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주(2025년 3월 3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옛것은 지나갔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성서일과 4본문]
(여호수아기 5:9-12)
9.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10. 이스라엘 자손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여리고 근방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11. 유월절 다음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 날에, 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12.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부터 만나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시편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셀라)
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고린도후서 5:16-21)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3, 11b-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14.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15.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25. 그런데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27.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께서 나를 새사람 만드시니’입니다.
구약,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버렸다”(여호수아기 5:9)
시편,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시편 32:1)
서신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린도후서 5:17)
복음서,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누가복음 15:22)
오늘 요절은,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입니다.(고린도후서 5:1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여호수아기 5:9-12, 시편 3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다’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킵니다.
“길갈”이란 ‘원(圓)’, 그리고 ‘굴리다’라는 뜻입니다.
할례로써 하나님의 당당한 언약백성임을 온몸으로 선포합니다.
그렇게 이집트 종살이 수치를 씻어냅니다.
그 수치를 굴려 내버리는 정결예식 같은 길갈의 할례입니다.
그러고 나니 유월절 식탁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섭니다.
유월절 식탁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식탁이요,
새로워진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차려주신 가나안 땅 첫 잔치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용서받은 기쁨’입니다.
허물 많은 인생들이 그 죄를 고백하기까지의 고통과(3-4)
마침내 죄를 고백했을 때의 복스러운 역전의 기쁨입니다.(1-2, 5, 7, 11)
<죄 고백 할 수 있는 자의 복>이라고 또 하나의 제목을 붙일만한 노래입니다.
죄 고백은 내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첫 단추요 지름길입니다.
이 노래는 복음서본문의 돌아온 탕자의 고백과 통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5:16-21, 누가복음 15:1-3, 11b-32)]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화해의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이룬 (하나님과의) 화해를 받아들이라고
바울이 “간청”합니다.(20)
[화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은) 죄를 제거하는 길이요,
이 길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내신 것입니다.(18, 21)]
우리는 이 간청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새것”(“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17)
이는 오늘 복음서본문의 돌아온 탕자의 변신과 통합니다.(눅 15:22)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 권리>를 찾느라 아버지의 권리와 감정을 외면합니다.
그 결과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고
거기서 잠깐의 쾌락과 이어지는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위기가 기회라고!)
그 고통 덕분에 아버지를(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 돌아옵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오직 목숨(먹을거리)만 구합니다.
부자(父子)상봉 장면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1) 아버지가 아들을 발견하고 달려갑니다.(20)
2) 아버지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춤으로써) 용서합니다.(20)
3) 아들이 회개합니다.(21)
내가 회개하기 전에 이미 아버지께서 관계회복을 시작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기대도 못했던 내 권리가 회복되는 것입니다.(22)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사순절 넷째 고개에서 우리가 읽은 성서일과 본문말씀들의 알맹이는
<새사람>, <새사람이 됨>, <주님께서 나를 새사람 만드심>입니다.
문득 시편에 종종 나오는 <새 노래>가 떠오릅니다.
내가 여태 경험하지 못한 주님을 만났을 때, 즉
내가 여태 모르고 살았던 주님의 진면목을 보았을 때 부르는
벅찬 찬송이 바로 <새 노래>입니다.
그런데 <새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그분을 제대로 만났을 때, 그렇게
나 또한 주님 앞에 <새사람>이 되었을 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새 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나를 새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탐욕덩어리인 내가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뼈만 앙상해진 뒤에
가장 좋은 새 옷을 입히시고, 새 반지도 끼우시고, 새 신을 신기십니다.
이렇게 새 자식을 얻은 그 잔치에서 지금 가장 행복한 분은 바로 아버지십니다.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2)
잃은 자식과 같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떠났던 집, 잃어버린 집, 내 아버지의 집을 기억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몽땅 엿 바꿔먹은 염치를 되찾아(18-19) 용기 내어 돌아가는 일입니다.
