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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제8주(마지막주) 산상변화주일 | 지기 위해 핀 꽃 (한정훈)

한, 정훈 2014. 3. 6. 16:34

주현절 제 8주(마지막주) 산상변화주일


시편 2: 1 - 12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출애굽기 24: 12 - 18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베드로후서 1: 16 – 21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마태복음 17: 1 – 9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지기 위해 핀 꽃


오늘은 교회력(예배력)으로 산상변화주일이다. 지키지 않는 교회가 많아서 생소할 수 있다. 오늘은 네 본문이 복음서 말씀 중심으로 짜여 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말씀이 마가복음 9장, 누가복음 9장에도 있다. 시기적으로는 주현절의 매듭을 짓는 주이고, 돌아올 수요일 즉, 참회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된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의 변모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이 산상변화주일이다.


신을 만들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폐막했다. 다른 나라 형편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빅토르 안과 김연아 선수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그중에서도 김연아 선수 문제는 전 국민이 관심을 두고, 함께 아쉬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계올림픽이랑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변 사람도 IOC에 제소하면 승산이 있는지 궁금해했고, ‘도둑맞은 금메달’이라는 말도 했다. 한국은 온통 김연아 이야기뿐이다. 올림픽은 정말 효과적인 기획이다.


어쨌든 이 억울한 판정 때문에 김연아 선수는 사람이 기획해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완벽한 이미지를 얻었다. ‘여신’이 됐다고 해도 펄쩍 뛸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 모든 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금메달을 땄다면 세계 많은 사람이 김연아 선수의 기량과 정신력에 깊이 감동했겠지만, 지금처럼 김연아 선수를 돕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이미지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가 쓴 각본인지 알 수 없지만, 대중은 실패한 영웅을 신으로 만든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선이 악을 이겼다고 믿는다. 선과 악의 대결은 선의 승리로 끝났음을 믿는다. 빛과 어둠, 성공과 실패, 질병과 건강, 신뢰와 불신, 긍지와 좌절, 사랑과 미움, 어떤 방식의 대립이든, 이 세상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의 대립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예수의 위대한 선언,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 33) 여기에 생을 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끝까지 소망하는 사람이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사람이다(잠언 24: 16). 오늘 시편 본문은 이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고, 세상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이는 비웃으신다(1-4). 하나님께는 하나님을 위한 왕, 하나님의 왕 즉,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있다. 하나님은 승리하신다(6). 이것이 선과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신념이다.


악의 성실성

하지만 하나님이 악을 비웃으신다는 사실, 빛을 이기는 어둠이 없다는 진실이 (현실에서) 악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참된 예언은 역사의 부침을 건너뛰지 않는다. 손쉬운 승리는 환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악의 활력을 겪는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며 또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싸우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확신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생을 마친 모든 사람, 또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의 승리는 그리스도인의 신념을 뒤흔든다.


악은 선을 미워하고, 자주 악이 선을 이긴다. 그런데도 선의 승리를 믿을 수 있는가? 악은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로 부지런하며 끊임없이 선과 다툰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악이 아무리 기고만장할지라도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말고, 선의 승리 즉, 끝까지 걸어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악이 선을 미워할 때, 선도 악을 미워해야 한다. 악이 부지런할 때, 선 역시 그래야 한다. 악이 성실하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말고, 선도 성실하며, 애써 선을 행해야 한다.


영원한 내일, 영원한 오늘

애걔, 보란 듯이 승리가 아니고? 애걔? 그렇지 않다. 많은 걸, 아니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싸움이 바로 이 싸움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지긋지긋한 대립이 끝나는 날에 대한 소망을 거둘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그 날을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라고 믿는다. 어찌 보면, 이날은 영원한 내일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양보할 수 없는, 곧 다가올 소중한 날인 동시에 정확한 날은 알 수 없는 언제나 영원한 내일이다. 언제나 영원한 내일이라는 말은 결국 재림에 대한 믿음이 희망고문이라는 말인가?


