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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1주(2022년 11월 2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22. 11. 25. 17:04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이사야서 2:3)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2:1-5)

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2.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4.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

 

(시편 122)

1.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할 때에 나는 기뻤다.

2. 예루살렘아, 우리의 발이 네 성문 안에 들어서 있다.

3. 예루살렘아, 너는 모든 것이 치밀하게 갖추어진 성읍처럼, 잘도 세워졌구나.

4. 모든 지파들, 주님의 지파들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 그리로 올라가는구나.

5. 거기에 다스리는 보좌가 놓여 있으니, 다윗 가문의 보좌로구나.

6. 예루살렘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여라.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7. 네 성벽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네 궁궐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빈다하여라.

8. 내 친척과 이웃에게도 "평화가 너에게 깃들기를 빈다" 하고 축복하겠다.

9. 주 우리 하나님의 집에 복이 깃들기를 빈다.

 

(로마서 13:11-14)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24:36-44)

36.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집주인이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알고 있으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께서 우리 가까이 오셨으니입니다.

 

구약,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이사야서 2:3)

시편,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시편 122:1)

서신서,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로마서 13:11)

복음서,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누가복음 24:44)

 

오늘 요절은,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입니다. (이사야서 2:3)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2:1-5 / 시편 122)]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영원한 평화입니다.

하나님말씀에서 멀어져 정의가 사라지고, 헛된 제사와 우상숭배가 뒤섞여 잡탕이 된

<예루살렘>의 정화와 심판을 예고하던 예언자가(1)

갑자기 더 미래의 예루살렘을 내다봅니다.

 

그 새로운 시대에는 하나님말씀이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샘처럼 솟아 강처럼 흐를 것입니다.

 

그 말씀은 (큰 평화를 뜻하는 그 이름 예루살렘답게)

평화의 말씀(4), 즉 온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고

백성은 그 말씀의 길을 갈 것입니다.(3)

 

본문은 (특히 2-4절은) 이사야와 동시대 예언자인 미가의

미가서 4:1-3절에 고스란히 나올 만큼 중요한 알맹이,

즉 평화의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예루살렘을 위한 축복 기원입니다.

본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은(120-134) 노래로서

예루살렘 순례 길에 부른 노래로 보입니다.

시인은 순례 길을 떠나자마자(1) 목적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2)

잡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을 만큼 생각만 해도 기쁜 성전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1)

 

남북이 분단된 뒤에도 모든 지파의 몸과 마음이 예루살렘을 향했듯이(; 41:4-5)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 그대로 거기 생명의 바탕인 평화, 평화의 말씀이,

평화의 왕 그 이름이(4) 있기 때문이요, 이 염원이 모이고 쌓이고 이어져

성경 끝의 새 예루살렘”(계시록 21-22) 그 배경이 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13:11-14 / 마태복음 24:36-44)]

오늘 서신서본문 소제목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입니다.

본문은 주님 오실 날을 앞당겨 사는 우리 성도가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길을,

어둠과 빛, 즉 밤과 낮의 대비로 환하게 보여줍니다.

 

온갖 부끄러운 일을 하기 십상인 밤, 더러운 거짓을 묻어두고 진실을 외면한

잠든 상태 등을 상징하는 밤, (12) 깊을수록,

이 몹쓸 불의가 판치는 악한 현실이 점점 더 악해갈수록, ! 낮이 가깝다고,

참 빛이신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고, 그러니 어서 깨어나서(11)

빛의 갑옷(12),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오늘 사도바울이 외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깨어있으라는 권고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구절절 수미일관하게 <주님이(인자가) 다시 오실 때>를 이르십니다.

그날(36)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본문 직전에도 거듭해서 언급하셨고

본문 뒤에도 말씀하실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날은 오직 하늘 아버지만 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36)

 

노아의 때처럼, 그날이 닥치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의 일상은 평범하게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 섬뜩합니다.(38-39)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실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바라고 있는 성도라면, 자녀라면

마땅히 깨어(42)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44)

 

그 준비란 주님 만날 준비요,

이는 바로 평화의 왕이 오실 길을 닦는 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일 테지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5:9, 공동번역)

 

 

[정리]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대림절 첫 주일 성서일과 본문은

우리가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고(구약·시편)

주님이 우리에게로 내려오시는(서신서·복음서)

그런 구성입니다.

