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9일, 성령강림절 4주(성령강림 후 3주-환경선교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분은 나의 화수분
[성서일과 4본문]
(왕상 17:8-24)
8.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너는,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내가 그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주도록 일러두었다."
10. 엘리야는 곧 일어나서, 사르밧으로 갔다.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11. 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주시면 좋겠습니다."
12. 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13.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14.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16.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17.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이 집 여주인의 아들이 병이 들었다. 그의 병은 매우 위중하여서,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18. 그러자 그 여인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어른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저에게 오셔서,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19.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면서, 그 여인의 품에서 그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물고 있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침대 위에 뉘어 놓고,
20.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의 과부에게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21. 그는 그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려서, 몸과 몸을 맞춘 다음, 주님께 또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제발 이 아이의 호흡이 되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엘리야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의 호흡을 되돌아오게 하여 주셔서, 그 아이가 살아났다.
23. 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내려와서, 아이를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24. 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편 146)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갈라 1:11-24)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15.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16.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18. 삼 년 뒤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나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 밖에는,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나는 유대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는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23. 그들은 다만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그가 전에 없애버리려고 하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하는 소문을 들을 따름이었습니다.
24. 그래서 그들은 나를 두고 하나님께 줄곧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 7:11-17)
11. 그 뒤에 곧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성읍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과 큰 무리가 그와 동행하였다.
12.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다. 그 죽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고, 그 여자는 과부였다. 그런데 그 성의 많은 사람이 그 여자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셔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14.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관에 손을 대시니, 메고 가는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그래서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기를 "우리에게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주셨다" 하였다.
17. 예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대와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지역에 퍼졌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사르밧 과부의 아들, 바울(?), 나인성 과부의 아들
[화수분을 만난 사람들]
진정한 화수분, 썩지 않는 화수분, 변함없는 화수분,,, ⇒ 하나님 사랑
구약(사르밧 과부), 시편(시인), 서신서(바울), 복음서(나인성 과부)
[구약]
*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로서, 열왕기상 17장 1절에 처음 등장한다.
주님과 바알신앙 양다리의 전형인 (아마 바알신앙에 더 열렬했을-왕상 16:30-33) 아합왕으로 인한 극심한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 가뭄을 선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릿 시냇가로 가서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지낸다.
과거 광야 40년 동안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느끼게 한다.
* 오늘 구약본문은 지난 주 본문의 전편이다.
마치 요새 종종 시리즈영화 뒷부분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편의 직전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많은 궁금증들을 풀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겪은 일련의 하나님 체험들, 즉 목마름과 굶주림의 고통과 화수분의 신비, 이어지는 아이의 죽음, 엘리야의 부르짖음, 그리고 되살아나는 기적 등의 체험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지난주 본문에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벌이는 장대한 믿음, 담대한 선포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 굶어죽기 직전 신비로운 구원 체험이 시작된다.
병들어 죽은 직후 신비로운 구원 체험이 시작된다.
이 구원체험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체험’, 곧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는 체험의 시작이다.
엘리야의 이름 뜻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결단을 촉구한 바로 그 내용이 엘리야의 이름 안에 담겨 있다.
(왕상 18:21) 그러자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시편]
* 시편 본문이 오늘 구약과 복음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오늘 복음서 본문의 기초공사에 해당하는 눅 4:18이하, 눅 6:20이하 말씀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다.)
마치 엘리야의 노래처럼 느껴질 정도다.
(누가 4: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누가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사랑 많고 능력 많은 분이심을, 온 생명의 주인이심을 노래하고 있다.
억눌리고 굶주리고 눈멀고 낮은이들, 사회의 약자들(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을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서신서]
*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드러나는 바울의 모습은 구약의 엘리야에 비견(比肩)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명만 따르는 예언자의 모습이다.
율법에 투철하나 율법에 종속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 만나 복음을 받음으로, 사람에(예루살렘에) 종속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서]
* ‘나인’(=아름답다, 즐겁다) 나인성; 나사렛 동남쪽 9㎞ 지점에 있다.
* 보통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실 때, 그 병자의 믿음이나 가족들의 믿음 혹은 간절한 마음을 보고 고치시는데, 오늘 본문에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살려주셨다는 구절은 없고, 그저 주님의 측은지심,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마음으로 살려주신다.
