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사순절 2주 (2018년 2월 25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서무천사 2018. 2. 24. 19:34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가 8:34)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7:1-7, 15-16)

1.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2. 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6.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래를 이제 사래라고 하지 말고, 사라라고 하여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 내가 너의 아내에게 복을 주어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시편 22:23-31)

2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여라. 야곱 자손아,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이스라엘 자손아, 그를 경외하여라.

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로마서 4:13-25)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23.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마가복음 8:31-38)

3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3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38.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창세기 17:1)

시편,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시편 22:23)

서신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로마서 4:16)

복음서,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마가복음 8:34)

 

오늘 요절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입니다.(마가복음 8:34)

 

 

[구약과 시편본문 얼개 (창세기 17:1-7, 15-16 / 시편 22:23-31)]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영원한 언약과 새 이름입니다.

아브람이 하갈과의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은 뒤 13년이 흐른 99세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세우십니다.

하나님 언약은 하나님의 선택으로(은혜로) 시작되고, 사람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75세에 하나님의 첫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납니다.

86세에 첫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99세에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매사에 늦은 아브라함이지만, 그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모범입니다.

그는 순종의 사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랍니다.

한없이 자랍니다.

 

아브람이란 존귀하신 아버지나의 아버지, 곧 하나님은 크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훌륭한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열국의 아버지’,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이름(아브람)이었는데,

초점을 사람에게로 옮긴 듯한 이름(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새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내용이 담긴 이름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의인의 수난과 영광입니다.

시편 22편은 1절부터 22(또는 21)까지는 탄원시이고,

오늘본문인 23절부터 31, 끝 절까지는 감사시로 구성된

유일한 시편입니다.

 

누구보다 시편을 애송하셨을 예수님께서

22:1절을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시고, 7-8절처럼 조롱받으십니다.

십자가 아래서는 18절처럼 예수님의 옷이 나누어지더니,

마침내 29절처럼 부활하심으로, 시편 22편을 완성하십니다.

 

이 시편 22편을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인용하시고, 체험하시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9절은, 당시 구약시대 상황에 비추어 아직 부활의 구체적인 강조는 아닌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리고 원문이 많이 훼손되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려워서,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그리스어 번역을 따랐다고 합니다.)

 

시편 22편의 알맹이는 나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찬양과 경배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찬양입니다.(23)

이처럼 죽음의 고난을 겪으며 주님께 매달려 탄원하고 구원받은 사람,

이만큼 주님과 깊은 친교를 맛본 사람만이,

주님을 진짜 경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얼개 (로마서 4:13-25 / 마가복음 8:31-38)]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약속과 믿음 이야기입니다.

약속”(×7)믿음”(×6)이 많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결론은 끝부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만나 언약을 세우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다는!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화해하고 친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께서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입니다.

오늘본문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시기 바로 직전 상황입니다.

사천명을 먹이시고(8:1-9) 벳새다 맹인을 눈뜨게 하신 뒤(22-26)

베드로로부터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들으신 직후(27-30)에 벌어진 일입니다.

 

스승의 멱살을 잡는 듯한 베드로의 강력한 저항과(32)

그보다 더 강력한 예수님의 반응이 인상적입니다.(33)

여기서 사탄은 대적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를 뜻합니다.

내 뒤로(두 번째로) “나를 따르라는 뜻으로도 새겨집니다.

 

34절의 자기 부인은 내 자아와 내 소유와 소원을 포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 십자가는 항소의 가능성조차 없어진 최종 사형선고를 가리킵니다.

참으로 무겁고 무서운 경지입니다.

 

내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

그 생명을 하나님나라에서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

이 복음이, 내 모든 가치, 소유, 관계, 목숨조차 앞선다고 깨달은 자만이

자기를 부인할 수 있고, “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34)

 

주님을 경외하는 자,

주님과 진정한 친교를 누려본 사람 말입니다.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정리]

 

제자의 길은,

교회의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길 따르는 그 길입니다.

 

아브라함 믿음만큼은 못되더라도

오늘 본 베드로처럼 굴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부인(否認)”이 먼저입니다.

내 자아와 소유와 소원을 다 내려놓지 않고서

어떻게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십자가말입니다.

 

꿈같은 일이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마는,

꿈은 꿀 수 있는 일이요,

언감외면(焉敢外面)할 그 길입니다.

 

자기 부인(否認)과 자기 십자가 없이는

주님 경외, 주님과의 진정한 친교가 너무 멀기에

교회라면,

반드시 가야만하는 길입니다.

 

삼일절이 코앞입니다.

