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6주 (2019년 5월 26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한복음 14:23)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16:9-15)
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4.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15.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시편 67)
1.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 (셀라)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4. 주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의 온 나라를 인도하시니, 온 나라가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치면서 노래합니다.(셀라)
5.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6. 이 땅이 오곡백과를 냈으니,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니, 땅 끝까지 온 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여라.
(요한계시록 21:10, 22-22:5)
10. 나를 성령으로 휩싸서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24.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5.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7.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22:1.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3-29)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29.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주님과 친교하다’입니다.
사도행전,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사도행전 16:14)
시편,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시편 67:2)
서신서,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계시록 22:4)
복음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복음 14:23)
오늘 요절은,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입니다.(요한복음 14:23)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16:9-15 / 시편 67)]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바울이 환상을 보다, 루디아가 믿다’입니다.
바울이 우여곡절 끝에 유럽선교를 시작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빌립보에 이르고,
유럽선교의 첫 열매가 될 루디아를 만납니다.
인상적인 것은, 바울이 먼저 청하여 거기 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말씀(복음)을 듣기 원하는 간청으로 빌립보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9-10)
그리고 루디아의 집에까지 가서 묵게 된 것도 그러합니다.(15)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첫 계획을 막힌 것도, 루디아의 마음이 열린 것도(14) 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온 세계 위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입니다.
오늘 시편노래는 복(福)으로 시작해서 복(福)으로 마칩니다.
1절은 민수기 6:24-26절의 <제사장의 축복>을 줄인 꼴입니다.
추수철(수장절) 제사장의 축복에 대한 응답찬양처럼 보입니다.
복(福)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복(福)주시는 “주님의 뜻”(“주의 도”-개역개정, “당신의 길”-공동번역)은
주님의 공의, 공의로운 심판과 통합니다.(4)
(추수는 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추수한 쌀(禾)을 나누되(口) 공평하게(平) 하는 것을 가리키는 “평화(平和)”입니다.
여기 진정한 친교가 있습니다.
친교의 핵심인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이 친교, 이 평화를 이루는 곳에서 주님과의 친교가 살아납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 ‘떼제 찬양’ 중에서)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21:10, 22-22:5 / 요한복음 14:23-29)]
오늘 계시록본문의 소제목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안이 해처럼 밝은 빛으로 가득하니
낮과 밤이 따로 없고 대문은 늘 열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나 그 문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을 행하는 자는 못 들어갑니다.(27)
왜냐하면, 그런 더러운 것들은
“새 예루살렘(큰 평화의 집)”의 친교를 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교의 핵심인 평화, 그 알맹이인 사랑과 정 반대 세계의 것들, 즉
육에 속한 것들, 어둠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부활절의 중요한 주제는, 성부와 성자의 친교(궁극적인 결합)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를 완전히 깨친 자들,
즉 제자들과 삼위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23)
이러한 친교의 모습은(23)
오늘 본문 앞에 있는 14:2-3절과 크게 대비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에게로 오시니 말입니다)
심지어 이 친교(동거)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친교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교의 열쇠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증거는 “내 말(주님의 말씀)”을 깨치고 지키는 것입니다.(23)
이는 15절 말씀의 반복이고(21) 또 반복일 만큼(23) 중요하고 필수적입니다.
그 사랑, 그 말씀,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26)
이 신비롭고 기쁜 <친교>의 열매요 동시에 열쇠인 평화!
예수님께서 “내 평화”라고 강조하신 그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27)
(평화를 비는 인사 “샬롬”을 넘어 이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아무 근심걱정 필요 없는, 평화입니다.(27)
자그마치 20-21절, 23절 수준의 신비로운 친교요 그 평화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부활절 6주 성서일과 4본문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님과 친교하다’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주님께서 친히 이끄십니다.
