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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부활절 2주(2024년 4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20:31)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32-35)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시편 133)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요한일서 1:1-2:2)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께서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다입니다.

 

사도행전,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사도 4:32)

시편,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편 133:3)

서신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거하고 선포합니다”(요일 1:2)

복음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복음 20:19, 21, 26)

 

오늘 요절은,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입니다.(요한복음 20:31)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4:32-35, 시편 133)]

오늘 사도행전본문 소제목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재산공유 공동체입니다.

사도들로부터 예수부활 증언을 들으면서 신도들 안에 부활신앙이 차오릅니다.

그러자 삶이 변하여 무소유 삶, 물질을 나누는 평화(平和)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무소유 삶으로 변화한 평화공동체-<교회>의 예수부활증언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33)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형제화합의 복입니다.

한 핏줄 형제자매라도 한 공간에서 지내다보면 긴장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히려 어울리고 함께 사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복스럽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린다는 표현은(3)

나라의 북방 끝에서부터 온 나라의 피붙이들이

성전이 있는 시온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다투던 북측과 남측이 생명을 나누기 시작하는 평화의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일서 1:1-2:2, 요한복음 20:19-31)]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친교의 기초, 빛 속에 사는 삶,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영지주의적 적대자들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과 참된 사귐의 첫 단추는

먼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 나의 죄를 환히 발견하고 자백함으로 시작합니다.(9)

 

이 과정에서 화목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2:2)

생명의 말씀이시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1:1-2)

관념과 추상을 뛰어넘어 생생하신 그 생명을,

그 영원한 생명, 부활예수님을 만나 사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도마의 불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21)

 

파송하시는 과정은, 먼저 평화의 인사를 하시고,(19, 21)

성령을 전달하십니다.(22)

그리고 죄용서 권리, 세례권(洗禮權)을 주십니다.(23)

 

이어지는 도마 이야기로 우리는 큰 힘을 얻습니다.

도마의 고백 덕분에 부활예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되고,

기적도, 표적도 없이 오직 말씀에 근거한 믿음,

부활증언에 의한 믿음만으로 충분히 복스러울 수 있으니!(29)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제주 4.322대 총선 사이에 맞이하는 부활절 2째 주일입니다.

한 교회에서조차 의견이 갈리고 자칫 몸이 갈라질 위기입니다.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주실

오늘 성서일과 본문말씀의 알맹이는 평화입니다.

 

평화의 임금으로 오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님의 말씀을 만나면,

광풍이, 풍랑이 잠잠해지듯 우리 마음이 평화의 기운을 차릴 것입니다.

난파 직전의 구원방주 교회가 잔잔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분, 생명말씀 예수님 그분만으로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리듯이

서로의 마음이 흐르고 흘러 서로에게 스밀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는 어둠의 기운 쫓아낼 빛나는 생명의 기운이 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명기운 평화기운 회복한 교회의 눈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반년 째 학살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참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독교 예배당조차 폭격당하고, 만나처럼 떨어지는 식료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조차 학살당하는

거대한 감옥, 거대한 지옥 가자지구를 향해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품고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조차 말라버린 수십만 유족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들 위에

헤르몬의 이슬처럼 생명이, 평화가 내리시고, 비로소 거기가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사는(이사야서11:6, 65:25) 평화의 땅으로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 노아처럼(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성경에 통달한 신학박사랑,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무학자지만 기도 열심히 하며 교회 봉사 잘하는 시골 교회 할머니 권사님, 이 둘 중에 누가 더 신앙이 좋을까? 정답은... 신학박사도 아니고, 권사님도 아닙니다. 정말 신앙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주님과 사귀는 사람)’입니다. 이게 성경의 답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세기 6:5-9) 여기서 눈여겨 볼 구절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암만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애쓰면 뭐합니까? 끼리끼리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먹고, 입에 쓴 말씀은 뱉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행한다는 말이 좀 모호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는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걸 어떻게 알지?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다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 상식대로 하지 않고, 제 경험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정말 어리숙하고 고지식하리만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설계도 도면대로 고대로... 하나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 지극히 고지식한 노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 도마처럼