유관순열사, 제암리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길, 그 꿈같은 길,

내 십자가 길을 걷기 시작한 바로 그 날입니다.

 

오늘날 세상 기준으로 말씀을 재단(裁斷)하지 맙시다.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그 말씀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마가 8:38)

내 온갖 탐욕과 게으름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는

독립만세 그 날이 바로 코앞입니다.

 

 

[나머지]

* 죽음에 대하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처음 선포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죽으시고 다시 사실 것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예수님, 그리고 미친 듯이 놀라는 베드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친김에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관계를 새로 정리하십니다. 제자가 되려면(“나를 따라오려면”)(34)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절반이 넘는, 34절 이하 통째로, 죽음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고 결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의) 아브라함의 믿음, 그 교훈을 알고 있다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힘들어도, 적어도 그 말씀을 멱살 잡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물투성이 나를 의롭게 만드시려는 저 거룩하고 장엄한 죽음과 부활의 청사진을 꾸짖듯 찢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 아브라함과 베드로

오늘 본문들의 두 주인공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이 아주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브라함은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한 인물이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만 생각한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비유하자면, ‘죽음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영원한 생명약속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이 하나님 약속을 외면한 채, 시나브로 죽음의 세력에 빨려 들어가는 가련한 살림살이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참 곤혹스러운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내 경험, 아니 인류의 생리적인 상식,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약속을 믿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 내 체험, 인류의 상식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베드로를 후려치신 치도곤(治盜棍)과 같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건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상상조차 못하는 제 잘난 사람의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베드로와 달랐습니다.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것에서 생명을, 무궁무진한 생명의 용솟음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마치 탄광 막장에 매몰되어 갇힌 광부와도 같았던 시인이,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푸른 하늘을 환하게 보며 귀로는 들리지도 않는 구조 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있는 것처럼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24)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29)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31)

이 노래 제대로 부를 수 있기를, 이 노래 부를 수 있을 만큼 내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길 원합니다. 어설픈 베드로, 저 충동적이고 허깨비 같던 내 믿음, 늘 사람의 일만 생각하던 내 믿음이 단단한 베드로, 든든한 반석 같은 믿음,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믿음이 되길 원합니다.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로마 4:17) 그 하나님의 약속은, 바짝 마른 내 믿음의 눈시울조차 촉촉하게 적실만큼 신비롭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내 믿음의 장작조차 활활 타오르게 하실 만큼 뜨겁습니다.

 

*** “사탄아 내 뒤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멱살을 잡는 대목입니다. 32절 끝에 베드로가 항의하는 대목은 33절의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대목과 비슷한 헬라어 단어입니다. 즉 이성을 잃은 베드로가 젊은 스승님의 멱살을 잡고 꾸짖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와중에 예수님은 이성을 잃지 않고 십자가 길 그 정면을 응시합니다. 베드로, 이 걸림돌을 단호하게 정리하여 디딤돌로 바꾸십니다. 베드로를 향해, 아니 모든 제자들을 향해 외치십니다. “야 이 마귀새끼 같은 놈아, 내 뒤로 물러가! (가서 저 밑바닥부터 다시 따라와!) (희랍어 성경에는 내 뒤로나를 따르라와 똑같은 “ὀπσω μου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전혀 죽을 생각 안 하며 살고 있는, “자기 십자가”(34)라고는 목걸이 십자가밖에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죽음 뒤에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전혀 믿지 않고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는 모습도 종종 저 천방지축 베드로처럼 지금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주님의 멱살을 잡는 꼴은 아닐까요? 내 마음대로 십자가 길과 정 반대 길로 가려고 말입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믿음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중등부 2학년. 성실문화94)

마리아의 믿음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믿음

 

마리아의 믿음

하나님의 일을 믿는 믿음

 

마리아의 믿음

불가능한 일을 믿는 믿음

 

이 믿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시조] 아흔아홉 아브람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4)

아흔아홉 아브람이 아브라함 되던 그날

사래도 사라 되고 여러 민족 부모 되네

나 몸소 언약 세우니 무흠하게 살아라

 

 

 

 

[말씀서예] 창세기 17:1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4)

 

 

 

 

 

 

[말씀노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94)

[본문] (마가복음 8:31-38)

[노랫말]

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 주 말씀 하시네

2. 누구든지 자기 목숨 구하는 자 그 목숨 잃게 되고

   나와 복음 위하여 목숨 잃는 자 새생명 얻으리

후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주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네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여라

 

[해설]

고난 예고에 항의하는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제자도를 일깨우시는 주님의 말씀에 곡을 붙였다.

