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6주(성령강림후 5주, 2018년 6월 2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고후 6:7)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상 17:(1a, 4-11, 19-23) 32-49)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도전하다
...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43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시편 9:9-20) 주님 찬양 (지휘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9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10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 너희는 시온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3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이끌어 내신 주님,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4 그렇게 하시면 주님께서 찬양 받으실 모든 일을 내가 전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을, 아름다운 시온의 성문에서 기뻐하며 외치겠습니다.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16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드는구나.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갈 곳은 스올, 하나님을 거역한 뭇 나라들이 갈 곳도 그 곳뿐이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셀라)
(고린도후서 6:1-13)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6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마가복음 4:35-41)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
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36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입니다.
구약,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삼상 17:45)
시편,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시편 9:16)
서신서,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고후 6:7)
복음서,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가 4:40)
오늘 요절은,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입니다.(고후 6: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17:(1a, 4-11, 19-23) 32-49, 시편 9:9-20)]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과 골리앗’입니다.
지금 다윗은 목동입니다.
목동 일을 할 때 맹수에게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능력’ 체험이 소중합니다.(37)
갑옷이나 무기 따위가 비길 바가 아닙니다.(39)
골리앗은 저주를 위해 자기 신들 이름을 부르지만(43)
다윗은 의지하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45)
이리하여 다윗의 승리는 더더욱 만방에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능력을 알립니다.
다윗의 승리는 무기나 병법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의 승리입니다.(47)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곤경에서 구원받은 자의 감사 찬송’입니다.
“억울한 자”(9)란 하나님 도움밖에 남은 것이 없는 자의 상징입니다.
그들이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결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10)
주님께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12)
주님께서는 마침내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16)
이렇게 억울한 자들의 한을 풀어주시고 살인자들을 떨게 하시는 하나님!(20)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은 점점 공정한 사회가 되어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6:1-13, 마가복음 4:35-4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화해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화해(구원과 평화)의 주체이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서(1)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은혜(화해의 기회)를 제대로 받기를 촉구합니다.(1-2)
바울은 “하나님의 (화해의) 일꾼답게”(4), 수많은 곤경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화해의 일)을 합니다.(7)
양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고(7) 이 일을 감당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광풍을 잔잔케 하심’입니다.
제자들의 공포는 풍랑보다도 주님의 침묵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으로 광풍을 잠잠케 하신 주님께서(39)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짚으시니(40)
제자들에게 또 다른 공포가 엄습합니다.(41)
상상을 초월하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생긴 또 다른 공포로
제자들 안에 경외심이 자랍니다.
경외심이 자랄수록 내 일상의 중심은 주님을 향하게 되고
주님을 점점 깊이 알아가면서 제자들의 믿음이 자랍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4본문에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체험담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로 드러납니다.
시편 기자는 공평과 정의, 즉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공정(公正)한 사회’로 구현된다고 노래합니다.
억울한 사람들에게(12) “공정한 심판”으로 주님의 진면목을 드러내신다고 할 정도입니다.(16)
서신서의 사도바울 역시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이 화해의 일을
양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고 한다고까지 강조합니다.(7)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한 당당함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10)
오늘 구약의 다윗과 복음서의 제자들의 믿음이 대조적입니다.
어린 다윗의 골리앗을 향한 기세가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다윗의 믿음은 평소 일상에서 반복 경험한 체험에서 온 믿음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의 믿음은 지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가 4:40)
그런데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집중하지 않고, 젯밥에만 정신 파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윗처럼, 내 잇속이 아니라 사명에 몰두하면, 주님만 의지하면,
‘너희가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6.25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초들, 그 유가족들의 노래 같습니다.(12)
6.25 직후 몇 달 동안 수만 명을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을 필두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6.25의 상처를 아물게 할 화해의 일꾼은 양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고후 6:7)
공평과 정의! 공정(公正)한 심판이 필수입니다.
