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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절 3주(왕국절 3주, 창조절 2주, 2022년 9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22. 9. 9. 15:03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디모데전서 1:16)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서 4:11-12, 22-28)

11. 그 때가 오면, 이 백성과 예루살렘이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사막에서 불어온다! 나의 딸 나의 백성이 사는 곳으로 불어온다. 이 바람은 곡식을 키질하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고, 알곡을 가려내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다.

12. 그것보다 훨씬 더 거센 바람이 나 주의 명을 따라 불어 닥칠 것이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22.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

23. 땅을 바라보니, 온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하늘에도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4. 산들을 바라보니, 모든 산이 진동하고, 모든 언덕이 요동한다.

25.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모두 날아가고 없다.

26. 둘러보니, 옥토마다 황무지가 되고, 이 땅의 모든 성읍이 주님 앞에서, 주님의 진노 앞에서, 허물어졌다.

27.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28. 이 일 때문에 온 땅이 애곡하고, 하늘이 어두워질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마음을 바꾸지 않고, 취소하지 않겠다.”

 

(시편 14)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6.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1:12-17)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누가복음 15:1-10)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9. 그래서 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할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신다입니다.

 

구약,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예레 4:22)

시편,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시편 14:1)

서신서,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딤전 1:15)

복음서,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누가 15:2)

 

오늘 요절은,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입니다.(딤전 1:15-1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서 4:11-12, 22-28 / 시편 14)]

오늘 구약본문소제목은 닥치는 멸망을 예레미야가 미리 내다보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키질하는 정도의 바람이 아니라

모조리 싹 쓸어버리는 태풍과 같다고 예레미야는 예고합니다.

 

그 모습을 환상처럼 보여주는 23-26절은

생명력 가득한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분위기와 정반대로

절망적인 죽음의 기운만 가득합니다.

 

이 모든 원인은 백성의 배신 때문입니다.

즉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서 악행만 저지르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22)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악인의 어리석음입니다.

시인은 인생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까닭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까닭은

영의 눈이 닫혀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고 동행하심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어놓기만 하고

멀리 떨어져 무관심하실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살피십니다.(2)

그리고 약자들을 돌보십니다.(6b)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디모데전서 1:12-17 / 누가복음 15:1-10)]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함입니다.

바울은 아들처럼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나 같은 죄인조차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끝까지 참으며 기다려 주시고

마침내 우리 모두를 구원해주실 주님의 자비하심을 노래합니다.(16)

특히 17절의 하나님 묘사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그리고 변함없이 신실하신지, 그 감사하는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소제목은 잃은 양의 비유,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도망친 양>이 아니고 <잃은 양>이라는 표현(6)에는 양의 어리석음과 타락보다는

그렇게 된 모든 상황에 대한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서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잃은 양을 찾는 주인의 간절한 마음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백성 모두 안에 깃든 인지성정입니다.(4)

즉 지금 투덜거리고 있는(2)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안에도

그 하나님의 자비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짚으시며

죄인의 회개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공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가 죄 때문에 그 나라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원하시는(마태18:14)

하나님의 자비심 가득한 나라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을 묵상하다가 문득 뒤집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좋은 일”, “바른 일”,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악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증거요,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증거입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악한 일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탐욕>으로 인한 온갖 욕정과 공포의 바탕이고 동시에 그 열매인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하는

악한 마귀의 정체요 본질인 것입니다.

 

마치 오늘 구약본문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소용돌이치는 열풍>(4:11)을 연상시키듯 벌인

30여 년 전 페르시아 만 전쟁(걸프전), 이른바 사막의 폭풍작전

오늘 21주기를 맞는 9.11테러로 이어지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계사적인 비극의 고리, 그 간단치 않은 여러 역학관계들을 차치하고도 두드러지는

그 깊고도 악한 뿌리가 바로 탐욕과 거짓말이요,

이는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님이 없다고 여긴 결과입니다.

겉으로는 아는 척, 믿는 척, 정의로운 척해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와 더 가까웠다는!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끊임없이 관계하시는 증거는 너무나 뚜렷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증거를 여러모로 보여주십니다.