바울이 갈 길도, 바울의 계획과 다른 길로 주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주님께서 친히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고(행 16:14)
첫 신도로 세례 받아 주님과 하나 된 뒤에
바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친교로 이끄십니다.(15)
시편 기자가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길 간구합니다.(1)
이는 오늘 계시록 본문과 통하며(계 21:23, 22:4-5)
이는 하나님의 공의, 공평과 정의의 심판으로 이어집니다.(시 67:4)
이때 백성은 온전한 복(福), 온전한 평화(平和), 온전한 친교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코앞에 두신 상황에서 사랑과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그 안에 성부와 성자가 하나 되고, 나아가 우리와 하나 되시는(요 14:23)
친교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아무 두려움 없는 “내 평화”의 정체를 다시 새깁니다.(27)
지난주 계시록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도 빛고을 광주(光州)를 느낍니다.
큰 평화의 집 예루살렘 성이 로마군에 의해 무너지고 학살된 몇 십 년 뒤
요한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빛고을 광주가 무너지고 학살된 39년 만에 비로소 그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둠에 묻혔던 빛고을이 다시 빛나기 시작하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요 1:5) 그리고
오늘 계시록본문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가득한 빛 때문인지(21:23, 22:5)
더욱 빛고을이 떠오릅니다.
그 문은 밤낮 열려있으나,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 때문에(21:27)
더욱 빛고을 광주가 떠오르나 봅니다.
황차, 새 예루살렘 성이겠습니까!
부디 거기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물과 생명나무 열매와 나뭇잎이 민족들을 치료하듯이(22:2)
새 예루살렘 성과 그 보좌에 계신 어린양을 가장 많이 닮아야 할 교회,
그 한국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평화의 말씀, 공평과 정의의 말씀,
사랑과 친교의 주님 말씀이, 광주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기를 빕니다.
39년 전 오늘 5월 26일,
계엄군의 마지막 광주학살 하루 전날인 오늘,
빛고을을 사수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아 죽음을 택했던 이들의 유족들의 상처와,
오늘 그 자리를 떠나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온 모든 이들의 모든 상처들을
따뜻하게 치료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빛고을과 이웃 고을들이 진심으로 친교하고,
한반도가 온통 친교 할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친교의 열매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 하늘 문이 열리고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문이 열릴 때
계시록의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릅니다. 21세기 예루살렘의 반(反)평화를 생각할 때, 오늘 예수님 말씀은 마치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21세기 한반도는 어떠한가? 이미 오래 전 완전히 닫혀버린 개성공단 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개성의 이름 뜻이 새삼스럽습니다. 바로 개성(開城)아닙니까? 그 이름만큼 활짝 열려야 제격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문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시록 21:27)
이 말씀의 거울에 지금 우리 한반도의 반(反)평화스런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개성공단 닫힌 문을 활짝 열고, 굳게 닫힌 판문점(板門店) 문을 활짝 열어젖힐 열쇠를 봅니다. 옛 개성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새 개성(開城)의 활짝 열린 문을 미리 봅니다.
** 무엇이 그리 급하셨나? 하늘문 쪼개고 내려오시다니!
주님께서 친히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나에게 오시다니, 이런 황감(惶感)한 일이! 주님께서 왜 오십니까? 내가 주님 말씀 고스란히 지키며 살기 때문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내가 주님 사랑한다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 아닙니까?(요한복음 14:23-24) 문득 이사야 64장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늘 문을 여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쪼개고 내려오시는 그분! 그만큼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벅차고 뜨겁습니다.
1.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입니다. 2.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적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님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십시오. 3. 주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들이 예측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에,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4. 이런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말고 어느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5. 주님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이사야 64:1-5)
(※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배움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성실문화」98호)
학교 가는 게 두려웠던 나는
지금은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책이 주는 교훈은
스마트폰의 정보와는 달랐다
꾸역꾸역 머릿속에 넣었던 단어들은
이제 술술 잘 기억나고
공부라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배우는 것에 빠져있다.