이 과정이 철저해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민족의 평화통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철저하게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답게”, “많이 참으면서” 가야 합니다.(고후 6:4)
[나머지]
*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삼상 17:36)
오늘 구약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다윗의 주장이 믿기 어려울정도로 허황합니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의 사이버상의 전투장면 같습니다. 무시당한 소년의 흥분상태에서의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지난주일 마지막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삼상 16:13)
** ‘예수이름’에서 샘솟는 용기! 성령님께서 주시는 용기!
군대 안에 만연한 골리앗 공포와 싸우는 다윗의 용기, 교회 안에 만연한 옹졸한 마음들과 싸우는 바울의 용기, 풍랑, 불신앙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용기...! 용기란 두려움이라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습니다. 나의 두려움, 지금 우리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전쟁입니까? 역병(疫病)입니까? 가난입니까? 두려움은 지금 닥친 위기상황의 사태와 원리를 몰라서 생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일수록 더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마치 뱃사람이었던 제자들이 거센 풍랑 앞에서 떨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용기란 그 두려움을 일으킨 세상 원리를 파악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알맹이는 바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요? 그 어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가장 먼저 내 안에 새겨진 주님 이름이 희미해지지 않았나 살펴야 합니다. 마치 배 안에 저 뒷방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듯이 내 안에 희미해진 주님 이름을 다시 곡진(曲盡)하게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주님의 이름, 주님의 사랑이 다시 생생하게 차오른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고후 6:10) 그러면 그 두려움은 자연스레 희미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윗의 용기가 솟구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삼상 16:13) 성령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나머지] 두 편은, 3년 전 성실문화 블로그에 올린 것을 다듬은 것입니다.)
*** 다윗과 골리앗, 그리고 풍랑 속 제자들과 고린도교회
지난주일 구약본문에서, 엘리압을 보고 기름 부을 자로 착각하는 사무엘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그리고 다윗이 등장하자마자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잔뜩 기다리시던 차에 다윗이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 자그마한 소년 다윗 안에 어마어마한 하나님 당신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런 다윗이기에, 더구나, 기름부음 받은 뒤로 계속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다윗이기에, 다윗은 천하의 골리앗을 보고도 전혀 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군대와 사울왕은 골리앗의 겉모습만 보고 덜덜 떨고 있지만, 다윗은 저 골리앗의 겉모습이 아니라 허황된 신앙, 수수깡처럼 텅 빈 속을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골리앗은 다윗의 중심, 하나님 생각, 하나님 사랑으로 꽉 찬 다윗의 중심은 보지 못하고,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겉모습만 보고 “그를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삼상 17:42) 그건 오늘 복음서본문의 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자신들이 탄 배의 중심(예수님께서 동행하고 계시는 사실)은 못보고 겉모습, 즉 거센 풍랑과 주님의 주무심만 본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의 졸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옹졸해진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눈에 안 보이니까, 교회가 자기들 것 인줄 착각한 것입니다. 교회의 중심에 누가 계시는지도 모르고, 사도바울의 중심에 누가 계시는지도 못 보고 바울의 겉모습만 본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을 모욕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고후 2:5-11)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교인들이 옹졸해진 것입니다.(12) 옹졸함은 두려움의 다른 말입니다.
(※ 「성실문화」95호 ‘예배마당’에서 퍼와 올리며 일부 보충했습니다.)