내가 가장 맑고 고왔던 시절, 우리 한국교회가 가장 맑고 뜨거웠던 시절
한 말씀만으로도 귀가 열리고 심장이 뛰고 입이 열리고
무릎이 용수철처럼 힘차게 솟구치며 약한 이웃들로부터 칭송받던 시절
그 시절, 그 교회, 그 말씀, 내 아버지를 기억하고 용기 내어 돌이킬 때,
옛것은 지나가고, 나는 새사람,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의”가 될 것입니다.(고후5:21)
[나머지]
* 내 아버지 잔칫상을 제대로 맛보려면
약속의 땅에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 백성들의 이집트 종살이의 수치를 없애버리십니다. 하나님 백성답지 않은 노예근성을 굴려버리신 것입니다. 세상 물질과 세상 권력에 맛들이고 주눅 들어 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약속만 믿고 전진하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세상에서 마음껏 받고 누리려면 하나님 자녀답지 않은 온갖 수치스러운 것들부터 치워 없애야 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도저히 하나님 자녀라 할 수 없는 이 수치를 먼저 굴려버려야 합니다. 이 “수치”의 상흔은 “육신의 잣대”(고후5:16)로 남는 법입니다. 이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길은, 근심을 멈추고, 계산을 멈추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일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내 아버지의 집에 차려진 잔치, 내가 상상도 못한 잔치, 온 세상 쾌락의 종결자-끝판왕조차 맛보지 못한 내 아버지의 잔칫상을 맛보려면 먼저 이 “수치”와 “육신의 잣대”부터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 잔치의 진짜 주인
오늘 사순절 4주 또 하나의 주제는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으로 내가 “새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님 자녀로서의 내 모든 권리가 회복됩니다. 이를 한마디로 집약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고후5:18) 잔치를 벌이신 아버지께 항의하는 큰아들, 그 아들을 다독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작은 아들을 위해 차린 잔치지만 이 잔치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닌가! 지금 누구보다 기쁜 사람, 잔치를 진짜 즐기는 분은 바로 아버지 아닌가! “염소새끼 고기라고?” 염소고기는커녕, 지금 네 아우는 하도 굶어서 살진 송아지 요리는 입에도 못 댈 지경이라고 큰 아들에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사족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가 잔치의 주인공, 잔치를 가장 크게 즐기는 분입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버지인 것입니다.(32) 아마 지금 가장 신명나게 춤추고 있는 사람도 아버지일 것입니다.(25) 아버지께서 이렇게 기뻐하시는 걸 보면, 내가 새로워진 게 틀림없습니다!
*** 잔치 마니아 작은아들
좀 엉뚱하지만, 30절 말씀에서 큰 아들이 힐난하는 작은 아들의 행동과 예수님의 잔치행동이 묘하게 연결됩니다. 작은 아들이 창녀들과 어울리며 아버지 재산을 탕진한 것(개역개정과 새번역, KJV, RSV 등은 ‘삼켰다’고 번역했습니다.)과 예수께서 창녀, 세리 등과 잔치를 벌이신 것은 아주 다른 것인데... 어쩌면 이 비유의 말씀을 처음 듣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상한 기시감(旣視感)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잔치를 즐기셨다는 말입니다. 내 아버지 그 마음처럼!
**** 잔치 알레르기 큰아들
우리 신앙생활, 우리 일생의 맛이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잔치답지 않습니다. 잔치 알레르기 큰아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회개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고, 화해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화해할 줄 아는 이들만이 진정한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돈 없어도, 콩 세알만 가지고도 잔치의 알맹이를 맛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일생 동안 내내, 예수님 잔치를 맛보며, 그리고 그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걸 맛본 사람은, 큰 아들과 달리, 그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절대 거절 안 할 것입니다.
***** 4본문 대구(對句) 모음
오늘 4본문에 서로 짝을 이루는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구약 “수치”(수5:9) / 시편 “허물”(시32:1) / 서신서 “옛 것”(고후5:17) / 복음서 ‘돼지치기’(눅15:15) 이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는 길은 주님께 있습니다. 구약의 이집트 종살이 수치는 복음서 탕자의 돼지치기 수치와 통합니다. 구약의 유월절 잔치는 복음서 아버지께서 차리신 탕자의 잔치와 통합니다. 탕자가 타지에서 즐기던 잔치와 귀가하여 아버지께서 차려주신 잔치가 대비됩니다. 탕자가 타지에서 치던 “돼지”와(15) 귀가하여 아버지께서 잡아주신 “살진 송아지”가(23, 30) 대비됩니다. 거기 또 하나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있습니다.(29) “분별없는 노새나 말”(시32:9)은 “육신의 잣대”(고후5:16)와 통하고, 복음서의 탕자의 첫 모습과 통하며(눅15:12-13), 특히 큰 아들의 모습과 더 잘 통합니다.(28-30)
******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거짓을 씻어내야 한다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 됨을 기억(기념)하고, 우리(교회)가 하나 됨을 기뻐하며 나아가 세상과 하나 될 것을 기원하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성찬)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하나 되는 잔치는 철두철미 하나님(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입니다. 