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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2주(2021년 1월 1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21. 1. 15. 14:4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린도전서 6:20)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3:1-10 (11-20))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4.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고서,

5.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하고 말하였다.

7.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8.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 것이다.

12. 때가 오면, 내가 엘리의 집을 두고 말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겠다.

13.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14.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15. 사무엘은 아침이 밝을 때까지 누워 있다가, 주님의 집 문들을 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자기가 환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엘리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였다.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렀다. 그는 내 아들 사무엘아!” 하고 불렀다. “,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17. 엘리가 물었다. “주님께서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나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라. 주님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서 한 마디라도 나에게 숨기면, 하나님이 너에게 심한 벌을 내리고 또 내리실 것이다.”

18. 사무엘은 그에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였다. 엘리가 말하였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19.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20.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시편 139:1-6, 13-18)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12-20)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요한복음 1:43-51)

43. 다음 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려고 하셨다. 그 때에 빌립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44. 빌립은 벳새다 출신으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고향 사람이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두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48.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9. 나다나엘이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5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께서 나를 환히 알고 계시니입니다.

 

구약,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사무엘기상 3:3)

시편,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시편 139:18)

서신서,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린도전서 6:15)

복음서,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요한복음 1:48)

 

오늘 요절은,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입니다.(고린도전서 6:2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3:1-10(11-20), 시편 139:1-6, 13-18)]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다입니다.

사무엘은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1:11)

 

엄마 뱃속에서부터 주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사무엘,

엄마 젖을 뗀 직후에 성전에 가서 엘리에게 맡겨진 사무엘,

급기야 성전 하나님의 궤 가장 가까이에서 자던 사무엘에게(3:3)

하나님이 나타나 첫 말씀을 주십니다.

 

두렵고 떨리는 그 말씀의 내용과 별도로

사무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첫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받게 되고

그 뒤로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예언자로 자라갑니다.(20)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원래는 자신을 향한 모함 때문에 자기변호를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시가(19-24)

오늘 구약본문과 만나니 완전히 사무엘의 노래처럼 보입니다.(삼상 1:11)

(그리고 오늘 복음서본문과 만나면 나다나엘의 노래처럼 보입니다. 1:48)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께 바쳐져서 온통 하나님의 관심을 받던 사무엘(139:16),

늘 주님 가까이 성소에서 잠들고 깨어나던 사무엘(18),

주님 말씀을 절대 경청하고, 절대 복종하는 사무엘(17)!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6:12-20, 요한복음 1:43-51)]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입니다.

열광적 은사주의자들로 인하여 몸의 문제를 가벼이 여기는 고린도교회에게

바울은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몸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이신(20) 그리스도의 지체이며(15)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13) 성령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9)

그러므로 이토록 거룩한 몸에 음행을 저지르는 것은 심각한 범죄요,

이는 오늘 구약의 핵심과 통합니다.(삼상 3:13-14)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부르심을 받은 빌립과 나다나엘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처음 부르시는 과정에 빌립과 나다나엘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불러

빌립과 나다나엘이 차례로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45, 49)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는 마치 선문답처럼 이어지는데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우리를 환히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47-48)

 

이는 오늘 구약본문 및 시편과 짝을 이루며,

이 든든한 사실로 믿음이 자라 우리 신앙고백은 점점 더 무르익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 많이 더 신나게 알아가고(50-51)

주님과 가까워지고 주님을 닮아감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릴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참조)

 

 

[정리]

주현절 둘째 주일 성서일과 본문말씀은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환히 잘 알고 계시는지를 새삼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아끼시고 환히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139:16)

그리스도의 지체(肢體)”일 만큼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주님께서(고전 6:15)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시며 이름을 불러주십니다.(삼상 3:4...10)

 

깜짝 놀란 내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하고 여쭈니(요한복음 1:48)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부터 눈여겨보았다고 하십니다.(48)

주님께서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이미 나를 샅샅이 살펴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139:1-4)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다나엘은 즉각 감동하였고

그리고 신앙고백을 합니다.(1:49)

그리고 나다나엘은 점점 더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되면서(50-51)

시나브로 주님을 닮아갑니다.

 

나도 사무엘처럼 나다나엘처럼,

나를 환히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곧바로 응답하고 그 말씀 경청하고 순종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무엘처럼 나다나엘처럼) 내 몸을 정결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귀에 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과 정 반대의 삶을 사는 자의 대명사가 바로

식탐과 음욕으로 귀가 막혀버린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이 두 아들뿐 아니라, 심지어 사무엘 자신의 두 아들도 문제였습니다.

사사였음에도 요엘과 아비야는 탐욕 때문에 엉터리 재판을 일삼았습니다.(삼상 8:3)

 

이 두 아들들을 보면서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초입니다.(不肖, 아니 , 닮을 )

부모님 닮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불효자를 뜻하는 불초!

 

또 하나는 자식을 깨우치지 못한 엘리의 잘못입니다.

