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일과 4본문 끈 찾기]
늘 하는 얘기지만, 성서일과 4본문은 항상 관련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림절이나 사순절처럼, 비교적 주제가 통할 수도 있지만, 주현절기이나 성령강림절기처럼 긴 기간 동안 4본문을 주제에 따라 선택하지 않고 성경차례에 따라 배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주제별 선택’이건, ‘차례에 따른 배열’이건 항상 4본문 가운데서 통하는 주제를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서일과를 연구하는 분들은 대체로 이런 습관을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말씀 기억력’ 때문입니다. 각 본문의 알맹이를 왜곡하지 않는 한, 좀 무리를 해서라도 공통된 주제를 찾아 언급함으로써, 말씀과 말씀사이의 연상 작용, 나아가 ‘말씀기억력’을 회복시키고, 배가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먼저 성서일과 4본문을 올립니다.
(행 5:27-32)
27.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공의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소.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소.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시 118:14-29)
14.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15. 의인의 장막에서 환호하는 소리, 승리의 함성이 들린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6.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18.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27. 주님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다. 나뭇가지로 축제의 단을 장식하고, 제단의 뿔도 꾸며라.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겠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계 1:4-8)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요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번주일 (부활절 2째주) 4본문을 어깨동무하게 만드는 주제는 뭐니뭐니해도 ‘주님’입니다. ‘구원자 주님’이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도행전 5장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공의회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다”(31b)
** 시편 118편은 지난 주일(부활절) 시편 본문과 많이 겹칩니다. 그만큼 중요한 노래입니다. 여기 ‘구원’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반복해서 나옵니다.(14, 19, 21, 25)
*** 요한계시록 1장 5절 끝에 보면,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고로 계시록본문은 주님을 구원자(해방자)이며, 또한 ‘다시 오실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이”4, “구름을 타고 오신다”7,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8)
**** 요한복음 20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부활예수의 모습은 부활절 3주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기자는 부활예수님을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주시는 분’(19, 21, 26), ‘성령을 주시는 분’(22), ‘믿음을 주시는 분’(27-29)
※ 저는 이번 주일 성서일과 4본문을 이어주는 끈으로 ‘문(門)’을 택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본문인 5장 27절로 32절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그 앞 장면을 살펴보면, 옥에 갖혔던 사도들이 풀려나는 장면과, 없어진 사도들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행 5장) 19. 그런데 밤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여라!" 하였다... 22. 경비원들이 감옥에 가서 보니, 사도들이 감옥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23. "감옥 문은 아주 단단히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 문을 열어 보았더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좀 억지 같습니다만, 저들(경비원들)의 묘사는 요한복음 기자의 예수님 묘사와 비슷합니다. 요한 20:19, 26절에 보면, 문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홀연히 나타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 예수님’, 그리고 “이 생명의 말씀”(행 5:20)을 전하는 이들에게 닫힌 문, 잠긴 문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오히려 그 ‘잠긴 문’은 “이 생명의 말씀”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불통(不通)이 역전(逆轉)되어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이 됩니다.
시편 118:19, 20절에도 문(門)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5절 끝에 나오는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다는 표현에서, “자기의 피”가 바로 구원의 문, 혹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행 5:28절에서 대제사장이 신문하면서 언급한, “그 사람의 피”, “그 이름” 역시 구원의 문,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더불어 오늘 복음서 마지막 구절인, 요한 20:31절 말씀이 이를 한 번 더 새겨주십니다.
