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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절(왕국절 11주, 창조절 10주, 2019년 11월 3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19. 11. 1. 14:59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누가복음 19:5)

 

[성서일과 4본문]

(하박국서 1:1-4, 2:1-4)

1. 이것은 예언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2.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3.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4.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2:1.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시편 119:137-144)

137. 주님,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님의 판단은 올바르십니다.

138. 주님께서 세우신 증거는 의로우시며, 참으로 진실하십니다.

139. 내 원수들이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니,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140. 주님의 말씀은 정련되어 참으로 순수하므로, 주님의 종이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는 당하지만, 주님의 법도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142. 주님의 의는 영원하고, 주님의 법은 진실합니다.

143. 재난과 고통이 내게 닥쳐도, 주님의 계명은 내 기쁨입니다.

144. 주님의 증거는 언제나 의로우시니, 그것으로 나를 깨우쳐 주시고 이 몸이 활력을 얻게 해주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여러분 모두가 각자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간직한 그 인내와 믿음을 두고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주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12. 이렇게 해서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때의 예감입니다.

 

구약,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박국서 2:3)

시편, “재난과 고통이 내게 닥쳐도” (시편 119:143)

서신서, “온갖 박해와 환란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후서 1:4)

복음서,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가복음 19:4)

 

오늘 요절은,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입니다. (누가복음 19: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하박국서 1:1-4, 2:1-4, 시편 119:137-144)]

오늘 구약본문소제목은 하박국의 호소, 주님의 응답입니다.

하박국은 요시야, 말씀과 예배에 몰두하던 아버지 요시야와 반대의 길을 간

불효자 여호야김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여호야김은 예언자를 죽이고(26:21-23),

심지어 예언의 두루마리를 불태운(36:20-25) 왕입니다.

 

이 무법천지 불의한 시대에도 고집스럽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굳세게 하나님 말씀을 신뢰함’(믿음)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자(2:4)

그가 곧 의인입니다.

(이 정신이 신약으로 이어져 영생의 길을 보여줍니다. 1:17, 3:11, 10:38)

 

하박국은 백성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한 예언자입니다.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법천지 세상이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오리라는 사실을,

하박국은 큰 글자로 새겨 만인이 볼 수 있게 한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소제목은 주님의 법을 찬양함입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늦게 만들어진 이 시편 119편은

176절 내내 온통 하나님 말씀을 칭송하는 유일한 노래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굳세게 붙들지 않았던 조상들의 멸망을 겪은 뒤라서인지,

말씀을 꼭 붙드는 고집스런 기운, 즉 믿음의 기운이 절절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의로우(올바르)시고 진실(순수)하시다는 고백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말씀을 사랑하고(140) 기뻐합니다.(143)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 누가복음 19:1-10)]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교회의 환난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만연한 임박한 종말 신앙,

그렇게 광신적으로 흐르는 종말신앙을 제어하려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해집니다.(3)

그런데 마지막 때에 대한 예감이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교회의 믿음과 사랑은 주님의 이름을 빛내 수 있습니다.(12)

앞으로 두 주 더 이어질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주님의 날을 앞둔 지금 한국교회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소제목은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보통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입니다.

그런 삭개오가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서 믿음의 씨앗을 보십니다.

그리고 바리새파뿐 아니라 모든 여리고 시민들이 분노할만한 행동을 하십니다.(5)

 

그렇게 삭개오의 집에 묵으시는 역사를 통하여

삭개오의 변화가 거의 혁명적으로 급격히 진행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한 기쁨에 들뜬 삭개오의 회개와 결행이 놀랍습니다.(8)

 

지난 주 본문의 비유말씀 <세리의 기도>에서 바로 이어지는

생생한 리얼 현장인 오늘 <세리 삭개오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삭개오의 변화과정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며 주님의 때를 예감하는 삭개오의 심정과

삭개오를 만나 삭개오의 때를 예감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그 고조되어가는 감정선을 한 점 한 점 다시 짚어보면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때, 주님의 뜻을 예감해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공의가 왜곡되고 악인이 득세하는 무법천지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보여도(1:4)

마침내 주님의 때가 옵니다.

예언자는 말씀을 받아 그 때의 예감을 확신합니다.

하박국은 치열하게 여쭙고 또 여쭈어 받은 말씀으로 마침내 든든하게 찬양합니다.(3:17-18)

 

하박국이 받은 말씀 똑똑히 새긴 그 말씀은(2:2)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내 손 안의 스마트폰에도 새겨 있습니다.