그런데 도마는 노아와 달랐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내 계산보다 늘 크시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하며 살았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도마는,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방주 설계도에 무조건 순종했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완성된 방주가 아직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일생을 방주 건축에 매진했던 노아와 한참 달랐습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내 짧은 머리로 계산합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이성과 상식에 충실합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 20:29) 부디 성경말씀 읽을 때마다 하늘계획 환히 보고 활연관통 깨달아, 성찬말씀 먹을 때마다 주님 마음 고스란히 깨달아서, 도마처럼 철저히 따지다가도, 노아처럼 마침내 송두리째 순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경으로 성찬으로 부활예수님을 옹골지게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 처음교회처럼

부활예수님께서 오늘 찾아가신 사람들은 스승을 배신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이 평화인사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달리 평화인사 하신 기록이 많습니다.(20:19, 21, 26) 아마 대문도, 현관문도, 마음 문까지도 꽁꽁 닫아걸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 안에 시냇물처럼, 봄기운처럼 스미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 인사로 저들 상처를 품으시고 녹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달리 용서의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마치 너희의 모든 죄 다 용서했다는 증표처럼, “누구의 죄든지다 용서할 수 있는 권리조차 주신 것입니다.(23) 그리고 마치 형광등처럼 늘 센스가 무딘 우리 도마! 역사적인 찰나의 현장을, 그 거룩한 기회를 놓쳐버린 거북이 같은 도마까지 챙기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고백을 받으십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28) 감당치 못할 용서를 받은 제자들, 감당치 못할 부활의 신비를 체험한 제자들이 상상도 못할 부활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4:33) 상상을 초월할 일이 벌어집니다. 유사 이래 가장 막강한 우상인 돈의 손아귀로부터, 신도들이 돈 욕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합니다.(32)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의 증언, 예수님 부활 증언의 큰 능력은 점점 더 큰 빛을 발합니다.(33) 창세 이래 가장 막강한 우상이요 공포인 죽음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매주일 예배 말씀 안에서 진정 부활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진정 부활예수님을 만난 증거는, 처음교회 신도들처럼,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빛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온갖 거짓말, 그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회개하는 빛이신 하나님 안에 사는 진실하고 신실한 삶,(요일 1:5-7) 죽음권세의 손아귀, 돈 욕심, 저 끈질긴 소유욕에서 해방된 삶! 거기 부활의 기쁨,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이, 거기 참 평화가 있습니다.

 

 

 

 

 

[말씀동시] 아이야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8)

 

엄마 손 절대 놓으면 안 돼!

 

신신당부 하시던 어머니의 말을 잊어버리고

재주 부리는 피에로에 한눈을 판 아이는 그새 어머니를 잊어버렸다

 

바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 갈 곳 잃은 손을 휘적이던 아이는

이내 길가에 주저앉아 숨죽여 울며 몸을 웅크린다

 

아이야- 아이야

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이야- 고개를 들어보렴

어머니 목소리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이야- 이리와 내 품에 안기려무나

느껴지는 어머니의 온기에

그제야 제 어미를 알아보고 더욱더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야.

 

 

 

 

[시편시조] 시편 133, 형제자매 어울리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8)

형제자매 어울리니 아름답고 즐거워라

머리 위에 부은 기름 보배로이 흐르도다

헐몬서 시온산까지 영생의 복 흐르니

 

 

 

 

[시편노래] 시편 133, 형제자매 어울리니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118)

[본문] (시편 133)

[노랫말]

형제자매 어울리니 평화롭고 흥겨워라

부어주신 보배기름 향기롭고 고마워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헐몬에서 시온까지

굽이굽이 흘러내린 아름다운 영생이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단원이신 피리연주자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3 (주님께서 내리신 복)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20240407 시편노래 133 형제자매 어울리니.m4a
1.80MB

 

 

 

 

 

[시편송서(誦書)] 시편 13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8)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 얼마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즐거-운가-!

