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9주(성령강림 후 8주, 2022년 7월 3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세아서 11:8)
[성서일과 4본문]
(호세아 11:1-11) 하나님이 반역한 백성을 사랑하시다
1.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5.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6. 전쟁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휩쓸고 지나갈 때에, 성문 빗장이 부서질 것이다. 그들이 헛된 계획을 세웠으니 칼이 그들을 모조리 삼킬 것이다.
7.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8.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9.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10. 주님께서 사자처럼 부르짖으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의 뒤를 따라 진군한다. 주님께서 친히 소리치실 때에, 그의 아들딸들이 서쪽에서 날개 치며 빨리 날아올 것이다.
11. 이집트 땅에서 참새 떼처럼 빨리 날아오고, 앗시리아 땅에서 비둘기처럼 날아올 것이다. “내가 끝내 그들을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시편 107:1-9, 43)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선대하신다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8.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9. 주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실컷 마시게 하시고,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주셨다.
43. 지혜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 일들을 명심하고, 주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아라.
(골로새서 3:1-11) ...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 생활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6. 이런 것들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그런 것에 빠져서 살 때에는,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누가복음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구약, “내가 끝내 그들을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호세아서 11:11)
시편, “주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실컷 마시게 하시고”(시편 107:9)
서신서,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골로 3:1)
복음서,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누가 12:15)
오늘 요절은,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입니다.(호세아서 11: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호세아서 11:1-11 / 시편 107:1-9, 4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이 반역한 백성을 사랑하시다’입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어린자식을 대하는 어버이처럼, 또 소를 대하는 농부처럼 묘사합니다.
“어린아이일 때”(1)라는 묘사는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에 해당하는 출애굽 시기와 어울리며,
걸음마를 가르쳐주고 품에 안아 기르며(3), 업고 다니며 젖을 물리는 등의 묘사는(4)
사랑스럽다 못해 애절하기까지 합니다.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4)는 10:11절과 짝을 이룹니다)
이렇게 키운 자식이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심판을 하더라도 끝내 멸하시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8-11)
(아드마와 스보임(8)은 신명기29:23절에 소돔·고모라와 짝을 이루며 나옵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구속받은 자들의 감사시’입니다.
이 시는 큰 감사축제 예배의식문의 서문으로 보이는데
여러 종류의 무리들이 각각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각각 찬양합니다.
그 가운데 첫째 무리의 찬양인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마도 대상(隊商)들인 듯한데,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을을 발견하여 목숨을 건진 경험을 노래합니다.
“바른길로 들어서”(7) 성읍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모습이
오늘 구약본문 11절의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통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극한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기 마련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고 살아남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인자하심과(43),
그분이 바로 내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골로새서 3:1-11 / 누가복음 12:13-21)]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옛사람과 새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리스도와 근본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더러운 탐욕 가득한 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신 “위에 있는 것들”을 늘 생각하고 추구함이 마땅합니다.(1-2)
5절과 8-9절에 열거한 악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갈아입는 변화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지경이 아니라(6)
하나님을 닮아가는 참 사랑과 생명의 경지를 이릅니다.(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본분이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유산분쟁 해결 등의 법적 문제를 풀어주는 랍비의 의무 정도가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님의 본분은, <하나님나라의 시작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13)의 유산분쟁 조정 의뢰를 기회로,
부(富)와 생명을 각각 직시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부를 탐하는 것은 생명을 볼 수 없게 할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비유로 드신 “어떤 부자”가(16) 어리석은 까닭은(20)
말씀을 잊고 살기 때문이요(시14:5-7, 시39:5-7, 시49 등)
참된 부유(富裕), 즉 <하나님께 부요함>이란 곧 내 소유를 이웃과 나눌 때 찾아온다는 사실,
거기 생명이, 하나님나라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누가12:33-34, 16:9)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땅에 있는 것들만 탐하느라 하나님을, 하나님나라를, 하나님말씀을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지금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님을,
밥 먹고 물마시고 숨 쉰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사람은 복스럽습니다.
하나님나라가, 하나님말씀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고, 살림이 망하고, 관계가 다 깨지고, 인생위기를 만나고서야
그렇게 뒤늦게야 그리 깨닫는 사람은 복스럽습니다.
오후 다섯 시에 포도원에 와서 단 한 시간 일하였음에도
온전한 일당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격이기 때문입니다.(마태20:9)
문제는 예언자가 아무리 일러주어도 소귀에 경 읽기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날이 가까움을 느낄수록 예언자는 애가 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대하는 것뿐입니다.(호11:11, 시107:43)
“이제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운 채로 있어라. 의로운 사람은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사람은 그대로 거룩한 채로 있어라.”(계시록22:11)
그렇게 소귀에 경 읽기로 낙심한 마음 추스려
부지런히 여기저기 들을 귀들을 찾아
생명의 샘이 있는 곳을 알리는 일이 급합니다.(시편36:9)
내 부모가 나를 버릴지라도(시편27:10)
내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리시며(호세아서11:4)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세아서 11:8)하며 안아주시는 그분 이름을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전할 때입니다.
