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2주(2023년 4월 16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시니”(시편 16:11)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2:14a, 22-32)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23. 이 예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27.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28.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29. 동포 여러분, 나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 무덤이 이 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이므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그의 왕좌에 앉히시겠다고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지옥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썩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시편 16)
1.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2. 나더러 주님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
3. 땅에 사는 성도들에 관해 말하라면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하겠습니다.
4.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더욱더 고통을 당할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피로 빚은 제삿술을 그 신들에게 바치지 않겠으며, 나의 입에 그 신들의 이름도 올리지 않겠다.
5.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6.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7. 주님께서 날마다 좋은 생각을 주시며, 밤마다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시니,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8.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9.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 몸도 아무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10.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4.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7.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죽음세력 꺾으시고 소망과 기쁨을 주신 주님’입니다.
사도행전,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24)
시편,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시편 16:10)
서신서,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으며”(베드로전서 1:3)
복음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요한복음 20:20)
오늘 요절은,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입니다.(시편 16:11)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2:14a, 22-32 / 시편 16)]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제자들의 방언에 놀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요엘의 예언을 선포한 뒤에(17-21)
그 끝 절(20-21, 즉 욜2:31-32)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본문은 시16편을 통하여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에 이미 예고되었다는 사실을,
즉 시16:8-11절을 인용하여(25-28) 이 구절의 화자인 “나”는 다윗 자신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자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심을(25a, 막12:35-37)
다윗은 이미 죽은 자라는 사실(29)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아름다운 기업’입니다.
이 노래는 오늘 사도행전본문이 인용한 시편으로서, 응답찬송으로 안성맞춤입니다.
구구절절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요 행복이요 살길이심을,
즉 나에게는 오직 주님뿐임을 노래합니다.
첫 절은 마치 주기도문의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른 이들처럼 풍요를 위해 엉뚱한 신을 섬기지도 않고(4),
마치 땅 없는 레위인들처럼 오직 주님만이 나 의지할 나의 기업이라고 고백합니다.(5)
그리고 인생의 가장 큰 적이며 최후의 적인 죽음조차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장담합니다.(9-11)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은 죽음조차 끊을 수 없음이요,
이 대목은 오늘 사도행전본문이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베드로전서 1:3-9 / 요한복음 20:19-31)]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산소망’입니다.
<소망의 편지인 베드로전서> 앞부분인 본문은
첫 구절부터 “산 소망”(3)의 근거이신 주님의 부활을 노래하는 찬양입니다.(3a)
이는 본향을 향한 나그네로서, 점점 심해져가는 이교적 환경의 적대와 멸시를 딛고
든든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하는 큰 힘입니다.
소망의 내용인 “유산(기업)”이란, 썩어 없어지고 죄와 거짓으로 더럽혀지기 일쑤인
세상재물과는 전혀 다른, 참 복스러운 생명구원입니다.(5,9)
이 소망으로 우리 앞의 모든 시련에도 우리는 기쁠 것입니다.
이 시련은 오히려 우리를 단련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련된 우리 믿음으로 우리는 점점 주님과 친해져서
그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도마, 복음서의 종결’입니다.
지난주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장면은
생전의 긴 고별사(요한복음 13-17장)에서 예고하신 것들을 실현하시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두려움 가득했던 제자들에게(19a), 예수님은 오시자마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시고(19b,21, 14:27) 기쁨을 일으키십니다.(20, 16:20,22)
그리고 잠시 헤어졌다가 곧 다시 뵙게 된 것입니다.(20, 14:19, 16:16)
특히 파송과 성령전달하심이 그러합니다.(21-22, 14:16-17,26, 15:26-27, 17:18)
생명과 직결되는 성령세례를 통하여 제자들은 부활예수님 안에 몫을 얻게 됩니다.
28절 도마의 고백은 이후 초대교회의 부활절예배(즉 매주일 예배)때마다
보이지 않는 부활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모범이 되어 이어졌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요1:1,18, 요일5:20)
그리고 29절 예수님이 선언하신 복은 이후 교회에 큰 위로와 복이 되십니다.
