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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4일, 부활절 3주 예배준비노트

서무천사 2013. 4. 13. 20:55

이름을 부를 때 꽃처럼 피어오르는 기억

 

(사도행전 9:1-20)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20.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시편 30)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

2.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요한계시록 5:11-14)

11. 나는 또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 수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1-19)

1.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013년 부활절 3주 성서일과 4본문을 읽고 묵상하며 떠오른 몇 가지 마음의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역동성과 ‘기억’]

4본문 모두 역동적인 분위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이야기이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 사도행전 본문은 한마디로 인생역전(人生逆轉)입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던 사울이, 살기등등하던 그 사울이 180도 변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여러 회당에서 그 이름을 선포합니다. 그야말로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듯이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 시편 본문은 마치 사도행전 본문에 대한 응답찬송 같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의 주인공 사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감동하는 심정이 느껴집니다. “수렁”(1), “스올”(3), “무덤”(3), “구덩이”(9)에 빠진 나를 구해주시는 그 은혜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매우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5, 11, 12절이 인상적입니다.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 요한계시록 본문 역시 아주 강렬합니다. 오늘 본문들을 영상과 음향으로 묘사한다면, 4본문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1, 12절에서는, 수천 수만의 천사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13절에서는 피조세계의 만물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외치는 소리는 찬양입니다. 어린 양 예수, 십자가에 죽으시고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 요한복음은 물고기를 잔뜩 잡은 장면과 예수님을 알아본 베드로가 새벽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조금 다이나믹합니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잔잔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읽어보면, 오늘 복음말씀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제자들의 잠자는 신앙에, 메마른 신앙에 불을 지르는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두 차례 만났음에도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세 번째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저들의 잠자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저는 복음서 본문 마지막 절에 나오는 “암시”라는 단어를 묵상하다가 몇 가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①새벽 바다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와 진행과정은 딱 누가복음 5장을 연상시킵니다. 밤새 허탕만 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던,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잔뜩 잡았던, 이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마지막 만난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잔뜩 잡으면서 예수님과의 그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②예수님과 처음 만난 그 날 “나를 따라오너라...”(막 1:17) 그 음성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마지막 만난 오늘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요 21:19)

③12절에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생전 주님과 마지막 나누었던, 며칠 전 그 밥상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내 양을 먹여라” 하시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께서 스스로 몸을 쪼개 주셨듯이 베드로는 양떼를 먹이기 위해, 주님의 몸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던져야 하는 목자의 심정을 실천하게 됩니다. 19절 말씀들이, 특히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④17절에서 베드로는, 새벽바닷가에서 3번 연거푸 질문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몹시 불안합니다. 그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3연속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어쩌면 그 새벽, 첫 닭 울음과 함께 울었던 그 통곡이 기억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름]

오늘 4본문을 좀 더 묵상하다보니, ‘이름’이라는 끈을 붙잡게 됩니다.

 

부활예수님께서 부르신 두 이름, 사도행전의 ‘사울’과, 복음서의 ‘시몬’이 두드러집니다.

사도행전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4)와 복음서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 16, 17)... ‘핍박’과 ‘사랑’이 대조적으로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15절에서 부활 예수님은, ‘사울’을 가리켜 “내 이름”을 담을 “내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그릇이란, 음식물을 담아 저장하고, 숙성시키고, 요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울’과 ‘시몬’ 두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을 담을 귀한 그릇으로 부름 받습니다.

 

한편, ‘성전’은 주님의 이름을 담는 큰 그릇입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성전이란 ‘주님의 이름을 두려고’ 지은 곳입니다.

(이런 표현은 구약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 “내 이름을 두려고”, “자기 이름을 두려고”, “그의 이름을 두려고”)

성전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곳이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곳입니다. 시편 30편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그 이름의 의미를,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합니다.

 

오늘 시편인 시 30편은 바로 수전절(修殿節)에 부르는 찬양입니다.

주전 165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지고 파괴된 성전을 정결하게 재건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광명절, 성전봉헌절)입니다.

수전절은 성경전서 중에 요한복음 10장에 딱 한 번 나오는 절기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로마군에게, 유대인들에게 모욕당하시고, 그렇게 온몸이 허물어지고 다시 부활하신,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수전절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바로 이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 성전 솔로몬 행각을 거니신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그 때 무슨 묵상을 하셨을지 짐작해 봅니다.

오늘 시 30편을 부르고 묵상하면서, 수전절의 깊은 뜻과 수전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나머지]

수요일 아침, 매일 성서일과인 에스더 9:22절 말씀을 읽다가 이번 주일 시편 30편 11절과 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스더 9:22) 그 날에 유다 사람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났으며, 그 날에 유다 사람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 모르드개는 그 이틀 동안을,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하는 명절로 정하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시편 30: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참고로, 시 30편은 ‘수전절’, 에스더 9장은 ‘부림절’과 관계가 깊습니다.

 

복음서의 부활 예수님과 베드로의 새벽 대화에 나오는 “사랑”의 희랍어 단어가 아가페와 필리아로 구분되는 것에 대해, 구별된 의미로 보는 입장과, 차이 없이 썼던 당시 문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묵상에서는,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시는 대목과, “내 양떼를 먹여라”고 하시는 말씀, 그리고 “나를 따라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아가페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가페는 당신의 몸을 먹이로 주신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양떼를 먹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묵상했습니다.

