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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5주(성령강림 후 4주, 2021년 6월 2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21. 6. 18. 13:57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마가복음 4:39)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17:(1a, 4-11, 19-23) 32-49) 사울의 진에 나타난 다윗

19 그 무렵 사울은, 다윗의 형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군인을 모두 거느리고, 엘라 평지에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20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일찍 일어나서, 양 떼를 다른 양치기에게 맡기고, 아버지 이새가 시킨 대로 짐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가 진영에 이르렀을 때에, 군인들은 마침 전선으로 나아가면서, 전투 개시의 함성을 올리고,

21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인이 전열을 지어 서로 맞서 있었다.

22 다윗은, 가지고 온 짐을 군수품 담당자에게 맡기고, 전선으로 달려가, 자기의 형들에게 이르러 안부를 물었다.

23 다윗이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마침 블레셋 사람 쪽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그 대열에서 나와서, 전과 똑같은 말로 싸움을 걸어왔다. 다윗도 그 소리를 들었다.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43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시편 9:9-20) 주님 찬양 (지휘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9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10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 너희는 시온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3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이끌어 내신 주님,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4 그렇게 하시면 주님께서 찬양 받으실 모든 일을 내가 전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을, 아름다운 시온의 성문에서 기뻐하며 외치겠습니다.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16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드는구나.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갈 곳은 스올, 하나님을 거역한 뭇 나라들이 갈 곳도 그 곳뿐이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셀라)

 

(고린도후서 6:1-13)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6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마가복음 4:35-41)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

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36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 앞에서입니다.

 

구약,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사무엘기상 17:49)

시편,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시편 9:16)

서신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고린도후서 6:13)

복음서,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마가복음 4:41)

 

오늘 요절은, “고요하고, 잠잠하여라입니다.(마가복음 4:3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17:(1a,4-11,19-23)32-49, 시편 9:9-20)]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다윗과 골리앗입니다.

어마어마 무시무시한 골리앗 앞인데도 다윗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우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을 보호하듯(34) 하나님은 당신의 양 다윗을 보호하신다는!(37)

 

조그마한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신하는 골리앗이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한 것과 달리(43)

다윗은 자신의 힘과 무기가 아니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강하심을 믿은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곤경에서 구원받은 자의 감사찬송입니다.

이 시는 각 연의 시작 첫 음절을 알파벳 순서로 지은 시편입니다.

(9-10장이 2절씩, 또는 드물게 1절씩이나 여러 절씩 한 연으로)

억울하게 권리를 빼앗기고 압제를 당하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멸망한 꼴인 죽음의 문”(13)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니

나는 시온의 문에서 기뻐 찬양합니다.(14, 개역개정)

 

악인들은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질 것입니다.(15-17, 7:15, 26:27)

하나님께서 이런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면(16)

사람(19,20) 비로소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을 것입니다.(20)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6:1-13, 마가복음 4:35-41)]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화해의 직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좁은 눈 좁은 마음을 지적합니다.(12)

그 옹졸한 마음을 넓힌다면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동역자임을(1,4, 고전3:9)

즉 하나님과 고린도교회 사이를 화해하게 하는 귀한 화해의 일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그토록 치열하고도 당당하게 살아온 것입니다.(3-10)

교회는 바울의 교훈을 따라

옹졸한 마음을 넓혀(13) 당당하게 살아갈 이 은혜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1-2)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광풍을 잔잔하게 하심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먼저 광풍을 만난 침몰의 공포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만난 두려움(경외심)입니다.

 

우리 신앙여정의 끊임없는 질문인 <하나님의 침묵> 그리고 우리의 절규(38)

이어지는 주님의 역사와 동시에 드러나는 내 불신앙의 모습!

그럼에도 주님과 한배를 탄 덕분에 제자들은 주님과 끝까지 동행합니다.

주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귀신(3:11)이나, 율법학자들(3:22)과 달리!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성령강림절 5주의 성서일과본문들은 매우 뜨겁고 분주합니다.

구약본문은 온통 전운(戰雲)이 가득합니다.

골리앗이 쿵쿵거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유대병사들의 심장소리가 쿵쾅거립니다.

조그마한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골리앗이 쓰러지자 유대진영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합니다.

 

시편본문은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12-14),

저 억누르는 자들을 치러 주님께서 일어나시길 간구하는 소리가 드높습니다.(19-20)

이는 마치 오늘 구약본문의 전장에서 외치는 유대병사들의 간구처럼 들립니다.

 

서신서본문 처음과 끝의 사도바울의 권면이 매우 강력합니다.(1-2, 11-13)

그리고 그 중간은 바울이 지금껏 살아온 치열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꽉차있습니다.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그 내용이 점점 강력하게 펼쳐집니다.

