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마지막 주일(주님의 산상변화주일, 2021년 2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가복음 9:7)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하 2:1-12)
1.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가 되니, 엘리야가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베델까지 내려갔다.
3. 베델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4.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여리고로 갔다.
5. 여리고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났다.
7.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쉰 명이 요단강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 가에 서니, 따르던 제자들도 멀찍이 멈추어 섰다.
8. 그 때에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을 벗어 말아서, 그것으로 강물을 치니,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물이 마른 강바닥을 밟으며, 요단강을 건너갔다.
9. 요단강 맞은쪽에 이르러,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
(시편 50:1-6)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3.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6.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셀라)
(고린도후서 4:3-6)
3.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9:2-9)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주고받았다.
5.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하늘문이 열리는 날’입니다.
구약,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열왕기하 2:11)
시편,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시편 50:2)
서신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고린도후서 4:6)
복음서, “새하얗게 빛났다”(마가복음 9:3)
오늘 요절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입니다.(마가복음 9: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하 2:1-12, 시편 50:1-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엘리야는 승천하고 엘리사가 그 뒤를 잇다’입니다.
아합 왕과 그 아들 아하시야 왕이 연이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던 불순종의 어둠시대에
불의 예언자 엘리야가 빛나게 승천합니다.
그를 태운 불병거(11), 그리고 제자 엘리사의 외침 가운데(12)
나라의 진정한 병력은 군사력이 아니라 예언자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살아서 승천한 엘리야는 다시 예수님의 변화산에 내려옴으로써
예언자의 역할, 즉 하늘과 땅을 잇는 예언자의 진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코 스승을 떠나지 않던 제자, 스승의 갑절 능력을 원했던 제자 엘리사는(9)
그렇게 스승을 닮아 변화해 갈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말씀)과 언약(5)을 중심으로
성전예언자가 절기예배에서 낭송한 것으로 보이는 오늘 본문에서,
백성을 심판하시러 불길과 돌풍으로 시온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3)
(구약)엘리야 승천장면과, (복음서)변화산에 임하시는 하나님 음성과 짝을 이룹니다.
언약에 있어 누구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심판자이심을 더욱 강하게 드러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4:3-6, 마가복음 9:2-9)]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사도의 직분에 담긴 복음의 광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고스란히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를(4,6) 주님으로 선포하는(5)
바울의 오늘 본문이,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이 밝은 빛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르는 세상 어두움과 완전히 대비됩니다.
이 밝은 빛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빛이요
지금 우리 마음속을 밝히 비추시는 빛이며(6)
“복음의 빛”(4), “지식의 빛”(6)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진리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의 변모’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십자가 수난 예고 직후에 혼란스러울 제자들 가운데서
최측근 제자들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우연찮게 그 최측근 제자들은 모두 성정이 불같은 사람들입니다. 막3:17, 눅9:54)
이때 엘리야와 모세의 등장은
마지막 날에 오실 참 예언자 그분이 바로 예수이심을 암시합니다.(신 18:15)
신비롭고 두려움 가운데 정신없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각인하시듯,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언급하십니다.(9)
그러고 보니 변화산은 제자들이 변화를 시작할 분수령이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을 변화시키려는 주님의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니 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행군에 제대로 동참해야 함에도
여전히 눈 어둡고 귀 어두운 제자들을 변화시키시려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2), “그들에게 나타나더니”(4),
“그들을 뒤덮었다”(7), “그들에게 명하시어”(9)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
이 말씀 또한, 늘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제자들,
여전히 주님의 수난예고가 들리지 않는 제자들에게,
그 말씀 듣고 깨치고 어서 변화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참조)
[정리]
오늘은 주님의 산상변화주일이어서인지, 4본문 모두 강렬한 빛으로 가득합니다.
요단강가 불의 예언자 엘리야의 승천광경이 그러하고
시온산에 “눈부시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시 50:2),
“그리스도의 영광” “복음의 빛”(고후 4:4), “하나님의 영광” “지식의 빛”(6),
그리고 변화산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빛은 온통 제자들, 우리들을 향하는 빛입니다.