주님의 때가 반드시 속히 온다는 말씀이고 이를 굳세게 믿는 자가 믿음찬 의인입니다.(4)

 

오늘 시편 역시 이 말씀이 얼마나 의롭고 진실한지,

얼마나 순수하고 올바른지,

그 말씀을 사랑하고 기뻐한다고 노래합니다.(140, 143)

 

문제는 속히 오실 주님의 때를 맞이할 준비자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훌륭한 반면교사입니다.

교회의 믿음과 사랑은(살후 1:3)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도 지켜져야 합니다.(4)

주님의 때가 임박할수록, 세상의 온갖 불법과 불의에 눈감지 말고 직시해야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빛낼 수 있습니다.(12)

 

지금 한국은 그 어떤 이념도 아니고 오득 이득만이 신념인,

부당한 이득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일(1031) 직후에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이름을 어둡게 하는 거짓과 불법에 놀아나지 말고

나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 주님의 이름을 빛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부당한 이득만을 추구하며 살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급격히 변화하는 모습이 충격적입니다.

삭개오를 보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얼굴 환히 바라보고 싶지만, 삭개오처럼 키가 작고,

예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인파처럼, 나와 복음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내 가까이 다가오고 계심을 예감할 때입니다.

삭개오처럼 망신을 무릅쓰고 뽕나무를 찾아 올라야 할 때입니다.

기를 쓰고 뽕나무에 매달려 예수님과 눈을 맞추려고 바둥거리는

그런 나를 보신 예수님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나머지]

* 예수님과 삭개오

삭개오에게는 판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평생 터득한 이익을 쫓는 동물적 감각으로 인생을 올인해야 할 승부처를 찾은 것입니다. 처음엔 마치 노름판의 타짜처럼 (구라든, 끗발이든)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자 삭개오는 점점 그분 예수님께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돈, 꽁꽁 묶어두었던 돈주머니를 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뒤 삭개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삭개오는 단 한번 예수를 만나 인생이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예수님 만난다고 하면서도 인생이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말씀의 바다에 나를 풍덩 던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내 인생에 맞추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아니라 계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수들의 그렝이 법은 여기서 참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렝이 법이란 한옥 지을 때 쓰는 말입니다. 톱으로 자른 매끈한 나무기둥을 받치기 위해 주춧돌 면을 매끈하게 하지 않고, 반대로 주춧돌 면은 원래 울퉁불퉁한 대로 두고 그 울퉁불퉁한 주춧돌 면에 맞추어 나무기둥 밑동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내어 주춧돌 위에 딱 맞추어 끼워 세울 수 있게 하는 기법입니다. ‘주춧돌이신 주님 말씀에 딱 맞추어 나를 깎아내자!’)

단 한번 예수를 만난 삭개오, 그 인생이 송두리째 변한 반면에, 우리 인생이 여태 변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로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아직 나무 위에만 있다는 말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어서!” 하고 부르시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나무 위에서 언제까지 예수가 어떤 분인지, 조사만하고 있을 것입니까? 멀리서 바라보듯 관망하고만 있을 것입니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만나서 그분을 맛보고, 그분을 먹고, 그분과 하나 되는 곳입니다. 그분의 맵고 쓰고 짜고 시고 달콤한 오미자와 같은 오만가지 맛을 보고, 그 희로애락, 기쁨과 공포와 십자가의 눈물 핏물, 그리고 마침내 신비로운 부활의 환희를, 부활의 능력을 맛보아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길 잃은 아기천사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회. 성실문화100)

천국 살던 아기천사 하나

지상에 내려와 길을 잃네

맛있는 냄새 흘리는 음식과

갖가지 색의 화려한 옷가지

잔뜩 먹고 잔뜩 껴입어 날 수가 없네

 

이를 본 예수님 그대로 내려가

아기천사 손잡고 지구 한바퀴

군살 쏙 빠지고 옷도 다 날라가

홀가분한 아기천사 하늘로 달아나네

 

 

 

 

[말씀시조] 공의가 구부러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0)

공의가 구부러진 악한 세상 속에서도

네 자리 지키거라 이 묵시를 새기거라

의인아 그날이 온다 믿음으로 살기를

 

 

 

 

[말씀서예] 하박국서 2:3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0)

 

 

 

 

 

[말씀노래] 여리고 아리랑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00)

[본문] (누가 19:1-10)