 

복음서본문은 풍랑을 만나 침몰직전인 제자들의 배 이야기입니다.

느닷없는 광풍으로 배가 난파직전입니다.

제자들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신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 뒤편에서 쿨쿨 잘도 주무십니다.

 

한잠 잘 주무시고 일어난 주님께서 말씀으로 광풍을 잠재우십니다.

그런데 광풍과 미친 파도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는 예수님 말씀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광풍과 파도를 잠재우실 뿐 아니라, 제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도 쉼을 주시려는.

 

믿음 없어 골리앗 앞에서 덜덜 떨고만 있는 유대병사들

믿음 없어 바울을 모욕하던 고린도교회 사람들

믿음 없어 광풍 앞에 정신없는 예수님 제자들

그리고 오늘 이런저런 광풍 앞에 선 한국교회 우리들.

 

6.25 한국전쟁! 광풍처럼 우리 가슴을 다시 할퀴고 지나갈 그 날을 앞두고

한 교회 한 가족조차 갈라지게 만드는 마귀의 이간질 그 칼날을 직시합니다.

제아무리 분단마귀 광풍이 몰아쳐서 잠시 흔들리고 혼돈하여도

주님을 모신 배는 파선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믿습니다.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마가4:39)

 

지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향하신 복스럽고 사랑스런 예수님의 자장가를

귀 열고 마음 열고 경청함으로

참된 안식, 쉼을 얻을 때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나머지]

*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삼상 17:36)

오늘 구약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다윗의 주장이 믿기 어려울정도로 허황합니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의 사이버상의 전투, 게임장면 같습니다. 무시당한 소년의 흥분하여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지난주일 마지막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삼상 16:13)

 

** ‘예수이름에서 샘솟는 용기! 성령님께서 주시는 용기!

군대 안에 만연한 골리앗 공포와 싸우는 다윗의 용기, 교회 안에 만연한 옹졸한 마음들과 싸우는 바울의 용기, 풍랑, 불신앙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그 용기! 용기란 두려움이라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습니다. 나의 두려움, 지금 우리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전쟁입니까? 역병(疫病)입니까? 이상기후입니까? 가난입니까? 두려움은 지금 닥친 위기상황의 사태와 원리를 몰라서 생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일수록 더 두렵습니다. 마치 경험 많은 뱃사람이었던 제자들이 거센 풍랑 앞에서 떨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용기란 그 두려움을 일으킨 세상 원리를 파악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알맹이는 바로 이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요? 그 어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가장 먼저 내 안에 새겨진 주님 이름이 희미해지지 않았나 살펴야 합니다. 마치 배 안에 저 뒷방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듯이 내 안에 희미해진 주님 이름을 다시 곡진(曲盡)하게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주님의 이름, 주님의 사랑이 다시 생생하게 차오른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고후 6:10) 그러면 그 두려움은 자연스레 희미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윗의 용기가 솟구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삼상 16:13) 성령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다윗과 골리앗, 그리고 풍랑 속 제자들과 고린도교회

지난주일 구약본문에서, 엘리압을 보고 기름 부을 자로 착각하는 사무엘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그리고 다윗이 등장하자마자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잔뜩 기다리시던 차에 다윗이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 자그마한 소년 다윗 안에 어마어마한 하나님 당신 생각 가득한 그 중심을! 이런 다윗이기에, 더구나, 기름부음 받은 뒤로 계속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다윗이기에, 다윗은 천하의 골리앗을 보고도 전혀 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군대와 사울왕은 골리앗의 겉모습만 보고 덜덜 떨고 있지만, 다윗은 저 골리앗의 겉모습이 아니라 허황된 신앙, 수수깡처럼 텅 빈 속을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겉멋에 든 골리앗은 다윗의 중심을 못 봅니다. 하나님 생각, 하나님 사랑으로 꽉 찬 다윗의 중심은 보지 못하고,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겉모습만 보고 그를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삼상 17:42) 그건 오늘 복음서본문의 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자신들이 탄 배의 중심(예수님께서 동행하고 계시는 사실)은 못보고 겉모습, 즉 거센 풍랑과 주님의 주무심만 본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의 졸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옹졸해진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눈에 안 보이니까, 교회가 자기들 것 인줄 착각한 것입니다. 교회의 중심에 누가 계시는지도 모르고, 사도바울의 중심에 누가 계시는지도 못 보고 바울의 겉모습만 본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을 모욕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고후 2:5-11)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교인들이 옹졸해진 것입니다.(12) 옹졸함은 두려움의 다른 말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예수님을 믿는 믿음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07)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 보다

더 큰 믿음은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는 것

 

그리고 더 큰 사실은

목마른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을 뱉었을 때

예수님 우리를 만나 주신 것.