[정리]
부활절 2주 성서일과본문들은, 인류가 경천동지할 대사건, 주님의 부활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탐욕스런 환경, 변함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영의 눈을 열어 소망과 기쁨을 되찾게 하시는 소망의 말씀들입니다.
오늘 구약대신 읽은 사도행전본문은 시 16편을 인용하고,
시편본문의 “내가 받을 유산의 몫”(5), “빛나는 유산”(6)은 서신서본문으로 이어지고(벧전1:4)
부활예수님을 안 보고도 믿고 사랑하는 서신서의 기쁨은(벧전1:8),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음서로 이어집니다.(요한20:29)
부활예수님께서 친히 복스럽다고 선언하신 <안 보고 믿는 믿음>이어야(요한20:29)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탐욕스런 돈 욕심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주님을 모시고 사는 넘치는 기쁨의 인생이 가능해질 것입니다.(시16:11)
요약하자면,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벧전1:4)은
지금 탐욕세상의 돈 욕심 속에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참 “빛나는 유산”(시16:6, 땅 소유욕이 아닌),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시16:5)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안 보고 믿는 믿음>(요한20:29),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시16:11)
그러고 보니, <돈 욕심의 뿌리는 죽음의 공포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죽음권세 무너뜨리신 주님의 부활입니다.
돈 욕심에 멱살 잡힌 인생은 부활신앙이 없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오늘본문으로 표현하자면, 보이는 돈만 믿고, 보이지 않는 부활예수님은 믿지 않는다는,
그러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을 결코 맛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신 주님께서 베푸시는(시16:11)
부활의 기쁨,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이
여전히 나를 사로잡으시도록
오늘도 나를 비우는, 내 지갑을 비우려 애쓸 때입니다.
[나머지]
* 부활예수님 뵙듯 말씀을 엽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큰 기쁨이었으며 이스라엘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죽음권세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사랑! 부활예수님이 바로 그 사랑의 생생한 증거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부활 예수님의 축복선언은(29) 예수님의 얼굴조차 본 적 없고 볼 수도 없는 오늘 우리들에게 큰 기쁨이 되셨습니다. 부활예수 만난 듯,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 분, 예수님 만난 듯,(요한 1:14) 그래서 성경말씀 읽고 들을 때마다 우린 기쁩니다. 말씀으로 만나는 부활예수님이 우린 한없이 기쁩니다.
** 코로나 거리두기 시절에도 바싹 찾아오시던 예수님
오늘 부활절 2주 성서일과 본문들에는 곳곳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부활절(1주) 본문에서 느끼지 못한 부활의 “기쁨”이 구석구석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두드러진 느낌은, 나와 부쩍 가까워지신 주님입니다. 가깝다는 것은 공간적 거리, 시간(시대)적 거리, 또는 마음속 거리를 넘어서는 친밀도를 가리킵니다. 오늘 사도행전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 16편은 이미 천 년 전에 노래한 다윗의 예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3천 년 전 노래입니다. 그렇게 머나먼 노래를 지금 내 입에 붙여 매일 노래하다니요! 문득 천년이 지난 뒤에 오실 그리스도를 내다보며 이 노래를 불렀을 다윗의 마음이, 그 감동이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예수님께서 꽁꽁 닫힌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장면이 놀랍습니다. 방문도 닫고 마음 문도 닫은 제자들의 가운데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 마음속에 스며드신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 안에 생명력 넘치는 기쁨이 솟구칩니다. 부활하셨다고 천사를 통해 증언만 해주셔도 될 터인데, 구태여 가까이 오신 것입니다. 잠긴 문임에도 오신 것입니다. 구태여 몸을 입고 예전 모습으로 다가오신 부활 예수님에게서, 구태여 도마에게까지 한 번 더 가까이 찾아오신 그 예수님에게서 자물쇠조차, 죽음조차 막을 수 없는 한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유대인들이 무서워 꽁꽁 닫아걸고 밀집해 있었던 제자들과 달리 코로나19가 무서워 이리저리 흩어져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 애쓰는 온 세상 교회 한 가운데로 부활예수께서 찾아오십니다. 우리 하나 하나 서로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놓치지 않고 찾아오시니 우리는 부활예수님과 부쩍 가까워집니다. 교우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예수님 한 분으로 교회의 친교는 깊어만 갑니다.