----자매---, 어울려-- -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 ---로운 기름이, --- 곧 아론의 수염-,

(수염)을 타-고 흘러---, 그 옷깃까-흘러내-- 같고-

 

[다함께]

3. 헤르몬의-- 이슬---, -- 산에 내림과 같구---

주님께서-- 그곳-에서-,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

 

20240407 시편송서 133.m4a
2.61MB

 

 

 

 

 

[말씀동화] 시온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살아나려면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어린 소나무랑 키 재기 하려고 까치발 들던 시절 이야기예요.

 

어느 날 백두산이 헤르몬산에게 말을 걸었어.

 

어이 헐씨, 모처럼 날씨도 좋은데 누가 더 큰지 키나 재볼까?”

 

백두산의 느닷없는 도전에 헤르몬산이 좀 께름칙했겠지.

 

이봐 미스터 백, 나는 헤씨야, 헐씨가 아니고

 

백두산이 눈을 갸름하게 뜨고 대답했어.

 

내가 미스턴지 미슨지 그걸 왜 자네가 결정하나? 그냥 백씨라고 불러.

그리고 우린 세 글자 이름을 좋아해. 그래서 헤르몬산보단 헐몬산이지.”

 

 

때마침 강남에서 돌아오던 제비가 백두산과 헤르몬산의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듣고

이리저리 씽씽 날아다니며 백두산과 헤르몬산의 키를 쟀어.

 

헤르몬산이 백두산 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데요

 

당황한 백두산이 동동 까치발을 들며 속삭였어.

 

제비야, 부디 너의 진정한 벗 흥부를 기억해다오

 

눈치를 챈 헤르몬산은 큰소리로 이죽거렸지.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부르시지.”

 

백두산이 까칠하게 대답했어.

 

형님인지 언니인지 왜 또 그걸 자네가 결정하나? 그리고 늙을수록 키가 줄어드는 거 모르나?

내 머리를 좀 봐라. 얼마나 하야면 이름조차 백두산(白頭山)이겠나

 

 

나도 질세라 내 머리가 더 하얗다고 우기는 헤르몬산의 말을 가로막고

시온산이 끼어들었어.

 

키 타령하랴 나이 타령하랴 바쁘네 바빠

 

작고 작은 산 시온산은 까치발도 들지 않고 이렇게 말을 이었지.

 

키 크고 나이 많은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은가, 이거란다.”

 

시온산의 구수한 이야기에 헤르몬산도 백두산도 그리고 제비도 귀가 솔깃했어.

 

내가 품고 있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는...”

 

시온산은 성전을 중심으로 오래 전 그리스도인들이 먹을거리를 나누던 이야기,

재산을, 사랑을 나누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들려주었지.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사도행전2:46-47)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사도행전4:32)

 

 

감동한 헤르몬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리고

완전 하트눈이 되어버린 백두산의 눈에서는 꿀이 떨어지니

백두산 천지(天池)는 온통 꿀물이 되어버리고

헤르몬산의 이슬과 백두산의 꿀물이 시냇물처럼 졸졸졸 시온산으로 흘렀단다.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편133:3)

 

이스라엘 성전에 집을 짓던 제비와(시편84:3) 한국의 흥부네 처마에 집짓던 제비가

마주보며 아름다운 노래를 주고받았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편133:1)

 

 

바로 그때 새까맣게 그을린 제비 한 마리가 새까만 소식을 물어왔어.

 

거대한 감옥 가자지구가 거대한 지옥이 되어가고 있어요!”

 

하얀 배까지 새까맣게 그을린 까만 제비의 목소리에 까만 눈물이 묻어났고

깜짝 놀란 헤르몬산과 백두산의 눈은 보름달처럼 커지는데

갑자기 시온산의 눈에서는 빨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지.

 

제가 품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죽지 않고 되살아나도록

이스라엘의 이 끔찍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어서 끝내주세요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리듯, 만나가 내리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음식 낙하산을 받으려고 달려가는

저 굶주린 가자지구 아이들에게 더 이상 총을 쏘지 말기를

시온산은 빨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시작했어.

 

[이정훈 지음. 202446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