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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1주(2018년 12월 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18. 12. 1. 13:35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신다(시편 25:8)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서 33:14-16)

14.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15.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16.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시편 25:1-10)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3:9-13)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 주셔서, 우리를 여러분에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2. ,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13.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누가복음 21:25-36)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3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36.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그 날, 그 길입니다.

 

구약,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줄 그 날이 오고 있다”(예레미야서 33:14)

시편,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시편 25:4)

서신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주셔서”(데살로니가전서 3:11)

복음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누가복음 21:34)

 

오늘 요절은,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신다입니다.(시편 25: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서 33:41-16, 시편 25:1-10)]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23:5-6절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백성의 불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과 예루살렘 멸망,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 날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태어날 의로운 가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15)

 

복된 약속이란(14)

공평과 정의”(15) 구원”(16)을 이루실

의로운 가지”(15)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지은 시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3, 5)이란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

, 가던 길 멈추고 하나님을 향하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8)

그 길은 올바른 길(8), 곧 주님의 길(4), 진리의 길입니다.(5)

 

제대로 회개하기 시작하면 겸손해져서(9)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손을 잡고 동행하게 됩니다.(10)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3:9-13, 누가복음 21:25-36)]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기를 원하다입니다.

데살로니가에 갈 수 없게 된 바울이

대신 보낸 디모데 편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고

크게 위로받고 기뻐 감사합니다.(9)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11)

사랑의 길(친교), 곧 하나님 사랑의 통로입니다.

지금 바울은 그 길을 구하고 있습니다.(11)

 

이 사랑의 길, 친교의 길이 열림으로

성도간의 사랑과 이웃과의 사랑이 풍성해집니다.(12)

이 길이 바로 우리가 거룩해짐으로써 참 성도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13)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인자가 오신다, 깨어있어라입니다.

인자가 오심으로 일어날 세계사의 종말로

세상 사람들은 크게 무서워하고 제자들은 소망의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28)

이 모든 천재지변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28, 31)

 

이런 일이 다 일어날

이 세대가 끝나기 전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32)

다만 누가는 사도행전 1:6-8절에서, 부활예수님의 육성을 통하여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한 번 더 정리해줍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그 날이 덫과 같은 황망한 고통과 공포의 날이 아니라

기쁨과 구원의 날이 되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36)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원래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대림절기 빛깔이

회개와 근신, 금식과 금욕을 상징하는 보랏빛인 것입니다.

 

주님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확한 날짜를 알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날이 가까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살전 5:4-5)

그래서 벗들에게 탐욕과 술 취함을 경계하는 것입니다.(누가 21:34)

그래서 성도는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 오실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 길을 닦는 일이란,

먼저 나를 닦는 회개의 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주님의 길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25:4-5, 8-10)

 

또 그 길을 닦는 일이란,

성도 간에 교통(친교)하는 사랑의 길,(살전 3:11-12)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길입니다.(12)

그 길이 반들반들해 질 정도로 일상적으로 나누는 일입니다.

그게 우리가 거룩해지는 길, 그게 바로 그 길을 닦는 일입니다.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는 말씀을 보니(누가 21:34)

오늘 본문들의 그 날그 길의 뜻이 통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과 주님 오시는 그 길

만유를 초월해 계시는 그분께서

우리 삼차원 세계로 내려오심의 강력한 상징들입니다.

 

문제는 덫입니다.

덫이란 짐승이 늘 다니는 길에 설치하는 법입니다.

올무도 그렇고 창애도 그렇고, 그물도 그렇습니다.

 

주님 오시는 길이, 주님 오시는 날이 바로

우리가 늘 다니는 길, 우리가 늘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상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작은 것부터 회개하여 방탕과 탐욕으로부터 해방하고

이웃과 한없이 나누는 일 말입니다.

 

 

[나머지]

* 메시지(message)와 마사지(massage)

예레미야를 읽을 때마다 메시지와 마사지가 떠오릅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청년부 활동 열심히 하던 제기동 동성감리교회 시절이야기입니다. 늘 똘똘하고 샤프한 후배였던 동원이가 자기 동기 여학생에게 핀잔을 줍니다.

 

마사지가 뭐냐, 메시지를! 넌 맨날 틀리더라...”