*** 예수님을 못 보고도 사랑하고, 믿고, 기뻐하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 20:29) 도마에게 하신 말씀인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20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20)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미리 당신의 상처, 즉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셨을까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실 것이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다고 믿음이 더 잘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져본다고 더 믿음이 제대로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내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것이 콘크리트 아집, 도그마, 우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 기억할 것은, 위의 29절 말씀이 오늘 서신서본문인 베드로전서 1:8절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이 권면의 말씀은 바로 오늘 복음서본문의 자리에서 베드로가 받은 감동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벧전 1:8)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지금도 못 보면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기뻐하는 우리! 이게 바로 “믿음의 목표” 곧 “영혼 구원”의 증거라는 사실입니다.(벧전 1:9)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믿음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4호)
나는 믿고 있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나는 의심한다
눈으로 보아야 하고
손으로 만져 보아야 된다
하지만,
약할 때 오는 힘
믿으면 이뤄 주신다.
믿으면 함께 하신다.
[시편시조] 시편 16, 주님은 나의 행복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4호)
주님은 나의 행복 만복을 내리신 분
밤낮으로 좋은 생각 맑은 교훈 주시는 분
늘 나와 함께 계시는 나의 기쁨 하나님
[시편노래] 시편 16, 하나님 주 하나님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4호)
[본문] (시편 16)
[노랫말]
1. 하나님 주 하나님 나를 지켜 주옵소서, 주님께 피하오니 나를 지켜 주옵소서,
주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나의 행복, 성도는 누구인가 성도들은 나의 기쁨
2. 다른 신 섬기는 자 더욱더 고통 받고, 주님을 섬기는 자 구석구석 복을 받네,
다른 신 외면하고 이름조차 멀리하니, 나의 길 나의 미래 주님이 책임지네
3. 날마다 부어주신 빛나고 좋은 생각, 밤마다 새겨주신 주님의 귀한 교훈,
나를 위해 골라주신 빛나고 기름진 땅, 든든히 동행하는 주님을 찬양하네
4. 언제나 날 지키는 든든하신 주 하나님, 죽음세력 죽음세계 아무 두렴 없나이다,
몸소 가신 생명 길을 나에게 보이시니, 주님 모신 이 기쁨에 내내 찬양하옵니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6 (하나님 주 하나님)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4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주님께로--) 피합-니다-∼
2. 나더러 주님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
3. 땅에 사는 성도들에 관해 말하라면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기쁨이다--) 하겠습니다-∼
4.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더욱더 고통을 당할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피로 빚은 제삿술을 그 신들에게 바치지 않겠으며, 나의 입에 그 신들의 이름도 올리지 않겠다.
5.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6.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7. 주님께서 날마다 좋은 생각을 주시며, 밤마다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시니,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8.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9.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 몸도 아무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10.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다함께]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말씀동화] 한국바늘과 미국바늘의 이중창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바늘귀에 실 꿰려고 돋보기 쓰고 쩔쩔매던 시절 이야기예요.
아주 오랜만에 외할머니께서 영희네 집에 오셨어요.
산 넘고 물 건너 비행기타고 오셨죠.
영희네 집은 한국에서 아주 먼 나라, 미국 뉴저지라는 고장에 있거든요.
영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가 조금 서먹서먹했지만
금세 할머니 무릎 위를 오르락내리락 아주 신바람이 났습니다.
종종 엄마랑 할머니랑 영상통화하시는 덕분에
할머니 얼굴에 고불고불 주름까지 친숙하거든요.
저녁밥 드시자마자 할머니는 꼼지락꼼지락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셨어요.
밤낮이 바뀌었는데도 할머니는 참 부지런하십니다.
“우리 엄마, 반짇고리 가져오셨네.”
영희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작은 흥분을 느꼈어요.
보일락 말락 작은 신바람도 느껴집니다.
엄마도 얼른 반짇고리를 가져와서 할머니랑 마주 앉았어요.
