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7주(성령강림후 6주, 2023년 7월 9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1:29)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24:34-38, 42-49, 58-67)
34. 노인이 말하였다. "저는 아브라함 어른의 종입니다.
35. 주님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주인은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주인에게 양 떼와 소 떼,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
36. 주인마님 사라는 노년에 이르러서, 주인어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주인어른께서는 모든 재산을 아드님께 주셨습니다.
37. 주인어른께서 저더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사는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38. 나의 아버지 집, 나의 친족에게로 가서, 나의 며느리감을 찾아보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하셨습니다.
42. 제가 오늘 우물에 이르렀을 때에, 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오늘 여기에 와서,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43.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처녀가 물을 길으러 오면, 그에게 항아리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말하고,
44. 그 처녀가 저에게 마시라고 하면서,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가 바로 주님께서 내 주인의 아들의 아내로 정하신 처녀로 알겠습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45. 그런데 제가 마음 속에 기도를 다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그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마실 물을 좀 주시오' 하였더니,
46. 물동이를 어깨에서 곧바로 내려놓고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주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을 마셨습니다. 따님께서는 낙타에게도 물을 주었습니다.
47. 제가 따님에게 '뉘 댁 따님이시오?' 하고 물었더니, 따님께서는 '아버지는 함자가 브두엘이고, 할아버지는 함자가 나홀이고, 할머니는 함자가 밀가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따님의 코에는 코걸이를 걸어 주고, 팔에는 팔찌를 끼워 주었습니다.
48. 일이 이쯤 된 것을 보고, 저는 머리를 숙여서 주님께 경배하고, 제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은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주인 동생의 딸을 주인 아들의 신부감으로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49. 이제 어른들께서 저의 주인에게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보여 주시려거든, 저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그렇게 하지 못하시겠거든, 못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셔야, 저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 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61. 리브가와 몸종들은 준비를 마치고, 낙타에 올라앉아서, 종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62. 그 때에 이삭은 이미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서, 남쪽 네겝 지역에 가서 살고 있었다.
63. 어느 날 저녁에 이삭이 산책을 하려고 들로 나갔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낙타 행렬이 한 떼 오고 있었다.
64.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65.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66. 그 종이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삭에게 다 말하였다.
67.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시편 45:10-17)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로마서 7:15-25a)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태복음 11:16-19, 25-30)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17.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19.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고독한 임무의 끝에’입니다.
구약, “주님은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창세기 24:48)
시편,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시편 45:10-11)
서신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로마서 7:25)
복음서,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마태복음 11:27)
오늘 요절은,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입니다.(마태복음 11:2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24:34-38, 42-49, 58-67 / 시편 45:10-1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다’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에게서 중대한 사명을 받은 노종이
그 임무를 완수해가는 긴 과정의 끝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구해오는 과정에서
노종은 진실하고 성실하게 충심을 다하고 신심을 다합니다.
이 일의 진행을 하나님께 맡기고(42) 지혜를 발휘하는 대목은(43-44)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48절의 찬양에서 노종의 충심과 신심이 느껴지고
61절과 66절에서 달려갈 길 다 마쳐가는 노종의 모습이 따듯하게 빛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왕실 혼인잔치를 위하여’입니다.
성전예언자가 지은 것으로 추측하는 이 노래의 “임금님”은 차차
그리스도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며 부르게 되었습니다.
전반부에 있는 6-7절을 히브리서1:8-9절에서 그렇게 해석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7:15-25a / 마태복음 11:16-19, 25-30)]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율법과 죄의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삶을 서술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죄에 빠지기 일쑤인 모순된 우리 인생의 원인을
마음과 육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논리로 찾아갑니다.
즉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선한의 지가 있음에도
육신에는 죄의 법에 따른 악한 일투성이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악한 죄에 빠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예,
이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라고 구분합니다.(17, 20)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내 선한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24-25)
이 결론이 바로 오늘 복음서본문인 마11:28-30절과 통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나에게 와서 쉬어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태복음의 최종 결론(결산)인 28:18-20(특히 18절)에 앞선
중간 결산에 해당하는 11:27절을 축으로,
어린이 같은 약자들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오해해도(19) 아버지만은 아들을 알아주십니다.(27)
이 마음 든든한 믿음으로 예수님은
기존의 멍에(율법해석)과 다른 새 멍에(예수님의 율법해석, 새 계명)로
<전인적인 구원(“마음에 쉼”, 29절)>에 이르게 해주십니다.
[정리]
세상이 점점 어지럽고 위태로워질수록
우리는 더 성경말씀에 의지하며 말씀통찰력과 천국상상력을 간구합니다.
