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문화 응용하기/설교준비 일지

성령강림 후 제11주 (한정훈)

한, 정훈 2013. 8. 7. 17:55


1.

제목을 <풍요 속 빈곤>으로 정했습니다. 복음서 본문, 누가복음 12장 21절 말씀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

복음서 본문은 누가복음 12: 13 - 21절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신앙이 현세와 내세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비법으로 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부탁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 예수께서 상당히 단호한 어조로 차갑게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15)


그리고 유명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우리가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잦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예수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따져봤을 때의 예수를 혼동합니다. 우리가 대단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합리화의 덫에 걸려서 발버둥 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시지만 필요를 넘어선 욕망에 이용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3.

시편 본문은 104: 1 - 9, 43절입니다. 4절 :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절 :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절 :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절 :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43). 세상, 삶의 중심에 적자생존의 삭막한 원리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의 믿음이고, 관점입니다. 실재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 사실, 또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진실한 인생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적자생존이 세상의 원리라고 한다면, 그게 진실이라면 탐욕이 왜 나쁘겠는가? 살아남는 게 목표라면 살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의 자비가 세상의 원리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한다면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이 마땅한 삶입니다.


4.

구약 본문은 호세아 11: 1 - 11절입니다. 세상살이에는 거저가 없습니다. 빚지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은, 때에-는 이걸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망각의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시간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물을 거슬러 물의 근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은총으로 허락된 새 삶입니다.


그러나!! 한 명도 없습니다(7).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이 심판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제 갈 길로 가는 우리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진노를 거두십니다. 자비를 베푸십니다. 흔히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고 하지만 실은 세상에서는 부요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대해 가난해지기 일쑤입니다. 메가처치 문제를 다룬 책에서 "메가처지를 지향하는 교회는 모두 메가처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부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부를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가난하기 마련입니다.


5.

신약 본문은 골로새서 3: 1 - 11절입니다. 다시 살리심 받았다는 것, 중생, 거듭남을 말합니다. 은총으로 얻은 새 삶입니다. 새 삶을 얻었다면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1). 위의 것은 현세에서 사라질 것이 아닌 영원한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9).


새 사람을 입었으니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10) 새 새람을 입는 것은 관점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는 것 이상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된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새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 풍요를 원하지만 실은 빈곤합니다. 허무합니다. 지치고, 의미 없는 인생입니다. 등떠 밀려 사는 인생이고, 목적도 방향도 자기중심적인 인생입니다. 풍요 속 빈곤은 하늘과 자신에 대한 배신입니다. 영원한 것, 진실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