“…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동화] ‘열두 대문 활짝 열렸네’ 얘들아 안녕? 부활절 잘 보내고 있니? 지난주일 복음말씀 기억해? 예수님 돌무덤 사건, 기억하지? 무덤어귀를 막아 두었던 커다란 돌문이 활짝 열리고 무덤 속 예수님 시신이 없어져서 안절부절하던 이야기! 마침내 우리 막달라마리아 이모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기억하지? 지난주일 무덤 돌문이 열린 이야기에 이어서, 오늘도 흥미진진한 문(門) 이야기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런저런 문(門)들인데, 무덤 돌문만큼이나 신비로운 문(門)이야기란다. 세상에는 참 많은 문들이 있지. 오늘 그 많은 문들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먼저 문득 떠오르는 대문 이야기 몇 개 들려줄게. (솟을대문) 파란 하늘로 향긋한 봄내음이 피어오르고 있네. 저기 하늘높이 으쓱거리는 솟을대문이 보이는구나. 과연 한옥마을에서 가장 큰집 대문답지? 이 큰집은 대문이 열두 개나 있다고 해서 ‘열두 대문 집’이라고 불린단다. 열두 대문 가운데서 가장 높고 씩씩하게 생긴 것이 바로 정문인 저기 저 솟을대문이야. 마치 한자, ‘뫼 산(山)’ 자(字)의 가운데 획처럼 우뚝 솟은 솟을대문! 좌우의 행랑채 지붕들과 어깨동무했지만 단연 우뚝 솟은 솟을대문! 예전에는 손님이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면 행랑채에서 하인이 쪼르르 달려나와 문을 열어주곤 했단다.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손님들이 솟을대문을 여는 열쇠였지. 그런데 “이리 오너라”보다 훨씬 목소리가 큰 열쇠가 있었단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풍물패들이 마당밟이를 하기 위해 이 대문 앞에서 문굿이라는 것을 했는데, 평소 평민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하던 이 솟을대문인데, 일 년에 딱 한 번 풍물패가 양반댁 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바로 문굿이었지. “주인주인 문여소 문안열면 갈라요, 주인주인 문여소 복(福)들어강께 문여소∼!” 이렇게 상쇠가 선창하면 모든 풍물패들이 풍물 ‘이채가락’에 얹어 상쇠를 따라 구호를 외친단다. 그러면 솟을대문이 스르르 열리는 법이지. 마치 「아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이야기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 같지? 물론 문굿은 그보다 훨씬 큰 소리지. 우리 솟을대문을 여는 가장 요란하고 신바람 나는 열쇠가 바로 문굿이었단다. (솟을대문 안에 있는 작은 문들) 열두 대문 집에는 솟을대문 같이 우뚝 솟은 정문과, 문 높이가 평평한 평대문으로 만든 후문 뿐 아니라 집 안의 구획을 나누는 여러 종류의 중간 문들도 있단다. 그리고 집에는 이런 대문들 뿐 아니라 변소 문도 있고, 곳간문도 있고, 부엌문도 있고, 방문도 있고 심지어 작은 창문들도 있지. 그리고 창문보다 더 작은 금고 문도 있고! 곳간이나 금고처럼 중요한 곳은 문에 자물쇠를 달아 단단히 잠가두는 거 알지? 그래서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쇠가 필요한데, 물론 그 열쇠는 안주인과 바깥주인이 자신만 아는 곳에 꼭꼭 숨겨두었겠지? (효자문) 그런데 한옥마을에는 솟을대문보다 훨씬 더 멋진 문이 있단다. 바로 마을 중심에 있는 효자문(孝子門)이야. 임금님이 친히 세워주신 효자문이지. 자신을 희생해가며 부모님께 크게 효도한 효자를 칭찬하고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세운 문이란다. 그런데 이름만 문(門)이지 사람들의 몸이 드나드는 문은 아니야. 그래서 효자문을 드나들 수 있는 열쇠는 따로 필요 없지. 그저 멀리서도 그 문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드나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효자문이란다. 그렇게 누구나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임금님 사시는 궁궐처럼 화려한 단청으로 단장한 멋진 효자문은, 한옥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야. (스마트폰 대문) 우리 집에도 문이 여러 개야. 먼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대문이 있고, 대문에서 몇 발작 더 들어오면 중문이 있고,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현관문이 있지.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서 내 방으로 들어가는 방문도 있어. 그런데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문이 뭔지 아니? 바로 스마트폰의 대문이야. 작은 문이니까 대문(大門)이 아니라 소문(小門)이 맞겠나? 아니아니 아무리 몸집이 작아도 대문은 대문이야. 스마트 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열쇠가 필요하단다. 스마트폰 대문의 열쇠는 바로 비밀번호야. 비밀번호를 잊으면 대문을 열 수 없지.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비밀 문양을 손가락으로 그려서 대문을 열면 그 안에 이런저런 작은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더 작은 문들이 있단다. 