행악자들의 벌이는 온갖 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의인을 편 드시고 가난한 약자들을 보호하십니다.(14:5-6)

 

그리고 죄인의 우두머리 바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딤전1:15-16)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를 끝까지 찾아내어 벗과 이웃들과 잔치를 벌이시듯(15:6,9)

악행을 일삼으며 악마와 놀아나던 죄인조차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악행을 일삼던 내 안에조차 하나님의 이 자비(慈悲)의 기운이 서려있음을 기억하면서

내 안의 그 자비심을 붙들어 일으키려 애쓸 때, 마치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듯이,

탐욕 가득한 내 마음에서조차 까맣게 잊었던 맑고 너그러운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변해가는 내 안에서 거기 이미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머지]

* 측량불가 주님의 자비

오늘 구약과 시편, 그리고 서신서와 복음서는 한 사람이라는 끈으로 통합니다. 구약과 시편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는 땅, 의인 한 사람도 없는 땅, 즉 두렵고 슬픈 의미의 한 사람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는, 큰 죄인 큰 구원의 본보기 한 사람,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낙오자 한 사람, 즉 감사와 감격이 가득 담긴 한 사람입니다. 오늘 4본문 모두 관통하는 이 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주님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맛봅니다. 그리고 그 희로애락의 근원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지극한 관심, 사랑, 긍휼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특히 주님의 관심은 못난 자식, 빗나간 자식에게 더 기울어지십니다. 내 죄가 제 아무리 클지라도,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을 만큼 내 죄가 크면 클수록 우리 주님의 사랑은 점점 더, 그보다 더 깊어진다는 역설! 이 계산이 안 되는 주님의 사랑, 측량 불가능한 주님의 은혜를 무슨 논리로 설명하고 무슨 염치로 판단하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그냥 그분께로 돌아서는 일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얼굴을 마주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주님 얼굴 뵙는 일 뿐입니다.

 

** 주님의 자비심 - 교회의 사명

오늘 구약과 시편에 드러나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은 한마디로 안하무인 고집불통 구제불능 인생입니다. 이 세상 어떤 만병통치약도 안 듣고 이 세상 어떤 무골호인이라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니 변합니다.(15:2) 가던 길 돌이켜 주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 경청하는 것입니다.(1)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라도 회개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회개하고야 맙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으시기 때문입니다.(15:4,8) 100마리에서 하나가 빠지고, 드라크마 10개에서 한 개가 빠진 것을 못 견디는 강박증일까요? “찾을 때까지”(4, 8) 찾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강박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교회의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한없는 자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끝내 기억해야 할 자비심 말입니다.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누가복음 15:4)

 

*** 어리석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

오늘 구약과 시편에 어리석은 사람이 등장합니다.(4:22, 14:1) 그런데 시편의 어리석은 자 바로 뒤에 지혜로운 사람”(2)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바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기준은 공부를 많이 하고 못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억력”, 말씀기억력이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머리로, 몸으로 기억하는 자를 가리켜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의 주인공 바울은 죄인의 우두머리로서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다가 지혜로운 자가 된 사람입니다. 말씀의 알맹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붙들고 악착같이 살아온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하나님 은혜로(딤전 1:14), 그분의 자비하심으로(딤전 1:13, 16)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면서 지혜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16) 오늘 복음서 본문은 그 유명한 잃은 양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말씀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들려주신 동기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투덜거리는 바리새, 율법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알맹이 역시, “죄인즉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만들려 애쓰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물론 이 어리석은 자 안에는 세리들과 죄인들”(1) 뿐 아니라, 옛 바울 즉 사울 같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2)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말씀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셔도 땅의 일에 대해 무관심한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4:22) 그러고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란,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고(14:1), 지혜로운 사람이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14:2)

 