[나머지]
* 인생 태클
생명의 주님을 잊을 때마다 우리 인생에 이런저런 태클이 걸립니다. 생명의 주님을 기억나게 하시려는 주님의 사랑 태클입니다. 생명의 주님을 잊게 만드는 것은 땅의 것에 대한 집착, 육욕, 탐욕, 즉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의 결과인 바벨론 포로생활과 같은 고난의 시기가 오히려 정화(淨化)의 기회입니다. 육욕, 탐욕을 점점 씻어내면서 참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 복스러운 기회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만 바라는 새사람이 될 기회 말입니다.
**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골로새서 3:2)
매일성서일과의 오늘 시편 병행(선택)본문인 49:10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시편 49편의 소제목은 ‘부유함을 의지하지 말아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라>일 것입니다. 시 49:10절은 오늘 복음서본문인 누가복음 12:20절 말씀과 통합니다. 오늘 또 하나의 요절은,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골로새서 3:2)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거기 내 참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땅에 있는 것들 즉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골 3:5) 오늘 예수님은 “온갖 탐욕”을 버려야 “생명”과 가까워진다고 하셨습니다.(눅 12:15) 내 참 생명의 집, 하나님나라 말입니다. 탐욕이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 오직 주님만 의지>를 가로막으므로,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라고 바울이 선언한 것입니다.(골 3:5) 오늘 예수님 비유에 등장하는 ‘어떤 부자’는 육적으로는 지극히 상식적이었으나 영적으로는 어리석었습니다. 생명은 물질의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우리 경험으로 다시 말하자면, 머리로는 알았으나, 몸이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내 영을 깨워 몸의 기억력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는 최대한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밤하늘 별들조차 못 보며 사는 형편에 어떻게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겠느냐고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낭만도 아니고 감상도 아니고, 생명이 걸린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 “호세아” 그 이름처럼
호세아의 이름 뜻 <주께서 도우신다! 주께서 구하신다!> 오늘 구약본문 호세아는, 그 이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저런 배은망덕하고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백성들을, 그럼에도 끝내 사랑하시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2절) ‘그렇다면 안 부르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다가 금세 후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독한 어버이가 못 되신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빗나가고 배은망덕한 짓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품에 안아서 기르고, 포대기로 싸서 업고 다니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3-4절) 그래서 ‘백성’이 아니라 ‘자녀’인 것입니다.(지난 주 본문인 호 1:10c) 아무리 해도 ‘끝끝내 배반하고 마는’(7절) 저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분노’가 아니라 ‘애타는 어버이 마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그 마음’을, 호세아는 8-9절에서 절절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저는 이 호세아 11:8-9절이야말로 주님 마음의 알맹이라고 봅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호세아를 (그 이름을) 통해 기어이 전하시는 주님의 마음 말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우선순위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1호)
오랜만에 친구와 잡은 약속
옷도 사고 화장품도 샀다
어디 갈지 계획도 열심히 세우고 용돈도 모았다
약속 전날, 친구가 코로나에 걸렸다
그날 입으려고 산 옷은 다시 옷장에 들어갔고, 화장도 필요 없어졌다
계획도 필요 없어졌고, 돈도 쓸 곳이 없어졌다
예배드리러 갈 때보다 준비에 열심이었던 나
하나님께로 갈 때보다 열심이었던 나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놓으시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들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이 아니면 다 소용이 없음을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자
[말씀시조] 땅의 것 생각 말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1호)
땅의 것 생각 말고 위의 것들 생각하라
땅의 것 온갖 탐욕 우상숭배 내버리라
새 창조 새 사람 되어 참 지식에 이르길
[시편노래] 시편 107, 영원하고 선하신 주 (이정훈 편사, 이방실 작곡. 「성실문화」 111호)
[본문] (시편 107:1-9, 43)
[노랫말]
1. 영원하고 선하신 주 그 사랑을 감사하라,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께 감사하라
대적의 손아귀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으신 주께 감사하라
2. 광야에서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성읍을 찾지 못해 목이 말라 기진할 때
주님께 부르짖어 주님께서 들으시니, 바른 길로 인도하여 성읍으로 들이셨네
3. 목마른 사람들은 마음껏 물을 먹고, 배고픈 사람들은 좋은 음식 먹이신 분
인자하신 우리 주님 놀라우신 주의 구원, 이 모든 일 명심하고 그 사랑을 감사하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거문고 연주자인 국립국악원 정악단 이방실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07 (영원하고 선하신 주 그 사랑을 감사하라) (이정훈 편사, 이방실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07:1-9, 4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다함께]
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자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말씀동화] 어린이와 하나님을 사랑한 동요작가, 박재훈 목사님 이야기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캐스터네츠랑 트라이앵글로 동요 반주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무슨 일인지 엄마아빠가 난데없이 이중창을 부르는 낯선 광경에
소구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해마다 이맘때 쯤 하기학교 때마다 부르던 게 생각나서!”
요새 교회마다 여름성경학교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참 아쉽고 안타까워하면서
엄마아빠는 더 힘차게 여름성경학교 교가를 부르십니다.
