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2018년 4월 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다’(요한 20:16)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25:6-9)
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7.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8.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시편 118:1-2, 14-24)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이스라엘아,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여라.
14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15 의인의 장막에서 환호하는 소리, 승리의 함성이 들린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6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18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19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사도행전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37.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0:1-18)
1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4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5 그런데 그는 몸을 굽혀서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도 그를 뒤따라 왔다. 그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삼베가 놓여 있었고,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그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8 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10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11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18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 발견’입니다.
구약,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이사 25:9)
시편,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시편 118:20)
서신서,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41)
복음서, ‘“라부니!” 하고 불렀다’(요한 20:16)
오늘 요절은,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다’입니다.(요한 20:1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25:6-9, 시편 118:1-2, 14-24)]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기쁨의 큰 잔치’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배경은 큰 잔치자리입니다.
무슨 잔치인지 알려면 바로 앞 24: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온 땅의 임금님으로 시온산에 앉으시니, 즉위식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즉위식 잔치는 여느 세상 왕들의 즉위식의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죽음권세와의 싸움에서 이기신 분,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이기신 분의 최후승리 잔치,
바로 생명잔치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5:26, 계 21:4)
그야말로 상여소리가 축배의 노래로 변한 것입니다.
이 잔치의 주인공이신 주님!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9)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늘, 죽음권세를 당신의 온몸으로 무너뜨리신 분,
신약의 예수님의 부활을 예감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응답찬송답게, 죽음의 공포를 벗겨주신 주님 감사 찬양입니다.
특히 14절은 출애굽기 15:2절의 모세의 노래와 판박이입니다.
17-18절은 내내 죽음을 막아주시는 주님에 대한 신뢰로 가득합니다.
22-23절의 ‘버린돌, 머릿돌’ 노래는, 특히 오늘,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노래로 해석됩니다.
죽음의 위기, 즉 출애굽 앞에 놓인 홍해와 같은 인생의 큰 위기에서
날 구원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사도행전 10:34-43, 요한복음 20:1-1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베드로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 설교’입니다.
이 본문 앞의 고넬료의 보고를 듣고서 베드로의 눈이 확 열립니다.
한없으신 하나님의 구원스케일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누가복음을 압축한 핵심을 설파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이 만방에 드러났다!
그리고 세상심판자 ‘인자’이심을 드러내셨다!
부활예수를 만난 이들은, 이를 증거 할 임무를 받았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 부활, 부활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입니다.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오늘 본문은 (마가 16:9절과 함께)
부활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에게 먼저 보이십니다.
게다가 그 이름 “마리아”를 불러주시기까지 합니다.
부활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신 몸을 나타내신 그 첫 만남을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으로 압축하여 보여주시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죄 많은 여자이며, 동시에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며,
가장 많이 감사한 제자이며, 누구보다 주님을 그리워할 그 사람!
(※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막달라 마리아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수난 뒤 부활하시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받았고
부활예수의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들었고,
심지어 부활예수님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마리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모습은 딱 오늘 마리아와 같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알맹이인 부활예수,
그 주님 소식을 듣기만 하고, 이미 내게 오셨음에도 여태 발견하지 못한
마리아, 그리고 우리!
참 감사한 것은, 두고두고 감사한 것은,
부활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친히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소식으로 그치지 않고 친히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친히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물론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의 복스러움을 우리는 압니다.(요한복음 20:29)
그럼에도 주님께서 오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주신 사실 앞에서,
마리아 이상으로 죄 많은 우리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마리아처럼 보아도 발견하지 못하는 내 부끄러운 이름도 불러주시길 앙망합니다.
“마리아야!”
내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눈을 열어주신 부활예수께서
뜻밖의 이방인 고넬료의 간증을 통해 베드로의 눈도 열어주십니다.
구원의 주님, 생명의 주님, 사랑의 주님!
나를 지으심의 알맹이,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부활하심의 알맹이는
바로 사랑,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의 그 창조와 구원의 사랑역사를 발견하고
그 사랑역사에 동참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오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내 눈을 열어주십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마리아처럼, 베드로처럼, 내 눈도 열어주실지,
과연 어떤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 이상, 「성실문화」94호 ‘예배마당’에서 옮김)
[말씀동시] 부활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초등부 6학년. 「성실문화」 94호)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보았더라면
그 여자들처럼 깜짝 놀랐을까?