변화의 주체는 예수님과 엘리야 같은 스승이시지만,
정작 변화해야 할 주인공은 우리 제자들이요,
그러므로 그 빛은 눈 어둡고 귀 어두운 우리를 비추는 빛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변하시는 듯한 장면을 그려보면서
문득 우리의 본래 모습,
우리가 변화하고 회복해야 할 모습을 묵상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비대면 시대라는 두렵고 혼란스러운 변화산에서 우리가 변화를 시작합니다.
겁에 질려 횡설수설하는 베드로 같은 한국교회가(6)
스승의 능력을 갑절로 받은 엘리사처럼
갑절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가복음 9:7)
만약 이 말씀이 들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엉터리 제자가 아니라,
무거운 말씀, 불편한 십자가의 말씀 제대로 듣고 순종하는 참 제자로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머지]
* 말씀의 호위무사
오늘 구약본문은 불의 예언자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가 헤어지는 장면이다. 갈멜산 제단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천하의 엘리야가 세상을 뜨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길갈에서 베델과 여리고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는 여정에서 저들이 같은 말을 반복(反復)하는 대화가 흥미롭다. 특히,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2,4,6) 같은 말을 세 차례나 반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떼어놓으려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떠나지 않으려고 룻이 반복하던 말도 떠오른다. 의리의 사나이 엘리사!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엘리사!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12)> 한편 엘리사의 모습은 마치 주인 곁을 끝까지 지키려는 호위무사 같은 느낌도 든다. 일평생 주님 말씀 따르며 목숨 걸고 말씀 지켜온 ‘말씀의 호위무사’ 엘리야! 그를 닮은 제자 엘리사가, 목숨 걸고 스승 곁을 지키려다 난데없는 불병거와 불말을 만난다. 불의 예언자 엘리야이기 때문일까? 불병거와 불말이 마치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듯이, 땅에 남을 사람과 하늘에 오를 사람을 갈라놓는가 싶더니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한다. 이 때 엘리사의 외마디 소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12)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불병거와 불말을 보고 떠오른 말이었을까? 특기할 것은, 세월이 흘러 엘리사가 죽을 때도 같은 말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어가는 예언자 엘리사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친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왕하 13:14)
병거와 마병이란 군사력의 상징이다. 문득 예언자가 바로 천군(天軍)과 같은 진정한 군사력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사사기 7:22에서도 사사 기드온의 300용사 나팔소리에 미디안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무찌른다. 역대하 20:21절 이하에는 군인의 나팔소리가 아니라 성가대의 노래가, 군복도 아닌 예복을 입고 노래하자 적군이 서로 저희들끼리 무찌르는 일이 벌어진다.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대하 20:20)
말씀을 지키려는 예언자에게서 ‘호위무사’라는 좀 우스꽝스런 표현을 떠올린 것은, 이밖에도 말씀을 가리켜 ‘칼’이라 묘사한 바울과 요한 때문이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에베 6:17)
“그러니 회개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계시록 2:16)
** 변화산 제자들, 예수님 모시고 십자가 행군을 시작하다
오늘 주현절 마지막 주일 복음서본문의 자리는 변화산이다. 변화산은, 예수께서 주현절 첫 주일 세례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심을 시작으로 갈릴리 곳곳에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다가 마침내 오른 산이다. 변화산은 예수님 공생애의 분수령이다. 갈릴리 활동을 마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십자가 행군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변화산 이야기의 알맹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리고 주현절 마지막 주간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변화산에서 예수님 옷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3) 죽으심을 가리키는 수의(壽衣)와 동시에 빛나는 부활의 몸을 가리키는 상징처럼 보인다.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주고받는 말씀 역시(4), 마지막 때, 즉 죽으심∼부활∼승천∼재림이 주제였을 듯하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성부 하나님의 음성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역시 동상이몽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경청하고 순종할 것을 명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이런 주제의 흐름 속에서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9)이라는, 제자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씀까지(10) 하신 것이다. 더불어 오늘 변화산 본문의 앞뒤에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예고를 하신 것(막 8:31, 9:31) 역시 이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인다. 문제는 제자들이다. 비록 무지몽매, 동상이몽 제자들이지만, 변화산에서 이렇게 이중삼중 배려하신 하나님 사랑이 시나브로 스며들 것이다. 결국 변화산은 예수님의 변모뿐 아니라, 제자들 변화의 맹아(萌芽)가 발아하기 시작한 자리였던 것이다.