[말씀시조] 바울이 복음 들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8호)
바울이 복음 들고 빌립보에 다다르니
루디아가 마음 열고 말씀을 경청하네
마침내 세례를 받고 예수제자 되도다
[말씀서예] 사도행전 16:14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8호)
[말씀노래] 누구든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98호)
[본문] 요한복음 14:23-29
[노랫말]
1. 누구든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 내말을 지킬것이다
내아버지 그사람 사랑하시고, 우리모두 그사람과 함께살리라
2. 누구든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 내말을 지킬것이다
보혜사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내말을 기억나게 하실것이다
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한다면, 나 떠나는 것이 기쁠것이다
나 다시 돌아올테니 걱정말아라, 내가주는 큰평화를 맘껏누려라
[해설]
요한복음 14:23-29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원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누구든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6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8호)
(※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얼굴-) 빛을-, (얼-굴-빛을) 우리에-게- 우리에게 비-∼추∿사-∼(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셀라)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다함께]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모든-) 끝이-,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6주, 2019년 5월 26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도행전 16:9-15, 시편 67, 요한계시록 21:10, 22-22:5, 요한복음 14: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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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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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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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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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
모 |
드 |
라 |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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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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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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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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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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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
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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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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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압 |
볼 |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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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 |
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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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
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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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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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
보 |
혜 |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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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
디 |
아 |
가로열쇠
①‘드라게의 높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섬인데, 소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의 네압볼리로 가는 에게해 상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에 산이 많은데 섬 중앙에는 168m 높이의 펜가리(Fengari)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 에게해 바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육표의 역할을 한다.(사도행전)
②시편에 주로 나오는 노래 부호(시편 71회, 하박국 3회 등)로서, 정확한 뜻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다음 몇 가지 뜻으로 추측할 뿐이다. ‘찬송 중 회중이 인도자에게 어떤 응답을 하는 신호’, ‘잠시 쉬라는 표시’, ‘노래나 악기 소리를 높이라는 부호’ 등. 시편 연구자 중에는 이것이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시편 낭송 때 “○○”라고 소리쳐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시편)
③이름 뜻은 ‘신도시’란 뜻이다(Neapolis). 에게해 북쪽에 있던 항구도시이며 빌립보 남동쪽 14㎞ 지점의 외항. 사도바울 일행이 2차 선교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가 당도한 첫 번째 성읍이다(행 16:11). 바울 일행은 이 성읍에서 유명한 에그나티아 도로를 이용하여 빌립보로 이동했을 것이다. 지금은 ‘카발라’(kavalla)로 불리는 그리스 소도시다.(사도행전)
④헬라어 성경의 ‘파라클레토스’를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으로서, ‘돕는 이’라는 뜻이다. 공동번역 성경은 ‘협조자’로 번역했다.(요한복음)
⑥‘○○○ 지방 사람’이라는 뜻이다. ○○○는 ‘생산’이라는 의미로서, 소아시아 서안 지대의 중앙부에서 오지에 걸쳐 위치한 큰 성읍이다. 이곳 출신으로서 바울이 전도한 자색 옷감장수도 이 이름으로 불린다.(사도행전)
세로열쇠
①이름 뜻은 ‘관통’이다.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소아시아 서쪽의 트로이(Troy) 남방 약 25㎞ 지점에 위치한 에게 해 연안 항구 도시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했기 때문에 로마 식민 도시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차 선교여행 때도 이곳을 거쳐 마게도냐로 향하였으며, 귀향길에도 여기서 7일을 머물며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었다(행 20:5-6). 이때 바울은 가보의 집에 머물며 그의 겉옷과 책을 남겨두었던 듯하다(딤후 4:13). (사도행전)
②소아시아에 있는 비옥한 성읍으로 교통의 요지이며 상업의 중심지였다. 각종 산업 발전에 힘입어 이곳에는 로마 황제, 태양신 아폴로, 미의 여신 아데미 등을 위한 온갖 신전들이 산재해 있었다. 유럽 첫 신자인 빌립보의 루디아(Lydia 리디아)의 고향이며,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의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사도행전)
④마케도니아 스트림몬 강과 네스토스 강의 경계, 에게해 내륙 약 16㎞지점에 있는 도시로서, 주전 358년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의 부왕인 빌립2세가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전 168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주전 42년 경부터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 와서 살았다고 전한다.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실라가 첫발을 디뎌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워 전도의 문을 열었다. 그 당시 출신과 종교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도시였다.(사도행전)
⑤히브리어로 ‘보냄 받은 자’, ‘심부름꾼’, ‘사자’를 의미하는 말을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을 가리킨다. 때때로 이 심부름꾼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요한계시록)
⑥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의 고향이며, 신약성경 시대에는 로마의 지방영토로서 수도는 데살로니가였다. 오늘날 그리스 가장 북쪽부분으로서, 아드리아에서 에게까지 펼쳐져 있다.(사도행전)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두물머리에서 해님달님 목욕하는 꿈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한강수타령 부르던 시절 이야기예요.