[말씀동시] 두려움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2학년. 「성실문화」95호)
나는 어두운 것을 무서워한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초등학생 때까지 부모님과 같이 잤다
엄마가 괜찮아 괜찮아 안심시켜 주셔도
홀로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무서워
엄마 품으로 도망쳤다
긴 어둠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말씀시조] 천하의 골리앗이 (이정훈 지음.「성실문화」95호)
천하의 골리앗이 주의군대 모욕하다
애송이 다윗에게 돌을맞고 쓰러졌다
천하가 알게 되었네 만군의 주 하나님
[말씀서예] 사무엘기상 17:49 (오요섭 작품.「성실문화」95호)
[말씀노래] 풍랑보다 더 큰 믿음 주시옵소서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성실문화」95호)
[본문] (마가복음 4:35-41)
[노랫말]
1절)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를 타시네, 이 바다를 건너려고 배를 타시네
예수님은 배안에서 주무시는데, 제자들은 노를 저어 바다 건너네
2절) 어둔 밤 거센 바람 풍랑이 일고, 파도가 배를 덮쳐 잠기려하네
예수님 예수님 일어나세요, 혼비백산 제자들이 아우성치네
3절) 고요하고 잠잠하라 예수님 말씀, 바닷물도 제자들도 잠잠해지네
너희들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풍랑보다 더 큰 믿음 주시옵소서
[해설]
마가복음 4:35-41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었고, 성실문화원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풍랑보다 더 큰 믿음 주시옵소서’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9:9-2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5호)
(※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중에-,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다함께]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5호)
성령강림절 6주(성령강림후 5주) 2018년 6월 24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무엘기상 (1a, 4-11, 19-23) 17:32-49, 시편 9:9-20, 고린도후서 6:1-13, 마가복음 4:35-41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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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다 |
스 |
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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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
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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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
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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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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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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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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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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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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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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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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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
라 |
평 |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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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
리 |
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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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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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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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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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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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야곱과 레아의 아들 중 하나로서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지만 맏아들처럼 큰 지파를 이룬다. 이름 뜻은 ‘찬송함’이라는 뜻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온 뒤, 남부에 정착하여 남북왕국이 분열될 때 남왕국의 중심을 이룬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몇 있다.(사무엘기상)
②히브리말로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무저갱’, ‘음부’, ‘지옥’ 등으로 쓰여 악마의 거처처럼 사용되었다.(무저갱 無底坑 ; 악마가 벌을 받아 한 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갇혀 있는 그 밑 닿은 데 없이 깊다는 구렁텅이. 악마의 행위를 따르는 사람도 죽어서 그곳으로 간다 함) (시편)
③헐거나 낡은 물건, 또는 떡에 묻히거나 떡의 켜 사이에 깔기 위해 콩이나 깨 따위의 곡물을 곱게 갈아서 만든 가루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본문에서는 ‘배의 뒤쪽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마가복음)
④‘상수리(테레빈)나무의 골짜기’란 뜻. 블레셋 해안방향 베들레헴 서남쪽 약 24㎞ 지점의 골짜기로, 이스라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블레셋인들에 대하여 진을 쳤던 곳이다(삼상 17:2, 9). 여기서 소년 다윗이 장수 골리앗을 죽인다(삼상 21:9). 새번역은 ‘○○○○’, 공동번역은 ‘느티나무 골짜기’로 번역했다.(사무엘기상)
⑤오늘날 거인의 대명사다. 그는 엘라 골짜기에서 이스라엘과 전쟁할 때 목동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는데(삼상17:4), 키가 3미터 가까운 거인족 출신 블레셋 장수였다. 골리앗에게는 4명 형제들이 있었는데 모두 다윗과 그 부하들에게 죽는다.(사무엘기상)
세로열쇠
①주전 약 1,000년 전 인물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임금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부터 충실한 목동으로 자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여러 시편을 지었다. 어린나이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매 돌로 무찌른 일로 유명하다.(사무엘기상)
②‘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흔히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사무엘기상)
③이름 뜻은 ‘뿔’. 아테네 서쪽 64㎞ 지점,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가야 주(州)의 수도이며 번창한 항구 도시였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고, 동시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나라와 민족의 우상들이 총집결한 현란한 우상 도시였다. 한창 번성할 때는 2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었고, 또 대략 1천 명 정도의 신전 여사제(창녀)들을 거느리고 있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어 온갖 음행이 자행되기도 했다.(고린도후서)
④시편에 주로 나오는 노래 부호(시편 71회, 하박국 3회 등)로서, 정확한 뜻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다음 몇 가지 뜻으로 추측할 뿐이다. ‘찬송 중 회중이 인도자에게 어떤 응답을 하는 신호’, ‘잠시 쉬라는 표시’, ‘노래나 악기 소리를 높이라는 부호’ 등. 시편 연구자 중에는 이것이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시편 낭송 때 “○○”라고 소리쳐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시편)
⑤건축물이나 가마, 상여 따위에 다는 용머리 모양을 새긴 장식을 가리키기도 하나 오늘 본문에서는 베틀 앞다리의 끝에 얹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사무엘기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돌쇠의 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5호)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무릿매로 돌팔매질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창포물에 머리감으면서 며칠 전 단오(端午)날 복순이가 말했어요.
