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제2주 | 열어젖혀야 새날이 온다 (한정훈)
열어젖혀야
새날이
온다
시편 72: 1 - 7, 18 - 19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2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3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5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7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사야 11: 1 - 10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로마서 15: 4 - 13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마태복음 3: 1 - 1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
이사야 당시 세계정세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의 멸망(AD 732년), 바벨론의 등장과 앗수르의 멸망, 남유다의 멸망(AD 587년)을 겪으면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휘청댔다. 이런 정황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시금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잠들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잠에서 깨어나 구원의 역사를 함께 빚어가기를 원하셨다. 잠에서 깰 좋은 방법을 안다고 하거나 이 방법이 좋다 저 방법이 좋다 말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내일을 사는 모든 사람이 전에 깨어났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물을 것은 잠에서 깨는 방법이 아니다. 잠에서 깬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게 왜 내일과 맞닿아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2.
어떨 때는 소망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고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망이 이루어진 사람은 하나같이 그 고문과도 같은 시절을 지나왔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이 고문이 오히려 양분이 되었다는 말도 한다.
대림절의 알짬은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에 대한 기다림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고문과 같을지라도 구하는 자는 얻고, 찾는 자는 찾게 되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린다는 말씀에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비끄러매야 한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우리를 합리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만하면 됐다.”고 쉽게 말씀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아파야하냐고 묻는 우리에게 ‘더 인내하자. 더 기다리자.’는 뜻이 담겨 있을 침묵으로 말씀하신다. 고문과도 같은 인내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성취는 생명력이 없다. 기다림도 성취의 한 과정이며, 성공에는 반드시 참기 어려운 시절이 녹아있다.
3.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친다. “회개하라!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는 말은 도덕적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선동적 수사가 아니다. 내가 뭘 훔치고, 남에게 해코지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사는 방식에 익숙한 인성을 거스르라는 말과 같다.
무엇보다 천국이 도래(到來) 즉, 닥쳐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새날이 오지 않고는, 새날을 살 수 없다. 새날은 삯을 주고 사는 날이 아니라 다만 맞아들일 뿐이다. 천국은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이 아니다. 자기를 넘어선 어떤 것을 성취할 때,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는 사람의 수고와 솜씨가 들어가지 않는가?그렇지 않다. 다만 위대한 성취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은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감격에 가깝다.
에베소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한다(에베소서 2: 10, 새번역). 개역개정에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고 쓰여있는데, 원어로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포이에마다’ 이 말과 같다. ‘포이에마’는 영어 단어 ‘poem’과 같은데,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詩)라는 말이다. 시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이 문장의 깊이 또한 달라질 텐데, 어쭙잖게나마, 시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 언어를 가지고 하는 작업 중에 시를 짓는 일보다 더 깊이 있는 작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를 쓴 사람은 단어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말을 바꿔서 생각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생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4.
구원은 낯선 곳에서 일어난다. 광야는 모두가 예상한 구원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자연산 꿀을 먹은 사람이 회개하라고 외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우리는 시선을 광야로 향해야 한다. 광야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 삶을 구원하는 소리의 시작은 광야에서부터다. 중심부가 아닌 낯선 곳에서 시작된 소리만이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한다. 외적인 어떤 것에 현혹된 생각으로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나겠는가(요 1: 46) 하는 말은 다시 생각해 보면, 선한 것이 낯선 곳에서 시작된다는 말과 통하는 바가 있다.
세례자 요한이 왕궁에서 보낸 사람이었다면, 빌라도의 사신이었다면, 석청이 아니라 궁중 요리를 먹는 사람이었다면, 낙타 털옷이 아니라 비단 옷을 입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다. 다가올 세상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나 열어젖히지 않고서 내일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낡은 방식으로는 새날을 살 수 없다. 새날은 오직 낡은 것을 부숴서 맞이할 날이다. 문 밖에 서서 기다리는 새날은 문 부수고 들어오는 법이 없다. 열어젖혀야 들어온다. 맞이해야 산다. 이미 와 있으나, 열어젖혀야 온전히 온다.
낡은 삶의 습속을 바꾸지 않은 사람에게 내일은 영원한 내일(來日)이요, 또한 남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