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3주(2019년 12월 15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2.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3. 너희는 맥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4.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5.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6.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8.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1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시편 146:5-10)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5:7-10)
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마태복음 11:2-11)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이 오셔서 열어주신다’입니다.
구약, “그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이사야서 35:5)
시편,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시편 146:8)
서신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야고보서 5:7)
복음서, “눈먼 사람이 보고” (마태복음 11:5)
오늘 요절은,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시편 146: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35:1-10, 시편 146:5-10)]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장래의 구원’입니다.
9-10절로 보아, 오늘 본문은,
40-55장(2이사야서)의 주제를 미리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합니다.
바빌론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모습인데,
그 귀환 길을 “거룩한 길”이라 명명하고(8)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거룩한 길”은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길을 매우 일찍 보여주는 것인데,
이 “거룩한 길”에서 훨씬 더 미래의 구원까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길”이 장차 새 예루살렘, 하늘본향을 향한 길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특히 5-6절이 오늘 복음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듯하여, 메시아를 예감하게 하며
게다가 4절과 연계하니, “거룩한 길”은
주님께서 우리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끝내 오셔서 동행하시는 그 길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절 본문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심’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강력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바로 앞 3-4절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말라고,
권력자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몸소 우리에게 오신 주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61:1-2절을 인용하여 보이신 그 구원의 청사진이(눅 4:18-19)
오늘 이 시편에 고스란히, 심지어 더 구체적으로 들어 있으니(7-9)
참으로 든든한 희망노래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야고보서 5:7-10 / 마태복음 11:2-11)]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인내하라는 권고’입니다.
“형제자매”(7)는, 본문 앞에 언급한 부자들과 비교할 때, 약자의 처지였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권력자, 부자들에게 비극의 날이 될 ‘재림의 날’이
교회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의 날입니다.
다만 그날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일수록 마음도 약해져서 쉬 상처 받고 서로를 원망하기 쉬울 것이나(9)
그럴수록 더 참고 견뎌내야 합니다.
쪼들리고 아프고 힘들어도, ‘그날 덕분에’ 참고 또 참을 수 있습니다.(7-8)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옥중 질문 덕분에,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이 환히 드러납니다.
지난주 본문(마태 3:1-12)에서 요한은 강력한 ‘심판의 주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이사야서 곳곳의 메시아 약속을 인용하여 답하심으로,
당신이 심판자일 뿐 아니라 넘치는 자비의 구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닦는 자이므로,
어느 예언자보다 막중하고, 모든 예언자보다 뛰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요한을 기준삼아,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 희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속하는 거듭난 자가 얼마나 귀하고 큰지를 보이신 것입니다.(11)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본문들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희망’입니다.
꽉 막힌 인생길, 불통 투성이 암흑 세상을 환하게 열어주십니다.
눈먼 사람의 눈을 열어 주시는 말씀이 유달리 반복됩니다.(사35:5, 시146:8, 마11:5)
패망을 앞둔 암담한 유다백성에게 예언자 이사야가 희망의 말씀을 전하며,
“거룩한 길”(8)을 왜 그토록 일찍, 그리 환상적으로 묘사했나 했더니,
그 말씀 안에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의 우주적 구원 청사진까지 담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선포하는 예언자,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예언자에게
물리적 시간은 숫자에 불과한가 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둠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밥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통째로 먹지 못하고,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려는
지독한 편식 때문에 나날이 말라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부에 취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이유는,
다시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천국의 소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천국이 오고 계시는데 그게 안 보인다면, 그건 참 비극입니다.
이사야도 야고보도 보았던 그 날,
바로 코앞에 닥친 그 날을 보는 눈이 활짝 열릴 때(마 11:5)
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구약본문과 서신서 본문 시대의 독자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모진 고통의 시절을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오직 다시 오실 주님, 이제 곧 다시 오실 그분만이 희망인 것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나머지]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오늘 서신서 본문에 묘한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9)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앞부분 7절과 8절에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라며 계속 기다리라고 하다가 갑자기, 이미 문 앞에 서 계시다니 말입니다. 무언가 교회 안에 상당히 긴박하고 중대한 변화의 요청이 느껴집니다. 요점은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겁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원망은 왜 생길까요?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온 지체의 실수나 범죄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공동체 안에서 원망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기대 때문에 생기는 실망과 원망입니다. 기대(期待)는 기대게(의지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내가 기대하는 것 외의 상대방이 가진 장점, 진면목은 못 보게 만듭니다. 내가 바라는 것만 보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리는 이치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실문화 77호 <복음서 묵상(주원남 목사)>에 나온 ‘기대의 감옥’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 신앙공동체는 철두철미하게 주님께 기대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교회가 어려울수록, 교인 수가 줄고, 예산이 말라갈수록, 교인들 하나하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서로에게 기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그게 원망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한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다른 데가 아니라,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목숨은 걸지 못해도, 제자(弟子)라면, 아니 적어도 교인(敎人)이라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좀 더 먹고 그 말씀 의지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님께 희망을 거는 길입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기다립니다 (김종임 지음. 시냇물교회. 「성실문화」101호)
오늘 오실까
내일 오실까
언제 오실까
욕심으로 가득찬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채우고
세상의 더러운 옷을 버리고
성령의 능력의 옷을 입고
기다립니다 그때를
기다립니다 그분을
[말씀시조] 참으라 견디어라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1호)
참으라 견디어라 주의 재림 가까웁다
서로를 원망 말고 오실 주님 우러르라
예언자 고난과 인내 본보기로 삼기를
[말씀서예] 야고보서 5:7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1호)
[시편노래] 시편 146, 하나님은 나의 희망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101호)
[본문] (시편 146:5-10)
[노랫말]
1절) 하나님은 나의 희망 나의 도움 만복의 주 / 천지만물 지으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네
공의로 심판하며 억눌린 자 해방하고 / 굶주린 자 먹이시고 갇힌 자 풀어주네
2절) 닫힌 눈을 열어주고 낮은 자를 세우시고 / 나그네와 고아 과부 지키며 도와주시네
악인의 길 꺾으시며 의인의 길 지키시니 / 주의 나라 영원하리 찬양하세 할렐루야
후렴)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해설]
주님의 다스리심을 노래하는 10절을 후렴구로, 5-9절을 1절과 2절로 하여 곡을 붙였다.