 

아마 청년부 회지 만들다가 생긴 일로 기억합니다. 7개 철자 가운데 하나를 잘못 쓴 겁니다. “e”“a”로 쓴 겁니다. 도찐 개찐, 거기서 거기 같은데, 모양도 비슷하고 발음도 비슷한데... 뜻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예레미야뿐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성경말씀의 예언자들은, 참 예언자들은 늘 왕따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천하의 엘리야조차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떻습니까? 둘 다 포악한 왕비들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저리 된 것입니다. 심지어 요한은 옥에 갇히고 목까지 잘립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언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의 부정한 사생활 문제까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간혹 그런 설교를 할 때 치는 설교한다느니, ‘정치적이라느니 합니다. 그런데 설교는, 예언자는 그런 걸 외면해선 안 됩니다. 지금 나의 모습, 우리 교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무리 부끄러워도, 그걸 감추려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의 거울에 비친 그 추한 모습을 끄집어 내 직시하도록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강해식 설교를 해도, 그 말씀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걸 정치적이라느니,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느니 한다면, 그건 이 마지막 때에, 어쩌면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막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성경교사와 달리 예언자는, 예언자의 설교는 스스로 왕따와 테러 같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고 메시지를 전해야 할 예언자가 성경말씀으로 사람들 마음을 마사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덫과 지뢰, 그리고 철로

짐승 잡는 덫과는 비교 되지 않을 것이 지뢰입니다. 인간 탐욕의 끝판왕이라 할 만합니다. 지금 남과 북은 그 지뢰를 제거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비무장지대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과 북을 잇는 길을 위하여 북측 철로 보수를 준비하려고 남측의 철로 점검 일꾼들이 열차를 타고 북측으로 떠났습니다.(20181130일 금요일) 이런 일 하나하나가 주님 오실 길을 닦는 회개의 길이요, 화해의 길이요, 교통의 길입니다. 이런 나눔이 좀 더 확대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 날이 점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말씀동시] 질문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97)

언제 올지 모르는

하나님 나라.

 

, 어제는 잘 살았나?

, 오늘은 성실하게 살고 있나?

,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했나?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았나?

 

 

 

 

[말씀시조] 보아라 눈을 떠라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7)

보아라 눈을 떠라 그날이 오고 있다

전쟁터 예루살렘 평화의 땅 될 것이다

의로운 가지가 돋아 공평정의 이루니

 

 

 

 

[말씀서예] 예레미야서 33:1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7)

 

 

 

 

 

 

[말씀노래] 늘 깨어 기도하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7)

[본문] (누가복음 21:25-36)

[노랫말]

1. 일월성신 징조들과 바다의 성난파도, 천지가 흔들리니 인생들은 혼비백산,

   그 때에 사람들은 주의재림 볼것이다, 영광스런 구름위의 인자를 볼것이다.

2. 천지가 흔들릴때 일어나 머리들라, 너희의 큰구원이 가까이 왔음이라,

   나뭇잎이 돋아나면 여름기운 느끼듯이, 이런일들 일어나면 천국기운 확신하라

3. 이세대가 가기전에 천지가 움직인다, 천지는 사라져도 주의말씀 살아있다,

   깨어라 조심하라 허랑방탕 하지말라, 세상살이 걱정말고 늘깨어서 기도하라.

 

[해설]

누가복음 21:25-36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늘 깨어 기도하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25:1-1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7)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 ---- 영혼---,

   주-를 우러러보나--, (-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 -의 도-를 내----,

   (----) 보이--, -의 길-내게 가르치소--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 -긍휼하심과- 인자하----,

   영-원부터- 있었사오-, -이것들-- --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다함께]

10. --------, ---- ----,

   그-의 언약과 증거---,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대림절 1, 2018122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예레미야기 33:14-16, 시편 25:1-10, 데살로니가전서 3:9-13, 누가복음 21:25-36

 

 

 

 

 

 

 

 

 

 

 

 

 

 

 

 

 

 

 

 

 

 

 

 

 

 

 

 

 

 

 

 

 

 

 

 

 

 

 

 

 

 

 

 

 

 

 

 

 

 

 

 

 

 

 

 

 

 

 

 

가로열쇠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낱말인 여호수아(예수아)의 헬라 말 이름이다. 인류의 구세주시며, 거룩한 아드님이신 하나님, 곧 성자(聖子)하나님의 이름이시다.(데살로니가전서, 누가복음)