대다수 다른 종교의 예배들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사람이 상을 차려 신을 불러 바치는 것과 달리, 기독교예배는 하나님께서 상을 차려 우리를 불러 먹이시는 말씀의 잔치입니다. (때마침 오늘 복음서본문도 그 과정과 통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제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봉사하신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독일어 “예배”(고테스딘스트 Gottesdienst)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집트 노예생활 400년이나 광야 40년보다는 짧지만 우리의 한 주간 세상 삶 끝에 주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모여서 말씀을 먹음으로써 주님과 친교하는 관계인, 대단히 거룩한 나의 존재를 다시 기억하고 사랑과 평화의 기쁨과 기운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예배 과정에서 한 가지 꼭 유념하고 반성하고 개선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이 친교의 기쁨 여부와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길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여부와, 우리의 기쁨 유무의 관건은 우리 예배자의 일상, 그 <삶의 진실>의 문제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생활 가운데 불쑥불쑥 돋아나는 거짓말(속임)이 우리 예배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기독교예배는 나의 죄 고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씻음의 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하고 이 구원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라는 파송으로 마무르며 파송 받은 예배자들이 세상에 나가 말씀의 도(성찬의 도)를 실천하는 일, 즉 거짓 세상에 복음(회개 촉구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예배 이 거룩한 잔치에서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삶 가운데 거짓의 기운이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속이는 억센 거짓말은 물론, 탐욕에 눈 어두워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소프트한 과장과 매끄러운 왜곡이 상습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은 그런 내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십니다. 마치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사는 우리에게(9) 예배자의 치열한 자기정화과정을 보여주십니다.(1-5) 그런 예배자의 모범을 2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➀(새번역)“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②(공동번역)“야훼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자.” ③(메시지번역)“스스로 행운아로 여겨라. 하나님께서 흠잡으실 구석 전혀 없고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길 것 없는 그대” 죄의 시작은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탐욕을 배가시키고 탐욕은 또 반복해서 거짓말을 낳습니다. 창세기 머리부터(3장) 계시록 끝에 이르기까지(21:8,27, 22:15) 거짓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악마가 뿌린 가라지입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고갯마루에서 베푸신 시편을 반복해서 부르며 우리 안의 거짓을 하나하나 씻어내어 우리 안에 잃어버린 예배의 기쁨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하신 아버지의 그 기쁨이(눅15:32) 우리 예배 안에 샘물처럼 솟아 시냇물처럼 흘러흘러 나와 너와 우리를 적시는 기쁨을 누립시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그럼 누구인가? (이인성 지음. 「성실문화」 122호)
세리도 죄인도 아니다.
바리새인도 율법학자도 아니다.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아니다.
아버지도 하인도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 바로 나다.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시편시조] 시편 32, 주님께 거역한 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2호)
주님께 거역한 죄 용서받은 사람이여
복되고 복 되도다 거짓 없는 인생이여
피난처 내 하나님을 소리 높여 노래해
[시편노래] 시편 32,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22호)
[본문] (시편 32)
[노랫말]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주님께서 죄 없다고 여겨주신 자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복되어라 그런 사람 복스럽구나
2. 죄 고백 안 하려고 입을 다물 때, 온종일 나의 뼈가 녹았나이다
드디어 나의 죄를 주께 아뢸 때, 기꺼이 용서하여 주시나이다
3. 경건한 사람이 고난 받을 때, 주님께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피난처 내 주께서 지켜주시니, 소리 높여 내 구원을 노래합니다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의 갈길 내가 손수 가르쳐주마
분별없는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눈여겨 너를 지켜 이끌어주마
5. 악한 자 불의한 자 고통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자 사랑 넘치리
의인들아 주님을 기뻐하여라, 정직한 자 너희 모두 환호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32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3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2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
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다함께]
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말씀동화] ‘하늘나무 지구본’을 받아 ‘은총의 숲’ 지킴이가 된 차돌바위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하늘나라 여행하려고 하늘두레박 타려다 몸집이 너무 커서 퇴짜 맞던 시절 이야기예요.
착하고 성실한 나무꾼 차돌바위는 오늘도 나무를 베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나무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무를 통해 산소도 주시고 피톤치드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이 나무처럼 저도 세상에 좋은 것 나눠주며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나무를 자르면 또 좋은 나무가 자라나게 해주세요.”
차돌바위가 자를 나무를 한동안 어루만지며 기도하고 나서
도끼를 번쩍 들고 한바탕 빙글빙글 춤을 추니
커다란 참나무와 소나무 두 그루가
순식간에 장작으로 변신합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 마시러 옹달샘을 찾아 내려가니 어라?