“1.한강수라, 깊고 맑은 물에, 수상선 타고서, 에루화 뱃놀이 가잔다, (뒷소리)아아 에헤요, 에헤요 어허야, 얼쌈마 둥게 디여라, 내 사랑아∼ 2.양구 하천 흐르는 물, 소양정을 감돌아, 양수리(兩水里)를 거쳐서, 노들로 흘러만 가누나, (뒷소리) 3.노들의 버들은, 해마다 푸르른데, 한강을 지키던 임, 지금은 어디로 가셨나∼ (뒷소리)” (한강수타령, 경기민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춰섭니다.
귀를 쫑긋쫑긋 세우고 소리 나는 곳으로 몰려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의 주인공은 하얀 머리 하얀 수염 할아버집니다.
뉘엿뉘엿 해 저무는 양수리 두물머리가 할아버지 노래신명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도 어깨가 들썩일 만큼 흥이 배어 있으면서도
어딘지 우수에 찬 느낌도 있는 노랩니다.
모든 노래는 R&B로 통한다고 큰소리치는 청어의 눈이 가늘어질 만합니다.
청어도 할아버지 노랫가락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나도 몰래 너도 몰래 어느새 청어 녀석이
할아버지 곁에 바짝 다가가 있네?
구름이도 태양이도 화들짝 놀랄 만합니다.
“저, 할아버지. 지금 부르신 노래 제목이 뭔가요?”
갑자기 다가온 낯선 아이의 굵직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둥그렇게 대답하십니다.
“한강수타령이야.”
“오! 역시, 과연, 타령이었군요!”
“그런데 너는 누구냐? 타령이 좋으냐?”
“아뇨, 타령 잘 몰라요. 저는 그냥 요새 애들 좋아하는 알엔비라는 음악 하는 학생이에요.”
구름이랑 태양이랑 멀찍이서 계속 감탄을 연발하고 있습니다.
역시 음악하는 사람끼리는 통한다느니,
음악은 국경을 초월하고 세대도 넘나든다느니 ...
할아버지의 타령 소리에 매료되어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 둘 제 갈 길로 가는 사이에
구름이랑 태양이는 청어 곁으로 바짝 다가갑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흰 청어 친구들이예요.”
“청어? 네 이름이 청어였느냐?”
“예, 그냥 제 별명 같은 거예요. 진짜 이름은 운형이고요, 남운형! 이름이 좀 촌스럽죠?”
청어가 제 이름이 촌스럽다며 해 저무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빙글거리는 사이에
구름이랑 태양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할아버지의 눈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듯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는 겁니다.
“네 이름이 운형이라고? 그게 정말이냐?”
어느새 청어랑 친구들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두물머리 근처 팥죽집에 앉아 팥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태 눈물이 그렁거리시는 할아버지가 청어,
아니 운형이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으십니다.
계면쩍어 하면서 청어가 슬그머니 손을 빼자
할아버지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시다가
촉촉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오늘이 바로 몽양 선생님 생신이란다. 백서른 세 번째 생신이지.”
“몽양 선생님이 누구신대요?”
“아니 몽양 선생님을 모른다고? 천하의 여운형 선생님을 몰라? 너랑 이름도 같으신데?”
청어가 벅벅 머리를 긁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랑 태양이는 서로 마주보며 눈만 껌뻑거립니다.
