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3주(2023년 1월 2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23. 1. 20. 18:59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이사야서 9:4)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9:1-4)

1.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님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3.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4. 주님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27:1, 4-9)

1.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4.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5. 재난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

6. 그 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주님의 장막에서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

7. 내가 주님을 애타게 부를 때에, 들어 주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8. 주님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9. 주님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나를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나를 버리지 마시고,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10-18)

10.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1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식을 전해 주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2.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

13.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14. 내가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5. 그러므로,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스데바나 가족에게도 세례를 주었습니다마는, 그 밖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4:12-23)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13.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빛나는 복음으로 환해진 세상입니다.

 

구약,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이사야서 9:2)

시편,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7:1)

서신서, “십자가의 말씀이...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린도전서 1:18)

복음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주셨다”(마태복음 4:23)

 

오늘 요절은,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입니다.(이사야서 9: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9:1-4, 시편 27:1, 4-9)]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평강의 왕에 대한 약속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공포요 고통인 전쟁의 광풍에 시달리는 백성에게

예언자는 참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과거 기드온 300용사 때처럼(7) 이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백성에게 주어지는 크나큰 해방의 기쁨입니다.(3-4)

 

예언자는 그 과정을 마치 천지창조의 첫째 날처럼(1:3)

어둠 속에 빛이 비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1절과 2절의 첫머리가 그렇게 이어지고

(오늘 복음서본문 마4:15-16절이 이를 받아서 인용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6-7절이 평강의 왕 예수그리스도를 내다보게 합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하나님과 사귀는 자의 기도입니다.

시인은 그 어떤 곤경의 공포와 고통도 이길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주님과의 친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집 성전에 거할수록 그 확신은 배가 됩니다.

그렇게 주님과 친밀해지는 모습을 4절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라고 부르셨다고 노래함으로써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주님과 친밀한지를 드러냅니다.(8)

 

주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밀해지는 천국잔치를 앞당겨 미리 맛보는

신비로운 친교의 자리인 예배!

그 적극적인 예배자로 살겠노라 결심하고 선포한 시인은(8)

그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주님의 든든하신 도움을 확신하며 청할 것입니다.(9)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10-18, 마태복음 4:12-23)]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상입니다.

악마의 이간질은 사랑과 평화의 전당인 교회에서조차 극성일 수 있음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작은 틈새조차 놓치지 않고 악마는 교회를 갈라놓으려 혈안이기 때문입니다.

 

분쟁하고(11) 갈라진(12-13) 고린도교회에게 바울은

복음(17) 하나님의 능력십자가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18)

예수님께서 몸소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을 친교하게 하신 십자가의 말씀은

교회 내의 모든 분열의 명분을 꺾어버리고도 남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갈릴리 활동의 시작입니다.

40일 광야 마귀의 시험 직후에 예수님은

요한의 투옥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 가버나움에 가서 자리 잡으십니다.

복음서 기자는 이 과정을 오늘 구약본문을 인용하여 설명하며(9:1-2)

예수님께서 자리 잡으신 갈릴리 지역이 이방인들 가득한 어두운 지역임을 드러냅니다.

 

오래전 이 지역에 자리 잡았던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가(13, 15)

주전 732년경 앗시리아에 끌려간 뒤(왕하15:29)

갈릴리 땅은 수많은 이방인들이 이주해서 살았습니다.

 

이 어두운 땅에 참 빛 예수님이 오심으로(1:9)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되고(14)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17) 이 빛나는 첫 말씀이

갈릴리 곳곳에 복음으로 선포되며 백성을 구원합니다.(23)

 

회개, 즉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어둠에서 빛을 발견한 사람의 첫 반응이고

이 첫걸음은 하나님나라로(천국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이들 가운데 갈릴리 어부 몇 사람이 참 강렬한 회개의 길,

예수님을 따르는 빛나는 제자의 길로 접어듭니다.(18-22)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참조)

 

 

[정리]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주셨네”(40:2)라는

지난주 시편 시인의 노래에 이어서

오늘 시인은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라고 노래합니다.(27:1)

그것은 지금 시인의 현실이 매우 어둡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어둠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고 외치는(9:1)

오늘 구약본문의 자리는 전쟁의 먹구름 가득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외친 사도바울의 고린도교회는

교회의 분열로 어둡습니다.(고전1:10-11)

 

복음서본문의 자리는 의로운 소리꾼 세례자요한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저 패륜(悖倫)덩어리 헤롯의 독재로 한없이 어둡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나의 길을 가십니다.

참 빛의 길을 가십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습니다.