**** 에너지와 시너지

독일어로 예배를 ‘Gottesdienst'라고 합니다. 이를 파자(破字)하여 영어로 번역하면, ’God's service and our service to God.(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봉사, 그리고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됩니다. 즉 예배란, 양방향의 섬김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시너지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우리 기독교에서 만든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 즉 성령께서 일하신다는 단어를 에네르기아(에너지)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의 이 에네르기아와 사람 쪽에서의 에네르기아가 합쳐질 때, 즉 이 두 에너지가 합쳐질 때 시너지가 된다는 뜻입니다. 시너지라는 단어를 만든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입니다. 클레멘트는 하나님 은혜와 인간 의지 이 두 가지 에너지의 작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협력작용" 신인협력’(synergy)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찾으시는 은혜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의지가 합하여질 때 시너지는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작고 작은 소자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지금 우는 자들 곁에 찾아가는 일입니다. 지금 굶는 자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가 나누고 섬기는 일입니다. 나누어줄 것이 없으면, 내 살이라도 떼어 먹이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시너지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입니까? 거기가 바로 진정한 예배자리입니다. 오늘 본문말씀들은 한 가지 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너지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의지! 구약말씀인 렘 4:22-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시편 14: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2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서신서 말씀 딤전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만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말씀인 눅 15장은 온통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것만 찾는, 큰 것에만 눈 팔리는 세상의 원리, 성공주의, 승리주의라는 세상원리와 정반대인 천국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원리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예배의 감격이 사라진 까닭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요,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에네르기, 즉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여러분을 찾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저 작고 작은 곳으로 달려가신 주님을 찾아 달려가십시오. 지금 굶는 이들, 지금 아파 누워있는 이들, 지금 옥에 갇혀 있는 이들, 지금 우는 이들에게 달려가십시오. 가서 함께 울고, 여러분의 살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렇게 거기서 시너지를 회복하십시오. 이것이 신인협력, 고테스딘스트, 진정한 기독교의 예배입니다. 거기 예배의 감격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목사를 찾아가서 이같이 물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적습니다. 또 주가 함께 계신다는 마음이 흐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잃어버리면서 있습니다. 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하고... 목사는 창문을 열고 거기서 멀리 바라보이는 빈민굴과 그리로 통하는 좁고 험한 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면서 그리스도는 저- 곳에 지금 계십니다. 가십시오. 어서 저리로 가십시오. 가자마자 저가 방금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일을 도와 드리시오. 그렇게 하면 주는 친히 형제와 함께 계신 것을 알리다. 그 때는 벌써 주를 만났을 때입니다.” 하였다...(현대문법에 가깝게 고침) [박재봉, 예수42(19378월호), 2526]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드라크마는 알까 주인님이 활짝 웃은 까닭을 (서무석 지음. 성실문화112)

옛날에 드라큐라가 열이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도망을 쳤더래

그 놈이 여기저기서 사람의 피를 빼앗아 먹고 오래오래 살아남았는데

그 드라큐라 놈이 바로 어제 내 피까지 빼앗아 먹으려고 날 찾아온 거야

 

그 드라큐라 놈이 누런 송곳니로 나를 콱 깨물더니만

얼씨구?

내 비명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자빠지네?

 

으으윽, 뭐지? 이 피는 소문으로만 듣던 바로 그

예수님 보혈?

 

드라큐라 녀석이 그제야 내가 지난주일 예배 성찬식 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걸 알아차리고서 하는 말이

 

나는 영생하려고 천년만년 쉬지 않고 남의 피를 빼앗아먹는데

도대체 왜 자기 피를 남에게 먹여서 영생하게 하십니까 당신은!

 

그리하여 눈물콧물 다 쏟으며 쓰러진 드라큐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이쿠! 뭐라고? 드라큐라가 아니라 드라크마라고?

도망간 드라크마 한 개를 찾은 주인이 그렇게 기뻤다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주인도 그렇게나 기뻤다고?

 

잃은 양 한 마리, 드라크마 한 개, 그게 다 회개한 죄인 한 사람,

그게 다 회개한 죄인 한 사람,

영생의 길로 들어선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그렇다면 어제 내 전 재산 빼앗아 달아난 흡혈귀 같은 사기꾼 녀석도

회개만 하면 용서는 물론 영생까지?

 

어이쿠! 당신 사랑의 끝은 어디입니까

도대체 당신 기쁨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주님!

 

 

 

 

[말씀시조] 죄인의 우두머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2)

죄인의 우두머리 바울을 구원하려

끝없이 참아주신 예수님 바라보라

믿는 자 영생을 얻을 본보기로 삼으신

 

 

 

 

[시편노래] 시편 14,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없다하고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112)

[본문] (시편 14)

[노랫말]

1.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없다하고, 한결같이 더러워서 바른 일 못하도다

주님은 하늘에서 사람들 굽어보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 어디 있나 살피신다

2. 너희 모두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도 안 보인다

무지한 행악자들 내 백성을 먹는구나, 밥 먹듯이 죄 지으며 나를 찾지 않는구나

3. 슬기로운 의인들은 하나님이 편드시니, 행악자들 크게 떨며 두려워 하는구나

행악자는 가난한 자 그 계획을 짓밟아도, 주님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편드신다

4. 하나님 이스라엘 구원해 주옵소서, 시온에서 나오시어 주의 백성 구하소서

주님께서 백성들을 고향으로 보내실 때,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 즐거워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단원인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없다하고)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20220911_시편가 14 어리석은 사람들은.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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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송서(誦書)] 시편 1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2)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 굽어살----,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나님이- 의인의 세대-,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다함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

야곱--- 즐거워하-, 이스라엘이- -(기뻐)--∼∥

 

20220911_시편송서 14.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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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하나님의 보물찾기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보물찾기 하려고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온산을 다 뒤지던 시절 이야기예요.

