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2주(2020년 1월 19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8)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49:1-7)
1.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4.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올바로 심판하여 주셨으며, 내 하나님께서 나를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
5.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7. 이스라엘의 속량자, 거룩하신 주님께서, 남들에게 멸시를 받는 사람,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왕들이 너를 보고 일어나서 예를 갖출 것이며, 대신들이 또한 부복할 것이니, 이는 너를 택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신실한 나 주 하나님 때문이다.”
(시편 40:1-11)
1. 내가 간절히 주님을 기다렸더니, 주님께서 나를 굽어보시고, 나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네.
2. 주님께서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 주셨네. 내가 반석을 딛고 서게 해주시고 내 걸음을 안전하게 해주셨네.
3. 주님께서 나의 입에 새 노래를,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담아 주셨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네.
4. 주님을 신뢰하여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복되어라.
5.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아무도 주님 앞에 이것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널리 알리고 전파하려 해도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6. 주님께서는 내 두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사나 예물도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번제나 속죄제도 원하지 않습니다.
7. 그 때에 나는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에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8.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9. 나는 많은 회중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아시듯이, 내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10.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의를 나의 가슴 속에 묻어 두지 않았고, 주님의 성실하심과 구원을 말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그 미쁘심을 많은 회중 앞에서 감추지 않을 것입니다.
11.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니, 주님의 긍휼하심을 나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과 미쁘심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십시오.
(고린도전서 1:1-9)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9.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29-42)
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33.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게 하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34.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35. 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38.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 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41.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42.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말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나를 친하게 여기시는 주님’입니다.
구약,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이사야서 49:1)
시편,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 (시편 40:7)
서신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9)
복음서,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요한복음 1:42)
오늘 요절은,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입니다. (고린도전서 1: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49:1-7, 시편 40:1-11)]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만방에 비치는 빛 이스라엘’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은 ‘주님의 종’의 외침이 당당하고 쟁쟁합니다.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들을 넘어(1) 땅 끝까지 이르도록(6)
하나님 구원의 빛을 비출 그분의 종입니다.
이 종은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의 어느 예언자로 보이는데,
궁극적으로 이 예언을 성취하실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특히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1)와 “신실한 나 주 하나님”(7)은
오늘 나머지 다른 본문들과 끈끈하게 통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새 노래”란(3) <나를 도우시려고 새로운 일을 하시고 마침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새로 발견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1절의 “울부짖음”과 짝을 이룹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1절과 7절처럼, 하나님은
이미 나를 알고 계시며(7) 미쁘신(신실하신) 분입니다.(10, 11)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고통과 감사를 온 회중 앞에서 공개하나 봅니다.
공개적으로 탄식하고(1) 감사함으로써(9, 10) 그 친교가 점점 깊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1-9 / 요한복음 1:29-42)]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인사와 감사’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의 목표는 고린도교회가 마지막 날까지 튼튼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8)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지는 것,
그것은 바로 친교로 요약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기! 그것은 곧 교회가 하나 되고,
나아가 세상과 복음으로 하나 됨에 다름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결국 이 친교를 이루셨고 또 이루실 것입니다.(9)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라, 첫 번 제자들’입니다.
오늘 다른 본문들처럼, 복음서본문 또한
주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벌써부터 알고 계셨음이 인상적입니다.
나는 주님을 몰랐음에도, 주님은 나를 이미 잘 알고 친하게 여기셨던 겁니다.
그보다 앞에서,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대화하고 또 따라가고
마침내 숙식하며 함께 지냅니다.(39)
예수님과의 친교가 소소한 일상처럼 정답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본문 제일 앞에서 요한이 반복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29, 36)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힙니다.(34)
이는 예수님과 친교의 길을 닦아주는 역할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과 백성의 친교(화해와 화목) 상징의 극치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지난주일 복음서본문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부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를 잘 아신다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셨는데,
오늘 복음서본문은 예수께서 우리를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두말하면 잔소립니다.