 

열쇠 말은

마지막 때”(2:2),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13:11), “인자가 올 때”(24:37,39),

예루살렘”(2:1,3, 122:2,3,6), 그리고

평화입니다.(122:6,7,8)

 

구약본문의 주님의 길”(3), “주님의 말씀”(3), “주님의 빛”(5)등이 짝을 이루고,

시편본문의 평화”(6,7,8)”(8,9)이 짝을 이룹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 첫 주일에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24:42),

 

종합하면,

시시때때 처처에 지진이 일어나고, 기상이변과 코로나 같은 괴질이 잇따라도,

곳곳에 전쟁소문 흉흉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참사가 속출해도

잠깐 눈감고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일상(日常)을 따라 흘러가는 인생에게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고(13:11),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24:44)고 촉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기는커녕(2:4)

지금도 icbm과 핵실험에 여념 없고, 또 한 편 방위산업 수출 운운하고 있는 한반도를 향하여

거긴 인류 궁극의 목표인 평화가 없다고, 생명이 없다고, 그러니 더 이상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말고(13:14)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이사야서 2:3)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예수님말씀과 짝을 이루는 요한계시록 21-22장의

새 예루살렘도 보여주시듯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우리의 참 평화, 참 생명을 위해서입니다.

바로 이 <주님의 일>을 기억하고 지금 준비를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머지]

* 절기 이야기

대림절의 원래 전통적인 주제는 재림예수 기원하며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절기 빛깔도 보라입니다. 보랏빛은 예배력 7절기 가운데, 사순절과 대림절, 두 절기의 색깔입니다. 보랏빛은 근신과 절제, 금욕을 뜻합니다. 예수님 재림 때 마지막 심판이 있기 때문에 대림절 절기색깔은 보랏빛인 것입니다.

 

** 대림절 이야기

대림절은 원래 예수님의 재림을 기원하며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재림은 곧 마지막 심판을 뜻합니다. 그래서 절기색깔도 근신과 절제, 금욕을 뜻하는 보랏빛입니다. 그런데 보랏빛은 하늘과 땅을 뜻하는 빨강과 파랑을 섞을 때 나오는 빛깔이라죠?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보라는 하늘과 땅이 충분히 통하고 공명할 때 우러나는 것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라의 계절, 대림절이면 천심(天心)을 살피는 마음으로 민심(民心)을 살피는 법입니다. 구름타고 다시 오실 그분을 바라는 그 마음으로 이 땅 가장 아래서 태산 같은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세월호처럼, 이태원처럼 큰 슬픔을 꾸역꾸역 견디며 사는 가장 밑바닥 민심을 살피는 법입니다. 처음 아기로 오실 때도 그런 곳 마구간으로 오셨던 분, 다시 오실 때도 그런 곳 찾으실 예수님, 평화의 임금으로 오고계시는 그분을 바라보는 대림절입니다. 평화의 임금! []을 입[]에 공평[]하게 넣어줄 때 화평(和平) 즉 평화가 온다는 옛사람들 생각처럼, 지금 오고계시는 평화, 평화의 임금! 그러고 보니 평화의 임금님 오실 길을 닦는 게 바로 소통, 소통의 근육을 키우고 소통의 기술을 익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말로만 하는 소통이 아니라, 서로 뜻이 흐르고 먹을거리도 서로 흐르는, 온 삶을 나누는 씽씽 평화의 길, 그런 소통일 것입니다. 때가 찼습니다. 그분이 지금 다시 오고 계십니다. 내 안에 숨겨둔 탐욕들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서 씻어내고 등불 기름을 준비할 대림절입니다.