기후위기, 코로나의 위기, 경제위기, 이어지는 참사들

설상가상 핵전쟁의 위기까지 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리누르는 멍에를 이미 부수신 주님!(9:4)

악마의 죽음권세를 송두리째 무너뜨리신 예수님, 그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여태 죽음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며 악마의 온갖 거짓말과 이간질에 휘둘릴 수 없습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2:14-15)

 

한줌도 안 되는 권력욕과 돈 욕심으로 언로를 틀어쥐고 온갖 패륜을 일삼는 자들은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주님께서 꺾으실 것입니다.(9:4)

그리고 교회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가버나움의 저 빛나는 복음을 내 안팎으로 외치면서

지금 어두움에 사로잡힌 이들 속으로 들어가 촛불 하나 밝힐 때입니다.(4:23)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4:17)

 

 

 

[나머지]

* 어부들을 부르시다

언젠가 가족기도회 때 저희 집 아이가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첫 제자로 삼으신 특별한 까닭이 있냐고? 저는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대답해줬습니다. 특히 NQ(Network Quotient) 공동체 지수에 대해서 길게 말해줬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어부들은 배를 타면 상명하복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설명했습니다. 목숨을 건 일이기 때문입니다. 큰 파도를 만났을 때, 또는 해적을 만났을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어부들! 그래서 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늘 전통민요 뱃노래몇 곡을 꼭 가르쳤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생일날 뱃노래를 적당히 개사해 부를 것을 권하였습니다. ‘교회하면 구원의 상징, 방주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 “큰 빛예수그리스도를 따라 (9:2, 4:16)

주현절 3, 4본문을 통하여 그분께서 다시 우리에게 환하게 드러나십니다. 4본문의 알맹이 큰 빛이란 구체적으로 주님의 얼굴곧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명을 받은 어부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제자로 따라나서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조국의 광복(光復)을 위해 가족을 등지는 광복군(光復軍)들입니다. 그분들이 가족을 등진 것은, 가족을 내팽개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식들이 광복(光復)을 보고, 그 빛을 만끽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는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이 부모와 가족들을 버려두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짧게는 로마 식민지 시대와 폭군 헤롯으로부터의 광복이요, 길게는 영혼구원, 즉 천국복음으로 천국주인이 되는 광복이었을 것입니다. 내 온 가족과 함께!

 

*** 복음을 만난 자, 집착의 감옥에서 해방되다!

주현절 3주에 주신 본문말씀들에 어두움, 두려움, 분열, 질병의 고통이 나오고 큰 빛, 기쁨, 십자가의 말씀, 천국복음, 치료가 연이어 나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듯이 모든 고통이 치료받습니다. 문득 이 모든 어둠, 두려움, 분열, 질병, 이 모든 고통의 뿌리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소유, 소유에 대한 집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물질뿐 아니라, 명예, 권력, 지식, 재능, 관계,,, 모든 소유에 대한 집착입니다.) 소유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 집착하는 게 문제입니다. 복음은 나를 그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할 것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17) 천국을 맛볼 수 있다면, 즉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즉 복음을 제대로 듣고 깨달을 수 있다면 집착의 감옥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내 소유가 많건 적건 그 집착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은

오늘 갈릴리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오직 복음, 그분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내 소유가 많고 적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만났음에도 버리지 못하는 집착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다른 말로, 아직도 소유, 그 집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복음을, 그분을 못 만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다.”(23) 하늘나라의 복음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지금, 하늘나라의 기쁨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나날이 퇴색하는 천국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 만나기 전부터, 조금씩이라도 소유 집착 내려놓는 훈련과 더불어 먼저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의 문제를 직시하고 거기서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이의 고통을 슬퍼하는 자비(慈悲), 고쳐주려 애쓰시는 그 마음을!

 

**** 멍에를 꺾어주시고 나를 보호해 주실 분

이 시대를 짓누르는 멍에와 몽둥이들을 꺾어주실 그분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이 재난으로부터의 내 생명의 피난처인 주님의 집, 성전, 즉 교회를 찾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그런 피난처가 되기에 합당합니까?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시편 27:4절 노래가 두고두고 두근두근... 마음에 남아 진동합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을 병행하여 다시 새깁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시편 27:4, 새번역)

야훼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야훼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야훼를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시편 27:4, 공동번역)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선포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113)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인기 없는 예수님

 

나를 따라오라

사람 낚는 어부로 삼겠다

어이 없는 예수님

 

인기 없고

말 안되는 일들로

세상을 살리시는

놀라운 예수님

 

 

 

 

[시편시조] 나의 빛 나의 구원 (시편 27)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3)

나의 빛 나의 구원 피난처 나의 주님

한평생 주와 함께 주님 집에 살고파라

애타게 주를 부를 때 귀 기울여 주시길

 

 

 

 

[시편노래] 시편 27, 한평생 성전에서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성실문화113)

[본문] (시편 27:1, 4-9)

[노랫말]