나머지 본문들 역시 주님께서 이미 나를 환히 알고 계심이 핵심입니다.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이사야서 49:1)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시편 40:7)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요한복음 1:42)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고전 1:9)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친하게 여겨 오신 하나님!
오늘 본문들을 꿰고 있는 <친교>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이 있으며,
그 친교의 목적은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시는 일입니다.(고전 1:8)
교회가 튼튼해질수록 하나님과의 친교, 교회 안팎의 친교는
더 무르익고 향기로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34)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42) 시몬을 알아보신 뒤
곧바로 게바라는 이름으로 부르시겠다고 했는데,
나를 불러주실 새 이름은 무얼까, 그게 궁금합니다.
이 궁금증을 풀 길은,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정면으로 만나는 길 뿐이겠죠?
그럼 주님께서 불러주실 나의 새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내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일까요?
아무튼 꿈에라도 우리 예수님 만나면 바싹 다가가
나의 새 이름 듣고,
새 이름으로 새 노래 한바탕 부르렵니다.
[나머지]
* 새 이름, 새 노래로
한 주간 말씀묵상 중에 유난히 나의 마음에 맴도는 이름 “게바”! 시몬의 새 이름, 주님께서 친히 불러주신 그 이름, 시몬의 귓가에 내내 맴돌았을 그 새 이름이 느껴집니다. 그의 귀에 담긴 새 이름을 묵상하다가, 문득 오늘 시편의 “새 노래”가 내 입에 담깁니다. 주님께서 나의 입에 담아주신 새 노래!(시 40:3)
게바라는 새 이름은 교회를 세우는 이름이었습니다. 허물어진 교회를 다시 세우려고, 쓰러진 등대를 세우고 기름을 채우려고 애써온 시간들이 문득 겨울바람처럼 스칩니다. 돌아보니 찢어진 깃발처럼 하릴없이 펄럭이는 교회개혁의 쉰 목소리, 그 가느다란 소리가 겨우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교회를 떠나고 있는 사람들이(사 49:5-6)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 탐욕의 시스템을 향하여 다시 눈을 부릅뜨다가도, 그 해묵은 좌파목사 소리에 오랜 상처가 다시 아립니다. 아직도 어리고 여린 나와 벗들에게 오늘 말씀의 느낌이 구구절절 남다릅니다.
“주님을 신뢰하여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복되어라!”(시 40:4)
문득 지난 정초에 서울 사시는 송 아무개 권사님으로부터 카톡으로 받은 새해 덕담이 귀에 쟁쟁합니다. “주님의 팔복 많이 받으세요!”(마 5:3-12) 그 길이 고통스러운 길인 걸 알지만, 거기 주님의 팔복이 있음을 더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새해 덕담에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셨던 주님께서(사 49:2) 오늘 “새 노래”를 내 입에 담아주십니다.(시 40:3)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라고 위로하시고, 당장 무너져버릴 것 같으나 그게 아니라고,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이라고(고린도전서 1:8) 그렇게 새 힘 주시고(사 49:4) 마침내 새 노래를 담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골방에 스스로 갇혀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벗들, 그리운 동지들에게 이 새 노래를 불러주렵니다.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진흙탕에서 나를 건져”주시는 주님, 든든한 너럭바위 게바 같은 “반석을 딛고” 다시 서게 하시는(시 40:2) 나의 하나님의 그 한결같은 사랑과 그 미쁘심을!(시 40:10-11)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시 40:8)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고린도전서 1:9)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세례자 요한이 두 번씩 반복하는 중요한 말들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촉구하는 장면이 두 차례 반복됩니다.(29절, 36절) 어린양은, 하나님과 빗나간 백성들 사이의 친교를 위한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촉구하던 요한 자신이 보았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이 내리시는 성령님입니다. 이 역시 두 차례 반복됩니다.(32절, 34절) 물론 이 장면은 지난주일 주제인 삼위하나님의 연대, 그 강렬한 친교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역시 두 차례 반복됩니다.(31절, 33절) 깊은 친교로 들어가기 직전 단계의 모습입니다. 마침내 그분을 알게 됩니다. 안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주님과의 친교는, ‘증언’이라는 형식으로 열매 맺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 나오는 주님과의 친교는, 세례자 요한의 친교를(증언을) 이어 첫 제자들과 예수님의 친교로 넘어갑니다. 