(눅 7:13) 주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셔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비교]
(히 4: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히 5:7a)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히 5: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cf) (히 5:2) 그는(대제사장은), 자기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으므로, 무지해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하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 시돈의 두 여자가 비교 된다 ⇒ 사르밧 과부 / 이세벨
* (사르밧 과부의) 마지막 먹을거리가 화수분의 시작이 되다.
* (사르밧 과부의) 마지막 희망(아들)의 죽음과 되살아남이 진정한 화수분(하나님 사랑)의 시작이 된다.
* 죽은 아이를 눕혀놓고 몸을 맞추는 행위는 뒤에 엘리사의 경우와도 통하는데, 마치 첫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기억나게 한다.
[엘리야의 독특한 행동]
(지난 주 본문) 죽은 제물(제단) 위에 3번 물을 부음
(이번 주 본문) 죽은 아이 위에 3번 몸을 맞춤
이번주 구약, 서신서, 복음서 본문에서 “예언자”의 느낌이 강하다.
(왕상 17:24) ‘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 예언자)
(누가 7:16)‘그래서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셨다” 하였다.’
[참고] (예레 28: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가 예언한 말이 성취된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를 주님께서 보내신 참 예언자로 인정하게 될 것이오."
‘예언자(預言者)’라는 뜻은, 구약(나비)과 신약(프로페테스) 모두, 앞일을 미리 말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하나님의 영에게 ‘징발 당한’ 사람”, “제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을 외쳐 널리 알리는 사람”을 뜻한다. ⇒ “하나님의 사람”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주 임무는,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독일성서공회판 해설 참고)
[말씀동화] 갈뫼 약샘, 처음 이야기
지난주일 갈뫼 산 옹달샘 옛이야기 기억하나요?
갈뫼 산에서 벌어진 나무꾼 길리야의 시원한 한판승 기억나죠?
욕심꾸러기 이새별의 약장수들의 코가 납작해졌죠!
그 신비로운 옹달샘이 지금도 퐁퐁 솟아오르고 있는 비밀 이야기도 기억하죠?
오늘은 바로 갈뫼산 옹달샘이 과연 어떻게 해서 저리 신비로운 약샘이 되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그 처음 이야기예요.
옛날옛날, 호랑이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100년 동안이나 쿨쿨 단잠을 자던, 좋은 시절 이야깁니다.
봉골 소리골에 자그마한 오두막집이 한 채 있었는데, 거기 나무꾼 신복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어요.
신복이는 천성이 부지런하고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죠.
이름도 신복이예요, 이신복(李神僕)! 하늘님의 종이라는 뜻이에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나무를 하러 갈뫼 산을 오르던 신복(神僕)이가 깜짝 놀랍니다.
산기슭에 웬 낯선 사람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거든요!
그가 바로 길리야 아저씨였어요.
원래 봉골은 원주 이씨 씨족 마을이었는데 낯선 성, 낯선 외모, 낯선 직업을 가진 그 사람이 봉골에 들어와 살게 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원래 길리야는 전국의 신령한 산을 두루 찾아다니는 심마니였죠.
심마니가 뭔지 아세요?
심마니란, 높고 깊은 산에 올라 약초를 캐고 산삼을 캐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길리야는 다른 심마니들처럼, 산을 사랑하고, 산을 존중하고, 하늘님을 깊이 공경하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길리야에게 크나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소중한 산삼 찾는 일을 다 팽개치고 하늘님께 기도만 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왜냐하면,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죠.
멀쩡한 산을 깎아내기 시작하고, 흐르는 강물에 둑을 쌓아 강물을 가두기 시작한 거였어요.
아무도 왕이 왜 갑자기 산을 망가뜨리고 강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는 모릅니다.
뭇 생명을 죽여서라도 돈을 벌려고 안달하는, 저 악명 높은, ‘쯧쯔돈귀신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죠.
그래서 길리야는 목숨을 걸고 하늘님께 100일 기도를 시작한 거였어요.
“하느님! 온 세상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하느님이 지으신 산이 얼마나 소중하고, 강물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깨닫게 해주세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온 산과 강의 생명들을 죽이는 저 돈귀신 들린 사람들이 정신 차릴 때까지 제발 비를 멈춰주세요.!”
그러자 온 세상에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해 배가 고파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산을 찾기 시작했죠.
비가 안와도 농사를 못지어도, 산에 가면 먹을거리가 많았거든요.
우리가 키우지 않아도 맛있는 풀과 나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는 곳이 바로 산이랍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산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산도 마르기 시작했어요.
