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시편 23:4)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5-12)
5. 이튿날 유대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해서,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서 물었다. “그대들은 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였소?”
8. 그 때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9.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요한일서 3:16-24)
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
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한복음 10:11-18)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18.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예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입니다.
사도행전,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사도행전 4:12)
시편,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시편 23:1)
서신서,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요한일서 3:16)
복음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요한복음 10:17)
오늘 요절은,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입니다.(시편 23:4)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4:5-12, 시편 23)]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베드로와 요한이 의회 앞에 끌려오다’입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던 사람이 예수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 일로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예수이름, 예수부활을 증언하니 오천 명이나 믿게 되고(4)
급기야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하룻밤 가두어둡니다.
이튿날 유대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의회 앞에 세우고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특히 누구 이름으로 그 일을 하였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과거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와는(눅22:54-62) 180도 다르게
성령 충만하여, 아무 두려움 없이 예수이름, 예수부활을 증거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선한목자’입니다.
오늘 시편은,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신(11,14)
오늘 복음서본문의 응답찬송으로 안성맞춤으로 보입니다.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오늘 예수님 말씀 중 “이리”와 “삯꾼”처럼(12),
우리 인생길 곳곳에
“죽음의 그늘 골짜기”와(4) “원수들”(5)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내게 두려움이 없는 까닭은(4c)
나에게 “목자”이신 주님과 “주님의 집”(6)인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절로 떠오릅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참 목자 예수!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일서 3:16-24, 요한복음 10:11-1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광’입니다.
첫 절(16)에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그 사랑의 이름(예수이름)을 제대로 알 때, 형제자매를 목숨 다해 사랑할 수 있다!(16)
이는 다시 23절로 이어지고 다져집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체득하고 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에서 태어나(19)
주님과 일심동체가 된(24) 하나님의 참 기쁜 자녀입니다.(22)
16절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는
오늘 복음서 요10:11절과 짝을 이루며 14절로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선한목자’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를 고친 일로 시비가 벌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본문 앞 장(9장)에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친 일로 바리새파 사람들의 시비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저 몽매한 적대자들과 달리 참다운 <양의 문>이심을 드러내시고(7)
이어서 <선한 목자>이심을 오늘 본문은 드러냅니다.
첫 절(11)에 주제가 담겨 있는데, 이는 서신서 첫 절과 짝을 이루고
또한 시편 첫 절과도 짝을 이룹니다.
그런데 첫 절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14-15절에서 반복해서 다지십니다.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을(11,15,17,18) 반복하시는 까닭은 그<사랑>의 무게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내려오기 시작해서(17)
서로를 점점 알아가며(14-15) 그렇게 무르익어
마침내 생명을 살리십니다.(11,15,17-18)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부활절 4째 주일 성서일과는 온통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목자의 그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 사랑을 제대로 아는 양들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과연 나는 지금 이 어두운 시대를 그런 양처럼 든든하게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세상에 아직 그 사랑을 맛보지 못한, 길 잃은 양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런데 그 사랑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안다는 것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지식을 안다는 것은 그 지식이 내 안에서 소화되어 내 몸이 되고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안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랑과 하나 되어 나에게서 그 사랑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 예수와 하나 되어 예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외치는 선언이 매우 강렬합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덜덜 떨던 그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게 외칩니다.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행4:12)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그 이름, 예수 이름은 곧 사랑입니다.
예수이름을 안다는 베드로의 이 선언은
그 이름 예수처럼, 그 사랑대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처럼 내 목숨을 약한 양들을 위해 바치겠다는 지금 베드로에게는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예수님의 사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은 명령(命令)이요(요10:18c) 또한 사랑입니다.(17)
일심동체의 사랑입니다.
