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5주(2025년 2월 9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이사야서 6:8)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6:1-8(9-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3.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4.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아직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시편 138)
1. 주님,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들 앞에서, 내가 주님께 찬양을 드리렵니다.
2. 내가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경배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주님의 진실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과 말씀을 온갖 것보다 더 높이셨습니다.
3. 내가 부르짖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나에게 힘을 한껏 북돋우어 주셨습니다.
4. 주님,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은 모든 왕들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주님의 영광이 참으로 크시므로, 주님께서 하신 일을 그들이 노래합니다.
6. 주님께서는 높은 분이시지만, 낮은 자를 굽어보시며, 멀리서도 오만한 자를 다 알아보십니다.
7.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 주시고, 손을 내미셔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며,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8.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들에게 갚아주시니,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고린도전서 15:1-11)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누가복음 5:1-11)
1.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밀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2.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6.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7.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9.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10.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구약,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이사야서 6:5)
시편, “내가 부르짖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시편 138:3)
서신서,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8)
복음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누가복음 5:11)
오늘 요절은,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입니다.(이사야서 6: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6:1-8(9-13), 시편 138)]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다’입니다.
지난주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 받는 장면에 이어서
오늘은 이사야의 그 모습입니다.
이사야가 처음 만난 주님은 지성소에 갇히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사야에게 우리 상상의 한계를 넘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주님을 모시는 스랍들의 모습과 주님의 옷자락이 장관입니다.(1-4)
주님을 처음 만난 이사야가 주님을 뵙는 순간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공포에 떱니다.
그러자 스랍이 제단(분향단)의 뜨거운 숯을 가져다 이사야의 입에 대며
이로써 이사야의 악과 죄가 사라졌다고 선언합니다.(7)
죄가 사해지자마자 비로소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8)
그리고 그 말씀에 바로 응답합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요?
그런데 이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뜻밖의 말씀입니다.
“에바다”(마가7:34)와 정반대의 말씀입니다.
백성이 예언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할 것이라는,(이사29:9∼)
그러니 너무 낙심 말라는, 마치 초보예언자 이사야를 위로하는 말씀만 같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림’입니다.
첫 절의 “온 마음을 기울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가 매우 강렬합니다.
주님은 어디 계시든 약자를 굽어보고 돌보시며
오만한 자를 속속들이 다 보고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6,8)
얼마나 감사했으면 시인은 신들 앞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1)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내 삶 속에서 나를 지배하던 것들,
지금까지 내가 우상으로 섬겼던 온갖 맘몬나부랭이들도 떠오릅니다.
내 가장 깊은 고통까지 다 보시고
“새 힘”주시고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님(7)
나를 속속들이 다 아시는 분, 내가 이런 주님을 만난 겁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5:1-11, 누가복음 5:1-1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불신앙,
그리스도의 부활,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한 불신앙을 정돈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이라고 강조합니다.
주님의 장례와 부활(4), 부활증인들을 수없이 나열합니다.(5-8)
바울 자신이 가장 큰 증거,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불신앙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나타나시니 변한 것입니다.
결핍한 생명력을 채우시고(8), 박해자를 전도자로,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10)
이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력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님을 살리신 것입니다.
이 주님을 내가(바울이) 만나고 내가 변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베드로의 고기잡이’(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주현(主顯)! 주님으로 나타나시는 장면입니다.
그 중심에 베드로가 있습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8)
베드로는 왜 이렇게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저리 금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요?(11)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주현절 5주에 읽는 성서일과 말씀에는
주님을 처음 만나는 예언자 이사야와, 시몬과 동료들 야고보 요한 형제들,
그리고 바울의 그 회고가 나옵니다.
그때 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순간 모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점입니다.
그리고 공포에 떱니다.
이사야의 경우 그 죄가 사해지자마자 비로소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8)
그런데 이사야는 “에바다”(마가7:34)와 정반대의 말씀을 받습니다.
특히 10절 말씀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언자의 말을 못 알아듣게 하라시는 역설이라니요?
문득, 열왕기상 22장이 떠오릅니다.
주님께서 탐욕스럽고 불의한 왕 아합을 죽이기로 결심하셨을 때(20)
예언자 미가야를 통해 주신 말씀처럼(21-23)
“거짓말하는 영”을 아합의 예언자 400명의 입에 넣어주시는 장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광경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정치와 종교가 뒤섞이고, 이단과 정통이 뒤범벅이 되어가는
오늘 우리나라의 갈등과 혼란, 다툼과 분열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이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시몬이 처음에 그러하듯, 반신반의(半信半疑)로나마
내 전문 영역, 내 경험, 내 신념조차 다 내려놓고 갸웃갸웃 주님 말씀에 따를 때
비로소 주님 만나 철저히 내 죄를 깨닫고 새 제자가 되었던
그 때 그 시몬처럼 될 수 있기를!