자식들이 탐욕에 빠져 몸이 더러워져갈 때

최선을 다해 책망하지 못한 것입니다.(삼상 3:13)

말로 하는 책망은 책망이 아닙니다.(삼상 2:23-25)

이미 탐욕에 젖은 자는 귀가 어두워 그 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을 닮아가는 계절 주현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국교회의 불초(不肖)를 보게 하십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사장과 예언자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한국교회가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요엘과 아비야처럼 망하지 않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탐욕의 질주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깨닫도록 누가 우리를 책망할 수 있을까요?

말로 하는 책망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뉴스만 틀어도 한국교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기사는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말로 하는 책망은 책망이 아닙니다.

과연 누가 우리를 제대로 책망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가까운 분 아버지의 책망!

우리 아버지는 엘리처럼 물러터진 분이 아니십니다.

결코 자녀인 우리를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금이 저리고 식욕이 다 달아날 하늘아버지의 책망 앞에서!

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부디 기회가 되도록,

제발 우리가 모두 주님을 닮아갈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주님을 제대로 닮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금 정신 차리고, 몸을 차릴 때입니다.

 

 

 

[나머지]

* 말씀과 함께

눈 어두운 엘리, 그리고 탐식과 음행으로 눈 어두운 그 아들들과 달리 주님 말씀을 직접 받을 만큼 사무엘은 눈도 귀도 밝고 깨끗했습니다. 문득 언약궤 가까이에 누워 자는 사무엘의 모습이(삼상 3:3) 마치 말씀을 끼고 사는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처럼 내가 아직 어려서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읽고읽고 또 읽다보면 그 뜻이 시나브로 드러납니다. 늘 말씀과 함께 사는 사람은 말씀 속에서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선물

내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그분 것이라는 고백은 이미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 이름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즉 그분의 은총, 선물입니다. “나다나엘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찌 사무엘과 나다나엘만 하나님의 선물이겠습니까? 나 역시, 구원받은 내 생명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로마 6:23)

 

*** 오늘 본문 또 하나의 실마리, ‘성전

오늘 본문들의 주제, ‘주님 나를 잘 아심’, ‘주님 나를 사랑하심’, 그래서 나와 아주 가까이 계심’... 성전을 실마리로 풀어볼 수도 있습니다. 구약본문의 사무엘은 언약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다가 주님과 만납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당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가까워져가는 나다나엘에게 스스로 성전이심을 드러내십니다.(요한 1:51) 서신서의 바울은 내가 바로 성전임을(고전 6:19), , 그분의 영을 몸소 모실 정도로 그분과 내가 가까움을 설파합니다.

이렇게 가까운 사이, 한 몸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면, 혼인서약처럼,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두개 있습니다. 첫째, 오늘 구약과 서신서본문은, 내가 그분과 이렇게까지 가까우니 지켜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그건 바로 내 몸입니다. 내 몸을 지켜야 합니다. 더욱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그분이 지으신, 그분이 값을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엘리의 두 아들을 반면교사로, 서신서는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로 보여주십니다. 탐식과 음행, 이 두 가지는 거룩하신 그분의 소유인 내 몸을 망가뜨리는 대표주자들입니다. 내 몸을 탐식과 음행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고전 6:20) 이것은 사랑하는 분에 대한 도리이며, 권리요 자랑입니다. 둘째, 진정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의 진면목을 아는 법입니다. 주님은 나를 환히 아시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그분을 환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언약궤 곁에서 자고 깨는 어린 사무엘처럼, 나는 성경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환하게 켜놓는 성전 등불처럼 시대의 어둠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성경말씀을 엽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예수님의 말씀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05)

너의 스승인 나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너의 맏형인 나는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을 알고 있다

너의 주인인 나는 네가 내 말을 전하다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내가 말하건대 너는 마지막에 내 곁에 있게 될 것이다

 

 

 

[말씀시조] 여러분은 예수 지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5)

여러분은 예수 지체 주를 위한 몸이로다

주의 성령 모셨으니 주께 속한 몸이로다

여러분 온몸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말씀서예] 고린도전서 6:1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5)

 

 

 

 

 

[시편노래]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105)

[본문] (시편 139:1-6, 13-18)

[노랫말]

1.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샅샅이 살피시네, 앉았거나 서 있거나 주님은 다 아시네

멀리서도 다 아시네 내 생각을 다 아시네, 길가거나 누웠거나 내 모든 것 다 아시네

2. 나의 앞뒤 두루 감싸 주님의 손 얹으시니, 혀를 놀려 말 안 해도 하려는 말 다 아시네

이 깨달음 나에게는 너무 높고 놀라워라, 주님의 뜻 주님의 길 측량조차 못하오리

3. 모태에서 나를 만져 내 장기를 지으신 주, 하나하나 내 뼈조차 주님께서 다 아시네

오묘하고 놀라워라 나를 빚은 주의 손길, 내 영혼이 다 아오니 나 주님께 감사하네

4. 나의 형질 갖추기 전 주님은 나를 보고, 나의 날 시작 전에 주님 책에 기록되니

심오하신 주의 생각 많고 많은 주님의 길, 깨어보니 나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20210117_시편가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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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송서(誦書)] 시편 139:1-6, 13-1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5)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 -펴보셨으므로-,

