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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3주 | 나는 기억으로 산다 (한정훈)

한, 정훈 2014. 3. 25. 19:59

사순절 제3

 

출애굽기 17:1 -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시편 95:1 – 1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로마서 5:1 - 1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요한복음 4:5 – 42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나는 기억으로 산다

 

기억의 깊이

사순절 제3주 말씀은 광야에서 식수 문제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에서 시작한다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데리고 나온다약속의 땅까지 가려면 광야를 지나야 했다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식수다백성은 모세에게 이렇게 불평한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애굽기 17:1 – 4)

 

하나님은 모세를 달래어물을 주신다.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5) 인상적인 표현이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이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 없는 것은 물이 아니라 기억이다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백성 앞을 지날 때하나님은 회상(回想)을 의도하신다오늘을 바로잡는 일의 시작은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기획은 갈증의 원인이 조건의 결핍(가난)이 아니라기억의 결핍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단단히 서고오늘을 두텁게 하는 것은가난-또는 결핍-의 추방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망각의 추방에 달렸다눈이 어두운 지도자는 가장 먼저 풍요를 약속하고성취될 풍요가 오늘을 앓게 하는 모든 문제를 풀어줄 거라고 약속하지만눈이 밝은 지도자는 먼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말한다어떤 곳에서는 가난을 없애겠다는 구호가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쫓아낸다.

 

우리가 정말 기억할 것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아니다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우리는 자주 사람을 잊고가족을 잊고존엄을 잊고생명을 잊고은혜를 잊고평화를 잊고수난의 역사를 잊는다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기억의 무게가 곧자신의 무게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기억의 무게는 존재의 무게이며기억의 깊이는 존재의 깊이이므로.

 

망각의 정의

무지는 근면의 성과라고 설명하는 글을 읽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우리가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이 말을 빌려 말하면망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기억의 결여를 뜻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으로노력한 결과로 얻은 성과다따라서 망각을 정확히 인지하면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낼 수 있다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한 것을 밝혀내는 일은 기억하려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투쟁

오늘 시편 말씀은 기억하지 않으려 했기에 다툼이 일어났고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말한다(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기억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기억하지 않음으로 인해 다투게 된다.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시편 95:9 – 11) 기억을 잃은 백성은 평화도 잃는다좀 더 나은 세상은 늘 잊지 않으려 투쟁하는 사람에 의해 지켜졌다.

 

기억의 의지

잊지 않으려는 투쟁은 신약 말씀으로 이어진다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한곳에 모은다오늘 신약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시작한다(로마서 5:1). 그리스도인은 예수에서 시작하는 사람이다예수 안에 모든 시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예수에서 시작할 때진정한 우리 자신도 발견한다.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에”(6-8).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 시선을 한곳에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로만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이 사실 앞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느냐고 묻고 있다우리는 죄인이었다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요청한다신앙생활의 목적은 잊지 않으려는데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예배기도찬양말씀 읽는 모든 것은 기억하려는 의지이다잊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보태는 말

첫 번째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짚어두고자 한다처음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을 때는 전도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남편이 다섯이라는 사실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깊은 대화를 통해서 여자는 예수에게서 사람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대화를 마칠 때 결국이 여자는 전도자가 된다그래서 진짜 전도는 사람대접하는 거구나!’ 깨달았다.

 

두 번째요한복음은 사건의 시작을 여섯 시라고 알려준다(6). 여섯 시면 우리나라 시간으로 몇 시일까유대 시간으로는 6시간을 더한 12그러니까 정오일 테고지금 우리가 쓰는 시간과 같은 로마 시간으로는 6시면 저녁 6시를 가리킨다여섯 시를 정오라고 보면중동 지방의 기후를 고려할 때여자가 아무도 없을 때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그 말은 자기를 숨기고 싶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저녁 여섯 시라고 하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저녁 여섯 시면누구나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된다그러면 남편이 다섯 있었고지금 함께인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는 조건은 스스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여자가 굉장한 재력가이거나 권력가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어쨌든 여자가 정오에 나왔을 경우에는 여자의 삶이 수치스러운 삶이 되고저녁 여섯 시가 될 경우에는 허망한 삶이 된다.

 

전개

5-42절 말씀을 전부 살펴볼 시간은 없다오늘 맥락에서 중요한 부분만 보겠다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가 물을 좀 달라” 한다(요한복음 4: 7). 그러자 여자는 당신은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9) 유대인 남자가 한 뜻밖의 요청에 여자가 느꼈을 감정을 어느 하나로 설명하기는 힘들다아마도 오랜 분노와 두려움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을 거다.