성부와 성자가 서로를 아시는 것은(요10:15) 하나라는, 일심동체라는 뜻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서로를 아는 목자와 양이니(요10:14) 우리는 주님과 하나입니다.(요일3:24)
<안다는 것은 하나 되는 것, 그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숨 명(命), 명령(命令),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목숨을 바치시고 다시 얻으신 예수님처럼,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환한 기쁨, 그 든든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신 예수님처럼(요10:17),
내가 주님을 안다면, 주님의 그 사랑을 안다면,
아무리 힘겨운 시대여도 최소한 남 좋은 일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너그러이!
오늘 이 어둔 골짝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두려움을 씻어줄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몸 교회답게 따뜻한 목자 든든한 성전으로 우리가 자라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그 사랑으로!
[나머지]
* 지구별에서
며칠 전(4/22) 지구의 날을 보내며 다시 지구온난화를 걱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한여름처럼 기온이 치솟습니다. 찔레순과 다래순이 정신없이 돋아나더니 이내 딱딱하게 세어지기 시작합니다. 꽃들도 난립니다. 차근차근 차례로 피어야 정상인데, 한꺼번에 핍니다. 봄이 너무 짧아지는 세상이 안타깝고 다시 봐도 안타깝습니다. 청춘(靑春)! 틈만 나면 스마트 폰에 파묻히는 아이들이 안쓰럽습니다. ‘지나보면 알 텐데, 지금이 얼마나 귀한 시기인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부디 찰나 같은 이 청춘(靑春)을 만끽하길, 이사람 저사람 만나며, 이런 말 저런 말 마구 지절대며 청춘을 꽃피우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러다 문득!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말하면서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 실수투성이라고, 글렀다고, 그래서 포기한다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요. 그뿐 아닙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라며 저 천국만 바라본다는 노랫말을 오독하여, 하나님이 주신 지금 이 귀하고 거룩한 일생을 한없이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은지요. 그래서 저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혼자 중얼거립니다. <지구별에 와 머무는 지금, 비록 백만 송이 장미를 못 얻어도, 지금이 청춘 아닌가?> 살아생전 바로 지금이 청춘이라는, 본향으로 돌아가기 전 지금 여기가 청춘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지구별에서 만난 모든 이들과 모든 자연과 더불어 신나게 사귀고 사랑하고 나눠먹으며, 아무 두려움 없이 그 사랑을, 찬란한 이 생명을 목청껏 노래할 때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참 목자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6호)
늑대가 나타나면 도망간다 삭꾼
진짜 목자 예수님 말뿐이 아니야
늑대가 나타나면 목숨 걸고 지키신다
다 제 몫을 바라고, 제 몫을 위해 살지
그 마음을 백분 만분의 일이라도 알기를
선하신 목자 예수님
[말씀시조] 주의 계명 무엇인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6호)
주의 계명 무엇인가 서로 사랑 이것이니
형제자매 궁핍할 때 정성 다해 사랑하자
날 위해 목숨 바치신 주 예수님 본받아
[말씀서예] 요한일서 3:16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6호)
[시편노래] 시편 23, 주 나의 목자시니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06호)
[본문] (시편 23)
[노랫말]
1. 주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 없네, 푸른 풀밭 맑은 물 가 인도하시네
나에게 또다시 새 힘 주시어, 주 이름 빛나는 길 인도하시네
2. 나 비록 죽음골짝 다닐지라도, 함께 가는 내 주님이 지켜주시고
든든한 지팡이로 보살피시니, 두려움이 연기처럼 사라져가네
3. 주님이 차려주신 나의 잔칫상, 내 원수 눈앞에서 차리신 밥상
내 머리에 귀한 기름 부어주시니, 오 주여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4. 진실로 선하시고 인자하신 주, 평생토록 나와 함께 동행하시리
나는야 주님의 집 돌아가오니,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나이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3 (주 나의 목자시니)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2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6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함께]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말씀동화] 복동(福童)이의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꽃 이름이 궁금해서 식물도감 뒤적이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도 복동이는 부지런히 산에 오릅니다.
나물바구니 옆에 끼고 여기저기 다래순을 땁니다.
조금 있으면 햇순이 단단하게 세어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산에 오릅니다.