[노랫말] 여리고 아리랑

1. 예수님 여리고 지나가시다 / 뽕나무 삭개오 쳐다보시네

삭개오 삭개오 세리삭개오 / 뽕나무 뭐하러 올라갔느냐

2. 예수님 예수님 우리예수님 / 예수님 보고싶어 올라왔어요

삭개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 오늘은 네집에서 묵어야겠다

3. 사람들 수군수군 난리가났네 / 예수님이 죄인집에 묵으러가네

신이오른 삭개오 크게외치네 / 내재산 세상에 바치렵니다

4. 삭개오 닫힌마음 예수님만나 / 여리고 여린마음 활짝열리네

바로오늘 이집에 구원이왔노라 / 인자는 오늘도 잃은양찾았노라

5.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여리고 삭개오 행복하여라

여리고 여리고 여리여리고 / 여리고 굳은마음 허물어지네

 

[해설]

본문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여리고 아리랑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19:137-144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0)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37. --와여 -는 의로우시고-, -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 주께서 --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 ---하나이다-,

141. ---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아니하-- 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다함께]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으나-, 주의 계명은- -즐거움이니이--,

144. ---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신정절(왕국절) 11, 2019113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하박국서 1:1-4, 2:1-4, 시편 119:137-144,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누가복음 19:1-10

 

 

 

 

 

 

 

 

 

 

 

 

 

 

 

 

 

 

 

 

 

 

 

 

 

 

 

 

 

 

 

 

 

 

 

 

 

 

 

 

 

 

 

 

 

 

 

 

 

 

 

 

 

 

 

 

 

 

 

 

 

 

 

 

 

 

 

 

 

 

 

 

 

 

 

 

 

 

 

 

 

 

 

 

 

 

 

 

 

 

 

 

 

 

 

 

 

 

 

가로열쇠

이름 뜻이 탄원하다인 아람 식(유대) 이름 실라의 로마(라틴)식 이름이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1차 예루살렘 총회 결의안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파송된 인물로서(15:22-23), 유대 출신의 로마 시민이었다(16:37). 그는 마가 요한 동행 문제로 바울이 바나바와 헤어졌을 때,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의 동반자가 되었고,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매를 맞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16:19, 24, 40).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고(고후 1:19), 또 혹자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베드로전서를 대필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벧전 5:12). (데살로니가후서)

에게 해 북서쪽 터마 만(Themaic Gulf) 끝에 위치한 마게도냐의 주요 무역항이며 미항(美港)이다. 발칸 반도를 횡단하는 로마의 주요 간선 도로였던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다. B.C. 315년경 마게도냐의 왕 카산드로스(Casandros, B.C. 316-297년경)가 터마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26개의 마을 주민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뒤 아내이자 필립 왕의 딸이며,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인 테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로 부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여 전도했고 다수의 결신자를 얻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곳을 떠나야 했다(17:1-10). 이후 고린도에서 이 지역 교회로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 뒤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향하는 길에 다시 방문했으며, 이곳의 신실한 두 성도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예루살렘까지 바울을 수행하기도 했다(20:4; 27:2). 바울 당시에는 대략 12만 명이 살았고, 다수의 유대인, 회당 등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13년 이래 다시 그리스 영토가 되어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불리며 수도 아덴 다음가는 인구 200만의 그리스 제2의 도시다.(데살로니가후서)

이름 뜻은 포옹하다’, ‘껴안은 자란 뜻으로, 여덟 번째 소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다(1:1). ○○○○○○서 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감동적인 서정시의 음악성으로 보아, 레위인의 음악 봉사자였던 것 같다.(하박국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이들의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하박국서)

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한ᄋᆞᆯ=큰 알)’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기 위한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으로 통일했다. ○○○에는 하늘이란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데살로니가후서)

 

세로열쇠

노아의 12대 손이요 데라의 아들이며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갈대아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으로서, 바벨론이 수도였는데, 뒤에 바벨론 제국으로 컸다. 우르는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 강변 도시로서, 예전 수메르의 도시국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그의 형제는 나홀과 하란이며, 그의 조카는 롯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름 뜻은 열국의 아버지이다.(누가복음)

사도 바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이며 후계자로서,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기독교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으로 추측되지만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긴 목회자다. 바울과 함께 여러 서신서의 공동발신인이기도 하다.(‘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선교로 세워진 데살로니가, 고린도, 빌립보 교회 등을 방문하도록 이 동역자를 자주 파송했다.(데살로니가후서)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낱말인 여호수아(예수아)의 헬라 말 이름이다. 인류의 구세주시며, 거룩한 아드님이신 하나님, 곧 성자(聖子)하나님의 이름이시다.(데살로니가후서, 누가복음)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 이 이름이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여기에는 상반된 이미지가 담겨 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견주어 약하고 덧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몸소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실 분, 심판 후 왕국을 지배하실 분(다니엘 7:13-14)이라는 뜻을 담아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한다.(누가복음)

하나님, 임금, 주인, 기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부를 때, 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쓰던 호칭.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며, 특히 개역성경의 여호와를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람어로 마레’, 헬라어로 퀴리오스를 이렇게 번역한다.(하박국서, 시편, 누가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스머프 마을에 뽕나무가 필요한 까닭은?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뽕잎 따던 시절 이야기예요.