무서워서 도망치고
아무에게도 말 못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보았더라면
고양이를 본 생쥐처럼
화들짝 놀라고
연예인을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설레었을거야!
[말씀시조] 그날 그날이 오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94호)
그날 그날이 오면 만백성을 부르신다
죽음을 멸하시고 수의를 찢으신다
시온산 잔치베푸신 우리의 주 하나님
[말씀서예] 이사야서 25: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94호)
[말씀노래] 막달라 마리아는 용감한 사람 (이석훈 지음. 「성실문화」 90호)
[본문] (요한복음 20:1-18)
[노랫말]
1. 막달라 마리아는 용감한 사람 / 이른새벽 무덤도 무섭지 않아 /
그런데 그런데 깜짝 놀랐죠 / 예수님의 빈무덤이 너무 놀라워
2. 막달라 마리아는 끈질긴 사람 / 제자들이 돌아가도 혼자 남았네 /
그런데 그런데 깜짝 놀랐죠 / 빈무덤의 천사들이 너무 놀라워
3. 막달라 마리아는 다정한 사람 / 예수님이 그리워 눈물 흘리네 /
그런데 그런데 깜짝 놀랐죠 /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 놀라워
4. 마리아야 부르시는 그분 목소리 / 눈물을 닦아주는 주님 목소리 /
용감하고 끈질기고 다정한 사랑 / 막달라 마리아의 예수님 사랑
[해설]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었고, 문화원 동인인 찬양사역자 이석훈 목사님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막달라 마리아는 용감한 사람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18:1-2, 14-2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94호)
(※ 천자문독송 가락,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다함께]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기뻐하리∼로∿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4호 ‘예배마당’에서)
부활절, 2018년 4월 1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이사야서 25:6-9, 시편 118:1-2, 14-24, 사도행전 10:34-43, 요한복음 20:1-18
예 |
언 |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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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수 |
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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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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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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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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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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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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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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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
스 |
라 |
엘 |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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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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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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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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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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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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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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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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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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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이들의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사도행전)
②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낱말인 여호수아(예수아)의 헬라 말 이름이다. 인류의 구세주시며, 거룩한 아드님이신 하나님, 곧 성자(聖子)하나님의 이름이시다.(사도행전, 요한복음)
③성경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 열 명이 넘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흔한 이름이다보니 심지어 사도행전 9:43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게바=○○)가 들어가 묵은 동명이인 집 주인 이름도 이 이름이다.(요한복음)
④‘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흔히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시편, 사도행전)
⑤하나님, 임금, 주인, 기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부를 때, 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쓰던 호칭.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며, 특히 개역성경의 ‘여호와’를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람어로 ‘마레’, 헬라어로 ‘퀴리오스’를 이렇게 번역한다.(이사야, 시편, 사도행전, 요한복음)
세로열쇠
①다윗 왕국의 수도인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전(B.C.) 4,0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름 뜻은 ‘평화의 성읍’인데, 예나 지금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과 폭력이 가득한 도시다.(사도행전)
②염습할 때 송장(죽은 사람의 몸)에 입히는 옷(이사야서)
③다윗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은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의 언덕을 가리킨다. 차차 온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이사야서)
④소박한 부름말인 ‘랍비’의 강조형이다. 사람에게는 드물게 쓰고 하나님께 가끔 쓴다. 마가 10:51절에서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요한 20:16절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이렇게 부른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요한복음) (※ 개역개정은 ‘랍오니’, 새번역은 ‘라부니’, 공동번역은 ‘라뽀니’라고 번역했다)
⑤성경시대 중요한 일상 음료였으며, 유월절 식사와 교회 식사의 중요한 음식물 중 하나였다. 구약시대에는 번제(燔祭)의 희생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졌고, 신약시대에는 치유제(治癒劑)로 사용되기도 했다.(이사야서)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엄마는 울보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숨바꼭질하다말고 훌쩍훌쩍 울던 시절 이야기예요.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조용필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 중에서]
꿈결에 들리는 울 엄마 목소리,
엄마가 부르는 씩씩한 척 구슬픈 노랫소리에 나는 눈 비비며 일어납니다.
“또 꾀꼬리 타령이시네 울 엄마. 낮잠 좀 잡시다!”