1. 나의 빛 나의 구원 주님은 내 피난처, 주님과 동행하니 그 누가 두려우랴

내 소원 오직 하나 주님과 동고동락, 한평생 성전에서 주의 자비 보고지고

2. 재난이 닥쳐와도 주님 나를 숨기시네, 주의 초막 장막 안에 은밀히 감추시네

반석 위에 세우실 때 내 머리 높이 들리, 성전에서 예배하며 소리 높여 찬양하리

3. 나의 도움 나의 주여 응답해 주옵소서, 애타는 제 기도를 불쌍히 여기소서

거룩하신 주님 얼굴 숨기지 마옵시고, 애타는 예배자를 외면하지 마옵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새명성교회 김영준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7:1, 4-9 (한평생 성전에서)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20230122_시편가 27 한평생 성전에서.m4a
2.06MB

 

 

 

 

[시편송서(誦書)] 시편 27:1, 4-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3)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이 나의 빛 --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 -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4.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5. 재난--- 날이- 오면-, 주님의 -- 속에 나를 숨겨 주시--,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

6. 그 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주님의 장막에서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

 

7. 내가- 주님을 애타게 부를 때--, ---- 주십-시오-,

-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8. 주님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9. 주님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나를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다함께)

주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를 버리지 마시---,

외면하-- -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

 

20230122_시편송서 27;1,4-9.m4a
2.20MB

 

 

 

 

[말씀동화] 까치가 된 오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설날 윷을 너무 높이 던지는 바람에 까치한테 야단맞던 시절 이야기예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동요 설날윤극영 지음]

 

오랜만에 설날노래를 신명나게 4절까지나 부르던 영희가

문득 호동그라니 아빠를 올려다보며 질문했어요.

 

그런데 아빠, 왜 어저께가 까치설날이야?”

 

아빠는 개굴개굴 개구쟁이 미소로 이렇게 대답하셨죠.

 

스마트폰은 두었다 뭐하게?”

 

스마트폰 불빛보다 더 밝은 눈빛으로

고양이보다 날랜 손가락으로

영희는 얼른 검색합니다.

 

까치설날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 영희의 눈길을 끈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였죠.

 

 

영희는 아빠 앞에서 늠름한 목소리로

스마트폰에서 검색한 까치설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때는 신라 소지왕 시절, 왕후가 어떤 스님이랑 짜고 왕을 해치려 했는데,

그때 까치랑 쥐, 돼지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했어.

그래서 왕이 고마운 마음에 이 동물들을 기념하려고 보니

쥐랑 돼지는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자기 띠가 있는데 까치만 없네?

그래서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해서 까치설날이라고 했다나 뭐라나

 

아빠는 눈이 영희보다 더 호동그레지면서 박수를 쳤어요.

그리고 다시 개구쟁이 눈빛으로 말씀합니다.

 

까치 목청이 크긴 크지?”

 

설날 멀리 살던 가족들이 하나 둘 시골집으로 모여들 때도

높다란 나무 위에 앉아 까악까악 울어서

미리 반가운 사람들이 오는 소식을 전하곤 하는 까치!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면서 한마디 거들었어요.

 

우리나라엔 까치만한 기자들이 없어.”

 

엄마말씀에 눈이 휘둥그레진 영희를 바라보며

이번엔 아빠가 거듭니다.

 

맞아, 제 힘만 믿고 몹쓸 짓, 부끄러운 짓 저지르는 사람 천지인데!”

 

감옥에 갇힐 각오로 힘센 사람들의 나쁜 짓을 나무라는

그런 올바른 기자, 바른말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어요.

그러자 늘 조용하시던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며

멋진 말씀을 하셨어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제 멋대로 살지 말고,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시민들 눈치를 봐야 해.

옛 어른들 말씀에, ‘하늘은 백성의 눈을 통해 우리를 살펴본다고 했어.(천시자민天視自民視)

하늘은 백성이 보는 대로 보고, 백성이 듣는 대로 듣는다는 말씀이지.”

(천시자민시天視自民視 천청자민청天聽自民聽)

 

 

아까부터 자기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던 오빠가

할머니 말씀을 듣고 무언가 깨달았는지

문득 하나님말씀을 찾아 중얼중얼 읊조리기 시작했어요.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마태복음4:16)

 

할머니와 엄마아빠 온가족의 감탄하는 박수 소리에

영희는 오빠가 무언가 엄청난 사실을 미리 알고 외치는

까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샛별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영희는 말했어요.

 

오빠가 우리 집 까치네!”

 

어른들이 까르르 웃으시고 영희가 깡충깡충 토끼 춤을 출 때

우리 집 까치가 된 오빠는 더 큰 목소리로

하나님말씀을 봉독합니다.

 

주님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이사야서9:4)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4:17) 아멘!”

 

[이정훈 지음. 2023121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