***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 한국교회
주현절 첫 주일 주님 세례 받으실 때 들리던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주현절 끝 주일에 주님 변모하실 때 다시 들려온다. 그런데 다시 들리는 성부음성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이 듣는다. 그만큼 제자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 시편본문 시온산에서 눈부시게 나타나신 하나님처럼, 오늘 복음본문 변화산에서 눈부시게 변하시는 예수님처럼, 오늘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눈부시게 변화해야 그게 교회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 받는 눈부신 증거다. 이제 우리는 엎드려 주님께 빌자.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의 마음속을 비추셔서(고후 4:6)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님 말씀을 환하게 깨달아 주님을, 그 사랑을 빼어 닮게 하시길! 그래서 탐욕을 죽이고 교회를 구할 신령한 힘을 주시기를! 엘리야처럼, 엘리사처럼 나라를 구할 신비한 힘을 주시기를! 엘리사가 그랬듯이, 바울이 그랬듯이 스승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 말씀을, 그 사랑을 닮아가게 하시기를!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아들 자랑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5호)
하나님께서 아들자랑 하고 싶으셨나보다
새하얗게 빛나는 예쁜 옷
자랑스러운 아들 더욱 더 빛나도록 입히신다
하나님께서 아들자랑 하고 싶으셨나보다
구름을 일으켜 아들 친구들을 감싸고
아들 자랑 톡톡히 하신다
[말씀시조] 그리스도 선포하는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5호)
그리스도 선포하는 복음의 빛 받은 우리
우리는 종이로다 여러분의 종이로다
주 예수 얼굴 가득한 지식의 빛 안에서
[말씀서예] 고린도후서 4: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5호)
[시편노래]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05호)
[본문] (시편 50:1-6)
[노랫말]
1.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저기까지, 말씀으로 하나님이 온 세상을 부르신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나오신다, 눈부시게 나오신다 하나님이 나오신다
2. 하나님 오실 때에 불길이 춤을 추고, 무서운 돌풍마저 사방에서 일어난다
백성을 심판하려 하늘땅 부르신다, 위의 하늘 아래의 땅 증인으로 부르신다
3.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오라, 언약을 세운 자들 나에게로 모아오라
우리의 재판장은 하나님뿐이시니, 하늘이 선포한다 주의 공의 선포한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50: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5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다함께]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 (그-는 심판장) 이심이∼로∿다∼(셀라)∥
[말씀동화] 곱단이를 만나 멋지게 변한 차돌바위와 호피.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호피가 무서워 줄행랑치던 시절 이야기야.
호랑이 가죽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산에 사는 산적(山賊)이 있었어.
뛰어난 칼솜씨와 무시무시한 돌개바람을 일으키는 자, 그 이름 호피!
이름 모를 그 산적을 사람들은 호피(虎皮)라고 불렀단다.
어느 날 호피가 이산 저산 날아다니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낯선 꼬마 하나를 만났어.
어라? 그런데 이 녀석, 코흘리개 어린이가 아니네.
키는 작달막해도 허리에 큼지막한 도끼를 차고 있는 모양새가 나무꾼 같지는 않고,
동글동글 차돌바위를 닮은 저 녀석 뭐지?
“어이 호랑이 가죽! 이 길 지나가고 싶으면 통행세를 내거라.”
“남의 산에 와서 주인 허락도 없이 도둑질이라니, 간도 크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산에 주인이 어디 있어? 내 이름은 차돌바위님이시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보면 모르냐? 나는 이 산의 주인 호피다.”
말다툼할 시간이 어디 있어.
성미 급한 호피와 차돌바위는 한바탕 몸싸움을 시작했단다.
한창 호피의 칼과 차돌바위의 도끼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겨루고 있는데
활을 맨 여자 하나가 산을 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모두 그만 둬. 아직 미성년자들 같은데, 왜 이렇게 무서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거야?”
차돌바위와 호피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얼른 싸움을 멈추었지.
여자의 이름은 곱단이.
실은 차돌바위가 곱단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얼른 멈춘 거란다.