“어라? 다래순인 줄 알았는데 요건 뽕잎햇순이잖아?”
눈에 불을 켜고 오직 다래넝쿨만 찾느라 미처 몰랐는데
요 녀석은 뽕나무줄기를 타고 오른 거였네.
다래나무는 무엇이든 다 타고 오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참 씩씩하고 부지런하고 또 끈질깁니다.
다래순과 뽕잎새순이 어울려 있는 게 참 보기 좋습니다.
생긴 것도 크기도 비슷비슷하고
모두모두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인 보배나물입니다.
“하늘과 땅이 함께 만들어 값없이 베푸시는 초록 선물, 하느님 고맙습니다!”
복동이는 나물바구니에 다래순과 뽕잎순을 함께 담아 산을 내려옵니다.
엄마에게 칭찬받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복동이의 입이 벙글어집니다.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복동이는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심청이도 열다섯 살에 아빠 눈 열어드리려고 짐승 같은 남경상인에게 팔려갔다는데
복스럽고 부지런한 우리 복동이는...
짐승만도 못한 일본 군인들에게 끌려간 것입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고 스물두 살 처녀가 되어 집에 돌아온 복동이는
몸도 마음도 어둡고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어디선가 꽃향내가 코끝에 스칩니다.
“춘삼월 내 생일이 다가왔나 보네.”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세상은 온통 꽃 잔치가 한창입니다.
산에 들에 마구마구 피어난 꽃들이 복동이를 보고 소리칩니다.
“힘이 없어 끌려갔지만, 소녀의 꿈은 누구보다 크단다. 소녀의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단다.”
꽃들의 힘찬 노래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은 복동이는
다시 산을 올랐어요.
온산 가득한 머루와 다래, 그리고 뽕잎 새순까지
여전히 복동이를 반기는 너그럽고 푸르른 산에 올라 복동이는 노래합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 1절]
청산(靑山)의 푸르른 꿈을 품게 된 복동이는
누구보다 푸른 마음 고운 마음을 무럭무럭 키워갔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약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애썼습니다.
“말이나 혀로만 사랑하면 뭐해, 진실한 행동으로 사랑해야지!”(요한일서 3:18 참조)
힘없는 할머니로 늙어가면서도
복동이 할머니는 있는 힘을 다해서 약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죠.
여전히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정부를 향해
다래넝쿨처럼 끈질기게 항의하고 나무라는 것도 잊지 않으셨고요.
친한 사람들이 가끔 이런 농담을 합니다.
이름은 복동인데 인생이 왜 그리 박복하냐고.
그럴 때면 복동이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이름처럼, 나는 내 복(福)을 아이들(童)에게 다 나눠주고 싶어요. 힘없는 아이들 마음에 힘을 주고 싶어요.”
비록 한창 꽃다운 나이에 어두운 터널을 지났지만,
춘 삼월에 꽃처럼 태어나(음력 3월13일) 한평생 늘 꽃이 만발한 인생이었다고,
슬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환한 꽃이 되어주며 살았노라고
복동이 할머니는 자부합니다.
복동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누구보다 슬펐던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은 또 누구보다 밝게 노래했습니다.
숨지시는 날까지 약한 우리에게 장학금을 나눠주려고 애쓰시던 복동이 할머니의 복을,
선한 목자 같은 그 밝은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복동이 할머니를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짐승들에게 끌려가던 약한 소녀가 평화의 소녀 꽃으로 다시 피어났듯이,
일본정부의 차별 속에 사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마음속에 늘 꽃처럼 피고 또 피어나실 분,
춘삼월 꽃피는 봄날 태어난 복동이 할머니를
아이들이 씩씩하게 노래합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흙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때로는 외롭고 슬프겠지만,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꽃’ 로코 지음, 윤미래 노래. 영화 「김복동」 주제가]
[이정훈 지음. 2021년 4월 24일 토요일 아침]
(*오늘이 생신이신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며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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