그 문들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방문들이 활짝 열린단다. (신비로운 벽장 문 두 개) 우리 집 꾸러기들인 선구, 진구, 소현이는 내 스마트폰 대문을 열고 싶어 늘 안달이란다. 내가 대문열쇠를 안 알려줘서 못 들어가니 더 안달이지. 그런데 스마트폰 보다 훨씬 더 우리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작은 벽장문이야. 바로 ‘몬스터 주식회사’라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벽장문! 이 영화의 주인공은 커다란 설인처럼 생긴 설리라는 괴물과 동그란 농구공처럼 생긴 외눈박이 괴물 마이크란다. 설리는 우리집 강아지 은동이처럼 털이 북실북실한데, 틸 색깔은 연보랏빛이야. 마이크는 노란색이고! 설리와 마이크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일등 노동자 커플이야. 그런데 몬스터주식회사가 뭘 하는 회사냐 하면, 에너지를 생산하는 전력회사 비슷한 곳이야. 그런데 그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느냐하면, 화력발전소처럼 석유를 때거나, 수력발전소처럼 커다란 댐에 담긴 많은 양의 물이 에너지원이 아니고, 인간세상 어린이들의 비명소리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거야. 어린이들이 몬스터를 보고 놀라서 “꺅∼” 하고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바로 몬스터주식회사의 에너지원인 셈이지. 그런데 몬스터들이 과연 어떻게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몬스터 세상에서 인간세상으로 드나드는지 이게 참 재미있는 건데, 인간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바로 벽장문이야. 수많은 벽장문 하나하나마다 각각 드나드는 공간이 다양한, 그야말로 만화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있는 상상력의 세계지. 그런데 주인공 설리와 마이크가 ‘부’라는 인간 어린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사건이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인데, 그 이야기 다들 알고 있나? 결론만 말하자면, 이 영화의 알맹이는 바로 문(門)이야. 그런데 그 문은 벽장문이 아니라, 마음문이란다. 인간 아이들과 접촉하면 오염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소통함으로써 마음이 통할 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즉 아이들의 공포가 아니라, 비명이 아니라, 깔깔깔 행복한 웃음소리가 바로 진정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야. 그래서 이 사실을, 이 비밀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벽장문은 더 이상 공포와 은폐의 상징이 아니라 소통과 사랑, 나눔의 상징으로, 즉 완전히 정반대로 확 변하게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내가 본 영화 가운데, 몬스터주식회사보다 한 뼘 더 재미있고 진지한 벽장 이야기가 있단다. 그건 바로, 『나니아 연대기』 처음에 나오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라는 이야기야. C.S.루이스 할아버지가 쓴 참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어. 벽장, 즉 옷장 속에 들어가서 만나는 신비로운 나니아 세계 이야기지. 그 신비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 바로 벽장, 즉 옷장 문이었단다. 혹시 아직 그 이야기 모르는 어린이가 있으면, 꼭 그 책을 구해서 읽어보길 바래.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멋진 벽장 문 이야기란다. (사도들과 감옥문) 오늘 사도행전 본문말씀 중에도 신비로운 문(門)이야기가 나온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5장 27∼32절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사건인데, 부활하신 예수님과 오순절 성령님을 만난 뒤에 담대해진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부활예수님에 대하여 신바람 나게 전도하다가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무리들에게 체포되어서 감옥에 갇혀있었는데, 바로 여기서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지.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해방시켜준거야. 그런데 더욱 신비로운 것은, 경비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감옥문이 단단히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의 천사가 사도들을 해방시켰다는 거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천사가 왜 사도들을 감옥에서 풀어주었느냐 하는 건데, 그건 바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단다.