[악보] 하나님은 나의 희망 (주원남 지음, 2019.9.29.)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6:5-10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다함께]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시계천사의 푸념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고장 난 배꼽시계를 고치려고 하산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지구별이 발레리나처럼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돕니다.
부지런한 지구별은 제자리에서만 도는 게 아니죠?
해님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기도 합니다.
어라? 지구별이 빙글빙글 뱅글뱅글 도는 동안
지구별을 중심으로 달이 돌고 있었네?
달이 돌거나 말거나, 지구별은 제가 도는 걸 그치지 않아요.
지칠 줄 모르는 저 지구별의 빙글뱅글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하늘나라에서 제일 부지런한 시계천사가
오늘도 수많은 별들의 빙글뱅글을 째깍째깍 꼼꼼히 눈여겨봅니다.
수많은 은하계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려면 눈 깜빡할 겨를도 없겠네?
아마 저 큼지막한 한 덩이 한 덩이 은하계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하나하나 차근차근 세며 보는 게 아니라
마치 파노라마 사진 찍듯 온 우주(宇宙)를 순식간(瞬息間)에 보는 거겠죠?
그런 시계천사가 특히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별이 바로
온 우주의 수많은 은하계들 가운데서도 우리은하계,
우리은하계 중에서도 태양계, 태양계 중에서도 지구별입니다.
왜냐하면, 지구별에는 시계천사를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죠.
공간과 시간의 집인 우주(宇宙)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지은 재미난 집입니다.
우주에는 지구별처럼 늘 정확히 빙글뱅글 도는 별도 있고
100미터 달리기 하듯 내달리거나,
다른 별들을 꿀꺽꿀꺽 삼키다가 빵빵 크게 터지는 것들도 있죠.
우주의 건강을 위해, 공간과 시간 운동을 정확히 살피는 시계천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예언자, 하나님의 예언자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우주의 공간에서, 우주의 시간을 살면서도
종종 그 공간이랑 시간을 깡충깡충 훌쩍훌쩍 뛰어넘는 이상한 사람이거든요.
순식간에 하늘 위의 하늘, 셋째 하늘까지 다녀오질 않나,(고린도후서 12:2)
지구별이 얼마나 많이 빙글뱅글 돌아야 다시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 예수님이
지금 문 앞까지 와서 서 계시는 걸 보고 있질 않나(야고보서 5:9),
심지어 어떤 예언자는, 사자가 풀을 먹는 세상까지 보았다죠?(이사야서 11:6-7, 65:25)
그게 아주 옛날 에덴동산 시절인지, 아주 뒷날 천국 시절일지,
아무튼 시간을 제 마음대로 밀고 당기는 저 예언자들 때문에
시계천사는 머리가 빙글뱅글 돌 지경입니다.
참다못한 시계천사가 하나님께 푸념을 합니다.
“하나님, 예언자들 때문에 제 정확한 계산이 자꾸 흐트러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저 예언자들을 좀 말려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나의 예언자들은 내 이야기를 먹고 산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내 이야기를 먹고 또 먹다보면, 어느새 나와 더불어 나의 시간을 누리며 살게 되느니라.”
시계천사는 ‘하나님의 시간’이 무엇인지,
우주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을 어떻게 모시는지 알기에
금세 머리를 조아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디 어리석고 조급한 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다정하고 아름답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예언자는 사막에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다.(이사야서 35:1-2) 사막 같은 세상에 꽃동산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거름투성이 세상에서 꽃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그 순간 하나님 얼굴에 빙그레 웃음꽃이 피어오르자,
별똥별 하나가 폭죽처럼, 별똥별 또 하나가 나팔꽃처럼 터집니다.
사막에 꽃이 피어오르듯,
깜깜했던 우주공간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빠생각 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
(‘꽃밭에서’ 어효선 시, 권길상 곡)
[이정훈 지음.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 오늘 구약과 서신서 본문을 읽다가, 물리적인 시간은 숫자에 불과한 사람들,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예언자 이사야와 야고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언자 중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을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