 

어느 날 예수님이 스머프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었어요.

 

이게 실화냐?”

 

발 없는 소문이 십리 백리를 달리더니

여기저기 너도나도 예수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달려오네?

피노키오도 달려오고 피터 팬도 달려, 아니 날아왔어요.

곰돌이 푸도 뒤뚱뒤뚱 달려오고 겅중겅중 티거도 달려왔죠.

 

어디 그뿐이겠어요?

더운 나라 라이온킹도 달려오고, 얼음나라 엘사도 달려오고,

구름타고 손오공도 날아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도 달려오고,

머털도사도 달려오고, 로보트 태권브이까지 달려왔죠.

 

뽀로로도 달려오고 핑구도 달려오고,

너무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셀 수 없지만,

아무튼 제일 끝에 도착한 것은

너울너울 날아온 아기코끼리 덤보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스머프 마을 소문을 듣고 이웃마을에서 달려온 손님들 때문에

정작 스머프들은 예수님 얼굴을 볼 수가 없네?

라이온킹을 따라온 동물들이 뭐 저리 많담?

뽀로로 친구들도 이렇게나 많았던가?

언제 왔는지 시커먼 가가멜조차 기웃거리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불청객들 때문에 예수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 잔뜩 속상한

욕심이 스머프랑 투덜이 스머프가 한바탕 투덜거립니다.

 

파파 스머프! 우리 모두 마을을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면 저 불청객들이 와르르 쓰러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 얼굴 볼 수 있겠죠?”

 

그러자 성경책을 들고 있던 똘똘이 스머프가 한마디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뽕나무 가로수라도 심어두는 건데...”

 

 

불청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이렇게 외칩니다.

 

호산나, 호산나!”

 

드디어 예수님이 스머프 마을에 들어오셨나 봐요.

스머프 마을엔 불청객이지만,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저들이

예수님 보고 싶어 부리나케 스머프 마을로 달려온 건

상상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인기 비결이 궁금했던 겁니다.

 

엘사는 예수님의 헤어스타일이 궁금했고,

라이온킹은 예수님의 포스가 궁금했고,

손오공은 예수님이 타고오실 구름이 궁금했고,

그리고 피노키오는 예수님 진실의 힘이 궁금한 겁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얼굴을 본 저 불청객들이 하나같이 호산나!’하고 외치는 건

예수님 얼굴에서 정말 꿈에 그리던 그걸 보고 예수님 닮고 싶었던 게 틀림없어요.

호산나도와주세요, 구원해주세요!’ 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스머프들은 더 안달합니다.

 

 

어느덧 예수님 일행은 환호하는 불청객들에게 둘러싸여

스머프 마을을 떠나가고

뒤에 남은 스머프들은 서로 마주보며 한숨 짓습니다.

 

아까 백설공주랑 온 일곱난장이들처럼 우리가 서로 번갈아 무등을 탔더라면 예수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맞아, 예수님이 욕심이 스머프 얼굴을 보셨다면 분명히 우리 마을에서 주무셨을 텐데...”

 

우울한 스머프들의 넋두리를 들으며

파파 스머프가 한마디 합니다.

 

우리가 일곱난장이들보다 협동심이 부족한 걸 반성하자꾸나. 그리고 오늘부터 똘똘이 스머프가 대표로 성경책을 읽고 우리 모두 듣도록 하자. 비록 눈으로는 예수님 얼굴을 못 보았지만, 귀로는 예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스머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똘똘이 스머프가 한마디 거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너도나도 예수님 믿는다면서도 예수님 닮은 사람은 별로 없어. 그건 평생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 조사만하고 있는 꼴인 거겠지. 얼른 뽕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잔 삭개오처럼 예수님과 친해져야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거거든.”

 

똘똘이 스머프가 얼른 성경책을 찾아 의젓한 목소리로 읽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누가복음 19:9)

 

스머프들 마음에 얼굴빛보다 더 푸르른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정훈 지음. 2019112일 토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