---- 아시나이다-, (----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시는 ----,

하나--- 없으시니이다, (하나---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13. 주께--- - 내장을-, (내장---) 지으시며--,

---- 모태-에서-, ----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 은밀한 데서-, 지음--- ----,

----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 --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나님-- (하나님)이여-, -의 생-(생각-)--,

-어찌 그--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 그리 많은-지요-

 

[다함께]

18. -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 --소이--,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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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하늘빛 물들이는 하늘노래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달맞이꽃 씨앗 하나도 안 흘리고 받으려고 오돌오돌 집중하던 시절 이야기야.

 

겨자씨랑 담배씨, 그리고 달맞이씨앗이 내기를 했대.

무슨 내기냐고?

그야 물론 누가누가 가장 쬐고만 할까지.

누가 더 큰지 겨루기도 아니고 누가 작은지 내기를?

 

그래서 누가 이겼는지는 나도 몰라.

서로들 하도 쪼그리고 쪼그리려 애쓰는 바람에, 나중엔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 저기 큼직큼직 잘 보이는 거 있네.

저건 뭐지? 작두콩인가?

 

아하! 저건 재크의 콩이고, 그리고 저건 흥부네 박 씨야.

저거 좀 봐 저거!

엄마를 닮아 그런지, 정말 무럭무럭 무지무지 잘도 자라네.

역시 콩 심은데 콩 나고 박 심은데 박 나는 거야, 아무렴 그렇지!

 

그나저나 흥부네 제비표 박씨가 어디서 또 난 걸까?

어디서 나긴, 옛날에 흥부가 박 키울 때 그 씨앗을 받아둔 거지.

! 잘했군, 잘했어.

아무렴, 좋은 씨앗은 부지런히 받아두어야 한다니까!

 

 

그런데 왜 이리 어두워? 어째 하늘이 어두컴컴한 걸?

어이쿠! 오늘 하늘님 속이 언짢으신 거야.

재크 콩나무가 너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라서 언짢으신 건가?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 저기 콩 심은데 콩 안 나는, 저것들 때문인 거야.

좋은 씨앗 받아둬도 아무 소용없네, 에휴!

 

나는 너를 종자가 아주 좋은,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떻게 하여 네가 엉뚱하게 들포도나무로 바뀌었느냐?”(예레미야서 (2:21)

 

사무엘을 키워준 엘리제사장 있잖아. 그런데 그 자식 놈들 좀 봐.

홉니, 비느하스 두 형제들 하는 꼴 좀 봐.

아빠를 안 닮아도 유분수지,

저렇게 타락한 제사장이 세상에 또 있을까?(사무엘기상 3:13, 2:12-17, 22-25)

 

아니 근데 저건 또 뭐야? 예언자 사무엘의 자식들이잖아?

요엘, 아비야 두 형제들 하는 짓도 똑 같네?

어떻게 판관이 뇌물을 받고 엉터리 재판을 할 수 있지?(사무엘기상 8:3)

그것도 천하의 사무엘의 자식들이?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이사야서 5:2)

 

 

어이쿠! 오늘도 이리 어두컴컴한 걸 보니, 하늘님 마음이 여전히 언짢고 편찮으신 거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야.

좋은 신학교 보내줘도 엉터리 목사 나오고,

좋은 대학교 보내줘도 엉터리 판사 나오고...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우리 하늘님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시지?

그래야 하늘이 다시 밝고 환해질 텐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여태 그것도 몰라?

다시 콩 심은데 콩 나게 하면 되지.

 

우리가 누구야, 우린 하늘님 거잖아, 하늘님 소유, 하늘님의 자녀들!

그러니까 하늘님을 닮아가는 거,

그거면 돼, 다 돼!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시편 139:13)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린도전서 6:19-20)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늘님 닮아가느냐고?

여태 그것도 몰라? 하늘님이랑 자꾸자꾸 가까이 해야지.

옛말에,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는 유식한 말 있잖아.

뭐든 가까이 하면 닮아가고 물들어가는 거야.

발그레 봉숭아물들이고 노랑노랑 달맞이꽃 물들이듯이!

 

그러니까 자꾸 하늘님 말씀 가까이 하고,

하늘노래 입에 붙도록 자꾸자꾸 부르고 그러면 돼.

그러면 탐욕도 점점 줄어들고

내가 하늘님 계시는 하늘나라 빛깔로 점점 물들어가는 거야.

 

, 이제 노래, 이 노래 자꾸 불러보자.

어서 나부터 하늘님 닮아가고, 시나브로

내 가까이 벗들이랑 그렇게 하늘빛으로 예쁘게 물들어가자.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시편 139:16-18)

 

[이정훈 지음. 2021116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