 

[악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원남 지음, 2017.12.21.)

 

 

 

 

 

 

[시편 송서(誦書)] 시편 22:23-3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4)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의 모-든 끝----, 여호와-- 기억하--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다함께]

31. -서 그-의 공의---, 태어날 백성에--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행하셨--) 할 것이∼∥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사순절 2, 2018225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창세기 17:1-7, 15-16, 시편 22:23-31, 로마서 4:13-25, 마가복음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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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12대 손이요 데라의 아들이며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갈대아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으로서, 바벨론이 수도였는데, 뒤에 바벨론 제국으로 컸다. 우르는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 강변 도시로서, 예전 수메르의 도시국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그의 형제는 나홀과 하란이며, 그의 조카는 롯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름 뜻은 열국의 아버지이다.(창세기, 로마서)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처형 도구. 로마시대에는 이를 노예, 도둑, 반역자(정치범)에게 집행했다. 이 처형에 앞서 채찍질이 가해졌는데 그 때문에 이 형틀에 달리기 전 이미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을 만큼 가혹했다. 예수님께서 이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마가복음)

우리말(한자)로 마귀(魔鬼)로 옮긴 히브리어인데, 헬라어로는 디아볼로스라고 번역한다. ‘수다쟁이, 고발자, 헐뜯는 자, 대적자, 유혹자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어의 동사형은 뒤죽박죽으로 만들다, 서로 갈라지게 하다, 적이 되게 하다를 뜻한다. 성경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베 2:2), ‘이 세상의 신’(고후 4:4) 등 하나님의 적수처럼 묘사되기도 하지만,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숨통이 잡혔고, 그리고 재림과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정복되어 멸망할 존재다.(마가복음)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원래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가 이 역할을 했으나, 포로기 이후 점점 전문화되면서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역할을 바리새파가 다수를 담당했다. 그들은 유대 정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의 중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짐처럼 지우려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율법에 집착하는 그들의 태도를 예수님은 비판하셨다.(마가복음)

이름 뜻은 반석인데,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로서 안드레와 형제간이다. 그의 본명인 시몬 대신 예수님이 아람어로 지어주신 이름인 게바의 헬라어 번역이다.(아람어는 수리아 즉 시리아어로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다.) (마가복음)

 

세로열쇠

데라의 아들이며 사래(뒤에 사라로 개명)의 남편이다. 이름의 뜻은 존귀하신 아버지나의 아버지, 곧 하나님은 크시다라는 뜻인데, 나중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창세기)

처음 아브람과 혼인할 때 이름은 사래였다. 그 뒤 남편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창세기 17:5), 사래는 ○○로 이름이 바뀌었다.(창세기 17:15) 아브라함과 혼인하여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죽어 막벨라 굴에 묻힐 때까지 아브라함과 동행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여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대로 고령에 이르러 이삭을 낳아 이스라엘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창세기, 로마서)

이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손, 특히 사독의 후손들이 맡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종교적인 역할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욤 키프르)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식을 거행하는 일이었다.(마가복음)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 이 이름이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여기에는 상반된 이미지가 담겨 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견주어 약하고 덧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몸소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실 분, 심판 후 왕국을 지배하실 분(다니엘 7:13-14)이라는 뜻을 담아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한다.(마가복음)

사사 시대에 사사가 전쟁 때 지휘관으로, 평상시는 재판관으로 역할을 한 것처럼, 이스라엘 각 족속 가운데서 가장 힘센 가족들의 우두머리가 이 역할을 했다. 이들은 ○○라 불리며 일종의 귀족계층을 이루었다. 왕정 초기에 이스라엘의 ○○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왕정시대 내내 부족들의 ○○들 중심의 위원회가 있어서 전통적인 지휘체계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왕정시대에는 다소 약해졌던 ○○들의 힘이 포로기와 귀환 이후에 영향력을 되찾는다. 유대교의 모범을 따라 초기기독교는 ○○들이 교회를 이끌었다. (마가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곰과 호랑이에게 새 이름이 생겼어요.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만세 부르던 시절 이야기예요.

 

쑥이랑 마늘 먹다가 도망 나온 호랑이가

어느 날 강원도 평창 깊은 산속에서 곰을 만났어요.

호랑이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아니 넌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어찌 다시 곰이 된 게냐?”

 

곰이 쑥스러운 듯 먼 산 바라보며 대답합니다.

 

사람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처음 지어주신대로 사는 게 더 좋겠더라고.”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맞다, 맞아! 요새 사람들 사는 꼴 보면, 그냥 나대로 사는 게 더 좋겠더라.”