 

소구 엄마가 오늘도 낭랑한 목소리로 성경을 읊조리고 있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맑고 고운지

저 건너 꾀꼬리도 노래를 멈추고 귀 기울일 정도예요.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시편 14:7)

 

오늘도 시편을 열다섯 번 읊조린 뒤에

이어서 서신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열다섯 번 가까이 읽어갈 무렵 갑자기 엄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니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하네.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디모데전서 1:17)

 

엄마는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께...”

이 구절을 반복해서 읊조렸어요.

 

방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구가 귀를 쫑긋쫑긋 하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얼른 엄마에게 다가왔어요.

 

왜 그래 엄마? 또 뭐 발견했어요?”

 

 

소구는 이미 다 알아요.

엄마가 매일 성경말씀을 열다섯 번씩 반복해서 읽는 것은

한주 동안 다음 주일 성서일과 본문들을 100번씩 읽기 위해서고

그건 바로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 때문이라는 것을요.

 

부엌에서 설거지 하던 아빠도 달려옵니다.

<독서백편(讀書百遍)>, 즉 책을 백번 반복해서 읽으면

<의자현(義自見)>, 즉 책에 담긴 뜻이 저절로 느껴진다고 하니

엄마가 또 대단한 발견을 한 걸 아빠도 알아챈 거예요.

 

어제까지도 못 느꼈는데, 소리 내어 읽으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늘 여기 맨 끝 구절에서 바울 사도의 감동이 느껴지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아주아주 많이 느껴지네!”

 

엄마를 우러르는 소구와 아빠의 눈이 하트눈이 됩니다.

오늘도 성경책에서 보물을 발견한 엄마가 대단하고 멋져 보여 박수를 칩니다.

엄마의 성경읽기는 딱 보물찾기 같아요.

반복해서 읽다보면 안 보이던 구절이 막 보이고, 못 느끼던 감정이 확 느껴지거든요.

 

 

소구 아빠 별명은 다람쥐예요.

뭐든 감춰두면 금방 잊어버리거든요.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유통기한이 일 년이나 넘긴 초코파이가 나오질 않나

옷장을 정리하다가 역시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과자가 나와버렸죠.

 

가을 다람쥐는 도토리를 여기저기 숨겨두었다가 까맣게 잊어버리는 바람에

온산이 참나무 투성이가 된다는데

우리 집 다람쥐는 아무리 많이 숨겨도 불어나기는커녕 썩어서 버리기만 한다며

엄마도 소구도 까르르 까르르 웃음보가 터져버렸고요.

 

그런데 요새는 소구 아빠의 건망증 분야가 하나 더 늘어났어요.

애써 장만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곤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추가된 거죠.

책장과 옷장에 숨겨둔 초코파이나 과자는 냄새라도 안 나지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고 잊힌 음식에선 상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이제부턴 매일 냉장고 정리를 할게요.”

 

엄마와 소구의 다람쥐타령에도 불구하고

문득 아빠의 눈이 별처럼 빛나는 것은

아마 아빠도 냉장고를 반복해서 정리하다보면

엄마처럼 보물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솟아난 게 틀림없어요.

 

 

하나님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실 거예요.”

 

느닷없는 아빠의 사랑타령은

가족들이 놀려대는 다람쥐타령을 무마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아빠의 눈이 진심의 빛으로 반짝였거든요.

엄마는 무안한 듯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어요.

 

아니 아니. 하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사랑하세요.”

 

세상엔 주님을 잊어버린 양들이,

다람쥐 뺨칠 만큼 까맣게 잊고 사는 어리석은 양들이 너무너무 많다고

엄마는 말했어요.

 

도토리보다 귀한 하나님과의 반짝반짝 사랑의 추억들을

여기저기 숨겨두었다가 까맣게 잊질 않나

아예 하나님마저 어딘가 깊숙이 숨겨두고선 새까맣게 잊어버린

슈퍼울트라바보다람쥐 바보 양들이!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어리석은 양들을 보물처럼 사랑하세요.”

 

정작 양들은 목자이신 주님을 찾지 않는데도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잃은 양을, 하나님 당신을 까맣게 잊은 양들을

찾고 또 찾으시죠. 마치 보물찾기하듯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누가복음 15:7)

 

소구엄마는 마지막으로 복음서본문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 구절을 읽는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어요.

 

엄마의 마음속으로 주님의 마음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 느껴집니다.

엄마의 마음속에서 보물처럼 빛나는 말씀사랑을 발견하신 또 하나의 하늘기쁨이

소구와 아빠에게 환하게 느껴집니다.

[이정훈 지음. 202299일 금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