뽕나무과의 낙엽 관목. 키는 3-5m 가량 크며 매끄러운 나무껍질로 덮인 가지에는 넓은 손바닥 모양의 수많은 잎들이 달린다. 아열대 지역에서는 4계절을 통해 열매를 맺지만 산악 지방에서는 1년에 2회 정도 결실한다. 봄부터 여름 사이에 많은 잎이 나오는데 이것은 여름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이때 암수로 된 꽃이 피게 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여 ○○○○○라 한다. 열매는 즙이 많아 그대로 먹거나 건조시켜 먹기도 한다. 소아시아의 건조 지대가 원산지로, 팔레스타인에서는 일찍이 널리 재배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팔레스타인 지방을 ○○○○○와 포도나무의 땅이라 지칭하기도 했다(13:23). 성경에서는 ○○○○○를 비유적으로,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왕상 4:25; 4:4; 3:10), 그밖에도 여러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썼다.(누가복음)

야곱과 레아의 아들 중 하나로서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지만 맏아들처럼 큰 지파를 이룬다. 이름 뜻은 찬송함이라는 뜻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온 뒤, 남부에 정착하여 남북왕국이 분열될 때 남왕국의 중심을 이룬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몇 있다.(예레미야서)

하나님이 임금님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 다른 말로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 나라의 위치는 하늘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그 어디일 수도 있다. 즉 이 나라는 어떤 장소라는 개념 보다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를 뜻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부드러운 나라, 즉 사랑의 힘이 센 나라다. 이는 예수님 복음의 핵심으로서, 예수님은 늘 이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고(마가 1:15), 또는 이미 왔다고 말씀하셨다.(누가 11:20) (누가복음)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 이 이름이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여기에는 상반된 이미지가 담겨 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견주어 약하고 덧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몸소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실 분, 심판 후 왕국을 지배하실 분(다니엘 7:13-14)이라는 뜻을 담아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한다.(누가복음)

 

세로열쇠

다윗 왕국의 수도인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전 4,0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 뜻은 평화의 성읍인데, 예나 지금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과 폭력이 가득한 도시다.(예레미야서)

만유(萬有)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는,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한ᄋᆞᆯ=큰 알)’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기 위한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으로 통일했다. ○○○에는 하늘이란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는 의견도 있다.(시편, 데살로니가전서, 누가복음)

주전 약 1,000년 전 인물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임금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부터 충실한 목동으로 자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여러 시편을 지었다. 어린나이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매 돌로 무찌른 일로 유명하다.(예레미야서)

히브리어 체다카를 번역한 말로서, 개역개정판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거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올바른 마음 자세나 삶의 태도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되며, 사회나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 언급될 때는 주로 정의란 표현으로 구분하여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고 의롭게 하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품성이라 정의 하는데, 정리하자면, ○○란 공평과 정의를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품성 중 하나이다(18:25, 8:3, 37:23, 30:18). (시편)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흔히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예레미야서)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바둑이와 돌부처의 바둑대결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바둑 두다 말고 바둑돌로 공기놀이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찬바람에 코끝이 쨍하던 어느 날

우리 동네 삽사리랑 바둑이가 딸랑딸랑 마을 산책을 합니다.

덩치 큰 삽사리는 발바리 바둑이랑 단짝입니다.

 

욕쟁이 할머니 댁 감나무에 딱 하나 남았던 까치밥이

보름달에서 반달로 하루하루 사위어가더니

그믐달도 되기 전에 어느새

달랑 감꼭지만 남았네?

 

덩그러니 하나 남았던 달덩이 까치밥

하루하루 발그레한 까치밥을 바라보는 낙에 살던 바둑이가

시무룩 고개를 숙이자 삽사리가 위로합니다.

 

바둑아, 감도 맛있지만, 감꼭지도 몸에 좋다니까 너무 낙심 말렴.”

 

든든한 벗 삽사리의 위로에 바둑이가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발그레한 단감 대신 누리끼리 감꼭지지만

가만 보니 왠지 단정하고도 든든해 보입니다.

 

감꼭지를 뒤로하고 바둑이랑 삽사리가 동구 밖으로 향합니다.

어라? 오늘은 고개 너머 자그마한 암자(庵子)까지 가나 봐요.

달랑달랑 까치밥 대신 든든한 감꼭지를 보았으니

힘을 내서 오랜만에 암자 가는 길을 오릅니다.

 

 

오랫동안 혼자 우두커니 서있던 돌부처가

반갑게 인사합니다.