베드로후서는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지친 그리스도인을 일으키려는 소망의 메시지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헛된 소망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재림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예수의 변모 사건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았고,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베드로는 이 경험에 생을 걸고, 흔들릴 때마다 굳세게 붙잡았다. 영원한 내일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는 이유는 영원한 오늘이 되는 종교적 체험을 딛고 맞이하는 날인 까닭이다.


종교적 체험은 과거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내일은 붙드는 영원한 오늘이다(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체험에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다). 베드로는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종교적 체험을 (과거에) 했다. 그리고 오늘도 한다. 하늘의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과거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듣는다.


베드로는 이 종교적 체험을 통한 자각으로 평생을 살았다. 어떤 체험은 현실을 착취한다. 어떤 신념은 특정 대상을 착취한다. 하지만 참된 체험, 참된 신념은 오늘을 살게 한다. 종교적 체험은 문신처럼 삶에 새겨져서 필요한 때에 욱신거린다. 기억하라고 말한다. 잊지 말라고 말한다. 영원한 내일이라는 희망은 고문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손에 든 등불이다. 등불을 든 사람은 동 터오는 새벽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등불이 밝히는 것은 어두운 밤이다. 영원한 내일은 영원한 오늘을 위한 날이며 언제나 오늘만이 맞이할 수 있는 날이다.


지기 위해 핀 꽃

매듭을 지을 때가 됐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산상변화사건이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처음 이야기했다. 예수는 제자 셋을 데리고 길 떠나기 전에 산에 오른다. 코앞에 닥칠 모진 세월의 무게를 잠시 잊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에 오른 예수는 희어졌다.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다 지워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예수는 환하게 피었다.


예수는 지기 위해 핀 꽃이다. 짊어져야 할 고난을 등지지 않았다. 예수라는 꽃은 무참히 꺾이고, 짓밟힐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활짝 피어났다. 하늘의 기쁨과 사랑을 오롯이 담긴, 세상이 이제껏 알지 못한 환한 빛깔로 피어났다. 예수는 오늘, 지기 위해 피어난 꽃과 같다. 세상 모든 슬픔을 담을 만큼 화사하게, 세상 모든 거짓을 잊을 만큼 밝게, 하나님의 영광 앞에 만개했다.


피기 위해 진 꽃

우리는 예수가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는다. 예수는 졌기에 승리했고, 지었기에 다시 피어났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성공과 승리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결정적인 실패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모른 체하지 않으신다. 사랑하기 위해 전능을 포기한 신, 책임지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 인간만이 새날을 연다.


희생 없는 종교는 거짓 종교, 아니 종교가 아니다. 사랑을 위해 전능을 포기할 때, 책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할 때, 자발적으로 복종할 때, 땅에 떨어져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이 결정적 패배의 무게를 알면서 그것을 지려고 할 때, 비로소 어둠을 작동시키는 힘이 무력화된다. 이것은 숨겨진 그러나 명백한 진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꺾이지 않는 검질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강한 까닭은 강한 정신력으로 모든 싸움에 승리해서가 아니라 결정적 패배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다시 피어나게 하신다.


사랑을 위해, 생명을 위해, 정의를 위해,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지기로 마음먹은 꽃이 비록 활짝 피어난 후 초라하게 질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피어나게 하신다. 다시 피어날 때는 어떤 어둠도 묶어둘 수 없는 참된 빛으로, 어떤 거짓도 잡아둘 수 없는 참된 진실로 피어난다. 그리스도인이 선의 승리를 믿는다고 할 때, 눈에 보이는 승리를 확신한다는 말이 아니다. 거짓에 시들지 않고, 어둠에 물들지 않고 다시 피어나는 꽃은 하나님의 사명이다. 하나님은 아침마다 새롭게 오늘도 이 일을 하신다. 부디 이 진실과 가까운 삶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