때마침 하늘두레박이 내려오네?
전설로만 듣던 하늘두레박을 처음 본 차돌바위는
혹시나 선녀님들이 타고 있지나 않을까 얼른 숨어서 살폈어요.
얼씨구, 아무도 없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두레박으로 다가간 차돌바위가
호기심에 조심조심 하늘두레박에 올라타자
빛의 속도로 두레박은 하늘나라에 도착해버립니다.
난생처음 보는 하늘나라 풍경에 어리둥절한 차돌바위에게
어느새 선녀님이 다가오더니 하늘나무를 깎아서 만든
반질반질 동글동글 노란빛깔 지구본을 선물합니다.
“늘 나무를 심고 가꾸며, 나무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는 하늘 상이예요.”
하늘두레박을 타고 동글동글 노란 지구본을 들고 집에 돌아온 차돌바위가
무심코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콕 짚으니
마치 뻥튀기 기계처럼 “펑∼” 소리가 나더니 방안 가득 연기가 자욱합니다.
이게 뭐지?
갑자기 차돌바위 앞에 나타난 것은 동백꽃 다 떨어진 제주 동백나무였어요.
그러고 보니 차돌바위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이 제주도였네.
너무나 신기한 일로 얼떨떨한 중에도
차돌바위는 습관대로 얼른 동백나무를 들고나가서 양지바른 곳에 심습니다.
그리고 토닥토닥 흙을 다져주고 물도 주고 달달한 밥도 뿌려줍니다.
다시 방에 돌아온 차돌바위는 신기방기 지구본을 다시 빙글빙글 돌리다가
아무데나 쿡,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일어나더니
차돌바위 앞에 잎이 파릇파릇한 차나무 한그루가 놓여있네!
자세히 살펴보니 이번에 짚은 곳은 경상남도 하동 악양이었어요.
본능적으로 차돌바위는 차나무를 들고 얼른 나가서 양지바른 곳에 심고 물을 주었죠.
차돌바위의 호기심은 점점 높아만 가고, 하늘나무 지구본을 어루만지며
또 어떤 나무가 나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멀찌감치 유럽으로 가볼까
눈에 불을 켜고 유럽 지역을 찾아 지구본을 살금살금 돌리기 시작하는데
아뿔싸! 갑자기 노란색 지구본이 토마토처럼 빨개지더니 연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웽∼웽∼ 사이렌 소리까지 나기 시작하더니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나무에 사는 벌레들과 산새와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였죠.
얼른 정신 차린 차돌바위는 눈을 비비고 지구본을 살핍니다.
토마토처럼 빨개진 지구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 지점은
다름 아닌 우리 한반도 남쪽 경상도 지역이었어요.
얼른 119에 화재신고부터 한 차돌바위는
부리나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식목일이 코앞인데 산불이라니요! 하나님 제발
도망가지도 못하는 저 나무들을 살려주세요.”
나무가 타오르니 집도 타오르고 온 나라 온 마음이 타오릅니다.
신기한 지구본을 붙들고 한참 울며 기도하던 차돌바위가
지구본에서 흘러나오는 하늘나무들의 합창소리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시편32:7)
보름달처럼 둥그레진 차돌바위의 맑은 눈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하니
지구본의 노래가 다시 이어집니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시편32:8)
이윽고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온 차돌바위는
방금 심은 동백나무와 차나무를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다시 하늘을 우러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은총의 숲이로다. 은총의 숲을 가꾸어라. 은총의 숲이 너희를 살릴 것이다”
문득 하늘마음과 통한 차돌바위의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얼른 벗들을 모아 ‘은총의 숲’ 모임을 꾸려서 우리나라는 물론 이웃나라 몽골과 티벳 곳곳에
생명의 나무를 심고 은총의 숲을 만들어서 토마토처럼 빨갛게 부푼 지구를 식히기 시작합니다.
은총의 숲이 넓어질수록 빨간 지구본이 점점 다시 노랗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차돌바위는 다시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합니다.
“산불이 나기 훨씬 전에 하늘나무 지구본이 감지하고 연기를 내어 119에 신고할 수는 없을까요?”
차돌바위의 기도에 하늘나라 기술자들이 한데모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이정훈 지음.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아침]
(이번 산불로 희생되신 분들과 나무들을 추도하며, 그리고
한국교회환경연구소의 ‘은총의 숲 센터’가 하는 일에 감동하여 지었습니다. 02-711-8905, graceforest20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