 

연약한 믿음 흔들릴 때에도

왜들 무서워하느냐?

말을 건네 주신 것.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란.

 

 

 

 

[말씀시조] 은혜의 때 구원의 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7)

은혜의 때 구원의 날 하나님이 도우시니

굳세게 살아남아 언제나 기뻐하네

모든 것 가진 자 되어 넓디 넓은 내 마음

 

 

 

 

[말씀서예] 고린도후서 6:10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7)

 

 

 

 

[시편노래] 시편 9,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성실문화107)

[본문] (시편 9:9-20)

[노랫말]

1.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주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시온에서 다스리는 나의 하나님, 그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후렴)주님은 언제나 기억하시네, 억울하게 고난 받는 약한 사람을

내가 피할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든든하고 견고한 성 나의 하나님

2. 주님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주소서

시온에서 찬양받을 나의 하나님, 그 은혜를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후렴)

3. 주님의 공의를 보여주소서, 불의한 나라들을 심판하소서

자기 덫 자기 함정 스올에 빠질, 저 악인들 두려움에 떨게 하소서

(후렴)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새명성교회 김영준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9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20210620_시편가 9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m4a
2.55MB

 

 

 

[시편송서(誦書)] 시편 9:9-2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7)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의 행사를 백성-중에-,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가 주의- 찬송-, (찬송)을 다-- -할 것이요,

-- 시온의 문에---, -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 (스올로) -아감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다함께]

20. 여호와여-- 그들---, 두렵--- 하시---,

-방 나-(나라-)들이- ,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셀라

 

20210620_시편송서 9;9-20.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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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예수님의 자장가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뱃놀이하다가 쿨쿨 낮잠 자던 시절 이야기예요.

 

예수님이 오랜만에 단잠을 주무십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열일하신 우리 예수님.

귀신들린 사람과 병자를 고치시고

쉴 새 없이 말씀을 가르치시느라 고단하셨거든요.

 

흔들흔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베개를 베고 눕자마자

이내 쿨쿨 잠드신 거죠.

흔들흔들 흔들리는 배가 마치 요람처럼 포근합니다.

노 젓는 제자들의 뱃노래가 자장가처럼 편안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심술궂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욕심쟁이 개구리 볼따구니처럼 불룩한 심술쟁이 바람인가 봐요.

거센 바람에 바다가 정신없이 출렁입니다.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바닷물이 어느새 배 안에 가득 찼어요.

 

넋이 나간 제자들은 마침내 바닷물 퍼내는 걸 포기하고

예수님께 다가가 부르짖습니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우리 다 죽게 생겼어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신 예수님이

눈을 비비며 물끄러미 제자들을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은 세찬 바람에 자동으로 바닷물 세수를 하시면서

바람을 꾸짖으셨어요.

 

이제 그만, 멈춰!”

 

그리고 심술쟁이 바람 때문에 쉴 새 없이 춤추던 바다를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래주셨어요.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심술궂은 바람에 한없이 시달리던 바다는 그제야 편히 쉬게 되었죠.

자장가소리 같은 예수님 목소리에 바다가 잠잠해집니다.

바다를 잠재우신 예수님이 그제야 제자들을 돌아보십니다.

부들부들 더 넋이 나간 제자들이 예수님을 올려다봅니다.

 

여태 벌벌 떨고 있느냐? 이래서야 내가 너희를 믿고 잠이나 잘 수 있겠느냐?”

 

 

넋 나간 제자들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립니다.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물끄러미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제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신 예수님이 이윽고

조용하게 애창곡을 읊조리십니다.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시편 9:10)

 

제자들의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겁에 질린 눈도 풀리면서

하나하나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파도와 싸우느라 애썼다. 이제 좀 쉬렴.”

 

예수님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편가를 부르십니다.

어느새 제자들은 하나둘 쿨쿨 잠들고

콜콜 잠든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꿈을 꿉니다.

 

마치 전쟁터처럼 쿵쾅쿵쾅 쉴 새 없이 바닷물에 두드려 맞으며

난파직전까지 갔던 제자들의 배도

다시 잔잔히 어루만져주는 바닷물과 예수님의 자장가 소리에

끄덕끄덕 단잠에 빠집니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흰둥개도 짖지 마라

자장자장 우리 아기, 쿨쿨 자면 쑥쑥 큰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전래 자장가 중에서)

 

[이정훈 지음. 2021619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