그렇게 한국교회 우리 모두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서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이사6:8)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 역사왜곡과 이기심, 혐오와 이간질
저 악마의 잔치판을 깨끗이 청소할 청소부로 나설 수 있기를!
[나머지]
* “예수께서 보시니”(누가복음 5:2)
오늘 복음서본문 2절에 “예수께서 보시니”에서 주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주님께서는 시몬의 배가 아니라 시몬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주님께서는 열 길 물속을 보시고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리게 하십니다.(4) 그 전에 이미 한 길 사람 속, 시몬의 속을 이미 보신 것입니다. 시몬의 아킬레스건이라 할까요? 고기잡이에 대한 나의 전문가적 자만심, 그리고 고기잡이 욕심, 즉 물욕을 보신 것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시니, 마침내 시몬은 그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나의 허물을 순식간에 깨친 겁니다. 그래서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이사야처럼, 시몬처럼, 바울처럼 우리도
오늘 복음서본문의 베드로가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내 죄를 발견하는 장면은(8) 오늘 구약본문의 이사야의 모습과(5절) 짝을 이룹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시는 장면도(10) 구약본문과 짝을 이룹니다.(7)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느닷없이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선생이 주님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5)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내 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입니다.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만났을 때 말입니다. 이사야와 베드로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는 과정이 오늘 구약과 복음서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서신서의 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이사야가 소명을 받고 얼른 예언자로 나섰듯이(8) 베드로와 동료들이 소명을 받고 얼른 제자의 길로 나섭니다.(10-11) 바울도 사도가 되어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해방 후 제대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우리가 지금 삼일만세운동 106주년, 임시정부수립 106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평화통일의 길을 내다보며,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막힌 담 허물고, 남과 북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도록, 그런 평화통일의 오작교로 교회가 나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평화의 임금 예수, 공의의 하나님을 오늘 제대로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을 주실 것이니!
주현절 5주에 주시는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십니다. 구약의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과 복음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의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바울이 부활예수님 만나는 장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구약과 서신서 그리고 복음서의 주인공들이 주님을 만나 변화하는 공통점은 바로 머나먼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사야처럼, 바울처럼 그리고 베드로처럼 용감한 예언자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 만나 주님과 가까워지면 용기가 생깁니다.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을” 주시니(시138:7) 내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세무민하는 잡다한 “신들 앞에서” 보란 듯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시138:1) 그러고 보니 오늘 구약본문에 눈과 귀가 어두운 백성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무리 하나님말씀을, 진리를, 진실을 전하여도 깨닫지 못합니다.(사6:9-10) 시나브로 혹세무민당한 오늘 우리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사야처럼, 바울처럼, 그리고 베드로처럼 주님을 만나 말씀을 받았으면 용기 내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버리고나면 남는 것은 고난뿐이겠지만,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시편138:7)
[말씀동시] 그물 (김은주 지음. 골방교회 성도. 「성실문화」 121호)
주님을 알아간다는 건 어렸을 적 읽은
동화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 같아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상한 신하들이
세상에 심심찮게 등장해
사실을 비틀어 못 먹을 꽈배기를 구워내고
나도 못 먹고 저도 못 먹을 가짜 음식이 호화스런 그릇에 담겨 나와
과자로 만든 집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도
몇 조각 주워 먹으면 창문이 무너지고 말 것을 그 집에 어떻게 살아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죽을힘을 다 써도 헛수고였고 해님의 따스한 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겼지
주님 바디매오에게 그리 하셨나요
베드로의 그물을 버리게 하시고
우물가 여인의 수치를 벗게 하시고
혈루병 여인의 헌부대를 버리게 하셨나요
바울의 모든 좋은 것을 배설물로 버리게 하셨나요
주님은 그물이네요
흑암을 뚫고 깊은 데로 오셔서
우릴 건지셨네요
[시편시조] 시편 138, 주 말씀 주의 이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1호)
주 말씀 주의 이름 지극히 높이소서
내 기도 들으시고 새 힘 주신 나의 주님
낮은 자 굽어보시니 감사 찬양 합니다
[시편노래] 시편 138, 주여 나의 온 맘 다해 감사합니다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성실문화」 121호)
[본문] (시편 138)
[노랫말]
1.주여 나의 온 맘 다해 감사합니다, 신들 앞에서 주님께 찬양합니다
주의 성전 바라보며 경배드리고, 인자하고 진실한 그 이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과 주의 말씀을, 온갖 것들 보다 더 높이신 주여
부르짖는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한껏 힘을 북돋우소서
2.주여 왕들이 말씀듣고 감사합니다, 주님의 일 크신 영광 노래합니다
높으신 주 낮은 자를 굽어보시고, 멀리서도 오만한 자 알아봅니다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 나에게, 새 힘주고 손내미신 인자한 주여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손수지은 이 모든 것 버리지 마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주원남 목사가 지은 ‘시편 37, 악한 자들 잘된다고 속상해마라’(성실문화 109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시편 138 (주여 나의 온 맘 다해 감사합니다)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3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들 앞에서 내--가--, 주님께 찬양을 드리렵니다-∼
2 내가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경배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주님의 진실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과 말씀을 온갖 것보다 더 높이셨습니다.