예수님과의 친교를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모와 재산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제자 안드레와 동료는, 첫 스승인 세례자 요한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습니다.(37절)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오셨고, 마침내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우리와의 친교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단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오늘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그 숙식하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친교를 나눕니다.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기 위한 동지들의 첫 친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친교, 코이노니아는 이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우리말로 식구(食口)라는 말을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구(食口)’는 한 가족이라는 의미, 내 아내라는 의미, 내 조직원이라는 의미 등 무수한 뜻을 갖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 친교의 대미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장면입니다. 이름을 알고,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친교의 기본입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볼 수 있나? 따를 수 있나?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101호)
세례요한처럼 볼 수 있나?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 주시는 예수님
인자하고 자비하신 사랑의 예수님
낮은 모습으로 오셨네.
제자들처럼 따를 수 있나?
내게로 오라 말씀하시는 예수님
먼저 하나님 따라 걸어가신 예수님
[말씀시조] 바울과 소스데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1호)
바울과 소스데네 성도들께 편지하네
주예수 기다리는 고린도 성도들아
하나님 너희 부르사 주예수와 친교를
[말씀서예] 고린도전서 1:9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1호)
[시편노래] 시편 40(주님을 기다리고)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101호)
[본문] (시편 40:1-11)
[노랫말]
1. 주님을 기다리고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 나를 굽어보사 나의 통곡 들으시네
멸망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 주신 주님, 반석 위에 세우시고 나의 길을 지키시네
2. 새 노래 새 찬송을 내 입에 담으시니, 나를 보는 사람들이 주님을 의지하네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만 의지하니, 우상들 멀어지고 주님의 복 가까워라
3. 놀라우신 주님 역사 우리 위한 주의 계획, 헤아릴 수 없사오며 열거할 수 없습니다
예물도 제사상도 원하지 않으시니, 열어주신 나의 귀로 그 사랑을 듣습니다.
4. 주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신 계획 따라, 두루마리 기록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제 마음 속 주님의 법 순종하고 순종하여, 구원의 주 기쁜 소식 쉬지 않고 전하오리
5. 나의 주 내 하나님 나를 구원 하셨으니, 한결같은 주의 사랑 온 누리에 알리리라
미쁘시고 성실하신 주의 사랑 믿사오니, 대자대비 주님 긍휼 거두지 마옵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40:1-11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40:1-1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그 수를) 셀 수도없나-이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다함께]
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말씀동화] 호두과자 상자에 달빛이 닿으니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호두과자 먹고 싶어서 천안삼거리 지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온 세상이 잠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소구네 안방 옷장 위 호두과자 상자 안에서 두런두런 소리가나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상자 안에는 오래된 가족사진들만 수북한데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는 소릴까요?
이천년 만에 가장 밝은 달빛이 안방 창문을 뚫고 들어와
구석진 옷장 위 호두과자 상자를 비추자
상자 안은 서서히 신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오랜 세월 조용히 누워만 있던 사진들 한 장 한 장이
은은하고 따스한 기운에 기지개를 켜고
오래전 멈추었던 고장 난 탁상시계가 째깍째깍 돌기 시작하자
사진에 담긴 케케묵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소구 갓난쟁이 사진이 꼬물꼬물 옹알이를 시작하자
큰오빠 초등학교 입학식 기념사진 웃음꽃이 벙글어지고
코흘리개 작은 오빠가 고소한 젖병을 들고 흐뭇하게 웃고 있습니다.