비는커녕 이슬도 내리지 않았거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물도 말라가자 사람들은 애가 타기 시작했죠.
드디어 돈에 눈이 어두워 산을 깎고 강을 막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하늘님께 기도드리려고 양평의 신령한 산을 찾다가, 마침내 봉골 갈뫼 산을 찾아 열심히 오르던 길리야가 그만 기진맥진해서 쓰러진 거였어요.
때마침 마을 사람 중에서 가장 하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착한 나무꾼 신복이가 길리야를 발견했죠.
신복이는 배가 고파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길리야를 지게에 지고 내려와 한 단지밖에 안 남은 귀하디 귀한 생수를 먹였어요.
길리야가 깨어나자 아궁이에 불을 지펴 마지막 남은 물과 마지막 남은 쌀로 죽을 쑤어 먹였고요.
정신이 들고 기운을 차린 길리야는 고마운 신복이를 데리고 갈뫼 산으로 올라갔죠.
그리고 산속에 있는 작은 옹달샘을 찾아냈어요.
바짝 마른 옹달샘을 붙들고 길리야가 기도합니다.
“하느님, 신복이처럼 착한 사람이 목마르지 않게 해주세요, 신복(神僕)이처럼 하느님 공경하는 하느님의 종이 더 이상 굶주리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자 이게 웬일이야? 옹달샘이 다시 퐁퐁 솟아오르기 시작했어요.
눈이 휘둥그레진 신복이와 길리야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옹달샘은 신나게 퐁퐁 솟아났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 옹달샘 곁에 있던 나무에 맛있는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하네요?
한입 베어 물으니 단물이 줄줄 흘렀어요.
두입 베어 먹으니 벌써 배가 부르기 시작하네요?
신복이와 길리야는 그 맛있는 열매를 한 아름 따서 산을 내려왔어요.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그 열매를 나눠주며 이 기쁜 소식을 전했어요.
봉골 사람들은 너도나도 산에 올라 옹달샘 물을 마시고, 다디단 샘물을 물항아리에 가득 담아 내려왔겠죠?
그리고 너도 나도 맛있는 나무 열매를 한 아름씩 따서 내려왔어요.
이튿날부터 아침마다 봉골 사람들은 갈뫼 산에 올라가 옹달샘 물을 긷고 나무 열매를 따서 내려옵니다.
참 신기하게도, 온 마을 사람들이 샘물을 다 길어가면 옹달샘이 바닥났다가도, 이튿날 새벽이면 다시 옹달샘은 맑은 물이 하나 가득 차오릅니다.
참 신기하게도, 옹달샘 곁 나무에서는 형형색색 희한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과일을 먹고 싶으면 과일 맛이 나고, 떡을 먹고 싶으면 떡맛이 나는 신비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아무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아무거나 다 열린다고 해서 아무나무, 아무열매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아무나무 열매도 마을 사람들이 한 아름씩 다 따 가도 이튿날 새벽만 되면 다시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마음씨 착한 봉골 사람들은 쫄쫄 굶고 있는 이웃 마을 사람에게 물도 나눠주고 열매도 나눠주었어요.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나눠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딱 한 사람, 봉골을 다스리는 마을 원님이 문제였어요.
돈만 보면 돌아버리는 돈꾸러기 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었죠.
‘돈꾸러기 병’은 ‘쯧쯔돈귀신병’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어느 날 돈꾸러기 사또가 곰곰이 생각했어요.
‘저걸 내다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아무튼 봉골 사람들은 너무 한심해. 저걸 공짜로 다 나눠주다니 말야! 옹달샘은 몰라도 나무라도 내가 뽑아 와야겠다. 나무열매를 팔아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동네사람들도 나를 존경하게 되겠지, 암, 그렇고말고!’
돈꾸러기 사또는 포졸들을 데리고 곡괭이와 삽을 가지고 산에 올라갔어요.
낑낑대며 아무나무를 뿌리째 파다가 자기 집 마당에 심었어요.
이튿날 아침, 아무나무 열매를 잔뜩 따다가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 시작했겠죠?
온 고을 사람들이 수군수군 아무리 욕을 해도 들은 체 만 체 열심히 열매장사를 했어요.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날이 갈수록 나무가 시들시들해지는 거였어요.
날이 갈수록 열매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매일매일 물지게를 지고 옹달샘 물을 날라 나무에 부어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옹달샘도 드디어 말라버리고 말았거든요.