(행 5:20) 사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전도사명’이었던 셈이지. 다시 말하자면, 감옥 문을 열었던 열쇠는 바로 ‘생명사랑’이요, ‘말씀사랑’이었단다. (꼭꼭 숨은 제자들, 꽁꽁 잠긴 문)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말씀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 20장 말씀이란다. 오늘 대문이야기 가운데 가장 멋진 이야기지! 예수님 제자들이 유대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어. 대문이고 중문이고 방문이고 모두 닫아걸고 꽁꽁 잠근 거야.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거야. 누가복음 24장 36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은 부활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시자 살도 뼈도 없는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하는 장면이 나온단다. 유령이니까 마치 연기처럼 문틈으로 스며드신 줄 알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이었지. 의심 많은 제자 도마를 위해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타나셔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참혹한 상처들을 보여주셨어. 도마는 그 상처들을 보자마자 어마어마한 고백을 한단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내가 아는 한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고백이 바로 이 고백이야. 도마가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어마어마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못이 박힌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허리에 난 창자국, 그 큰 상처 속에서 도마는 아주아주 큰 사랑을 느꼈던 거야. 그리고, 꽁꽁 닫힌 대문과 방문, 그리고 그 문들보다도 더 꽁꽁 닫혔던 내 마음의 문조차 예수님의 저 용솟음치는 부활의 기운, 저 거침없이 흐르는 사랑의 물결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음을 순간 느꼈던 거야. 얘들아, 문은 밖에 있는 침입자들로부터 안에 있는 사람과 물건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문(門)은 안에 잘 보관해 두었던 사람과 재산들을 밖에 있는 이들과 나누기 위한 통로로서 존재하는 것이란다. 말이 좀 어렵지?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마치 술래잡기 하듯이 꼭꼭 숨어 있던 제자들을 한꺼번에 찾아내셨어. 처음에는 도마를 못 찾아서 두 번씩이나 수고스럽게 제자들을 찾아오셨지. 그런데 꽁꽁 닫아건 문들을 어떻게 열고 들어오신 것일까? 그 열쇠가 무엇이었을까? 그 열쇠는, 솟을대문을 여는 “이리 오너라”도 아니고, 풍물패들의 문굿 덕담도 아니고, 스마트폰의 비밀번호도 아니었어. 그 열쇠는 바로 바로 사랑이었어. 물론 그 사랑은 제자들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하신 사랑이었어.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생님을 배신한 죄책감과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고 성령을 주시며, 마침내 사랑의 열쇠, 즉 용서의 문을 여는 열쇠를 주신거야.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제자)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랑, 하나님 아버지께 잘못을 저지른 세상 사람들의 꽁꽁 닫힌 마음문도 활짝 열고 스며들 수 있는 사랑의 열쇠, 평화, 성령, 용서...! 얘들아 오늘도 긴 이야기 여행을 했구나.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다. 성경의 끝에 보면 요한계시록 21장 12절과 21절 그리고 25절에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대문 이야기가 나온단다. 그리고 어린양의 생명책 이야기가 나와. 그 생명책에 누가 기록되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거기 기록된 사람은 누구나 다 그 열두 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이 열두 대문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쏟아져 나온 소망의 기운들이 부디 너희 모두에게 스며들고, 오늘 부활절 둘째 주일 복음말씀에서 쏟아져 나오는 예수님 사랑의 기운이 너희 모두와 너희 모든 이웃들에게 스며드시길 기원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님 닮아 서로서로 용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빈다. 그럼 다음 주에 우리 또 만나자. 한 뼘 더 사랑의 키가 자란 모습으로 만나자꾸나. 샬롬!
[이정훈 지음, 2013년 4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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