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2주(2021년 4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시편 133:2)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4:32-35)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시편 133)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요한일서 1:1-2:2)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31)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31.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평화의 길’입니다.
사도행전,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사도행전 4:32)
시편,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편 133:1)
서신서,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요한일서 1:7)
복음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요한 20:23)
오늘 요절은,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입니다.(시편 133:2)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4:32-35, 시편 133)]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재산공유 공동체’입니다.
처음교회의 나눔(재산공유)전통을, 2:42-47절에 이어 반복해서 소개합니다.
물질 소유욕의 뿌리가 죽음공포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소유욕을 넘어서는 처음교회의 이런 나눔전통은
부활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또 하나의 증거일 것입니다.(33)
죽음권세 무너뜨리신 예수님!
그 부활신앙으로 출발한 교회입니다.
부활신앙이 구현된 첫 모습이
물질을 온전히 나누는 평화(平和)공동체였다는 역사가 참 귀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함께 평화를 누림’입니다.
오래전 중동에서는 토지와 목초지가 분할되지 않고 자식들에게 공동으로 물려지므로
형제들은 억지로라도 함께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가 다툼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노래한 것입니다.(1)
향유를 머리에 부음은 환대의 상징입니다.(2)
특히 3절의 헐몬은 높이나(2814m) 위치가(북쪽 끝) 우리 백두산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은(3)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떠올려,
갈라진 형제의 평화통일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그 이슬, 그 향유가 더 향기롭고,
그래서 크게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까지 약속하십니다.(3)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일서 1:1-2:2, 요한복음 20:19-3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기독자의 친교의 기초, 빛 속에 사는 삶’입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세상에서 가장 친한 관계, 부자(父子)관계이신 성부와 성자 하나님!
빛이신 성부께서(5) 생명의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1)
우리 죄를 씻어주시어서(7)(용서하시어서,9)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2:1), 다시 친한 부자관계가 되게 하십니다.
형제자매간의 친교는 하나님과의 친교와 이어져있으며(3)
<그 친교>는 죄와 용서, 즉 생명과 직결되며
영생이신(2, 5:20) 그분, 성자와 직결되는
평화의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제자들의 권능, 도마에게도 나타나시다’입니다.
부활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실 때마다 반복해서 평화를 빕니다.(19,21,26)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입니다.(요14:27)
이 평화는 성부와의 깊은 친교에서 나오는, <죄용서∼구원∼생명>의 평화,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 자는
예수님의 죄용서, 즉 평화를 이룰 권능이 있으며(23, 세례권)
예수님께서 이 평화를 위해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성령을 주십니다.(21-22)
부활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도마의 고백은 차차 교회의 고백이 되며(28, 요일5:20)
이 고백은, 감동하신 예수님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29)
뒷날, 말씀만으로 부활예수 만나는 이 복이 바로 생명 얻음입니다.(31, 요일1:2, 5:20)
이 복, 영생이신 예수님과의 친교가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 반복해서 선포하신 평화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부활절 두 번째 주일 성서일과 본문들은 친교(親交)-평화(平和)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시편본문인 133편은 짧은 노래지만 느낌이 강합니다.
아론의 수염과 옷깃, 헐몬의 이슬과 시온산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 첫 걸음이 바로 향유(香油), “보배로운 기름”을 머리에 붓는 <환대(歡待)>입니다.
<“아론” 때문인지(2), 파송 때문인지(요20:21), 오늘 향유는 환대와 사명을 동시에 기억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福)”이 삼단뛰기 하듯 이어집니다.