마주보며 빙그레 웃으시는 할머니와 엄마는
조롱조롱 조각보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맞아요. 우리 엄마의 취미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엄마의 소문난 퀼트 솜씨는 할머니의 조각보 만들기에서 나온 거죠.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엄마로부터 조각보 만들기를 배웠어요.
낡고 헤어진 옷감이나 이불보에서 쓸 만한 부분을 오려두었다가
조각조각 여러 빛깔의 천들을 모아 완성한 아리따운 조각보!
그런데 웬일이지?
처음엔 까르르 웃음꽃이 피나 싶더니 금세
엄마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옛날 말에 ‘가진 게 망치뿐인 사람 눈엔 온 세상이 못대가리로 보인다’더니
엄만 가진 게 바늘뿐이유? 왜 사람 가슴을 아프게 콕콕 찔러요!”
한국에서 억울하게 자식 잃고 날마다 우는 엄마들 이야기 끝에 나온 소리예요.
할머니는 이태원에서 숨진 자녀들의 엄마와 세월호에서 숨진 아이들의 엄마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위로하곤 하시는데,
그런 할머니의 눈에 엄마가 좀 게을러 보인 거죠.
“네 말이 맞다. 가진 게 바늘뿐이라 내 눈엔 온통 세상이 옷가지로만 보인다,
찢어진 옷가지!”
영희는 순간 엄마의 표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지렁이의 달리기를 느꼈어요.
찢어진 옷가지라는 말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확 느껴진 거죠.
자식 잃은 엄마들의 찢어진 마음들, 그리고 생각이 달라 갈라진 사람들까지.
그리곤 엄마 목소리가 점점 순둥순둥해집니다.
어느새 오순도순해진 엄마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영희는 빙그레 웃고
예쁜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입가에도 예쁜 미소가 번집니다.
“영희야 할미가 재미난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영희의 두 눈은 샛별처럼 반짝이고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는 은하수처럼 쏟아집니다.
“옛날옛날 한옛날에, 예수님께서 ‘에바다’하고 외치시던 날(마가복음7:34-35)
온 세상 바늘귀까지 활짝 열려버렸단다.”
할머니 옛날이야기는 되게 엉뚱한 맛이 있어요.
그래서 영희의 눈은 점점 가늘어졌다 커졌다를 반복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사람들 다 잠든 밤이면, 귀 열리고 입 열린 바늘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귀가 열리지 않은 바늘들이 있는 거야. 왠지 아느냐?”
어느새 까만 콩자반처럼 휘둥그레진 영희의 두 눈을 바라보시며
할머니는 까르르까르르 답해주셨어요.
서양 바늘에는 귀는 없고 눈뿐이라는 아재, 아니 할머니개그!(the eye of a needle)
똘망똘망한 영희의 두 눈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번지더니
어느새 영희의 마음속엔 미국바늘들의 눈들이 활짝 열리는 그림이 그려졌어요.
나면서부터 맹인인 걸인의 눈을 열어주신 예수님 말씀과 함께!(요한복음 9장)
한바탕 영희의 입에서 미국바늘들 눈이 모두 활짝 열리고
한국바늘 미국바늘의 귀와 눈이 동그란 입으로 변하더니
이구동성으로 하나님 찬양하더라는 영희표 옛날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시편16:5)
어느새 하트 눈이 되어버린 할머니와 엄마가 영희를 칭찬하시고
할머니와 엄마의 나뉘었던 마음들이 점점 하나가 됩니다.
9년 동안이나 울던 세월호 엄마들이 이태원 엄마들을 안아드리듯이
바늘을 잡은 할머니와 엄마는 마음을 모아서 엄마들 상처 어서 아물기를 기도합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예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교인들 위로의 말에
자식 잃은 엄마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라며 계속 웁니다.
함께 울면서 목사님은 엄마들 눈물 닦아드리며 예수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죽은 게 죽은 게 아니라하신 예수님 그 말씀에
엄마들 마음속에서는 신비로운 소망이 움텄고,
할머니가 전해주시는 엄마들 눈물을 씻은 그 기쁜 소식에,
할머니의 한국바늘과 엄마의 미국바늘이 입을 모아 기쁜 노래 부릅니다.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시편16:11)
[이정훈 지음.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