어느새 시작된 할아버지의 숨 가쁜 강의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어쩌면 몽양 여운형 선생님에 관한 박사학위를 갖고 계신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몽양이라는 분, 세상에 이런 위인이 또 있으실까 싶을 정도입니다.
스물한 살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몽양이
가난한 사람들 빚문서와 집안 종들의 노비문서를 다 불태우며
종들에게 하신 말씀,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의 형제요 자매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슨 예수님 말씀 비슷하다 했는데,
동학 가문에서 태어난 몽양은 어느새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유달리 국제정세에 밝으시고
늘 남보다 한발 앞서 가시는 바람에
사람들은 몽양을 존경하는 한편 의심도 하고 질투도 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청년들의 건강과 기백이 필요하다 강조하시며
틈만 나면 운동의 필요성을 외치시는 한편
스스로 윗도리를 다 벗고 사진 모델이 되시기도 했습니다.
많은 연세임에도 열심히 철봉을 해서 근육이 붙은 몸매 사진입니다.
“너희 혹시 두물머리 뜻은 아느냐?”
넋 놓고 몽양 선생님 역사를 숨 가쁘게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양수리(兩水里)요!”
“옳지, 잘 아는구나. 몽양 선생님 고향이신 양평을 감고 도는 북한강이랑 남한강 두 물이 만나서 어우러지는 곳이 두물머리란다. 그럼 몽양 선생님께서 왜 두물머리를 사랑하셨지 그 이유도 아느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양수역 바로 다음이 신원역이지? 두물머리 이웃마을인 신원리에서 태어나신 몽양 선생님의 호가 왜 몽양이냐 하면, 몽양 선생님이 태어나시기 전 할아버지께서 태몽을 꾸셨는데, 환한 태양이 어머니 치마 품에 와서 안기는 꿈이었단다. 그래서 꿈 몽(夢), 볕 양(陽), ‘몽양’이 되신 거란다.”
“그럼 그 꿈속에서 두물머리가 펄펄 끓지 않았을까요? 그 큰 태양이 바로 옆 마을에 떨어졌으니!”
잔뜩 흥분한 태양이가 느닷없이 한마디 하자,
청어랑 구름이의 입이 동대문처럼 떡 벌어집니다.
할아버지도 활짝 웃으시며 한 말씀 더하십니다.
“달님도 떨어지면 어떨까? 해님달님이 더불어 두물머리에서 목욕한다면, 펄펄 끓지는 않고 적당히 따끈하겠지?”
아이들 마음이 조약돌을 싸고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게 빛납니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는 쏟아지는 은하수처럼 빛나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강대국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죽음권세 앞에 늘 오돌오돌 떨며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몽양 선생님의 평생 꿈이요 마지막 꿈은 진정한 광복(光復), 즉 통일이었단다. 수없이 이어지는 반대파의 테러 속에서,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몽양 선생님에게는,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죽음보다 강한 꿈이 있었단다. 마치 기나긴 여행 끝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어우러지는 것처럼, 남한과 북한이 하나 되는 꿈 말이다.”
이야기를 마치시며 할아버지가 나지막한 소리로 흥얼거리십니다.
“노들의 버들은, 해마다 푸르른데, 한강을 지키던 임, 지금은 어디로 가셨나∼” (한강수타령)
그제야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한강수타령이
왜 그렇게 신나면서도 구슬펐는지 이유를 알 듯합니다.
두물머리를 보고 자라면서, 무럭무럭 두물머리의 꿈을 꾸시던 몽양 선생님!
태양처럼 강렬한 통일의 꿈을 품으신 몽양을 그리워 부르는 노래였던 것입니다.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이 나옵니다.
군침을 흘리면서 구름이가 외칩니다.
“내 팥죽 사발이 두물머린가? 해님달님이 목욕하고 있어요!”
다함께 활짝 웃음꽃 피우는 사이에 청어에게 작은 꿈이 하나 피어오릅니다.
할아버지의 한강수타령을 알엔비로 만들어 부르는 꿈입니다.
청어의 알엔비 한강수타령에도
몽양 선생님의 해처럼 따뜻한 두물머리 꿈이 피어오를 것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