 

 

[말씀동화]  예수꽃이 활짝 피었어요

 

겨우내 움츠렸던 땅이 조금 조금 푸슬푸슬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무죽죽한 산이 파릇파릇 살아납니다. 거무튀튀한 들판은 온통 연초록빛 카펫으로 뒤덮입니다. 그러자 초록빛깔 화선지 위에 노란 색 물감이 번지듯이 온 산 산수유나무들은 불꽃놀이처럼 팡팡 꽃망울을 터치기 시작합니다. 나도 질세라 샛노란 개나리도 앞다투어 골든벨을 울려댑니다. 아뿔싸!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땅바닥에는 제비꽃이 지천입니다. 성실한 제비꽃들이 보랏빛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만물이 되살아나는 어느 봄날, 산수유 꽃 빵 터지고 개나리 삼천만 골든벨이 한꺼번에 울리는 어느 봄날, 돌무덤도 빵 터지듯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꽃처럼 부활하셨고, 꽃향기 스며들 듯 꽁꽁 잠긴 제자들의 마음 문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작은 꽃봉오리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기쁨의 꽃으로 활짝 피어오를 것입니다. 어리버리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신비는 아직도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으슬으슬한 물가에 빨간 불꽃 하나가 피어오릅니다. 누군가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여긴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 바다 같은 호수, 호수 같은 바다입니다. 디베랴 해변은 우리 예수님이 사랑의 불씨를 품고 천국복음을 전도하시던 자리입니다. 제자들과 처음 만난 첫사랑의 추억이 깃든 게네사렛 호수 곁입니다.

 

부활예수님을 벌써 두 차례나 만났음에도 아직도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은, 하릴없이 고향으로 내려와 고기잡이배를 탔습니다.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춥고 배고픈 제자들은 몸도 마음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던 제자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물이 터질 듯 많은 고기, 큰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때 요한이 예수님을 먼저 알아봅니다. 그리고 천방지축 베드로는 무작정 추운 새벽바다로 뛰어듭니다. 어푸어푸 헤엄치며 주님께 갑니다. 예수님 따라서 바다 위를 걷다가 거센 풍랑을 보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날 그 새벽바다가 기억났습니다.(마 14:25∼) 그리고 또 하나 또렷한 기억이 솟아납니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누가 5:4)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그 말씀입니다. ‘그날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었지! 맞아, 그날도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터였었지...’ 예수님과 첫사랑에 빠졌던 그날 그 바닷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피어오릅니다. 밤새 헛고생만 한 제자들, 물에 빠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베드로를 따뜻한 모닥불 곁으로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춥고 배고픈 제자들에게 고소하게 구운 떡과 물고기를 주십니다. 제자들은 그 떡을 먹으면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건네주시던 그 떡을 기억합니다. 베드로는 그 떡을 먹으면서 꾸역꾸역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배가 든든해지고 젖은 몸이 조금씩 말라갑니다.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 이렇게 불러주신 것이 과연 얼마만인가? 주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산수유 꽃 한 다발이 피어오릅니다. 축포처럼 활짝 피어오릅니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시몬의 이름을 부르실 때 골든벨처럼 샛노란 개나리꽃이 피어오릅니다. 개나리꽃의 꽃말은,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입니다. 그러고 보니 골든벨 보다는 십자가처럼 생겼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기억이 솟아납니다.(요한 13:3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시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새빨간 동백꽃마저 피어오릅니다. 동백꽃의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입니다. 두 번째 같은 물음에 똑같이 사랑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씩이나 똑같이 물으시니 베드로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호랑이처럼 우렁찬 베드로가 개미같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아시잖아요...’ 그 순간 동백꽃이 뚝 떨어집니다. 떨어진 동백꽃을 가만히 주워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베드로는 기억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그 날을... 그날도 새벽이었죠.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꺼이꺼이 울음 울던 그 새벽을 기억하면서 베드로의 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오래 맺혔던 아픈 기억들이 그 눈물처럼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베드로의 상처가 주르르 씻어집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아름다운 시, ‘꽃’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꽃인 줄 몰랐던 그 녀석조차 제 이름을 불러주니 나의 꽃이 되어버리는 신비를, 시인은 마법처럼 보여줍니다. 천방지축 베드로, 그 이름을 부르시자 너럭바위 위에도 꽃이 핍니다. 베드로는 산수유꽃처럼, 개나리꽃처럼, 그리고 동백꽃처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죽도록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 자신조차 몰랐던 사랑입니다. 그분이 내 이름을 부르셨을 때 비로소 피어오른 사랑의 꽃, 사랑의 기억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랑의 꽃은 계속 피어오릅니다.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 사울조차 사랑의 꽃을 피웁니다. 죽음조차 그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담아 나르는 예수님의 그릇입니다.(행 9:15) 주님의 이름을 담는 가장 큰 그릇은 성전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성전입니다. 너도 성전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성전이요,(고전 3:16, 6:19) 주님의 이름을 모신 성전입니다. (느헤 1:9)

…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

 

내 안에 예수님의 이름이 담겼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꽃이 피어오릅니다. 내 이름 안에 그 이름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이름 안에 내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시몬의 이름을 부르시고 사울의 이름을 부르셨던 예수님이 지금 내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부르실 때 나는 어떤 꽃으로 피어오를까요? 어떤 사랑의 꽃, 어떤 사랑의 기억이 피어오를까요?

[이정훈, 2013년 4월 14일 새벽기도 직전에 지음]