“아니 너, 차돌바위 아니니? 너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러는 누님은 여기 어쩐 일이죠?”
곱단이는 산기슭 허름한 집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아 보살피며 살고 있었어.
병들고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려고 사냥을 나온 곱단이의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점점 호피와 차돌바위의 날선 눈매가 부드러워졌겠지?
그리고 호피와 차돌바위는 이렇게 외쳤단다.
“누님, 저희가 도울 일 뭐 없을까요?”
곱단이가 사냥한 꿩과 산토끼를 짊어진 호피와 차돌바위는
시냇물처럼 졸졸졸 곱단이 뒤를 따라 산을 내려왔단다.
호피는 곱단이를 도와 얼른 불을 지피고
차돌바위는 솥에 꿩고기를 넣은 떡국을 끓였어.
오랜만에 푸짐한 설날 떡국을 나눠먹으면서
곱단이네 아이들 얼굴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고,
함께 떡국을 먹는 호피와 차돌바위의 눈매도
아이들을 따라 점점 고와졌단다.
“차돌바위야. 그동안 어떻게 살다가 이렇게 되었니? 스승님이 지금 네 모습을 보신다면...”
말끝을 흐리는 곱단이 앞에서
차돌바위의 머리는 점점 수그러들고
이를 보고 있는 호피도 덩달아 마음이 수그러들었단다.
“우리가 탐욕스런 탐관오리들과 타락한 종교인들의 구린내 나는 금고와 곳간을 털어서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義賊, 의로운 도둑) 생활을 하다가 멈춘 이유를 너는 그새 잊었니?”
곱단이와 차돌바위의 무거운 대화를 들으면서 호피는
차돌바위의 머리가 왜 자꾸자꾸 아래로 수그러드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어.
털어도 털어도 한도 끝도 없는 저들의 금고와 곳간.
탐관오리들과 타락한 종교인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르고,
아무리 마스크를 단단히 써도 의적들마저 저들의 더러운 탐욕에
전염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던 거야.
그래서 의적들의 대장이던 스승님이 이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신 거지.
원하는 식구들을 다 데리고 배에 태워서
머나먼 섬나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데,
곱단이도 차돌바위도 여기 남아 있는 건 어찌된 일일까?
“차돌바위야. 스승님께서 그러셨지. 우리끼리만 멀리 가서 좋은 나라 만들어 살면 뭐하느냐, 더뎌도 여기 남아 있는 약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남게 된 거잖아.”
이윽고 고개를 든 차돌바위는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말했어.
“누님 고마워요! 스승님을 따르지 못하고 사는 부끄러움을 누님 덕분에 느꼈어요. 이제부터라도 옛 버릇 고치고 스승님 뜻을 따라 스승님처럼 살게요.”
의지할 곳 없는 호피도 덩달아서 차돌바위와 함께 곱단이를 누님으로 모시고
곱단이네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어.
“이제 자식 없는 노인들을 모시고 살 집을 짓자.”
곱단이는 오랜 꿈을 이루게 된 기쁨으로 매일매일 싱글벙글했어.
차돌바위는 나무를 하고 호피는 열심히 돌을 날랐지.
아이들만 살던 집 옆에 뚝딱뚝딱 멋진 집을 짓고
곱단이는 마을에 내려가 자식 없고 먹을거리도 없는 가난한 노인들을 모셔왔단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살게 되니까 너무 좋아해요!”
물론 아무 가족 없이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똑같이
너무너무 행복해 하셨단다.
물론 가장 행복한 것은 차돌바위와 호피였지.
산적질 하던 산에서 곱단이를 만나서 참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무시무시한 산적들이 참된 사람으로 변화한 것을 알게 된 세상 사람들은
그 뒤로 그 산을 가리켜 변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스승님,
이 세상 나라가 아닌 신비로운 나라에 가서 살던 스승님은 또 얼마나 기뻤을까?
뭐라고? 그 스승님 이름이 뭐냐고?
아니 여태 그것도 몰랐어?
[이정훈 지음. 2021년 2월 13일 토요일 오전]
(※1960년대 인기 많았던 총천연색 만화영화 홍길동, 그리고 호피와 차돌바위 등에서 인물과 몇몇 설정을 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