게 가 있는 쿠키가
야옹이에게 밥을 주는 영희 언니를 힐끗 쳐다보네요.
‘역시, 오늘도 우리 언니는 길냥이 머리를 전혀 쓰다듬지 않았다, 아싸!’
쿠키와 야옹이에게 밥을 주고서
영희는 천천히 쿠키와 야옹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봅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주 어린 시절 입양아로 자라난 영희는
언젠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언젠가 파양(罷養)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부터는
스마트폰이 닳도록 파양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죠.
점점 엄마아빠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마음 문이 닫히고 마음의 방이 좁아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말씀 한마디에 마음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는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죠.
“영희야. 우린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거 알지? 그런데 그거 아니? 우리 모두가 입양아라는 사실! 그러고 보니,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도 아빠 요셉의 가문에 입양된 거나 다름없으시네, 그치? 우리에게 입양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거란다. 왜냐하면 하나님 사랑을 배우는 열쇠가 바로 입양이거든.”
그렇게 점점 마음의 방이 다시 넓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영희는 유기견 쿠키를 입양하게 되었고,
영희의 마음은 나날이 너그러워져
길냥이에게 야옹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을 보내주신 것처럼(요한일서 4:9)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생명을 내주신 것처럼
영희는 지구별에 입양되셨던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처럼 내 소중한 밥을 나눠주며 담대하게 살고 싶습니다.(요한일서 4:17)
쿠키와 야옹이에게 밥을 줄 때마다
영희는 조용조용 성경말씀을 읊조리며 노래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한일서 4:18)
영희의 말씀노래를 들으며 밥을 먹는 쿠키와 야옹이는
영희의 사랑노래를 먹으며 사랑스럽게 자랄 겁니다.
우리를 입양해 주신 하나님 사랑을 닮는 길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은,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요한일서 4:20-21)
오늘도 영희는 쿠키와 야옹이에게 사랑의 밥을 주며 노래합니다.
“밥을 밥을 주신 예수님, 동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 자리가 기쁨의 자리, 되게 하소서∼
밥은 밥은 내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 이 자리에 밥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밥을 밥을 서로 나눔은, 동무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 이 밥을 통해 한 자녀, 되게 하소서∼”
(‘밥의 기도’ 채희동 시, 이천진 곡)
[이정훈 지음. 2021년 5월 1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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