먼저 환대의 향유가 진동하는 자리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복”(“영생”, 시133:3),
이어서 “영원한 생명”입니다.(요일1:2, 5:20)
그런데 여기서 환대의 열매인 영생은 곧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그렇게
말씀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믿는”) 친교의 “복”으로 이어집니다.(요20:29)
이렇게 오늘 본문에 복스러운 환대(친교)와 영생(예수님)이 가득가득 어우러지는데,
그 과정에 중요한 알맹이가 바로 “(죄와)용서”입니다.(요일1:9, 요20:23)
그 용서의 도(道)는 부활예수님을 만날 때 더 잘 닦이는 법이니
그렇게 처음교회는 모든 소유를 공유하는 지극한 친교, 평화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행4:32)
그러고 보니 용서(容恕)를 뜻하는 한자 서(恕)는 <같은[如) 마음[心]>에서 나오니
용서야말로 친교의 씨앗이요 열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여자가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부으며 환대하였던 그 마음이(막14:3),
그리고 이 마음과 통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막14:6-8)
다툼이 많은 시절에 맞이하는 이 부활의 계절에
주님께서 교회에 부어주시는 향유 같은 말씀들이 향기롭습니다.
부활예수께서 반복해서 외치시는 “평화”, “평화”, “평화” 그 향기로운 음성을 들으며
우리도 처음교회처럼 부활의 기쁨, 부활의 기운 가득하여지기를, 그래서
다툼의 뿌리인 죽음공포와 탐욕을 씻어내고 내 소유를 마음껏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나머지]
* 노아처럼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성경에 통달한 신학박사랑,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무학자지만 기도 열심히 하며 교회 봉사 잘하는 시골 교회 할머니 권사님, 이 둘 중에 누가 더 신앙이 좋을까? 정답은... 신학박사도 아니고, 권사님도 아닙니다. 정말 신앙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주님과 사귀는 사람)’입니다. 이게 성경의 답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주님께서는 탄식하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세기 6:5-9)
여기서 눈여겨 볼 구절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암만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애쓰면 뭐합니까? 끼리끼리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먹고, 입에 쓴 말씀은 뱉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행한다는 말이 좀 모호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는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걸 어떻게 알지?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다”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 상식대로 하지 않고, 제 경험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정말 어리숙하고 고지식하리만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설계도 도면대로 고대로... 하나님 뜻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22)
지극히 고지식한 노아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던 것입니다.
** 도마처럼
그런데 도마는 노아와 달랐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내 계산보다 늘 크시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하며 살았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도마는,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방주 설계도에 무조건 순종했던 노아와 달랐습니다. 완성된 방주가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일생을 방주 건축에 매진했던 노아와 한참 달랐습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내 짧은 머리로 계산합니다. 도마처럼 우리는 늘 이성과 상식에 충실합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 20:29)
부디 성경말씀 읽을 때마다 하늘계획 환히 보고 활연관통 깨달아서, 성찬말씀 먹을 때마다 주님 마음 고스란히 깨달아서, 도마처럼 철저히 따지다가도, 노아처럼 마침내 송두리째 순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경으로 성찬으로 부활예수님을 옹골지게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우리 가운데 오신 주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06호)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주시네
불신 가득한 마음에 손 내밀어
믿음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
보이지 않아도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영원한 생명 가시지 않네
[말씀시조] 영원생명 그리스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6호)
영원생명 그리스도 화목제물 예수님이
온 세상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시도다
모든 죄 자백하고서 우리 주와 사귀길
[말씀서예] 요한일서 1:2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6호)
[시편노래] 시편 133, 주님께서 내리신 복 (이정훈 편사, 이길승 작곡. 「성실문화」 106호)
[본문] (시편 133)
[노랫말]
형제자매 어울리니 평화롭고 흥겨워라
부어주신 보배기름 향기롭고 고마워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헐몬에서 시온까지
굽이굽이 흘러내린 아름다운 영생이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가까운교회’ 이길승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3 (주님께서 내리신 복) (이정훈 편사, 이길승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3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6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후렴)
1. 보- -- 라-, 형- -제 가-, 연합 하- 여-, 동- -거 함이,
어찌 그- 리-, 선- 하- 고-, 아- -름 다운, 고- -- --,
2. 머- 리- 에-, 있- -- 는-, 보배 로- 운-, 기- -름 이-,
수- -- 염-, 곧- 아- 론의, 수- 염에 흘러, 서- -- --∼
(후렴)
그- -- 의-, 옷- -깃 까지, 내- 림- 같-, 고- -- --,
3. 헐몬 의이 슬이, 시온 의산 들에, 내- -림 같도, 다- -- --,
거- 기- 서-, 여호 와께 서-, 복을 명령 하셨, 나- -- 니-,
곧- -- --, 영- 생이 로다, (영- -생 이로,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위의 두 줄은 세마치로, 아래 두 줄은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동화] 개나리와 진달래가 함께 부른 4월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백두산에서 화전놀이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참꽃 피는 계절에 손님이 오셨어요.