 

예수는 오히려 여자에게 다시 말한다.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물 길을 그릇도 없고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묻는다그리고 이 우물을 파준 야곱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냐고 묻는다(11-12). 어쩌면 냉소를 보냈을지도예수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한다(13).

 

갈증이 풀림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 이 말은 여자에게 물 길러 오는 일이 버거운 일이었다는 것으로 읽힌다그러자 여자에게 예수는 대뜸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한다(16). 여자가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 예수가 다시 대답한다. “네 말이 옳도다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8) 이후에 대화의 주제는 예배로 바뀐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이야기 자체에도 풍성함이 더해지고 있지만그뿐만이 아니라 이 대화는 영적인 흐름을 말해주는 좋은 비유이기도 하다오늘 본문은 42절까지지만내 눈길은 28절에서 더 나아가질 못한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28). 물동이를 버렸다는 사실은 여자가 가진 갈증이 풀렸다는 결정적인 증거다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물로 거듭나는 게 무슨 뜻인지 말해주는 결정적인 힌트가 된다(강일상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

 

남편이라는 갈증

사순절 제3주 네 본문을 기억이라는 주제로 읽었다그리고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기억의 맥락에서 자기와의 화해로 매듭을 짓는다자기와의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억의 문을 열어야 한다기억해 내야 한다.

 

사마리아 여자의 형편을 한 가지로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보태는 말을 빼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현실성은 떨어지지만형사취수혼의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여자의 가장 큰 짐가장 큰 갈증은 남편이다. “남편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갈증이라 쓰고, “갈증에 초점을 두면남편은 남편으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갈증으로 볼 수 있으며이를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겪는 반복적인 상실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우리 식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어렵게 어렵게 입사했는데한 달 만에 퇴사하고또 어렵게 어렵게 입사했는데또다시 한 달 만에 퇴사하고이걸 다섯 번 했고지금 여섯 번째 직장을 다니는데내 직장이라는 확신이 없다이성과의 만남 또는 꿈이나 진로와 같이 대강 덮어둘 수 없는 삶의 문제에서 연속된 다섯 번의 실패와 여섯 번째의 불확실성이런 문제가 남편이라는 갈증이다하지만 여자의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더 힘든 것

그보다 더 힘든 것은그럼에도 불구하고물을 길러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살기 위해서는 물을 길러 나가야 한다자기 삶의 의미가 회복되지 않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타협할 줄 모르는 현실이 누구에게나 무거운 짐이다나를 닳아 없애고내 존재를 하찮게 만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을 때의 그 갑갑증그 갈증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참된 시작

예수는 여자가 덮어두고 싶던아니 덮어둘 수밖에 없었던덮어두었기에 삶을 피상적으로 만드는 그 내면의 갈증을 기억하게 했다우리가 어디서 매번 실패하는지우리가 어디서 계속 하찮아지는지우리가 어디서 계속 절망하는지 하나님이 보게 하실 때가 있다상처를 들쑤시는 것과 다르다보통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그리스도인은 이 도움을 예수에게서예수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참된 시작>이라는 시집이 있는데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가 참된 시작이다.

 

교회 잘 다니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면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하는데기억하지 못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고그 순간이 물로 거듭나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그 가능성이 곧예수라는 시작이다사회도 삶도 마찬가지이다덮어 둬도 될 문제를 굳이 끄집어내는 사람을 보통 불편하게 생각하는데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사람 때문에 사회가 더 나빠지지 않고더 나은 사회가 그런 사람 때문에 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갈증에서 해방한 삶을 위한 시작이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사십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죄와 벌>

 

자기와의 화해

사람이 이 모양이다아니사람이 다 이 모양이다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덮어두고 살면 피상적인 삶이 된다주워들은 이야기로는도르테 죌레가 쓴 <신비와 저항>을 보면사람은 나 때문에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자긍심이 담긴 가방과 나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죄의식이 담긴 가방 둘을 다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기독교 신앙은 사람을 한 가지로 보지 않는다그런데 시대 정신은 자꾸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

 

진짜 자기를 기억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리고 솔직히 다 드러내자는 이야기와도 다르다솔직히 다 알면더 가까워지기 어렵다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다 아는 존재에게 받아들여질 때사람은 구원받는다자기와의 화해는 이런 구원의 경험 즉사는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청년의 때에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좀 더 이해하고좀 더 용서하길 바라고무엇보다 예수라는 참된 시작이 있기를 바란다기억이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