 

얘들아 어서 오너라.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바둑 한판 어때?”

 

돌부처의 제안에 바둑이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네요?

삽사리가 바둑이 대신 대답합니다.

 

돌부처님 바둑이는 이름만 바둑이고 바둑놀이 몰라요. 우린 멍멍 멍멍 멍멍이거든요.”

 

그러자 바둑이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입을 엽니다.

 

삽살아, 나 바둑놀이 잘해!”

 

 

드디어 돌부처와 바둑이가 바둑대결을 시작합니다.

삽사리가 시간을 재고 돌부처가 먼저 까만 바둑돌을 놓습니다.

바둑이는 마치 공기놀이하듯 하얀 바둑돌을 척척 가볍게 둡니다.

 

어느새 바둑판은 하얀 집 까만 집으로 가득하고,

바둑이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립니다.

 

이를 어쩐담? 돌부처님 솜씨가 대단한 걸? 저기랑 여기랑 검은 돌을 놓으면 난 끝장인데 어쩌지?’

 

이미 바둑이의 바둑 길을 훤히 내다보고 있는 돌부처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듯 몇 차례 바둑이의 길을 두드려 보더니

이내 바둑돌을 다른 길에 둡니다.

아무 표정 없이 제 갈 길만 갑니다.

 

이게 어쩐 일이람? 돌부처님은 분명히 내 길의 약점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데, 왜 내 집을 무너뜨리지 않는 걸까? 혹시 내 바둑 길에 덫이라도 놓은 줄 아는 걸까?’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돌부처의 속셈이 바둑이는 정말 궁금합니다.

빙그레 속으로만 웃던 돌부처가 드디어 이겼습니다.

그런데 딱 한 집 이겼네?

무척 많은 집을 이길 수도 있었는데 딱 한 집뿐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아슬아슬하게 이긴 걸까?

 

돌부처에게 져서 시무룩한 바둑이를 삽사리가 위로합니다.

 

바둑아, 이기는 맛도 있지만, 딱 한 집 졌으니까 너무 낙심 말렴.”

 

돌부처도 말을 거듭니다.

 

바둑아, 너는 내가 이 자리에서 수백 년 동안 만난 바둑고수들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과연 네 이름답구나! 다음엔 네가 나를 이길 수도 있을 테니 다음에 또 오렴.”

 

 

돌부처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바둑이가 꾸벅 인사하고 암자를 나섭니다.

어쩐지 다음에 또 와서 바둑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졌지만, 딱 한 집 진 거니까,

다음번엔 진짜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달달합니다.

 

삽사리와 바둑이가 내친김에 동네 교회로 갑니다.

예배당 마당에 들어서니 찬송소리가 우렁찹니다.

스피커에서 크게 울리는 찬송소리에 삽사리와 바둑이가 메아리처럼 우우 따라 웁니다.

서당 개도 아니면서 예배당 찬송을 따라 부릅니다.

 

찬송이 끝난 뒤에 스피커에서 성경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 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누가복음 21:34)

 

문득 바둑이의 길을 두드리던 돌부처가 생각납니다.

성경말씀 속에 이라는 글자가 들어서 바둑이 귀가 번쩍 열린 겁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돌부처님이 나보다 먼저 들었던 걸까?”

 

바둑이의 궁금증이 점점 커져만 갑니다.

바로 그때 목사님 설교말씀에 바둑이의 귀가 또 한 번 번쩍 열립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길을 닦아야 합니다. 거기 울퉁불퉁한 돌부리도 뽑아내고, 욕심쟁이들이 쳐놓은 덫도 걷어내고, 킹왕짱 욕심쟁이들이 심어놓은 비무장지대 지뢰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이 마음껏 오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길로 오실 지도 모릅니다.”

 

바둑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뿜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동네 앞을 지나 달리던 기차를 기억한 겁니다.

그 기차 옆구리에 큼지막한 글자가 환하게 떠오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철길로 하나되자

 

목사님 설교까지 마저 다 들은 삽사리와 바둑이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도 여기저기 참 많은 길을 다녔습니다.

욕쟁이 할머니 댁 앞을 지나며 습관처럼 까치밥을 우러릅니다.

어느새 돌돌 마른 감꼭지가 딱 예배당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8122일 주일 저녁]

(우리 고을 바둑 고수 엄재문 목사님이 들려주신 돌부처 이창호 9단의 일화를 바탕으로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