3 내--가-- 부르짖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나에-게-- 힘--을--, 한-껏 북-돋-우어 주셨습니다-∼
4 주님,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은 모든 왕들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주님의 영광이 참으로 크시므로, 주님께서 하신 일을 그들이 노래합니다.
6 주-님께서는 높은 분이시지-만-, 낮은 자를-- 굽어보-시-며--,
멀-리서도- 오만한 자를-, (오만한 자-를) 다- 알아보십니다-∼
7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 주시고, 손을 내미셔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며,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8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들에게-- 갚아주시니-∼
[다함께]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말씀동화] 골프장 산신령과 게네사렛 호수 용왕의 호소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골프채 휘두르다가 연못에 빠뜨리던 시절 이야기예요.
산신령이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어.
“하나님, 그루터기는 남겨두신다고 하셨잖아요?”(이사야서6:13)
골프장 때문에 몸살을 앓던 산신령의 푸념이 하늘을 찌르자
드디어 천사장이 내려와 살피기 시작했지.
“골프장 만드느라 그루터기들조차 싹 다 뿌리 뽑혔군. 많이 아팠겠구나.”
눈물을 훔치며 산신령이 말했어.
“근데 왜 반말이시죠? 내 나이가 몇 만 살인데!”
천사장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지.
“내가 손주들 기저귀 갈아줄 때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단다.”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린 산신령의 푸념은 계속 이어졌어.
“어제 골프장 연못에 골프채를 빠뜨린 자들이 발을 동동 굴러서
제가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아세요?”
산신령은 어제 있었던 일을 천사장 앞에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어.
산신령은 골프장 캐디복장으로 연못물 위로 올라오면서
금으로 된 골프채와 은으로 된 골프채를 들고 올라왔다나 뭐라나.
골프장 주인이 나무들만 학살할 뿐 아니라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 때문에
온 산이 몸살을 앓는다고 눈 밝은 마을사람들이 아우성치자
골프장 주인들은 꼼수를 내어 골프장 연못에 물고기를 넣기 시작했지.
몸에 해롭지 않은 약을 칠뿐인 증거라며!
온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산신령은 천사장에게 호소했어.
“이 연못에 1급수에서만 사는 버들치랑 금강모치랑 다슬기도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정말로 농약을 안 칠 수 있게요. 그래서 반딧불이 천지가 되게 해주세요.
야간 라운딩 때 눈부신 전등 켜지 않아도 되게요.”
산신령의 요청이 점점 강력해지기 시작하자
천사장이 얼른 말을 돌렸어.
“잠깐 기다려, 갈릴리바다 용왕에게서 SOS 전화가 왔다”
갈릴리 게네사렛 호수 용왕이 천사장에게 급히 전화한 까닭은
호수의 물고기들이 씨가 마를 지경이라는 트라우마 때문이었지.
“천사장님, 비상이에요! 어서 하나님께 상소문을 올려주세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예수님이 어부들에게 그물 던질 장소를 일러주시는 바람에
고기잡이배들이 가라앉을 지경이 되도록 (누가복음5:4-7)
가득가득 물고기를 싹 다 잡아버리더라나 뭐라나.
그래서 천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어.
“용왕아. 너 올해 몇 살이냐? 고작 몇 만 살 먹고서 벌써 치매냐?”
2천 년 전 그 사건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게네사렛 호수 용왕이 아닌 밤중에 잠꼬대를 한 거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화를 끊은 천사장이 골프장 산신령을 다독이며 말했어.
산에서 나무가 다 사라지고 물에서 물고기가 다 사라져도
그루터기조차 남지 않고, 물고기 씨가 다 마른 것 같아보여도
거룩한 씨는 남아 하나님의 세상, 창조질서가 되살아날 것이니 염려 말라고.(사6:13)
산의 나무뿐 아니라 사람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탐욕스런 독재자들 때문에
지금 하늘나라가 비상상황이니 이제 그만 부르라고 타이르자
눈이 동그래진 산신령이 천사장에게 물었어.
“그루터기 약속 말씀에 나온 대로,
백성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실 건가요?”(사6:10)
산신령의 기특한 성경지식에 천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가자지구뿐 아니라 한반도의 상황까지 어지러워지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2,800년 전 어리석은 왕 아합을 죽이실 때처럼
거짓말하는 영을 예언자들의 입에 넣으시듯(왕상22:20-23)
거짓말뉴스가 판을 치게 만드실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이란다.”
이럴 때일수록 미가야 같은 예언자(왕상22장), 이사야 같은 예언자,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처럼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갈 예언자가 필요하다고
그러니 어서 교회마다 그루터기 예언자들이 깨어나게 기도하자고 천사장이 외칠 때
하늘에서 합창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지.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시138:8)
[이정훈 지음. 2025년 2월 8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