우리 엄만 바꿈세 열혈 회원입니다.
바꿈세는 ‘바람개비들이 꿈꾸는 세상’이라는 단체 이름의 줄임말인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특히 미수습자 네 가족에 관심이 많은 우리 엄마는
요새 부쩍 이런 요상한 꾀꼬리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십니다.
“끝까지 함께 갈 거다 엄마는!”
부활절 예배 내내 엄마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안절부절 막달라 마리아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을 보고도 못 알아보았겠니.(요한복음 20:15)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눈이 퉁퉁 부어 코앞 예수님도 못 알아보았겠니...”
눈물이 많아진 우리 엄마는
미아 찾기, 실종아동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집니다.
“너 지우개 하나 잃어도 어쩔 줄 모르잖아? 너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용문역 근처에서 너를 잃고, 난 몇 십분 동안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다녔어. 악을 쓰듯 네 이름 부르며 다녔어. 아주 잠깐이지만 아이를 잃어 본 느낌을 엄마는 알아.”
어찌 보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실종아동 가족들이 흘리실 눈물을
울 엄마가 대신 다 흘려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엄마들이 너무 많이 울면 안 돼. 마리아처럼 눈이 퉁퉁 부으면 어떡해. 코앞 예수님도 못 알아보듯이, 내 아이 보고도 못 알아보면 어떡해.”
지난 밤 꿈에 나는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알파고보다 더 똑똑한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깨에 예방주사 놓듯 주사 한 방이면 끝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피부에 찰싹 붙어 평생 한 몸이 됩니다.
내 피부처럼 한 몸이 된 그 작은 장치 안에는
아이를 엄마아빠와 이어주는 센서가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엄마아빠가 ‘못 찾겠다 꾀꼬리’ 노래를 부르면
내비게이션 같은 정밀지도 안에 아이의 위치점이 반짝입니다.
울 엄마께 꿈 이야기 들려드리면서,
장래 희망이 생겼다고 으쓱거렸습니다.
“이젠 내 아이 잃고 울 일은 없겠구나.”
벌써 눈시울을 붉히면서 나를 꼭 안아주시는 우리 엄마 혼잣말입니다.
부활절 늦은 밤에 엄마아빠가 말씀을 나누십니다.
우리 엄마아빠는 둘도 없는 말씀동지, 기도동지십니다.
매일매일 성경말씀을 같이 읽고 묵상하고 나누시고, 손잡고 기도하십니다.
잠결에 은은히 들리는 엄마아빠 말씀이야기가 솜사탕처럼 달콤합니다.
“오늘 부활절예배 말씀은 생각할수록 신비로워요.”
“당신은 어떤 신비를 느끼셨나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 헤맬 때, 예수님도 마리아를 찾으신 거 아닐까요? 예수님이 넋 나간 마리아를 되찾아 주신 거 맞죠?”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참 사랑이 많으신 걸 느꼈어요.”
“그렇죠? 그냥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쌩- 하고 가시면 될 것을, 구태여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게다가 그 이름까지 불러주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기 전까지는 부활예수님 못 만난 마리아가, 내 이름 소리를 듣는 순간 눈이 열려 예수님 알아보는 장면은 언제보아도 뭉클해요.”
“어쩌면 나도 눈이 퉁퉁 부었을 마리아처럼 여태 예수님 못 만났는지도 몰라요. 여태 예수님 부활의 진정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 것 같아요. 원래 없는 예수님 시신을 있는 줄로 착각하고 헤매고 다니는 마리아처럼, 부활 예수님만 만나고 나서보면 아무 의미 없을 것들을 귀한 것으로 착각하고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몰라요. 오! 예수님! 어서 저의 이름을 불러 주세요!”
“예수님이 마리아 이름 부르시는 마음으로, 우리도 사랑을 담아 예수님 이름을 부릅시다. 그리고 약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들 이름을 따뜻하게 부릅시다.(마태복음 25:40) 그러면 그들도 언젠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나도 조금 조금씩 눈이 열리며 부활예수님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울 엄마, 울보엄마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겁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목소리만 들어도 나는 환히 보입니다.
아빠가 눈물어린 촉촉한 목소리로 시 한 수 읊조립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지음. ‘꽃’ 중에서]
[이정훈 지음. 2018. 1월 말. 「성실문화」94호 ‘예배마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