온가족 설레는 기운이 가족여행 정동진 열차 사진에서 칙칙폭폭 꿈틀거립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냄새람?”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소구가 종알거리자
대문 밖에서부터 라면냄새 기막히게 알아맞히는 둘째오빠가 말합니다.
“무슨 냄새긴, 호두과자 냄새지, 천안 호두과자!”
다 날아가 버린 줄 알았는데
십년도 더 된 호두과자 상자에서 냄새가 납니다.
둥글둥글 달 기운에 동글동글 호두과자 굽는 냄새가 노릇노릇 다시 살아납니다.
언젠가 아빠가 천안 단비교회 다녀오실 때
단비교회 목사님이 선물로 사주신 할머니표 호두과자 냄새가
이렇게 고소한줄 미처 몰랐습니다.
“소구 너 그날 기억나? 오빠들보다 더 많이 먹으려다 엄마한테 야단맞고 앙앙거린 거?”
큰오빠 기억력을 무시하려는 듯 소구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오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개구쟁이 작은오빠도
누런 코 훌쩍거리며 신명나게 따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옹달샘, 시원하고 맛있지, 먹고먹고 먹어도, 포롱포롱 퐁퐁퐁,
욕심쟁이 혼자서, 배터지게 먹어도, 예쁜 아이 여럿이, 나누어서 먹어도,
예수님의 옹달샘, 포롱포롱 퐁퐁퐁∼♬”
[우리가락찬송, ‘예수님은 옹달샘’ 홍보연 지음]
어느 샌가 엄마도 아빠도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뾰루퉁 하던 소구도 슬그머니 함께 부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옹달샘 노래는 소구네 애창곡입니다.
젊고 날씬한 목소리로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 고린도전서에 이런 말씀이 있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고전 1:9)”
“엄마, 친교가 뭐예요?”
까까머리 작은 오빠가 누런 코 훌쩍거리며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랑 놀고 싶어 하셔. 그래서 우리 진구가 태진이 성혁이 성준이... 동네친구들 다 불러 모으듯이 늘 우리를 부르시는 거란다. 예수님이랑 친하게 여럿이 함께 놀라고. 아무리 티격태격 싸웠더라도, 다함께 예수님이랑 놀다보면 마음이 따스하게 풀어지고 사이좋아지거든!”
“친교를 교회에서는 코이노니아라고도 하죠 엄마?”
큰오빠가 씩씩하게 한 마디 하자 엄마아빠 눈이 하트 눈이 됩니다.
“옳지, 우리 선구는 역시 책벌레답구나. 아까 고린도전서 말씀도 친교의 원래 말이 코이노니아란다. 원래 코이노이아는 음식을 사이좋게 나누어먹는 걸 말하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옹달샘’은 대표적인 코이노이아 노래겠지?”
엄마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가물가물 졸리는 목소리로 소구가 옹알거립니다.
“엄마, 아빠, 호두과자 또 먹고 싶어요.”
호두과자 상자 속 가득한 노릇노릇 고소한 냄새 때문인지
온 가족이 추억의 호두과자, 할머니표 호두과자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빠가 구수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보름달이 저렇게 밝은 것은 실은 태양빛 때문이야.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빛이 이렇게 호두과자 냄새를 살려내듯이, 우리도 해님처럼 밝은 우리 예수님사랑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살자. 우리 소구, 이젠 예수님은옹달샘노래처럼 오빠들이랑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지?”
“넵!”
“옛썰!”
소구보다 먼저 오빠들이 힘차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처럼 오빠들이랑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친교하려면
어서 욕심찌꺼기 깨끗이 닦아내고 반짝반짝 환한 반사거울이 되어야지 다짐하며
소구는 코올콜 잠이 듭니다.
달님도 쿨쿨 잠들기 시작하니
호두과자 상자 속 소구네 가족사진들도 사랑스런 꿈을 꾸기 시작하고
째깍째깍 탁상시계도 고요한 꿈나라로 빠져듭니다.
[이정훈 지음.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