 

*** 또 하나의 주제 (마지막 때에 교회는)

일상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이 영원히 변함없을 것처럼 느끼는 것은 타성(惰性)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 삶이 영보다는 육에 더 가깝고, ‘육신의 일투성이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 늘 깨어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은 그와 다릅니다...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의 주제는, 구약과 시편은 주님의 집(성전)’이고, 서신서와 복음서는 주님의 날입니다. 구약본문도 주님의 날, 마지막 때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림절 첫 주일 말씀의 또 하나의 주제는 <마지막 때에 교회는>으로 봅니다. 원래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절기였던 대림절답게, 심판의 때를 앞두고 <깨어있으라>는 것이 오늘 대림절 첫 주일, 예수님과 사도바울 말씀의 핵심입니다.(13:11, 24:42) 노아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잠든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깨어 그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제자답게, 세례 받은 새사람답게 빛의 갑옷을 입고 내 모든 결정권을 예수님께 맡길 만큼 철저히 교회에 몸담고 성경과 기도로 늘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들이 그러하듯이, 진정한 성전인 교회공동체를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기쁨이 번져 늘 교회의 평화를, 교회에 속한 이들의 평화를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을 모신 성전답게, 참다운 평화의 기운이 가득한지, 그리하여 둘로 나뉘어 끊임없이 다투는 한국사회에 진정한 평화의 기운을 끼칠 수 있는지 반성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2:4) 세상, 평화의 임금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그 길을 평탄하게 닦고 있습니까?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아이 돈 노(I don’t know) (김종진 지음. 몽골선교사. 성실문화113)

아이 돈 노 아버지만 아는 시간이 있어요

옛 시간이 닫히고 새 날이 열리는

인자의 때

 

아이 돈 노 도둑이 집 어느 담벼락을 뚫고

인자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밭이랑에서 집 마루에서

 

인자가 아이 돈 노 유 라고 하기 전에

누가 남고 누가 함께 갈까

깨어 인자(人子) 웨이팅(Wating)!

 

 

 

 

[말씀시조] 주 이름 찬양하려 (122)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3)

주 이름 찬양하려 주님의 집 올라갈 때

모든 지파 모든 마음 내 맘처럼 기쁘도다

평화의 복이 있으라 예루살렘 도성아

 

 

 

 

[시편노래] 시편 122, 주님의 집 올라가자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13)

[본문] (시편 122)

[노랫말]

1. 주님의 집 올라가자 성전으로 올라가자, 마주보고 주고받는 이 노래가 기쁘구나

예루살렘 예루살렘 아름다운 예루살렘, 아름다운 성문 안에 우리가 들어간다

2. 주님의 집 올라가자 성전으로 올라가자, 주님의 모든 지파 예루살렘 올라가자

예루살렘 예루살렘 평화의 성 예루살렘, 평화를 기도하라 주의 이름 찬양하라

3. 주님의 집 올라가자 성전으로 올라가자, 평화를 기도하러 예루살렘 올라가자

예루살렘 사랑할 때 평화가 깃들기를, 주님의 집 예루살렘 만복이 깃들기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22, 주님의 집 올라가자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20221127_시편가 122 주님의 집 올라가자.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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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송서(誦書)] 시편 12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3)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할 때---,

---- 기뻤---, (---- 기뻤---)

 

2. 예루살렘아, 우리의 발이 네 성문 안에 들어서 있다.

3. 예루살렘아, 너는 모든 것이 치밀하게 갖추어진 성읍처럼, 잘도 세워졌구나.

 

4. -든 지파들, 주님의 지파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 그리--- 올라가--구나-

 

5. 거기에 다스리는 보좌가 놓여 있으니, 다윗 가문의 보좌로구나.

6. 예루살렘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여라.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7. 네 성벽 안-에 평화---, (평화---) 깃들-기를-,

네 궁궐 안-에 평화---, (평화가) 깃들기를 빈다" 하여---

 

[다함께]

8. 내 친척과-- 이웃에게도-, "평화가 너에게 --기를 ((빈다" 하고)) 축복하겠다-,

9. 주 우리 하나님-- --, -깃들기-- (복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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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재활용 대림초의 아름다운 이야기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은하수를 바라보며 밤새 아름다운 춤을 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예배당 가장 어두운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쿨쿨 잠자던 초들이 기지개를 켭니다.