물론 천국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과 무관하지 않은 <하나님나라>입니다.
천국상상력이 풍부해질수록 지금 여기서 내가 가야 할 <창조질서회복의 길>이 잘 보이고
지치지 않고 신나게 그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천국상상력의 핵심은 <하나님 알기>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절 7주인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십니다.(19)
나아가 예수님을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고까지 고백하십니다.(27b)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과 예수제자들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c)
그래서 교회의 역할이 큽니다.
지금 이 시대, 참 위태롭게 흘러가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역할이 큽니다.
지금 교회를 오해하고 무시하는 것은 세상보다 오히려 교회 자신입니다.
교회가, 우리가, 내가 하나님을 예수님 제대로 모른다는 말입니다.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의 친구>(19)라는 오해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몸으로 보여주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교회라면
지금 온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방사능 오염수 방류>라는 반생명의 길을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께서(롬7:24-25)
부디 이 죽음의 세력들에게서 우리 지구를 건져주시기를 빕니다.
말 못하는 짐승의 갈증을 느끼고 행동한 리브가처럼(창세기24:46),
주님의 신부, 주님의 몸 교회라면 누구보다 먼저 바다생물들의 고통을 느끼고 행동할 것입니다.
나, 너, 우리 모두의 쉼,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나머지]
* “저녁이 있는 삶”?
오늘 아브라함의 종이 보여준 성실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노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다녀옵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직전 본문과 중략된 부분까지 읽어보면, 그가 사람들과 일일이 반복해서 미주알고주알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이 맡긴 사명 잘 수행하려고 꾸준히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다하고 마무리하려고 이삭에게 보고하기까지, 진실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66)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그 사명을 다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42-44) 감사하는 모습입니다.(48) 아무리 성실해도 그 길의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길에서 종종 길을 멈추고, 오늘 아브라함의 종처럼, 이 길이 맞는지, 하나님께 길을 여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예레미야 6:16) 예레미야가 보여주는 저런 인생이 바로 오늘 서신서 본문의 “육신”에 매인 “죄”에 매인 사람입니다. 내 삶의 모든 방향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지 않고 나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편향된 자아>의 사람 말입니다. 그런 자아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끝없이 왜곡시키니 거기 선한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롬 7:18)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덧없이 애쓰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복음 11:28-30) 코로나19가 여전히 힘들고 벅찹니다. 이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 가볍고 신나게 살 수 있는 길, 제대로 쉴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예수님께 돌아가기, 그리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기입니다. 그런데 그게 뭘까요? 예수님께 제대로 돌아가는 게 뭘까요? 예수님께 배우고 그 멍에를 메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길을 볼 수 있는 눈은, 어린아이, 어린아이 같은 약자들 몫입니다.(마태복음 11:25-26) 지진 쓰나미가 닥치고(후쿠시마 핵폐수 방류가 코앞에 닥치고), 코로나19가 창궐해도 여전히 그 길이 안 보이는 것은, 내가 어린아이처럼 낮아지지 못한 것입니다. 내 안에 자아가 너무 세고, 여전히 가진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채로 ‘저녁이 있는 삶’을 아무리 되뇌어도 거기 참된 쉼이 있겠습니까?
** 아브라함의 종의 멍에가 무겁지 않은 까닭
늙은 종에게 그 짐은 의외로 가벼웠습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앞서 보내주셨기 때문이고(7) 마침내 주님께서 완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늙은 종은 주님은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26-27, 48, 52) (7절)“...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 “내 멍에는 가볍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복음11:30)
오늘 복음서본문의 후반부는 마치 오늘 서신서본문에 대한 응답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 따라 사는 것이 제 아무리 힘들다 해도, 마음 한번 먹고, 가던 길 돌이키기만 하면 됩니다. 내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돌리고, 주님께서 가신 길 향해 한 걸음만 내 딛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오늘 사도바울도 이 사실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습니다.(25)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반복해서 가리키십니다.(28-30) 오늘 아브라함의 늙은 종처럼, 우리는 이 사실 믿고 주님을 향한 여정에 첫걸음 내딛기 시작만 하면 됩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30) 나머지 갈림길은 주님께서 잡아 주실 것입니다. 내 힘으로 건너기 힘든 구렁이 나오면 주님께서 아예 우리를 업고 가실 것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아기새와 어미새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5호)
첫 비행
높은 나무 위 둥지에서
햇살이 가득
볼기짝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나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없이 멀리 보이는 바닥은
나를 두렵게 한다.