여기저기 기지개켜며 일어나던 참꽃이
어느새 흐드러져 물결처럼 춤을 추던 날이었죠.
저 멀리 손님 오시는 소리 들릴 무렵
나팔꽃처럼 신나게 부르는 환대의 노래,
한줄기 봄바람에 열렬히 춤을 추는 참꽃 한 무더기.
꽁꽁 참고 기다리던 살구꽃이 꽃비처럼 떨어지고
만발한 참꽃이 무더기로 박수치니
아름답고 향기로워 너도나도 환호하고
손님들 눈도 입도 꽃처럼 피어납니다.
4월 중순 절정인 참꽃의 계절에 오시는 4월 손님은
달짝지근한 꽃지짐 화전(花煎)도 대접받으니
공주님 왕자님 부럽지 않은
복스러운 환대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차곡차곡 피어나려고
남녘에서 북녘까지 오래달리기를 시작할 무렵
앞서가던 개나리가 참꽃에게 묻습니다.
“왜 이름이 참꽃이야?”
발그레 달아오른 참꽃이 숨 가쁘게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진달래인데,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도 불러.”
“먹을 수 있다고? 대단 대단해! 그런데 넌 왜 늘 발그레해?”
“내가 낯을 좀 가려. 그런데도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만 보면 낯이 막 달아올라.”
언젠가 남녘 사람들이 북녘 손님을 맞이할 때
충청도 면천 참꽃으로 빚은 두견주를 대접하니
너도나도 낯빛이 참꽃처럼 발그레 달아오르고
손님을 환대하는 아름다운 참꽃이라며 박수쳤습니다.
백두산 두견주와 한라산 두견주를 한 그릇에 담고
남과 북의 참꽃들을 섞어 꽃지짐을 만들어 먹을 날을 기약하며
한 목소리로 '고향의 봄'을 노래했습니다.
참꽃을 바라보며 박수치던 개나리가 다시 말합니다.
“네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사람들도 너를 참 좋아하는구나. 부러워라.”
조금 더 발그레한 목소리로 참꽃이 대답합니다.
“아니아니 난 네 노란 빛깔이 더 좋은 걸.”
어느새 어깨동무가 된 참꽃과 개나리가 서로 마주보며 밝게 웃습니다.
개나리가 참꽃에게 말합니다.
“발그레한 네 낯빛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환대받는 기분이 들 거야. 우울하고 슬픈 마음도 너를 보면 다시 발그레한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갈 거야.”
더 발그레한 빛깔로 참꽃이 개나리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개나리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엽니다.
“어느새 7주기야. 세월 참 빠르지?”
해마다 4월이면 세월호 유족들 마음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던 개나리가
이윽고 참꽃 진달래의 손을 잡고 부탁합니다.
“너랑나랑 그날까지 꽁꽁 참고 견디다가, 그날 엄마들이 많이 우는 그날 한꺼번에 위로하며 환대하자.”
개나리와 진달래는 그날까지 꽃 떨어지지 않으려고,
또 눈물도 떨구지 않으려고 꽁꽁 참고 견딥니다.
자식 잃고 욕까지 먹는 그날 엄마들 부은 눈 어루만져드리고
작은 소리로나마 위로와 환대의 노래, 이 평화노래를 불러드릴 것입니다.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꽃잎이 눈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백두산의 이슬이 한라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편 133편 중간 개사)
[이정훈 지음. 2021년 4월 10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