돈독이 너무 강해서 나무도 못 견디고 옹달샘도 견디지 못한 건가 봐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돈꾸러기 사또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간신히 빚을 내서 조금씩 사서 아껴 먹는 아무나무열매를, 그동안 사또는 매일매일 혼자서만 배가 터져라 먹어댔기 때문이겠죠?
드디어 돈꾸러기 사또는 엉금엉금 기어 마을에서 가장 신앙심이 좋은 길리야와 신복이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병이 나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싹싹 빌었어요.
길리야는 사또를 데리고 갈뫼 옹달샘으로 올라갔어요.
신복이와 마을 사람들도 다 따라 올라갔어요.
물론 사또네 집에 심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던 아무나무도 다시 캐내어서 같이 가지고 갔어요.
아무나무를 원래 있던 자리에 심어 놓고 나서 길리야가 사또를 따끔하게 야단쳤습니다.
“아무리 그 임금에 그 사또라지만, 나라를 다스리고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잔뜩 돈독이 오르면 되겠어요? 돈 때문에 강산을 죽이고, 돈 때문에 하늘이 내려주신 자연을 팔아먹으니 하늘이 노하시지 않겠어요? 어서 하늘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돈꾸러기 사또는 하늘님께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기도했어요.
“하느님, 하느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한번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돈타령하지 않고, 제가 긁어모은 돈 모두 다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엉엉”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한 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기도했어요.
미운 사또지만, 밉살스런 사또지만, 당장 죽어가는 사또를 위해 기도했어요.
그러자 이게 웬일이죠? 갑자기 옹달샘이 들썩거리기 시작합니다.
옹달샘 밑바닥에서부터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옹달샘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돈꾸러기 사또 머리 위에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그리고 다 말라죽은 아무나무 위에도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시름시름 죽어가던 사또가 다시 살아난 거예요.
드디어 우리 아무나무도 다시 파릇파릇하게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와∼! 이게 웬일이야?
드디어 아무나무 가지가지마다 알록달록 맛있는 열매가 다시 열리기 시작하네요?
마을 사람들은 신바람이 났어요.
모두모두 서로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었어요.
하늘님 고맙습니다! 찬양이 절로 나왔어요.
이렇게 해서 봉골 갈뫼 옹달샘이 천하에 하나뿐인 신비로운 약샘으로 변신하게 된 거에요.
발 없는 말이 백리를 가고 순식간에 삼천리를 달렸어요.
갈뫼 약샘과 아무나무 열매의 소문이 순식간에 온 나라에 가득 퍼졌고요, 돈꾸러기 사또가 죽다 살아난 소문도 널리널리 퍼졌어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하늘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했어요.
“하느님 저희를 용서해주세요.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돈꾸러기 왕을 따라 강물을 가두고 산을 깎았습니다. 돈 버느라 삼천리 금수강산의 수많은 생명들을 죽게 한 저희 죄를 용서해주세요. 그동안 천벌을 받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픕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돈 때문에 자연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제발 저희를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저희를 살려주세요!”
백성들의 기도 소리가 온 나라를 진동하기 시작하자, 돈꾸러기 왕이 슬금슬금 멀리멀리 도망쳐버렸어요.
그러자 마침내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3년 6개월만에 내리는 단비였어요.
드디어 온 나라의 산천초목이 제 빛깔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강물을 가두었던 강둑이 허물어지고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삼천리 방방골골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한 거예요.
길리야는 이제 더 이상 산삼을 캐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봉골 갈뫼 약샘이 산삼보다 훨씬 약효가 좋기 때문이죠.
하늘님과 가장 가까운 길리야와 신복이는 이제 다 알게 되었어요.
온 세상 샘물이 다 마르고 바닷물이 다 마를지라도, 하늘님의 사랑은 마르는 법이 없다는 걸!
길리야와 신복이는 오늘도 배가 든든합니다.
밥을 안 먹어도 물을 안 마셔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갈뫼산 옹달샘 덕분에, 우리 하늘님이 바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나의 화수분이라는 것을 환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길리야와 신복이가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습니다.
(* 부산 YWCA는 부산 시민들이 가정에서 매일 밤 전등 하나씩만 꺼도 부산 옆 기장군의 고리원자력발전소 하나를 없앨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 「하늘양식」2013년 6월 9일, 박순웅목사님 설교 중에서 참고)
[이정훈 지음, 2013년 6월 8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