두려움에 몸이 굳어,
시야가 어두워져갈 때
저 멀리 낯익은 소리에
귀 기울인다.
어느 새 나는 높디높은
나무 위 둥지를 벗어나
저 멀리 낯익은 소리에
이끌려 푸른 하늘을 가로 질러
어머니를 향해 날아간다.
[시편시조] 왕후님 눈과 귀를, 시편45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5호)
왕후님 눈과 귀를 임금님께 몰두하면
임금님 온 마음이 왕후님 향하오리
사람들 찬양하리라 임금님의 그 이름
[시편노래] 시편 45, 아름다운 왕후시여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 115호)
[본문] (시편 45:10-17)
[노랫말]
1. 아름다운 왕후시여 잘 들으세요, 왕후님의 겨레와 집 다 잊으세요,
그대의 임금님을 높여드려요, 임금님이 그대를 사랑합니다
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드리고, 부유한 백성들이 몰려오네요
눈부시게 차려입은 우리 왕후님, 오늘도 임금님이 기다립니다
3. 왕후님과 임금님의 고운 아이들, 온 세상 통치자가 되실 겁니다,
오래오래 그대들을 기억합니다, 만백성이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인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45 (아름다운 왕후시여2)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45:10-1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5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다함께]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 (찬양)할 것입-∼니∿다-∼∥
[말씀동화] 리브가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초청하려던 동해용궁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혼자 피리 불며 혼자 춤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동해 용궁이 하루하루 우울하고 어두워져갑니다.
몹쓸 사람들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릴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죠.
동해용궁 용왕이 참다못해 용궁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질문합니다.
“목사님, 세상 사람들은 왜 바다 생명들을 하찮게 여기는 걸까요?”
용궁교회 목사님이 대답했어요.
“그러나 세상에는 뭇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더 많아요.”
용궁교회 목사님은 우울증에 빠진 동해용왕을 위해서
생명을 사랑하는 성경인물들을 소개해 주었어요.
말 못하는 짐승들 목마른 것까지 챙기는 리브가 이야기를 들려주자(창세기24:45-46)
동해용왕의 눈이 대보름달처럼 크고 밝아졌어요.
“어서 리브가님을 초청해야겠어요.”
리브가를 초청해서 말 못하는 동물의 마음을 읽는 기술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워서 세상 사람들에게 퍼뜨리려던 동해용왕은
리브가는 너무 옛날 사람이라서 만날 수 없다는 용궁교회 목사님 말씀에
다시 눈빛이 흐려지고 어깨가 축 쳐졌어요.
그때 동해용왕의 비서실장 장수거북이가 큰 눈을 끔벅이며 입을 엽니다.
“제가 땅에 가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데려오겠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큰돈을 주고 부탁하면
그가 피리를 불어서 방사능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몹쓸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춤을 추다보면 마음이 기뻐져서 더 이상 몹쓸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거였죠.
그러자 용궁교회 목사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수거북이에게 말했어요.
“성경에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어요.”(마태복음11:17)
그러자 장수거북이는 큰 눈을 가느다랗고 음흉하게 뜨며 이렇게 말했죠.
“그럼 아예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더 큰 돈을 줘서 그 몹쓸 사람들을 몰아다가 바다에 빠뜨리는 건 어떨까요?”
용궁교회 목사님이 펄쩍 뛰며 대답했어요.
“그건 세상의 몹쓸 사람들이나 하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일입니다.”
용궁교회 목사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동해용왕이 별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말했어요.
“그 몹쓸 사람들을 싹 다 바다에 빠뜨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해드릴 수 있어요.”
동해용왕은 심청이가 바닷물에 빠졌던 옛날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심청이가 용궁에 와서 여차저차 연꽃을 타고 다시 뭍에 올라가
훌륭한 사람, 왕후까지 된 신나는 이야기를!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시편45:13)
동해용왕이 옛날이야기와 자기 상상력에 심취해서 덩실덩실 춤추며 시편노래까지 부르자
용궁교회 목사님과 장수거북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그건 심청이가 원래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세상에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몹쓸 사람이 너무 많다고,
그 많은 악인들을 착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땅과 바다에서 찾을 수 없다고!
다시 우울해진 동해용왕을 바라보며 용궁교회 목사님이
비통한 표정으로 성경말씀을 읊조렸어요.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서7:24-25)
양심의 소리보다 몸의 편안과 이득에 기울어지는 세상 사람들의 변화를 위해서
동해용궁 백성과 용궁교회 성도들이 하나 되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이정훈 지음. 2023년 7월 8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