“혼자만 깨끗하면 뭐하냐? 다함께 깨끗해야 진짜 깨끗한 거지!”
한바탕 그네를 뛰고 난 뒤에 영희도 말했어요.
“혼자만 그네 뛰면 무슨 재미냐? 너도 놀고 나도 놀고 다함께 놀아야 진짜 재미지!”
씨름판에서 온몸이 모래범벅이 된 만년 꼴찌 돌쇠도 말했어요.
“혼자만 잘하면 무슨 재민겨? 꼴찌도 어쩌다 한번은 이겨야 진짜 재밌지!”
[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 제목 흉내]
복순이랑 영희랑 돌쇠가 사는 마을은 동물 모양을 닮았어요.
뒷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호랑이도 닮았고 토끼도 닮았어요.
토끼처럼 온순하고 호랑이처럼 용감한 아이들이 사는
착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단오 지나 닷새가 되던 어느 날 새벽, 마을 아이들은 꿈을 꾸었어요.
밤새 땀을 뻘뻘, 눈물을 줄줄 흘릴 만큼 힘겨운 꿈을 꾸었죠.
복순이는 하늘을 나는 꿈을 꿉니다.
복순이네 마을이 토끼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커다란 새 모양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커다란 붕새가 되어 한바탕 날갯짓에 하늘 높이 솟아오릅니다.
커다란 붕새 등에 올라탄 아이들은 놀이동산보다 더 신나게 소리 지릅니다.
한창 신나게 하늘을 날던 붕새가 갑자기 기우뚱거리네?
새의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다투기 시작한 겁니다.
한 몸에 달린 두 날개가 말도 안 되는 다툼을 시작합니다.
“넌 색깔이 그게 뭐냐? 하늘을 나는 날개라면 나처럼 하늘하늘 하늘색이어야지 너처럼 시뻘건 색을 어디다 쓰냐?”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를 깔보고 흉보자
왼쪽 날개가 사나운 목소리로 받아칩니다.
“색깔타령 할 시간 있으면 운동이나 좀 해라. 나처럼 불끈불끈 힘살이 있어야지 너처럼 비쩍 말라서야 어디다 쓰겠냐?”
새의 등에 올라탄 아이들이 잔뜩 긴장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새의 두 날개뿐 아니라 온몸이 팽팽 파르르 떨며
잔뜩 긴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불끈불끈 힘자랑 하던 왼쪽 날개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네?
힘자랑이 과했나?
이걸 본 오른쪽 날개는 한바탕 깔깔거리곤 휘파람을 붑니다.
그 순간 왼쪽 날개가 푹 꺾이며 커다란 새는 중심을 잃고 뱅뱅뱅 곤두박질합니다.
“엄마야∼!”
아이들 비명보다, 왼쪽 날개 비명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는
오른쪽 날개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복순이도 비명을 지릅니다.
영희도 꿈을 꿉니다.
토끼도 닮고 호랑이도 닮은 마을이 커다란 배 모양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진짜 커다란 여객선이 되어 넓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을 아이들은 너도나도 두 팔을 양옆으로 활짝 벌립니다.