“손에 손을 마주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볍게 찾아가는 길∼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 진리의 성경말씀 배우러 가자∼”
[여름성경학교 교가 1절 부분. 유영희 작사, 박재훈 작곡]
노래를 부르던 엄마가 문득 소구를 바라보며 물으셨어요.
“너 이 노래 작곡하신 분 누군지 알아?”
소구는 송아지처럼 커다란 눈만 끔벅끔벅,
전혀 모른다는 표정입니다.
“박재훈 목사님을 모르는구나. 박 목사님은 이 땅에 내려와서 100년을 사시는 동안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를 참 많이 지은 선녀 같고 천사 같은 어른이시란다.”
시냇물처럼 졸졸졸 한없이 흐르는 엄마의 이야기에
소구는 어느새 하늘나라 선녀님도 되었다가 산골짝의 다람쥐도 되고
또 파란 하늘 둥실 떠오른 흰 구름도 되어갑니다.
“박재훈 목사님은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시절 194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찬송가를 지으시고 거의 최초라 할 어른 찬송가도 지으셨어. ‘(거룩한)아기예수’랑, ‘어서 돌아오오’ 너도 알지?”
“‘어서 돌아오오’는 아는데 ‘아기예수’는 모르는데요?”
교회에서 자주 불러서 ‘어서 돌아오오’는 이미 알지만
‘아기 예수’는 잘 모른다는 소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마치 베들레헴의 큰 별처럼 반짝입니다.
“반짝 반짝 별 비치는 그 어느 적막한날 밤에, 귀여이 귀여이 들리는 저 어린아기 울음소리,
이 세상의 모든 죄 짐을 그 등에다 홀로 지실, 오 만민의 메시아이시니 그 아기 이름 예수시라∼“
[‘거룩한 아기예수’ 1절, 구두회 작사, 박재훈 작곡]
엄마의 목소리가 예쁜 줄은 어느 정도 알았지만,
이 정도이실 줄이야, 하는 표정으로 소구는 노래하는 엄마를 올려다봅니다.
베들레헴 별빛보다 더 빛나는 소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엄마가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노래가 워낙 아름답기 때문이야.”
엄마는 박재훈 목사님이 이 노래뿐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동요가 없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위해서
셀 수없이 많은 동요를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렇게 동요를 많이 지으신 것이 바로
박재훈 목사님 노래들이 유난히 멜로디가 아름다운 비결이라는 시실도요.
“엄마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봄>, 산골짝에 다람쥐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여름 냇가>,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매미>, 산산산 산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모두모두 자란다>, 산에는 산에는 꽃들이 피고 <산이 좋아서>, 펄펄 눈이 옵니다 <눈>,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눈꽃송이>...”
“어, 이 노래들 중에 내가 아는 노래도 많은데?”
소구가 엄마 말을 끊지 않았으면 또 얼마나 많은 노래제목들이 흘러나왔을까?
정말이지 박재훈 목사님의 동요는 맑은 시냇물처럼 한없이 흘러나옵니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정말 많지? 해방직후에 가장 많은 동요를 지으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 멜로디가 하도 좋아서 박목사님의 동요들은 대부분 해방과 동시에 교과서에 실렸고, 지금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이란다.”
엄마의 눈빛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더니
은하수보다 더 맑고도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 태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재훈 목사님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오페라인 「에스더」를 지으시고
에스더 뺨치는 애국자요 신앙인인 유관순을 기리는 오페라 「류관순」도 지으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90세가 넘어서 지은 오페라「손양원」과 100세가 다 되어서 지은
삼일운동 오페라 「함성 1919」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박재훈 목사님은 동요부터 오페라까지 한없는 작품을 지은 대단한 음악가셨어요.
“아마 천개도 넘을 거야!”
그야말로 은하수처럼 펼쳐지는 수많은 박재훈 목사님의 악보들을 바라보는 듯
하늘을 향한 엄마의 눈빛이 아련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노래들이 동요를 제외하고는 모두 찬송가였다는 엄마 말씀에
소구의 눈은 또 한 번 휘둥그레집니다.
“박재훈 목사님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음악가의 길을 접고 오직 하나님 찬양에만 몰두하셨단다.”
소구는 그 순간 박재훈 목사님의 동요들이 딱 찬송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구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며 동요에 대한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하나님찬양 노래를 지을 최선의 준비운동과 같은 동요,
아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노래, 그래서 찬양과 가장 가까운 노래인 동요!
“세상에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서도 박재훈 목사님의 동요와 찬송가들은 정말 별처럼 빛나지 않으냐?”
엄마의 한없는 박재훈 목사님 노래 사랑에 어느새
소구도 아빠도 동화되고 공명하는 듯
박재훈 목사님의 노래들 하나하나에 담긴 생생한 생명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엄마말씀대로, 예수님말씀대로, 참으로 박재훈 목사님은
일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지 않으면서
하나님찬양에 대하여는 누구보다 부요한 사람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누가복음12:21절 참조)
[이정훈 지음. 2022년 7월 30일 토요일 아침]
(문성모. 「작곡가 박재훈 목사 이야기」 홍성사. 2013을 읽고, 박재훈 목사님 1주기를 기념하며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