작고 큰, 홀쭉하고 뚱뚱한 여러 빛깔 대림절 초 가족이 깨어났어요.

푸른빛 감도는 남보라 초, 붉은 빛 감도는 진보라 초, 하늘빛 감도는 연보라 초,

하늘색보다 더 하늘거리는 하늘보라와, 눈보라보다 더 흰 하얀 초까지!

 

살렘, 설렘, 살림, 살람, 사람!

가장 작은 하얀 초의 이름은 사람이었죠.

가장 큰 남보랏빛 첫째 살렘이 씩씩하게 말했어요.

 

작년 대림절보다 좀 작아졌지만, 올해도 대림절을 밝히기에 우린 충분해.”

 

재활용 초여도 깨끗이 다듬어 산뜻해진 대림초 가족입니다.

둘째 설렘이 수줍은 듯 말했어요.

 

난 지난 한 해 동안 꿈속에서도 주님 기다리는 설렘으로 살았어.”

 

 

막내 사람이 물었어요.

 

큰 누나 살렘은 이름이 무슨 뜻이야?”

 

살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야. 구약성경의 살렘 왕 멜기세덱도 유명하고,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예루살렘이지!”

 

넷째 살람이 말을 이었어요.

 

내 이름 살람도 평화라는 뜻이고.”

 

셋째 살림이 이어서 말합니다.

 

센스쟁이 전도사님이 붙여준 이름들이야. 평화라는 뜻의 살렘살람을 중심으로 뜻이 통하고 발음도 비슷한 우리말 설렘’, ‘살림, 그리고 너, 가장 작은 하얀 초 사람은 아기예수님을 뜻한단다.”

 

 

내가 바로 아기예수님이라는 말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하얀 초가

우쭐우쭐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아기예수님은 마구간 말구유에 누워있었으니 내 받침은 거무튀튀한 구유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가장 작은 막내 초의 기발한 생각에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리며 박수를 칩니다.

 

둘째 누나 설렘이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런데 원래 대림절은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절기가 아니고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절기란다.”

 

그 말을 들은 막내 하얀 초의 표정이 잠깐 복잡해졌어요.

순식간에 생각을 마친 하얀 초 사람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받침은 구유보다는 구름이 낫겠는데?”

 

계속되는 막내의 슬기에 모두 다시 박수를 칩니다.

그리고 구유와 구름이 모두 담긴 받침을 그려봅니다.

 

 

아기예수와 재림예수를 모두 닮은 하얀 초가

으쓱으쓱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말했어요.

 

재림예수를 닮으려면 키가 더 커야 하지 않을까? 받침대를 높여서라도!”

 

둘째 누나 설렘이 발그레 웃으며 대답했어요.

 

아기예수 재림예수는 둘이 아니고 같은 분이야. 그리고 중요한 건 키가 아니고 평화란다.”

 

막내 사람은 누나들로부터 평화의 왕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셋째 누나 살림이 말했어요.

 

주님의 평화 샬롬·살렘·살람이 하는 일은 온 생명을 살리는 살림을 짓는 일이야.”

 

작고 작은 막내 하얀 초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을 닮았다는 얘기에

저도 모르게 몸무게가 묵직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다시 둘째 누나 설렘이 은하수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우리가 빛을 밝혀야 하듯이, 세상이 더럽고 악해질수록 우린 더 아름다워져야 해.”

 

 

아름다움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설렘

세상의 더럽고 추한 것들, 온갖 악한 것들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길을 얘기했어요.

그리고 참 아름다움은 참 빛이신 예수님의 평화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설렘의 아름다운 평화이야기를 들으며 살렘이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서2:4)

 

살렘의 노래에 이어 살람살림이 이중창을 합니다.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나님의 집에 복이 깃들기를 빈다”(시편122:6,9)

 

드디어 대림초 맏언니 살렘의 심지에 환한 불이 켜졌어요.

어둡던 온 교회의 마음속에 밝은 설렘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이정훈 지음. 20221126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