십자가 모양처럼 팔을 벌린 채 마냥 신명나게 소리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물과 고물, 즉 뱃머리와 배꼬리가 다투기 시작하네?
아이들이 뱃머리에만 몰린 탓일까? 고물이 툴툴거립니다.
“야 이놈 이물아! 왜 맨날 너만 머리고 나는 맨날 꼬리냐? 번갈아가면서 머리해야지! 이제부터 내가 앞으로 가련다.”
고물이 고집을 부리자 이물도 덩달아 고집을 부립니다.
이물은 더 빨리 앞으로 가려하고, 고물은 반대방향으로 가려 안간힘을 씁니다.
이를 어쩌죠?
아니나 다를까 배 한 가운데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이내 쩌적 갈라집니다.
배에 물이 스미기 시작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커다란 풍랑까지 일어납니다.
이물과 고물이 후회하면서 서로를 향하려고 힘을 주며 갈라진 틈을 메우려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태풍 같은 바람과 집채만 한 파도는 미친 듯이 고물과 이물을 더 벌어지게 만듭니다.
배는 점점 가라앉기 시작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영희가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엉엉 웁니다.
돌쇠도 꿈을 꿉니다.
돌쇠의 꿈에선 토끼도 닮고 호랑이도 닮은 마을이 붕새와 여객선 두 가지로 변신합니다.
마침 뒷동산에 올라가서 산기도를 하고 있던 돌쇠가 소란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하늘에서는 커다란 붕새가 빙빙빙 떨어지고 있고,
저기 산 아래는 어느새 폭풍우 치는 바다가 되어 여객선이 둘로 갈라져 침몰하고 있습니다.
돌쇠는 마치 화살을 쏘듯 재빠르게 기도합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리곤 얼른 이마에 질끈 동여맨 수건을 풀어서 날씬한 돌멩이를 골라 장전합니다.
그렇게 무릿매로 빙빙빙 돌리다가 다섯 바퀴째에 냅다 새를 향하여 돌을 던집니다.
넋을 잃고 곤두박질하던 붕새 이마에 돌쇠 돌이 명중하자 붕새가 번쩍 잠에서 깨어납니다.
붕새의 넋이 돌아오자 꺾인 날개가 회복되고,
다투던 좌우날개는 순식간에 한마음 되어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돌쇠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다시 저 아래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얼른 날씬한 돌멩이를 하나 더 골라 장전합니다.
그 돌을 무릿매로 던지면서 동시에 한 번 더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침몰하던 여객선 이마를 정통으로 맞추자 엉엉 울던 아이들이 번쩍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외칩니다.
“예수님, 살려주세요!”
그러자 고물에서 곤히 주무시던 예수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거센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순식간에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고요해집니다.
예수님이 여객선 가운데가 갈라진 것을 보시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가복음 4:40)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돌쇠처럼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 너희가 할 수 있다, 믿음을 가져라!”
멀리 뒷산 꼭대기에서 돌쇠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배 안에서는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일까요?
둘로 갈라지던 배가 갈라지길 멈춥니다.
양쪽 모두 녹 슬어가던 갈라진 단면들이 어느새 아기 피부처럼 깨끗해지는가 싶더니
깨끗한 두 개 단면에서 손이 하나씩 쑥 나오더니 힘차게 악수합니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아당겨 어깨동무도 하고 와락 부둥켜안습니다.
그렇게 이물과 고물은 한 몸, 한 덩이가 됩니다.
바다에선 하나 된 여객선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하늘에선 하나 된 붕새의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뒷산 꼭대기에선 돌쇠가 노래합니다.
하늘땅바다에서 합창하는 노랫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집니다.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인가요, 다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홍순관 지음, ‘다함께 봄’]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난 돌쇠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멋쩍은 듯이 씩 웃으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철부지처럼, 한여름에 봄노래라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95호 예배마당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