 

곰과 호랑이가 손을 잡고 산을 오릅니다.

예수님이 오르셨던 변화산처럼 하얀 구름이 몰려옵니다.

높은 산 흰 구름 머무는 곳에 올라 손을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저희 산짐승들까지 사랑하신다고 노아할아버지랑 말씀하셔서(창세기 9:8-17) 더 고맙습니다. 저희가 산짐승으로 살면서도 에덴동산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마치니 구름이 걷힙니다.

호랑이는 예수님처럼 하얗게 변합니다.

곰도 가슴팍 하얀 반달이 더 하얗게 변합니다.

 

, 너 언제 백호가 되었느냐? 온통 하얗네?”

 

그러는 넌? 네 가슴반달처럼 환하게 빛나는 달은 난생 처음인걸?”

 

그날 밤 꿈에 호랑이와 곰은 산신령을 만났습니다.

 

너희가 사람이 되고 싶어하다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살려고 마음먹은 것이 대견하구나. 이제부터 너희 이름을 수호랑과 반다비라 붙여주마. 하나님이 지으신 강원도 산을 반달처럼 환하게 밝히고 수호하거라.”

 

 

꿈에서 깨어난 백호 수호랑과 반달곰 반다비는

기분이 하늘꼭대기까지 좋아졌겠죠?

얼른 높은 산에 올라 이산 저산 둘러봅니다.

 

평창 올림픽으로 강원도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곧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강원도는 조용해질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다녀간 뒤엔 언제나 산이 몸살을 앓기에

반다비와 수호랑은 더 정성을 다해 산을 지킵니다.

 

반다비 가슴의 반달이 환하게 빛을 뿜습니다.

그러자 빛이 저 멀리 정선 가리왕산을 비춥니다.

한눈에 보기에 폭격을 맞은 듯 산허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은 얼른 달려가 가리왕산을 오릅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가리왕산이 떨고 있습니다.

추워서 떨고, 아파서 떨고, 슬퍼서 흐느낍니다.

 

산꼭대기에 오른 반다비와 수호랑은 텅 빈 산자락을 바라봅니다.

눈물을 흘리다흘리다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은 반다비와 수호랑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강원도 산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산신령을 통해 저희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신 하나님! 저희가 강원도 산을 수호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제부터 강원도 산을 지킬 수 있도록 저희에게 밝은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처럼 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반다비와 수호랑의 마음에 기쁨이 솟구칩니다.

 

수호랑아, 난 지금 참 마음이 기쁘다. 너도 그래?”

 

그래, 나도 마음이 참 기쁘다. 만세를 부르고 싶을 만큼 기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기쁨이 차오른 반다비와 수호랑이

두 손 번쩍 들며 소리칩니다.

 

대한독립 만세! 자연독립 만세!”

 

반다비와 수호랑의 만세소리를 들은 사람들 마음에도 기쁨이 차오릅니다.

가리왕산을 더 파헤치려던 사람도 마음을 바꿉니다.

가리왕산을 보호한답시고 이것저것 설치하려던 사람도 마음이 바뀝니다.

그냥 놔두는 것이 가리왕산 회복에 더 좋다는 걸 알고 쓰레기만 치우기로 합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의 만세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다비처럼 수호랑처럼 사람들 마음이 밝아지고 기뻐집니다.

그래서 작은 욕심 버리고, 큰 사랑으로 산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연을 수호하는 것이 사람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됩니다.

 

강원도 평창 반다비와 수호랑의 독립만세소리에

바다건너 섬나라가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의 만세소리는 섬나라 사람들 마음도 환하게 밝혀줍니다.

36년 욕심꾸러기 못된 짓을 눈물로 사죄하고 대한 사람들과 어깨동무합니다.

기미년 삼일독립만세운동의 열매가 점점 무르익어갑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의 만세소리는

자연을 수호하고, 사람을 수호하고, 마음을 수호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마음을 되찾으니 참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람들이 참 사람이 되니 이산 저산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살아납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이 마주보며 환히 웃습니다.

반다비의 가슴달이 환히 빛나고, 수호랑의 털빛도 더 하얗게 빛납니다.

반다비와 수호랑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 마음이,

은하수 찬란한 빛줄기로 빛나게 쏟아집니다.

 

[이정훈 지음. 2018225일 주일 오후]

(아브라함의 새 이름 말씀-창세기 17:1-7-을 중심으로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이름을 재해석하고 삼일절 만세운동과 연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